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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철호 목사 창녕학포교회담임
필자의 매우 단편적이며 주관적인 관찰이긴 해도, 약 3년 전부터 이만열 교수에 대해 의미 있는 3가지 새로운 사실들을 알게 되었다. 그 첫 번째 사실은 한동대학교의 류대영 교수가 쓴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 책의 제 8장은 “1980년대 이후 보수교회 사회참여의 이론과 사례”라는 주제를 다루고 있는데, 당대의 복음주의적 참여신학을 형성하는데 기여한 대표적인 두 가지 사례 중 하나를 이만열 교수의 역할에 할애하고 있었다(류대영, 2009:324-333).  

두 번째는 ‘역사발전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이 교수 자신의 진술을 통해서였다(이만열, 2007a:23-24 ; “인간 중심으로 볼 때 역사의 발전이란 역사의 주인공 노릇을 할 수 있는 인간이 수적으로 확대되어 가는 과정이면서 역사의 주인공인 인간이 개인적으로는 더욱 자유로워지고 사회적으로는 더욱 평등해지는 일련의 과정을 말한다고 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에 띄는 부분은 ‘평등’이라는 낱말이다. 이것은 이 교수의 사관(史觀)이 기독교의 하나님나라 복음의 정신과 잘 통합되어 있음을 시사해 주는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한다. 그것은 사회 속의 평등의 가치란 유교적인 서열 문화와 자본주의 질서가 굳어 진 우리 사회에서 흔히 간과되기 쉬운 복음의 정신으로 생각되었기 때문이다(막10:45, 마7:12, 눅4:18-19, 행4:32).

세 번째는 ‘민족’의 존재의미를 신학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사도행전 17장 26절(;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살게 하시고 그들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정하셨으니...”)의 본문을 하나님의 섭리의 관점에서 이해하고 있는 대목을 통해서였다(이만열, 1981:259; 1991:4; 참고. 류대영, 2009:331).  

흥미롭게도 이 본문(행17:26)은 20세기 후반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풍미했던 ‘아파르테이트 신학’(Apartheid theology, 인종분리정책을 정당화한 신학)을 정립하는데 초석이 되는 5개의 근거 본문들 중에 하나였다. 나중에 그곳에서 반세기 가까이 치열한 성경해석학의 싸움을 통해 밝혀져 논박된 대로, 이설적인 이 신학을 뒷밭침하고 있던 그 본문에 대한 해석에서 문제가 된 것은 섭리가 아니라 규범(norm)의 관점에서 그것을 읽은 사실 때문이었다.  

여기서 이 교수께서 사도행전 17장 26절 본문을 규범이 아니라 섭리의 관점에서 읽었다는 것은 민족의 존재가치를 절대화하지 않고 상대화한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20세기 후반 남아공의 화란개혁교회(DRC)는 관련된 5개의 성경 본문을 근거로 민족(volk)의 존재가치를 절대화함으로써 인종차별적인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득세케 하여 심대한 사회문제를 야기한 바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에 비추어 볼 때, 이른바 이만열 교수의 기독교 민족주의는 외견상 민족주의 이데올로기를 최대한 배제하면서 기독교적 가치와 조화되는 민족의 개성적인 정체성(identity)이나 그 자주성을 천명하여(이만열, 1991:4-5), 주로 민족이 겪고 있는 심대한 고통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기여코자 하는 신앙적 학문적 모색이라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이와 같은 세 가지 사실들로 인해서, 필자는 내심으로 만약 강의의 주제와 충분한 연관이 있는 경우라면 이만열 교수야말로 고신교회를 위한 우선적인 고려 대상의 강사가 아닐까 하는 의견을 평소에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특히 주류 고신교회의 하나님나라의 역사적 현재성에 관한 신학적 입장이 다소 모호해 보이는 반면에 이에 대한 이 교수의 견해는 훨씬 더 구체성을 띠고 있어서 연관된 강의를 통해 이를 보완할 여지가 적지 않을 것으로 기대되었기 때문이다(류대영, 2009:332-333; 특히 참고. 이만열, 1991:375-411, 495-529). 이와 관련해 남아공의 드 그루시(2008:121-122)는 개혁전통 안에 있는 하나님나라의 메시지는 플라톤적 잔재로 인해 너무 자주 영화(靈化)되고 몰역사화 되어져 왔음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논한 바가 있었다.  

그런데 매우 뜻밖에도 4개월여 전에 ‘코람데오닷컴’의 토론방을 통해 “더 이상 이만열이를 고신에 초청하지 말라!!!”는 다소 자극적인 제목의 J목사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J목사가 이만열 교수를 더 이상 고신교회에 초청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퍼온 글’의 내용을 참고할 때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이만열 교수가 2003년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으로서 개천절 경축사를 할 때 “단군은 우리의 선조이다”라는 언급을 한 사실 때문이고, 다른 하나는 이 교수가―퀘이커교의 회원이었던 함석헌 선생의 철학적 사상을 계승하기 위한―‘함석헌 학회’의 학회장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이러한 J목사의 주장에 대해 이만열 교수는 지난 6월 16일에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비판과 폄훼”라는 글을 통해 유감 섞인 해명을 한 바가 있었다. 그 며칠 후에는 J목사가 고신총회 자유게시판을 통해 “이만열 장로의 참된 실체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글로 “비판과 폄훼”에 나타난 이 교수의 신학적 문제점을 부각시켜 재차 거론하였다.  

이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접하게 되면서, 필자가 거론되고 있는 문제에 대한 이만열 교수의 신학적 견해들을 모두 타당하게 여기는 것은 아니지만, 이 교수께서 너무 많은 오해를 받고 있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어려웠다. 그래서 이런 오해가 어느 정도라도 불식되기를 바라는 심정에서, 두 가지 문제 중에 퀘이커교와 관련된 것부터 먼저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한다.  

하지만 “비판과 폄훼”라는 글 속에 나타난 바와 같이, ‘내면의 빛’과 관련된 퀘이커교의 이단성에 대한 이 교수의 해명에도 애매한 부분이 없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왜냐하면 비록 퀘이커교가 주장하는 ‘내면의 빛’(inward light)이 요한복음1:9-18절에 근거해 있다고 해도, “퀘이커교는 우선 그리스도교의 중핵적 전통의 노선에서 약간 소외되어 온 노선을 따르고 있다”는 한 연구자의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김영태, 1997:95).  

그럼에도 J목사가 이 교수께서 ‘함석헌 학회’의 학회장이라는 역할 때문에 고신교회의 강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판단으로 보인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니버(H.R. Niebuhr)의 범주에 따르면 개혁전통은 주로 ‘문화와 대립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이 아니라 ‘문화를 변혁하는 그리스도’에 관한 신학이므로, 이런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논란의 여지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뿐 아니라 여기서 퀘이커교의 이단성이 주로 문제시 되고 있는 만큼, 함석헌 선생이 퀘이커교의 회원이 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사실이 그가 퀘이커교도가 된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도 마땅히 고려되어야 할 것이다(김성수, 2005:186).  

다음으로 이 교수께서 바로 10년 전에 개천절 경축식에서 개천절의 내력을 설명하다가 단군을 “우리의 선조”라고 언급을 한 문제를 논의해보려고 한다. 실제로 이 문제는 그와 같은 발언 그 자체만으로도 바라보는 관점에 따라 문제가 될 소지는 충분히 있다. 게다가 이 언급이 그 당시 기독교계의 초미의 관심사였던 ‘단군상 문제대책’에 정면으로 배치되는 처사로 비춰졌을 경우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언급이 해당 발언 그 자체 외의 특수한 상황적 요인으로 인해 오해의 여지가 많은 문제일 경우, 그런 언급을 하게 된 동기나 그 전제에 대한 확인이 필수적으로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그런 언급을 하게 된 진의가 너무 쉽게 왜곡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단군이 “우리의 선조”라는 언급은 한 나라의 긴 역사와 관련된 표현이므로, 우리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에서 이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비록 좌절되긴 했어도, 과거에 정부 차원에서 단군상(혹은 단군신전)을 건립하여 국론을 통일해 보려는 시도가 몇 차례(1966, 1970, 1985년 등) 있었다. 그런데 1999년에는 한 민간단체(한문화운동연합-현재는 홍익문화운동연합) 주도로, 전국 초중고교와 공공장소에 ‘통일기원국조단군상’369기를 건립하여 많은 사회적인 논란을 야기하였다. 하지만 그 민간단체의 단군상 건립 명분이 아무리 근사해도, 그 단체 지도자(명예총재)의 행적 하나만 놓고 본다고 해도, 그 건립 의도는 순수해 보이지 않으며, 그 건립에 종교사업적인 관심도 없지 않아 보인다(위키백과 ‘단월드’ 검색 참조). 이런 사실을 통해 우리는 단군신화를 통한 정치적, 또는 종교사업적 이용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는 단군신화를 이처럼 이용하는 입장만 아니라―비록 의도하지 않았다 해도 결과적으로―그것을 역이용하는 세력도 있는 것 같다. 그 사례를 우리는 소위 ‘식민지근대화론’을 주장하는 주류 뉴라이트 계열의 단체들에서 찾아볼 수 있다(참고. 2007b:524-573). 여기서 주류 뉴라이트가 단군신화를 역이용하는 입장이라는 것은 그들이 단군신화를 부정하는 사관(史觀)을 따르면서(이만열, 2001:323-324), 민족의 존재가치는 부정하고 재물의 가치는 거의 절대화함으로써 자신들의 이념을 정당화하는 입장을 보이는 까닭이다(김기협, 2008:71-82). 류대영(2009:402, 410)도 한국의 뉴라이트가 뜻하는 자유주의는 그것이 경제적인 차원으로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사회윤리가 결여된 특징이 있다고 본다. 역사학자 김기협(2008:208, 222)은 “뉴라이트의 모든 가치는 재물에 걸려 있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우리는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Mammon)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는 말씀을 숙고해 보면, 눈에 보이는 단군상만 우상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지상주의적인 이념도 우상이 될 수 있음을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마4:3-4, 골3:5, 엡5:5). 이것은―번영 이데올로기의 아류로 보이는―뉴라이트의 경우처럼 ‘민족’의 존재가치를 부정하는 입장을 통해서도 눈에 보이는 것과는 전혀 다른 양상의 우상숭배가 가능함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해, 드 그루시(2008:142)는 개혁전통에 내재한 위험 요소들 가운데 하나는 눈에 보이는 우상을 폐기하는 것 자체를 우상숭배가 극복된 것으로 간주하려는 환상에 있다고 지적한다.  

이런 사실 때문에 이만열 교수는 단군의 신격화와 역사화는 구분될 필요가 있음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역설하고 있다(이만열, 2001:341-343). 김영재 교수는 한편으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단군이 설화 속의 인물이든 역사적인 인물이든 상관없이 단군을 신격화하여 신앙과 숭배의 대상으로 삼는 일에 반대한다”(김영재, 2008:467)라고 천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우리는 다만 역사학자들과 함께 단군 신화를 우리 한민족의 개국 설화로 이해하면서, 동시에 이런 유의 설화는 다른 민족 국가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임에 유의한다”(김영재, 2008:466)라며 단군의 역사성을 전적으로 부정하고 있지는 않는 듯하다.  

따라서 우리는 이 교수께서 그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의 입장에서 단군을 “우리의 선조”라고 언급한 것을 전적으로 신앙적인 표현인 것으로 간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오히려 우리는 그런 언급이 주로 하나님의 섭리 속에 있는 민족의 정체성이나 그 자주성을 합당하게 천명하려는 동기에서 나온 표현은 아닌지 더욱 유의해서 확인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여기서 강사로서의 역량에 관한 손봉호 교수의 평을 덧붙이자면, “이 교수의 강연은 항상 알맹이가 있고 매우 진지하며 설득력이 있어서 우리나라의 최고급 강사라 할 수 있다”(이만열, 2007a:347).

 

* 참고 자료

김기협. 2008. 『뉴라이트 비판』. 파주: 돌베개.

김성수. 2005. “한국기독교사에서 퀘이커주의와 함석헌의 위치.” (in 「한국

기독교와 역사」 제23호, pp163-194).

김영재. 2008. “단군상과 ‘홍익인간’.” (in 『되돌아보는 한국 기독교』, pp461-479. 수원: 합신대학원출판부).

김영태. 1997. “퀘이커 신비주의의 공동체 경험 연구.” 서울대학교대학원 박사 학위논문.

드 그루시, J.W. 2008. 『자유케 하는 개혁신학』. 이철호 역, 서울: 예영.

류대영. 2009. 『한국 근현대사와 기독교』. 서울: 푸른역사.

이만열. 1981. 『한국기독교와 역사의식』. 서울: 지식산업사.

이만열. 1991. 『한국기독교와 민족의식』. 서울: 지식산업사.

이만열. 2001. 『한국기독교와 민족통일운동』. 서울: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이만열. 2007a. 『역사의 중심은 나다』. 서울: 현암사.

이만열. 2007b. “일제 ‘식민지 근대화론’ 문제 검토.” (in 『한국 근현대 역사학의 흐름』. pp524-573. 서울: 푸른역사).

이만열. 2013. (6. 16) “비판과 폄훼.” (이만열 교수의 6월 16일자 페이스북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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