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은 세월호 죽음의 최대 희생양이며 최고 고통의 당자자다. 자식을 잃은 어미와 에비의 애끓는 고통은 평생을 간다. 부모를 잃은 자식의 비통은 무덤까지 간다. 핵심 키워드는 감정이다. 이들 모두는 감정에 심각한 손상을 입었다. 감정이 머무는 몸과 마음도 심하게 훼손되었다. 아직 ‘일어나라’ 말하기엔 이르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전문가 도움을 받으라는 조언만 반복할 것인가? 지금쯤 유가족들 스스로 취할 수 있는 응급조치는 없을까?
모든 죽음에는 부정적인 감정이 생겨나기 마련이다. 슬픔, 애통, 후회감, 그리움, 아쉬움, 외로움, 분노,자책감, 두려움 등. 대개는 애도의 과정을 거치며 자연스레 소멸된다. 시간이 답이고 세월이 약이다.
세월호의 죽음은 특별하다. 예기치 않은 죽음, 순서를 지키지 않은 죽음, 인재로 인한 죽음이다. 한마디로 자연스럽지 않은 죽음이다. 특별한 고통을 동반한 죽음이다. 이는 매우 파괴적이고 강력한 부정적 정서를 유발한다. 감정레벨로 치자면 0-10 중에서 9-10에 해당된다. 얼마나 자주 느껴지는지(빈도), 얼마나 깊은지(정도), 얼마나 강한지(강도), 얼마나 오래 느껴지는지(지속성)에 있어서 최고수준이라는 말이다. 여기에 세월호 죽음만이 가져다주는 특별한 정서 까지 더해져있다. 죄책감, 억울함, 분노다.
이 거대한 감정 덩어리가 마음에 머문다. 몸은 감정을 담고 있는 집이다. 마음에 들어온 감정 덩어리는 세포와 근육과 핏줄 속에 저장된다. 이 감정덩어리는 얌전히 가만있는 것이 아니다. 감정의 독소를 내뿜는다. 본격적으로 몸과 마음, 나아가 삶을 파괴시킨다. 축소, 회피, 방임, 억압, 폭발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별일 아닌 듯 취급한다고, 피한다고, 내팽개친다고, 참는다고, 잊어버리려 한다, 화를 폭발한다고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감정치유전문가인 김향숙 박사는 말한다. “속성치유는 없습니다. 숙성치유만 있을 뿐입니다. 휘몰아치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빠져나와 일상으로 복귀하기까지 밟아야 할 단계들을 차곡차곡 밟아야 합니다.태풍에서 태풍의 눈이 되려면 거쳐야 할 과정을 제대로 거쳐야 합니다. 먼저 감정을 인식하고 표현하고 정화해야 전환하고 조절할 수 있습니다. 넋 놓고 세월이 흘러가길 기다린다고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시간은 답이 아닙니다. 세월이 약이 아닙니다”.
유가족들 혼자의 힘으로 감당하기에 벅차다. 분명 전문가와 함께 걸어가야 하는 과정이다. 이 사실을 인식하는 일로부터 치유는 시작된다. 그렇다고 태부족인 전문가만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다. 물밀 듯 밀려오는 감정의 홍수 속에 휩쓸려가게 내버려두면 안된다. 지금은 홍수가 져서 물이 넘치고 있다. 일단 먼저 물을 빼서 수위를 낮추어야 한다. 바로 감정 디톡스(detox. 해독)다. 댐이 터지면 수습불가인 상태가 된다. 응급조치 정도는 스스로 할 수 있어야 한다.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 지금 즉시 취할 수 있는 전문가급 자발적 응급조치다. 감정홍수 비상대책 매뉴얼이기도 하다.
1) 숨을 제대로 쉬어라.
부정적 감정덩어리는 돌덩이처럼 단단하게 뭉쳐서 호흡의 흐름을 차단한다. 가슴을 짓누른다.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한다. 때문에 대부분의 유가족들은 손으로 가슴을 치면서 답답함이나 통증을 호소한다. 막힌 숨길을 뚫어내야 한다. 호흡은 산소(O2)를 들이마시는 들숨과 이산화탄소(CO2)를 내뱉는 날숨으로 이루어진다. 감정호흡도 마찬가지다. 들숨은 감정의 독기를 정화시키는 해독제요, 날숨은 감정의 독소를 배출하는 굴뚝이다. 매일 30분-1시간 가량 깊고 풍성하고 부드럽게 흘러가는 호흡을 연습한다. 이때 힐링 뮤직과 함께 자연 속 이미지를 떠올린다. 호흡이 몸 전체에 흐르면 숨 숙이고 있던 긍정적인 감정이 파릇파릇 되살아나 부정적인 감정을 죽여 없앤다.
2) 온 몸으로 울어라
눈물은 감정의 독소를 제거하는 강력한 치유제다. 그러나 눈물도 눈물 나름이다. 눈물의 양, 질, 깊이,소리 모두 다르다. 세월호의 죽음은 너무 큰 슬픔이다. 감정덩어리는 세포 속에, 근육 속에, 핏줄 속에 저장되어 있다. 몸 속에 갇혀있는 감정덩어리들은 시도 때도 없이 불쑥불쑥 올라온다. 지금이 그런 때다. 막지 말고 흘러 보내야 한다. 마음이 울지 않으면 몸이 운다. 위장이 울면 위장병, 머리가 울면 편두통, 자궁이 울면 자궁암... 온 몸이 울부짖도록 허락한다. 속울음이 아니다. 눈물과 함께 땀, 콧물, 소리,구토, 몸짓을 동반한 겉 울음을 하도록 용납한다. 말갛게 비워질 때까지.... 이때 반드시 누군가가 곁을 지켜주어야 한다. 함께 아파하고 함께 울어줄 한 사람이면 충분하다.
3) 화 움직임을 하라.
아무것도 하기 싫다.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 손가락 하나 까딱 하기 싫다. 먹지도 못하겠다. 잠도 안 온다. 제대로 감정이 해독되지 못해 서서히 독소가 온 몸으로 퍼지는 상태다. 한평생 타인을 위해 자신의 욕구를 억눌러온 “착한 아이 증후군”을 가진 사람들에게 쉽게 나타난다. 직접표현이 어렵기 때문에 매개물(material)이나 몸을 사용해 간접표현을 한다. 종이 찢기, 샌드백 두드리기, 발 구르기, 주먹으로 바닥치기, 타악기 두드리기, 크레파스로 직선 마구 휘갈기기, 점토 주무르기, 얼굴 그려놓고 떠오르는 단어 기록하기 등. 적어도 감정의 독소가 몸으로 퍼지는 것 만큼은 막을 수 있다.
4) 오감에 맑은 자극을 퍼부으라
흙탕물로 가득 찬 물병에 맑은 물을 계속 부으면 흙탕물은 점점 맑아진다. 오감에 맑은 자극을 퍼붓는다. 시각, 후각, 미각, 청각, 촉각, 미각을 통해 들어오는 자극을 선별한다. 그리고 선택한다. 눈으로는 자연의 풍경을, 코에는 향기를, 입으로는 맛있는 음식을, 귀로는 평화로운 음악을, 피부에는 부드러운 터치를 공급한다. 아름다움, 부드러움, 평화로움, 향기로움과 같은 긍정 자극은 잠자고 있던 긍정성을 깨운다. 감정의 면역세포가 길러진다. 독기 오른 감정을 잡아먹는다. 서서히 오염된 감정탱크가 정화된다.
5) 살아있는 사람에게 살아있는 언어로 말하라.
죽어가는 사람과 죽은 사람, 죽게 한 사람, 살아난 사람들이 머릿속에 뒤엉킬수록 마구잡이로 만들어지는 생각단어들! 머릿속에 가두어두면 생각이 꼬이고 뒤틀린다. 감정도 비틀린다. 이러니 머리가 쥐어짤 듯 아프다. 떠난 사람을 머릿속에서 없앨 수는 없다. 떠나보내는 시간을 앞당길 수도 없다. 생각이 나는 걸 어떻게 하겠는가? 그러나 혼자 골돌히 생각하면 안된다. 대신, 가까운 사람과 말을 해야 한다. 입을 열어야 한다. 못다 하고 속으로 삭힌 말은 떠나보냄을 방해한다. 할 말 다했으면, 더 이상 할 말이 없으면 마음도 떠나보낼 준비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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