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종길 교수 신약학 교수 신학박사 교무처장

신학교는 도대체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 구체적인 장소 문제가 아니라 근본적인 위치에 관한 질문이다. 대학 안에 한 대학원 또는 한 과로 있어야 하는가? 아니면 독립적으로 따로 존재해야 하는가? 이 문제는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이럴수록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근본 뿌리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선지 학교

엘리사 시대에 곳곳에 선지 학교가 있었다. 이것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것은 엘리야가 승천할 무렵에 곳곳에 나타나는 선지 생도들이다. ‘벧엘에 선지자의 생도들이 있었고(왕하 2:3), ‘여리고에도 선지 생도들이 있었으며(왕하 2:5), ‘길갈에도 있었다(왕하 4:38). 한 곳의 선지 생도들의 수는 대개 50명 정도였다(왕하 2:7, 16-17; cf. 4:43). 이처럼 여러 군데 선지 학교를 운영한 것은 당시의 교통수단은 주로 걸어 다니는 것이었기 때문에 선지 생도들의 이동에 한계가 있었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그러면 이러한 선지 학교들은 누가 세운 것일까? 엘리사가 세운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승천하고 나서 엘리사가 돌아올 때, 그때 이미 벧엘과 여리고와 길갈에 선지 학교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것들은 누가 세운 것일까? 결국 엘리야가 세워서 운영하던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엘리야라고 하면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하여 이긴 능력의 종, 바알 숭배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운 위대한 선지자이다.

그러나 그게 전부 다가 아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렇게 바알 선지자들을 물리치고 난 후에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엘리야가 곳곳에 선지 학교 곧 신학교를 세워서 선지 생도들을 교육했다는 사실이다. 이세벨이 (거의) 다 죽인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다시 회복하기 위해서는 선지 학교 설립과 운영이 그 무엇보다 시급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엘리야는 한상동 목사와 같은 분이다. 아니, 한상동 목사가 엘리야와 같은 분이다. 신사참배로 무너진 한국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신학교를 설립하여 신실한 주의 종들을 배출하는 것이 중요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 한상동 목사는 옥중에서 기도하던 대로 출옥 후 1946년에 부산에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였다. 평양신학교의 정통신학을 계승하는 신학교를 부산에 세웠던 것이다. 마치 바알 숭배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재건하기 위해 엘리야가 이스라엘에 선지 학교를 재건했던 것과 같다.

 

신학교는 어디에?

이처럼 신학교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다. 우리 고려신학대학원도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다. 신사참배를 반대하다 투옥되었다가 나온 출옥성도들이 옥중에서 기도하던 대로 한국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평양신학교를 계승한 신학교를 1946년에 설립하였다. 고신 총회 설립보다 6년이 앞섰다. 그러다가 1980년에 복음병원 때문에 의예과가 신설되면서 고신대학으로 교명이 바뀌고 고신대학 신학과와 신학대학원이 되었다. 이때부터 신학대학원은 법적으로 일반대학의 한 대학원이 되고 말았다. 그 후로 1993년에 고신대학이 고신대학교로 개명되면서 신학대학원은 법적으로, 행정적으로 더욱 더 고신대학교에 예속되게 되었다.

그러면 신학교가 과연 일반대학에 속해 있는 것이 옳은 것인가? 아니다. 신학교와 대학은 그 기원과 운영 원리가 근본적으로 다르다. 신학교는 그 기원이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선지 학교에 있다. 선지 생도들을 교육하는 것은 기도와 찬양과 경건생활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의 기원은 고대 그리스 아테네의 아카데미아(academia)에 있다. 수학, 논리학, 수사학, 철학 등이 주요 교육과목이다. 그 생활도 많이 다르다.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이 운영하는 아카데미아에서는 동성연애가 성행하였으며, 심지어 미덕으로 여기기까지 하였다고 한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가증한 것이며 선지 학교에서는 생각도 못할 일이다.

물론 기독교대학에서는 사정이 다르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그렇지 않다. 아무리 기독교대학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여전히 대학이다. 신학과 외의 많은 학과들이 있으며 일반대학에서와 같은 원리로 운영되는 것들이 많다. 신학교에서는 교회의 교역자들을 양성하는 것이 목적이지만, 대학에서는 평신도로서 하나님을 섬길 일꾼들을 양성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에서는 다 같은 것이 아닌가?”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교역자와 평신도들은 엄연히 구별이 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와 무리들(신자들)은 구별된다. 다 같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더라도 선지 생도들과 일반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구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신학교는 교회 안에

따라서 신학교는 일반대학 안에 있으면 안 된다. 기독교대학이라도 마찬가지다. 신학교는 교회의 교역자들을 양성하는 기관으로서 교회와 운명을 같이 한다. 교회가 존재하는 한 신학교도 없어질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일이 있어도 교역자는 계속 공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독교대학은 있으면 좋지만 없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다. 기독교대학이 없다고 해서 교회가 존속할 수 없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일례로 우리와 자매관계에 있는 화란개혁교회는 철저하게 성경 중심으로 살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여태까지 기독교대학이 없다. 1944년 교단 설립 이후로 한 번도 기독교대학을 설립한 적이 없다. 하지만 신학교는 교단 설립 초기부터 오늘날까지 나아오고 있다.

그러나 그 교단은 철저하게 기독교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 “교회 옆에 학교!”라는 구호 아래 교회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기독교 학교를 세운다. 바로 개혁 초등학교이다. 유치원과 초등학교 과정을 합쳐서 8년 과정을 운영한다. 전국 곳곳에 교회가 있는 곳에는 반드시 자기 교단이 운영하는 개혁 초등학교가 있다. 그래서 부모들은 안심하고 자기 자녀를 초등학교에 보내어서 자기 신앙에 맞는 교육을 시키고 있다. 그리고 몇 개 거점 도시에 개혁 중고등학교를 세워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대학은 없다. 세우려고 하지도 않는다. 왜냐하면 이렇게 자기 교단이 운영하는 초중등학교 14년 과정을 마치고 나면 어느 일반대학에 가더라도 자기 신앙을 유지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불신자들이 있는 대학에 들어가야 개혁 신앙을 전파할 수 있다.

기독교 대학을 운영하는 것이 꼭 잘못이라는 것은 아니지만, 기독교 학교의 핵심은 대학이 아니라 초등학교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다. 그런데 우리 교단은 순서가 잘못되었다. 기독교 초등학교가 제일 중요하고(아니 필수적이다), 그 위에 기독교 중고등학교를 운영해야 한다. 그 다음에 여력이 있으면 기독교 대학을 운영할 수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신학교는 대학 안에 위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천안이냐 부산이냐 서울이냐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학교는 대학 안에 위치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신학교는 교회를 위한 것이며, 교회에 의해 운영되어야 하며, 교회의 방법으로 운영되어야 한다. 아카데미아의 방법으로 운영되면 안 된다. 신학교는 교회와 운명을 같이 하며, 교회와 흥망성쇠를 같이 한다. 신학교가 회복되어야 교회가 회복되며, 교회가 회복되려면 신학교가 회복되어야 한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바알 숭배로 무너진 이스라엘을 다시 세우고 여호와 신앙을 회복하기 위해 곳곳에 선지 학교를 설립하고 운영했던 것과 같은 원리다. 한상동 목사와 주남선 목사가 무너진 한국 교회를 재건하기 위해 고려신학교를 세우고 운영했던 것과 같다.

 

고려신학대학원의 꿈

1946년에 설립된 고려신학교가 1980년에 고신대학으로 인가 받아서 의예과를 개설함으로 말미암아 신학대학원은 일반대학 안에 위치하게 되었다. 이스라엘의 선지 학교가 아테네의 아카데미아에 예속된 것이다. 그 후로 고신대학이 계속 학과를 증설하면서 세속화는 더욱 진행되었다. 그래서 신학대학원의 경건분위기가 너무나 훼손되고 법적, 행정적으로 문제가 많음을 깨닫게 되어 1986년에 고신 총회는 신학대학원의 천안 이전을 결의하게 되었다. 이어서 1988년 총회에서 신학대학원은 행정 인사 재정적으로 독립 운영한다고 결정하였지만 실제로는 어려움이 많다.

그 후로 허순길 전 원장의 헌신적인 노력과 이사회의 전폭적인 지지, 그리고 온 교단의 기도와 헌금으로 19989월에 드디어 천안 캠퍼스로 이전하게 되었다. 그 때 허 박사는 남북통일 시대를 바라보면서 학생 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큰 캠퍼스를 조성하였다. 뿐만 아니라 경건생활의 중요성을 깊이 절감하고서 학생들이 전원기숙사에 입사하여 다함께 새벽기도 하면서 경건훈련을 받도록 하였다. 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전원 교내에 머물면서 학생들과 함께 생활하는 수도원과 같은 공동체를 꿈꾸었다.

뿐만 아니라 허순길 전 원장은 천안으로 옮기기 전부터 신학대학원의 정체성이 무너진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여 고려신학교로 출발하였던 원래의 정신을 살리기 위해 단설신학대학원 설립을 애쓰셨다. 여러 번 글도 쓰고 각 지역을 순회하면서 설명회도 가지고 교육부와 많이 접촉하셨다. 우선 고려신학교고려라는 이름을 회복하기 위해 교육부 관계자를 여러 차례 만나고 노력한 끝에 고려신학대학원이라는 이름을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받으셨다. 그리고 왜 본부가 부산 영도에 있는데 신학대학원만 따로 이전하려고 하느냐고 교육부 담당자가 물었을 때에, 때가 되면 궁극적으로 단설대학원을 설립하려는 뜻이 있음을 설명하고 양해를 얻으셨다고 한다. 따라서 신학대학원이 부산 송도에서 천안으로 이전한 것은 단설대학원을 전제한 것이다.

 

미래를 위한 첫걸음

물론 현실적으로 단설대학원 설립이 쉬운 것은 아니다. 그래서 당장 그렇게 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신학대학원의 천안 이전의 의미가 무엇이었는가는 우리가 바로 알아야 할 것이다. 물론 1970년 총회 때부터, 신학교가 너무 남쪽에 치우쳐 있어서 교단 발전에 지장이 많다고 하여 수도권으로 이전하자는 안건이 총회에 연거푸 올라왔었다. 그러나 그때는 아직 때가 되지 않아 총회에서 허락되지 않았다. 그러나 1986년 총회에서 결의되고 1998년에 천안으로 이전한 것은, 취약한 수도권과 중부권을 보완하여 우리 교단이 전국적인 교단으로 성장 발전하고, 나아가서 통일 한국 시대를 대비한다는 의미가 있었다. 부산 송도에서 시작한 개혁주의 신학이 이제는 한반도의 중심에서 꽃을 피우고 전세계로 퍼져 나가야 한다는 시대적 사명이 있는 것이다. 옛날부터 SFC 운동원들이 외쳤던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이 이제 꽃 피워야 할 시점이 된 것이다.

따라서 신학대학원이 부산에서 천안으로 옮긴 것은 이런 미래 청사진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영남 지역에 치우쳤던 고신 교단이 대한민국의 중심으로 진출하며, 또 단설신학대학원 설립을 위한 첫걸음이었다. 물론 현재는 어쩔 수 없이 고신대학교에 속해 있으며 그 체제에 예속되어 있다. 그래서 고신대학교에 경영위기가 오면 함께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그러나 아무리 사정이 어렵다고 해도 신학대학원을 고신대학교 구조조정의 수단으로 이용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학대학원은 교회와 함께 가며, 교회와 운명을 함께 해야 할 교회의 기관이다. 따라서 신학대학원은 어떤 경우에도 흔들리지 않고 안전하도록 장치를 마련해 놓아야 하며, 고신대학교와 함께 떠내려가도록 해서는 안 될 것이다.

 

앞으로 나아가자

현상황에서 신학대학원이 도로 부산의 고신대학교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역주행이다. 부산에서 천안으로 신학대학원을 옮기고 고려신학대학원이라는 교명을 괄호 안에서나마 회복한 것은 단설신학대학원으로 가는 첫걸음이었다. 그런데 도로 부산의 고신대학교 안으로 넣는 것은 역주행이며 퇴보이다. 말하자면 100 미터 달리기 경주를 하는데, 앞으로 50 미터쯤 달려왔다가 거센 바람이 분다고 도로 뒷걸음질 쳐서 원점으로 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럴 바에야 무엇 때문에 천안으로 옮겼겠는가? 이 소식을 듣는 타교단 사람들이 고신 교단을 비웃지 않겠는가?

우리는 어려운 일이 있어도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현재의 고신대학교의 위기는 교단의 지혜를 모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더라고 신학대학원에 손을 대어서는 안 된다. 천안 캠퍼스를 매각하는 것은 단지 재산 처분의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가 담겨 있고 고신 교단의 미래가 걸려 있는 문제이다. 아무리 어려워도 처분해야 할 것과 처분하지 말아야 할 것, 손대야 할 것과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을 구분해야 한다.

현재 고신대학교의 어려움은 오히려 기회가 될 수도 있다. 냉철하게 우리 자신을 돌아보며 믿음의 선배들이 왜 고려신학교를 설립했으며 무엇을 원했던가를 생각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그리고 우리 교단이 앞으로 무엇을 바라보고 나아가야 할지 생각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교단 교회들의 기도와 후원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을 생각하며 우리 모두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비록 부족함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우리 교단의 희망은 신학대학원이며 한국 교회에 내어 놓을 자랑거리이다. 아니, 앞으로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 출옥 성도들의 간절한 기도가 헛되지 않고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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