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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 홍성철 목사 대전주는교회담임

아마도 모든 시대 가운데 가장 대중적 주제가 있다면 가 그 주제일 것이다. 사람들은 죄를 자주 말하고 세상의 많은 대다수 사람들은 죄를 짓고 산다.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만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죄를 두려워하지 않고 죄를 짓는다. 대다수 사람들은 양심의 제한을 두지 않고 죄를 짓는 것을 기뻐한다. 그러나 죄의 본질은 사람들이 아는 것처럼 어떤 개념이 아니다.  

사람들은 그들이 무엇을 하든지 기뻐하는 것을 자유롭게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떤 사람들은 윤리적 표준, 종교적 가르침, 그리고 도덕 교훈의 폭로로 죄를 즐기는 것이 제한되어 있다. 그들은 죄를 규칙적으로 짓지만 양심 때문에, 그리고 죄의 결과의 공포 때문에 고통당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만든 경계선 안에서 행동하는 경향이 있다.  

성경적 회개 교리는 모든 죄는 하나님을 반역이라는 슬픈 사실에 연관이 있다. 한 사람도 하나님 앞에 올바른 사람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회개로 죄를 돌이켜야 한다. 그런데 현대의 도덕적 영적 쇠퇴기 시대에도 세상은 죄의 회개 교리에 대해 관심을 극히 적게 가진 것을 놀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세웠던 교회가 죄를 사랑하는 세상보다 회개에 대해 거의 모른다면 문제는 심각하게 된다. 슬프게도 오늘날 상황이 그렇다. 회개란 용어는 종교적 용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개를 잘못 이해하고 있거나, 용어 자체를 무시한다.

회개로 시작한 교단도 회개의 용어가 점차 강단에서 사라지고 있다. 일본의 우상인 신도를 대항하여 회개로 시작한 교단마저 회개교리를 무시하고 선포되지 않는다면 아주 슬픈 일이 될 것이다.  

 

1. 그러면 왜 회개 교리를 무시하게 되었는가?

첫째로, 교회 안에서 성경적 교리를 일반적으로 무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리를 설교하지 말라. 분열이 있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성장의 방해물은 연합의 부족이다. 교리에 대한 강조는 분열을 더한다고 생각한다. 이 선언은 맞는 말인가? 그러나 확실히 회개 교리를 설교하면 양과 염소를 구분한다. 그런데 크리스천이 회개를 믿지 않는다면 세상도 회개를 믿지 않을 것이다.  

오늘날 교회성장의 가장 큰 방해요소는 하나님의 임재의 부족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교회가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전체의 말씀을 신실하게 선포하는 것을 거부하는 것에 깊은 슬픔을 갖고 계신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에게 돌아가면 주님이 우리에게 돌아오신다(3:7).  

둘째로, 교리적 설교를 믿는 교회의 일부는 슬프게도 회개교리에 대해 무지해왔다. 회개를 신실하게 믿는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 회개교리를 강조하는데 실패해왔다. 그들은 전혀 성경적 회개를 실천하거나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을 회심이라고 규정하고, 거짓 회심자 만들기를 주력해왔다. 그래서 회개하지 않고 중생하지 않은 사람들이 멤버로 교회로 들어왔다. 그런데 슬프게도 회개하지 않은 사람들이거나 그릇된 회심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들을 크리스천이라고 부른다.  

셋째로, 회개의 본질을 반드시 이해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이다. 어떤 사람은 회개는 옵션이라고 생각하는 자들이 있다. 이런 사람들은 사람은 회개할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한다. 결과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 들어왔지만, 그들의 죄를 돌이키거나 버리지 않고 들어왔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문제가 심각하게 되어가는 결과를 오늘날 보고 있는 것이다. 그 결과로 오늘날 세상과 교회를 서로 분간하기가 어려워졌다.  

넷째로, 어떤 사람들은 회개교리를 유해한 교리로 그릇되게 생각하여 발전시켰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회개는 구원과 관계가 없다고 가르친다. 어떤 거짓 선지자들은 회개는 행위라고 부른다. 그래서 그들은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지 회개하는 행위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믿음과 회개 사이에 항상 존재하는, 분리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닌, 취소할 수 없는 연결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보지 못했다. 죄인이 그들의 불의한 것을 돌이키지 않고 의로운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은 가장 무지한 신학적 사고다. 회개를 행위로 보는 자는 거룩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무지한 결과를 스스로 증명해내고 있는 것이다. 회개와 믿음을 분리하여 믿는 이런 교리적 실수는 교회를 심각하게 손상시키고 있다.  

다섯째로, 교회에서 긍정적 사고를 지나치게 강조하기 때문에 회개를 무시하기에 이르렀다. 기독교는 항상 긍정적 개념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고가 있어왔다. 어떤 사람들은 당신이 만일 긍정적으로 말하지 않으려면 어떤 것을 아예 말하지도 말라라고 말하기도 한다. 회개는 부정적 용어인 것처럼 보이는 반면, 믿음은 긍정적 용어다. 그러나 사람이 건강하려면 먼저 지신이 이미 저지른 질병을 알고 그것을 고쳐야 할 것이다. 의사에게 가는 것은 병이 생겼거나, 병이 날 가능성을 미리 진단하려고 의사에게 가는 것이다. 우리가 영혼의 의사에게 가서 먼저 우리의 질병을 먼저 알고, 치유를 받고 돌이켜야 건강한 신자로서 출발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회개다.  

여섯째로, 회개교리는 성공에 집착한 자본주의 시장경제 마켓이론에 고통을 당해왔다. 수많은 지도자들은 성공을 사랑한다. 그래서 어떤 특정 종교 진리만을 간추려서 심리학과 혼합하고, 청중의 의도에 맞게 설교해준다. 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인간 행복에 있어서 믿음의 중요성, 삶의 유익들, 인간 인격의 함양에 초점을 두는 설교를 주로 한다. 그런 결과로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하고 지옥과 심판에 대한 교리는 뒷전이다. 이런 설교의 중점의 결과로 교회 안에서 성령의 역사와 임재의 역동적 사역이 부재한 결과를 낳게 되었다. 주일날 수많은 교회를 가는 사람(church-goers)들은 회개할 필요에 대해 생각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회 안에 다가오는 심판과 의와 세상의 죄를 책망하는 성령의 사역이 아주 부족하기 때문이다(16:8-11). 그리고 죄에 대한 죄책감이 없기 때문에, 회개할 필요가 전혀 없다든지, 회개할 것이 약간 있거나, 그 결과로 그래서 회심이 발생하지 않는다. 지옥의 문을 부수고 세상을 이기는 교회에서 가장 기초적인 회개가 간과되고 있는 것은 아주 슬픈 일이다.  

일곱째로, 오늘날 지도자들 사이에 도덕적 진지함과 성실함이 부족하다. 지도자들이 회개를 설교하고 가르치기는 하나, 지도자들 사이에 성경적으로 명령된 회개와 그 회개에 반응하는 영적 관심이나 도덕적 능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2. 회개교리를 무시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반응

그러면 교회가 회개교리를 제쳐놓고 사역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느끼실까? 하나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는 새로운 시대이며, 회개교리가 옛 진리인 것처럼 제쳐놓으면 기뻐하고 웃으실까? 아니면 하나님은 하나님의 방식인 회개 교리를 먼저 제쳐놓고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교회를 이루는 자들을 향해 분노하실까?  

성경은 하나님의 방식을 거부하는 자들을 대항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그의 뜻, 방식, 그리고 주의 말씀을 거부하고 반대로 행하는 자에게 축복을 거부한다.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이스라엘에게 말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성령을 슬프게 하고 반역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원수가 되어 그들을 향한 얼굴을 돌렸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반대로 대항하여 싸웠다(63:10). 그래서 회개 교리를 강조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항하리요?”라고 말한다. 그러나 바꾸어서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대답할 것인가: “하나님이 우리를 대항하면 우리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가?” 이것은 하나님의 회개 교리를 버리고 가르쳐 하나님을 버리는 오늘날 우리의 시대를 향한 한가한 질문이 아니다. 하나님은 회개하지 않고 평안하다고 일삼은 교리를 가르친 당시 예레미야 시대에 하나님은 심판의 재앙을 약속한다(5:20-6:21).  

회개교리를 신중하게 고려하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주시는 두 가지 명령을 회상시키고 싶다:  

너희가 무엇을 들을까 삼가 주의하라(4:24a)

너희가 어떻게 들을까 삼가 조심하라(8:18a)  

이 두 구절은 어떤 사람이 무엇을 가지고 있으며 어떻게 주의 깊게 주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말씀한다. 이 구절은 우리 각자의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해준다. 우리가 영적 섭취를 어떻게 무엇을 해야 하는지 영향력을 줄 것이다. 우리가 회개교리를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듣게 된다면 우리 영적 생활에 큰 곤란을 겪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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