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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희택 목사

무적 태풍 부대에 진짜 무적태풍이 불어 닥쳤다. 사고가 났다. 일이 터진 거다. 신병 교육대에서 전입한 지 3개월밖에 안 된 어린 병사가 그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 상태에서 무력하게 죽어갔다. 그것도 선임병들에게 맞아 죽었단다. 단순한 폭력이 아니라 지속적인 언어적 갈굼과 물리적 폭력행사, 게다가 성적 수치심을 고조시키는 다양한 성희롱까지! 말도 안 된다! 백주에 군에서 악마를 보았다는 말이 이해가 된다! 사람마다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정말로 그런 일이? 아니, 그게 사람이 한 짓이냐?” 다들 믿을 수 없어 한다. 28사단 소속이 아니라도 군복을 입고 장교 계급장을 단 사람이라면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한때는 대한민국 육군의 장교였다가 전역한 지 십수 년이 된 나도 공연히 부끄럽다. 

터졌다 하면 육군이 문제다. 육군만 그런가? 워낙 수가 많고 부대가 다양하다 보니까 그런 거라고 봐야겠지만 불문가지로 해군과 공군도 지금 소리 없이 몸을 낮춘 상태에서 혹시라도 우리에게는 저런 경우가 없나?” 하고 언제 쏟아질지 모르는 불벼락을 맞지나 않을까 전전긍긍일 것이다. 이 땅에 군이 생긴 이래 이런 후임병에 대한 선임들의 횡포는 언제나 있었다. 지금은 어쩌면 고인이 된 더 앞 시대의 어른들이나 이제 60을 넘어 80대의 나이에 이르는 선배들은 전설처럼 "빳따 맞은" 얘기들을 전해 주곤 했다. 그것을 하나의 문화라고 하면 타박을 받을지 모르지만 동일한 목적을 가진 공동체 내에서 지속적으로 유지된 하나의 존재 방식이 역사가 되었다고 하면 그것을 문화라고 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엄연히 존재하는 것을 없다고 하면 그건 진실을 외면하는 것 아닌가? 

이런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허탈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군 지휘관들이다. 더러 개념 없는 사람들도 있기는 하지만 대체로 나라에 대한 충성심과 부하에 대해 어버이 같은 애정을 가진 지휘관들의 경우 이런 어이없는 일을 맞닥뜨리게 되면 내 능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가?” 하는 무력감과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인가?” 하는 허탈감, 그리고 하급 지휘관과 참모들에 대해 그들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었단 말인가?” 하는 배신감을 느낄 것이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20여 년간 군목으로 종군했던 예비역으로서 감회가 새롭다. 말 안 해도 나는 안다. 지금 각급 부대의 군목들은 얼마나 무력감을 느끼며 자신들의 사역과 활동에 대해서 회의를 느끼고 있을까? “한 번 더 찾아가지 못한 일은 나의 게으름이라, “좀 더 살갑게 다가가 병사 개개인의 형편과 처지를 파악하지 못한 것은 나의 불찰이었다.”, 군목에게 할당된 인격지도교육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없었든가 하는 시스템에 대한 회의병사 개개인의 마음과 생각을 속속들이 살피기에는 시간도 인력도 부족한데 그걸 어쩌지 못하는 미비한 제도의 벽 앞에서 흐느끼는 나의 무력함! 지금 그들은 한번 기도해서 삼 년 육 개월 동안 비와 이슬이 내리지 않도록 한 능력의 종 엘리야가 되고 싶을 것이다. 아니 여인의 죽은 아들을 살려낸 엘리사가 되지 못함이 한스러울 것이다. 그런 기도의 사람, 그런 능력의 사람이 되지 못함이 모두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 때문이라고 자책하고 있을 것이다. 내가 그랬다. 20여 년 동안 종군하면서 나 역시 여러 번 어이없는 사고를 만났고 그때에 바로 내가 그런 죄책감과 무력감을 가졌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군이 걱정이다. 이런 유형의 사고를 생산하는 군의 수준이 말도 아니게 걱정이지만 그보다는 이 사고로 인해 군의 사기가 말이 아니게 땅에 떨어졌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 사고라면 이젠 간부들이 병사들을 믿을 수가 없을 것 같다. 부대 내에서 간부들이 선임 병사들을 바라보면서 "저놈은 후임병들을 괴롭히고 있지나 않을까" 하는 의심의 눈초리를 거둘 수 없을 것이고 병사들도 간부들의 눈초리에서 그런 의구심을 발견하게 될 것이 자명한데……. 그래서야 살이 찢어지고 피가 튀는 전장에서 생사를 함께 해야 할 전우로서의 신뢰가 생길 수 있겠는가? 뒤에 남겨진 전우를 믿을 수가 없다면 어떻게 그에게 무기를 주면서 후방경계를 맡기고 앞에 오는 적을 향해 돌격할 수가 있겠는가? 불신이 병영을 뒤덮어 지휘관과 참모, 간부와 병사, 병사와 병사 사이에 낯설고 어색함으로 소통이 단절되지나 않을까 방정맞게도 우울한 상상이 된다. 조금 전까지 함께 웃고 뒹굴던 전우가 사실은 민감한 야수의 뇌관을 가지고 있기에 그것이 어떤 계기로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면 그들 사이의 분위기가 어떠하겠으며 무슨 내용의 대화가 오갈 수 있겠는가? 

이제는 군을 떠난 지 십수 년이 되었지만 난 아직도 내 젊음의 시절을 고스란히 보낸 20년 군대 생활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에 젖는 일이 많다. 신문과 TV 뉴스를 통해 이번 사고를 접하면서 마치 내가 현역으로 근무하는 부대에서 사고를 만난 것처럼 무력감을 느낀다. 그러면서 한 걸음 물러난 자리에서 냉정히 생각해 본다. 도대체 어떻게 하면 이런 병사들 간의 갈등을 치유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이런 일이 다시는 안 생기게 할 수 있을까? 도무지 방법이 없는 것인가? 이런 비인간적인 야수성이 발현되는 공동체 안에서 기독교 신자가, 목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이 모두가 권위와 힘을 가진 높은 사람들이 책임을 지고 해결하기를 바라보고만 있어야 하는가? 그렇게 하면 과연 해결되기는 할까? 

날로 악하여 져서 인간성이 황폐화되고 흉포함과 잔인함이 도를 더해 가는 오늘날 강도 높은 처벌로 작금의 현상들을 예방할 수 있다고 보는가? 참모총장이 사퇴하고, 사단장과 연대장이 보직 해임되는 것으로 재발이 방지될 수 있다고 보는가? 모두가 사후약방문에 불과한 미봉책이다. 윤 일병 사건의 가해자들에게 살인죄를 적용하여 법정 최고형을 선고하면 그것이 일벌백계의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다고 보는가? 그건 온 세상이 무력하게 죽어간 윤 일병의 원수를 갚겠다는 복수심의 발로일 뿐이다.  게다가 얼마 못 가 사람들의 머리속에서 사건의 기억은 희미해질 것이고 동일한 갈등의 역사는 되풀이될 것이다. 모름지기 밖으로 드러나는 현상은 내면에 잠재되어 있는 것들이 외부적인 요인과 조우하면서 불꽃을 일으키는 것이다. 따라서 속사람이 변화되지 않고서 사후약방문식의 정신교육, 관계자들에 대한 폭넓은 징계, 가해 당사자들에 대한 가혹한 형벌, 신병들의 부대 적응을 위한 제도개선과 같은 외부적인 처방으로는 근본적인 문제를 고칠 수 없다. 배탈이 났는데 뱃가죽에 머큐로크롬을 발라 주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눈뜨게 되는 강력한 사랑의 역사가 일어나지 않고는 근본적으로 이와 같은 사건의 예방은 불가능하다. 결국, 내면의 사람이 변해야만 외부적인 상태가 변할 수 있다는 것인데, 정신교육도 인격지도 교육도 복음의 능력으로 새로 이식된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을 가져야만 그 효과가 극대화될 것이다. 제발, 이 사회의 지도자들이 멀리서 해결책을 찾는 수고를 그쳤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재발 방지"를 지시하고, 장관이 전군에 "정신교육" 비상을 거는 요란을 떤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오히려 "재발방지"를 지시하는 사람이나 그 지시를 받는 사람이나 그걸 바라보는 국민 대중 모두가 답답하고 피곤할 뿐이다. 육본에서, 국방부에서 머리를 맞대고 밤을 새워가며 회의를 해봐야 무엇이 나오겠는가? 솔직히 말해서 그런 회의를 통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었다면 군이 이 지경까지 오지도 않았을 것 아닌가! 

길은 여기에 있다. 지휘관들이, 군의 간부들이 먼저 예수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이식수술을 받아야 한다. 그렇게 거듭난 간부들의 보살핌과 관리를 받는 병사들은 안정감을 갖게 될 것이다. 그러면 병영 문화가 바뀐다. 병영이 서로를 아끼는 장병들의 공동체가 될 것이다. 윈윈하는 상생의 열매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강군이 될 것이다. 혹독한 피지컬 트레이닝만이 강군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충분하고도 합당한 이유가 있다면 어떤 고난과 역경이 앞을 막아도 물불을 가리지 않고 극복할 의지가 생긴다. 그것은 젊음의 특징이자 특권이다. 그런 청년들을 감당할 적은 없다. 강군이 된다. 장담하건대 일당백의 강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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