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우 목사 부산부민교회담임

지난 주일 1부 예배가 끝난 후 아내가 목양실에 와서 1부 예배 설교를 하면서 표정이 좀 굳어 있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2부 예배 설교를 하면서 아내의 말을 생각하고 좀 더 밝은 표정을 지으려고 노력했지만, 이상하게 잘 되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나중에 홈페이지를 통해 설교를 보니 역시 제 얼굴이 굳어 있었습니다. 밝지 않는 제 표정에 실망을 했습니다.

과거 우리가 생각했던 경건한 모습은 아무래도 웃는 모습과는 거리가 있었습니다. 제 아버지는 세상 떠난 지 제법 되셨지만, 목사님이셨고 기도를 많이 하셨던 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아버지의 얼굴을 떠올리면 웃는 모습은 잘 생각나지 않습니다. 설교하시는 모습도 그렇고 집에 계실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떠오르는 아버지의 모습은 약간은 근엄한, 조금은 찡그린 모습입니다. 여러분도 옛날 목사님 중에 존경하는 분이 있으면 얼굴을 한번 떠올려보십시오. 웃는 모습이 떠오르는 분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그때는 경건의 이미지 속에 웃음은 없었습니다. 예배도 그랬습니다. 예배는 엄숙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배시간에 박수를 치는 것은 상상도 못했습니다. 당연히 예배 인도자의 얼굴도 엄숙했습니다. 제가 처음 부민교회에 부임한 것이 30년이 넘었으니, 그때 저도 엄숙한 얼굴로 예배를 인도하고 설교를 했을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이 지상에 계셨을 때 웃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주님 스스로 지상에 계시는 것을 결혼식에서 신랑으로 계신 것으로 생각하셨으니 기뻐하지 않으셨을 리가 없습니다(5:34).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도 기뻐하는 사람입니다. 물론 그리스도인은 애통해야 할 때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예수님을 잘 믿는 사람은 기뻐하고 웃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죄와 사망에서 해방된 신부로서 신랑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이요,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그 예수님과 함께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이 축제요 기쁨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 중 첫째가 항상 기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살전 5:16-18).

제가 예배를 마치고 현관에서 여러분과 인사를 할 때 늘 아쉬운 것이 여러분의 얼굴에 웃음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의 얼굴에 기쁨이 없습니다. 그런데 이번에 저에게도 웃음이 부족하다는 것을 안 것입니다. 지금 저는 목회자의 모습은 당연히 웃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지난 날 오랜 세월의 잘못된 경건이 제 얼굴에서 체질화되다보니 아직도 때때로 강단에서 제 얼굴이 근엄한 것 같습니다.

웃으려고 더 노력하겠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함께 웃읍시다. 깨끗한 웃음, 진실한 웃음이 우리 교회에 가득 차는 그날을 꿈꾸며 제가 먼저 웃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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