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원호 목사 광주은광교회담임

사데교회는 계시록의 일곱 교회 중 이단의 특별한 위협이나 외부의 핍박이 가장 적은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이교적 문화나 주변 환경과 타협해버렸습니다. 사데교회는 외적인 형식과 모습은 갖추었지만 영적 생명력을 상실했습니다. 이 교회를 향한 주님의 책망은 무섭습니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3:1).” 

          오래 전 알고 지내던 독일 성도 한 분은 종종 제게 말하곤 했습니다. 독일 교회는 죽은 교회라고. 독일 교회의 부흥을 위해 기도해야 된다고. 어느 수련원에 갔더니 특별한 역사가 있었습니다. 그곳 주인은 남아프리카 줄루족을 위해 평생을 헌신하신 선교사였는데 돌아가시면서 그 수련원을 줄루족에게 기증했습니다. 줄루족이 독일까지 와서 생활할 수는 없는지라 사모님이 수련원을 지키고 계셨습니다. 그분이 제 손을 잡고 눈물을 그렁거리면서 부탁하시던 말씀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우리 독일교회의 부흥을 위해서 기도해주세요.” 

          죽은 교회와 살아있는 교회를 도표로 비교해놓은 것을 보았습니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죽은 교회는 항상 과거를 다시 살고 있고, 살아있는 교회는 미래를 향하여 계속 계획하며 나간다. 죽은 교회는 주로 행사와 프로그램에 초점을 맞추고, 살아있는 교회는 성도에게 초점을 맞춘다. 즉 사람중심이다. 죽은 교회는 과거부터 항상 해오던 변함없는 방식으로 일하고, 살아있는 교회는 불변하는 주님을 계속 변화하는 사역 방식으로써 나타낸다. 죽은 교회는 팁 방식으로 헌금하는 사람으로 꽉 차 있고, 살아있는 교회는 십일조 교인으로 꽉 차 있다. 죽은 교회는 우리 교회는 왜 새 방문자가 오지 않는가? 하고 의아해 하지만 살아있는 교회는 새 성도가 오면 친절하게 맞이한다. 죽은 교회는 우리 교회에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가에 항상 초점을 맞추지만 살아있는 교회는 우리 교회 사역이 무엇이 잘 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 죽은 교회는 전 교인이 구경만 하고 가도록 예배 분위기가 짜여져 있고 살아있는 교회는 전 교인이 다 함께 참여하는 예배 분위기이다.” 

           “죽은 교회는 겨우 참고 견딜 정도의 예배 분위기이고 살아있는 교회는 축제 분위기의 예배이다. 죽은 교회는 교회 예산을 자기 교회 내에서만 쓰고 살아있는 교회는 교회 예산을 전도와 선교에 많이 투자한다. 죽은 교회는 계속 되는 인간의 악몽 속에서 시달리고 살아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꿈을 많이 꾼다. 죽은 교회는 전문 음악인만을 위하여 불려지는 찬양을 하고 살아있는 교회는 예배 시에 일반 성도 전체가 다같이 잘 부를 수 있는 쉽고 은혜로운 찬양을 부른다. 죽은 교회는 교회 내의 문제 해결에만 집착하며 시간을 보내고 살아있는 교회는 전능자 하나님의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앞으로 나간다.” 

          누구도 함부로 교회가 죽었다, 혹은 살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 사데교회에 하신 말씀을 보면 문제가 달라집니다. 사데교회의 이름은 멀쩡합니다. 그런데 죽은 교회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행위의 온전한 것이 없었습니다. 우리 교회가 그렇게 된다는 것은 상상만 해도 섬찟합니다. 그러나 위에서 말한 독일 교인은 자기 나라 교회를 서슴치 않고 죽은 교회라고 불렀습니다. 오늘 우리나라 교회가 죽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심히 염려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일깨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입니다. 죽은 교회에서 살아있는 교회로 변화되는 모습이 많이 보였으면 합니다. 죽은 교회와 살아있는 교회를 비교해보면서 우리는 어디쯤 서있는지 살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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