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승주 목사 주님의교회

한국교회의 신뢰는 얼마나 될까? 기윤실(기독교윤리실천운동)에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한국교회에 대한 신뢰도는 매우 위험한 수준이다. 2013년에 발표한 신뢰도는 총 4번의 조사 결과 5점 만점에 2.5~2.9의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며 2013년에는 2.62점을 얻었다. 지난 7년 동안 총 4번의 조사가 거의 비슷하게 나왔다는 것은 특정한 사건이나 상황 때문에 아니라 거의 만성적이며 구조적인 경향을 띤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불신자들이 바라볼 때 교회의 신뢰도가 카톨릭(47%), 불교(38%)보다 더 낮은 12.5%에 불과하다는 것은 심히 우려되는 상황이다. 이것은 전도를 가로 막는 심각한 상황임을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불신자의 시선이 아니라 신자들의 견해다. 신자들도 교회를 신뢰하지 않기에 낮은 신뢰도가 유지되는 것이다. 초대교회에도 불신자들의 시각에는 교회가 신뢰할 수 있는 곳은 아니었다. 하지만 신자들은 복음의 참된 진리를 알고 서로간의 교제와 소통으로 높은 신뢰를 유지하고 있었다. 불신자들은 그런 기독교인들을 몰라서 불신했지만 신자들과 교제하며 관계를 형성하다 보면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은 정보가 공개되고 언제든지 소식을 접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는데도 신뢰도가 낮다는 것은 보다 근본적인 것에 원인이 있다. 그 원인을 따지자면 굉장히 다양하겠지만 대략적으로 살펴보면 신자들 사이의 불미스러운 소식, 교회의 불법, 지도자의 덕스럽지 못한 행동 등으로 신자들 사이에 불신을 야기 시켰고, 이런 모습은 결국 불신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어 전반적인 신뢰 하락으로 이어졌다.

요즘은 목사와 장로도 노회를 믿지 못한다는 말을 하기도 하며, 교인들은 당회를 믿지 못하고 노회와 총회를 목사들의 노조로 보는 경향도 있다. 이런 이야기들이 나오는 이유는 신뢰가 무너진 결과다. 그런데 무너진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도 미미한 수준이다.

 

게임이론의 경고

게임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게임을 하는 방법은 네 사람이 한 팀인데 각자에게 10만원씩을 지급한다. 지급 받은 돈은 그대로 가질 수도 있고, 공공계정에 투자할 수도 있다. 만약 지급 받은 돈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 그 돈은 그대로 자기의 몫이 된다. 반면 그 돈을 공공계정에 투자하면 두 배로 늘어나지만 그 돈은 누가 투자했는지에 상관없이 네 사람에게 똑같이 분배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10만원을 공공계정에 투자하는 것이 최고의 결과를 가져온다. 그러나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자신의 몫은 챙기고 다른 사람들이 공공계정에 투자하는 것이 이윤을 챙기는 최적의 상황이 될 수도 있다. 자신이 이 게임을 하고 있다면 어떤 결정을 하겠는가? 물론 게임이기에 어떤 결정을 해도 별문제는 없다. 하지만 직접 수익이 결정되는 상황이라면 문제는 다르다.

다른 사람들이 공공계정에 투자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다면 모두가 공공계정에 투자할 것이지만 그러한 믿음이 없거나 이기적인 마음이라면 아무도 공공계정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극단적으로 이 게임을 반복한다면 그야말로 결과는 극명하게 대비된다. 즉 아무도 공공계정에 투자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게임을 반복해도 각자의 몫은 10만원에서 단 1원도 늘어나지 않는다. 그러나 반대로 모두가 공공계정에 투자한다면 게임을 반복할 때마다 각자의 몫이 증가함과 동시에 팀 전체의 돈도 증가하게 될 것이다.

이 게임을 이름 하여 공공재게임(public goods games)이라고 한다. 이 게임이 주는 교훈은 사회적 신뢰가 높으면 공동체 전체의 발전으로 이어지지만 그렇지 않다면 결코 사회 발전, 국가 발전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 이론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에 대한 경고다. 즉 내 밥그릇 챙기기에 바쁜 모습으로는 신뢰회복을 기대할 수 없다. 자신이 섬기는 교회만 안전하면 된다는 생각은 결국 모든 교회가 공멸하는 길이다. 우리는 현재 함께 동역하는 교회들을 위하는 마음으로 섬기며 사역해야 함은 물론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도 신뢰 있는 교회의 모습을 물려줄 책임이 있다. 그래서 게임에서 보면 비록 짧게 보면 손해가 되지만 공공계정에 투자하는 것이 더 많은 이익을 가져다주듯 서로를 신뢰하며 섬기는 사역에 매진해야 한다. 그런데 이런 일은 혼자만의 노력으로 힘들다. 함께 노력하며 신뢰해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 자본으로써의 법치주의

현대사회는 복잡한 사회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므로 사람 사이의 이해관계와 가치 관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이러한 시대에 한 공동체의 발전은 구성원 개개인의 개인역량이 다 합해져서 나타난다기보다 다양한 이해관계와 갈등을 얼마나 잘 조정하고 극복하고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서로 다른 가치와 신념을 가지고 있거나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구성원들 사이에 관계를 규정하는 규범이 없을 때이다. 하지만 이에 대한 규범으로 국가는 법규범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법치주의는 현대사회에 꼭 필요한 조건이다.

마찬가지로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규범이다. 심지어 교회는 교회법도 구비해 두고 있다. 그러나 법규범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거나,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판결이 달라질 때 신뢰를 상실한다. 이미 좋은 규범을 가지고 있는 데도 활용하지 못하면 무용지물이다. 교회는 어떤 면에 있어서 법치주의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법치주의란 기본적 인권보장을 위한 소위 법의 지배(rule of law)’를 의미한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으로서의 법치주의가 강조되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사회구성원간의 신뢰관계 및 사회적 협력을 촉진시키는 모든 행동을 지칭하는데 사회적 자본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법규범이며 따라서 법치주의는 사회적 협력, 신뢰 관계의 수준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라는 것이다.

여기서 법규범은 공동체 내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갈등을 해소하는 공통의 핵심가치 및 절차로서의 의미를 지닌다. 특히 최근에 경제발전과 법치주의 수준 사이에는 정비례 관계가 있다는 세계은행의 연구결과가 나오면서 현대의 법치주의는 기본권 보장과 국가 구성을 위한 헌법의 기본원리임을 넘어서 국가가 경제 발전을 꾀하고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한 필수적 전제조건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오늘날 사회적 자본으로서의 법치주의는 곧 국가경쟁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회적 자본을 평가하는 중요한 척도이자 초석이 사회적 신뢰(social trust)이다. 사회적 신뢰는 타인에 대해 가지는 일반적 신뢰수준을 말한다. 잘 알지도 못하는 타인이 법과 약속을 지키고, 나의 권리를 존중하며, 나를 공정하게 대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사회적 신뢰가 높은 것이고, 그 반대로 생각하면 사회적 불신이 높은 것이다. 사회적 신뢰가 높으면 나도 법과 약속을 지키고, 타인을 공정하게 대하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게 된다. 사회적 신뢰를 조사한 한 설문조사결과에 따르면 10점 만점에 우리나라는 2.73점으로 스웨덴 6.63, 일본 4.31, 미국 3.63에 비해 낮게 나타났다. 우리나라 국민 사이에 만연한 법과 국가 기관에 대한 불신 및 부정적 법의식 현상은 사회적 신뢰가 낮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노사 대립, 철도 파업, 방송국의 파업 등은 누가 옳은지, 무엇을 위해 대치하는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쌍방의 정당성을 찾기 어렵지만 노사 및 정부 간의 상호 불신만은 뚜렷이 확인 할 수 있다.

 

교회의 불신 해결은 없는가?

그러나 노사 및 정부 사이의 불신보다도 더욱 심각한 것이 교회 구성원 간의 불신이다. 총회의 재판을 인정하지 못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며, 노회의 수습이나 권고를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고, 교회의 치리는 이제 찾아보기 어렵게 되었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다양하겠지만 그 중에서도 신뢰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

신뢰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교회 성장이나 부흥을 기대할 수 없다. 간혹 성장하는 교회가 생긴다 하더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다음세대의 교회가 유지되기 어렵다. 서로 믿지 못하기 때문에 교회가 나뉜다고 해도 건강한 성장은 기대하기 어렵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불신의 문제가 해결되고 신뢰를 회복할 수 있을까? 많은 해결책이 있겠지만 게임이론을 보며 간단한 처방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교회가 함께 협력하여 서로에게 유익한 일들을 많이 해야 한다. 즉 연합을 위한 활동을 활성화시키는 것이다. 과거 교회는 연합하는 좋은 본을 보였는데 요즘 개교회주의로 그런 전통이 자꾸 줄어들고 있다. 그 이유는 연합의 문제점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실 너무 많은 연합이 있다. 초교파적 연합을 비롯해서 지역교회의 연합, 총회 차원의 연합, 노회 차원의 연합, 여전도회, 남전도회, 주일학교, 시찰 차원의 연합 등 하지만 그런 많은 연합은 중소교회를 지치게 하고 큰 교회를 힘들게 한다. 연합을 간소화 할 필요가 있다. 연합의 문제점은 많이 있지만 그런 문제점을 개선하고 연합의 좋은 본을 계승하면서 바르게 연합하면 신뢰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본다. 즉 연합을 통해 동시대의 교회들에게 힘을 주고 신뢰를 회복시킬 뿐 아니라 다음세대에도 좋은 교회의 모습을 물려줄 수 있다.

둘째, 올바른 교회적 법치주의를 확립하는 것이다. 인정에 끌리거나 관계에 따라 판결하지 아니하고 말씀에 따라 판결하면 교회적 법치주의를 세울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상황에 따라, 사람에 따라 달라지지 않는다. 불신자들도 신뢰가 높아지면 법을 지키게 되고, 타인을 공정하게 대하며, 타인의 권리를 존중하게 된다. 하물며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 자매가 아닌가? 만약 교회법의 구체성이 불확실하고 판결이 달라질 수 있는 소지가 있다면 고쳐야 한다. 문제를 제기하는데도 고치지 않으면 신뢰를 확립하기 어렵다.

사실 이런 과정은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다. 하지만 얼마의 시간이 걸리더라도 해야 하는 일이다. 신뢰의 회복 없이는 교회의 진정한 부흥을 기대하기 어렵다. 오늘날 사회에서 여러 가지 모습으로 교회를 경고하는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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