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제의 등장 

▲ 이성구 목사 시온성교회담임

민주 공화국인 대한민국에 난데없이 황제가 나타났습니다. 경복궁이나 창덕궁이 아니라 교도소에 나타난 황제 때문에 나라가 발칵 뒤집혔습니다.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동안 빙상 여제(女帝)도 나타나고 빙상 퀸(queen)도 등장했지만, 교도소에 황제가 나타났다는 이야기는 금시초문이었습니다.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 72세의 기업인으로 얼마나 승승장구했으면, 지난 2010년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중 조세포탈 혐의로 징역 26개월에 집행유예 4, 벌금 254억을 내도록 명받았으나 최근까지 버티다 교도소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놀란 것은 그가 벌금대신 노역장에서 하루 일하면 5억을 탕감 받도록 되어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입니다. 허재호씨의 하루 일당은 자그마치 5억인 셈입니다. 일반인들이 하루 노역에 5만원 10만원의 벌금이 경감되는 것과 비교할 때, 그는 황제임이 분명합니다. 아니, 황제보다 훨씬 더 위대한어휘가 필요해 보입니다.

나라가 발칵 뒤집힌 것은 당연합니다. 21세기 대한민국에 황제가 나타났으니 놀랄 일이요, 하루 품삯이 5억이나 되니 놀랍고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요즘 대기업 오너들의 연봉이 백억, 2백억, 300억원씩이 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여러 사람 낙담하게 하고 있었는데, 그보다 훨씬 더한 사람이 출몰하였으니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254억 원의 벌금이 50일 정도 노역장에 있으면 깨끗하게 정리될 판이니, 이거야말로 현대판 봉이 김선달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여론에 뭇매맞고 멈추었지만 6일만에 30억원이나 줄었습니다.

황제의 등장과 몰락
도대체 누가 이런 기막힌 사건을 연출한 것일까? 사람들은 장병우라는 광주지법원장을 주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사표를 내고 말았지만, 어떤 배경을 가진 판사이길래 하루 일당을 5억씩이나 계산하도록 하는 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인지 아무도 이해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무엇이 그를 그런 결정을 하게 만들었을까? 사람들은 매우 궁금해 하며 과정을 추적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언론은 판결을 내린 장병우 판사 이전에 그에게 죄를 물은 검찰의 행동이 문제라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이상합니다. 검찰은 처음에 허재호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하였다가 기각을 당합니다. 당연히 구속되어야 한다는 검찰의 판단을 판사가 틀렸다고 했으니 기분나쁜 일입니다. 그런데 20089월 허씨에 대한 1심 선고를 앞두고 열린 결심공판에서 검찰은 징역 5년에 벌금을 자그마치 1천억 원을 매겼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같은 입으로 그 선고를 다시 유예하도록 구형을 했다는 것입니다.

모순도 보통 모순이 아닙니다. 징역살이를 5년이나 해야할 만큼 중죄인이어서 1천억이나 벌금을 내도록 선고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시 그 선고를 유예해달라고 했다는 것은 도대체 무슨 말인지 보통 사람은 알아듣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그 구형을 받아 판사는 형량을 절반 깎아주고, 벌금은 5백억으로 줄였고, 다시 2심을 통해 벌금은 그 절반인 250억원으로 줄어들었습니다.

이게 대한민국의 사법 현실입니다. 그러다가 지금 난리가 난 것입니다. 돈이 없어 몸으로 때운다던 그가 "현금화가 가능한 모든 재산을 팔아 남은 벌금을 내겠다. 어리석은 저로 인해 광주 시민과 전 국민에게 여러 날에 걸쳐 심려를 끼쳐 통렬히 반성한다"고 말합니다.

알고 보니 그의 사위, 매제가 전현직 판사 검사고 동생은 판검사를 돈으로 관리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바람에 향판 제도가 폐지될 모양입니다.

부활의 주님 앞에서 지금 우리가 마치 황제행세를 하고 있지 않는지 모를 일입니다. 복음이 어마어마한 죄를 간단하게 없애주는 마법이나 되는 것처럼 착각하면 곤란합니다. 그 어디에도 황제는 없습니다. 다만 죽을 죄인이 있을 뿐입니다. 그 죄인을 무조건 용서하시는 주님 앞에 거저 감사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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