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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승락 교수 고려신학대학원 신약학

우리는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다. 정말 이럴 때가 아니다. 우리의 내일은 생각보다 훨씬 더 어둡다. 한국 땅에서 개신교의 인기는 급속히 땅에 떨어지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 방문 이후 가톨릭교회에서는 식을 줄 모르는 교황 효과를 보고 있다 한다. ‘장도리라는 이름으로 만화를 그리는 박순찬 만화평론가는 저 낮은 곳을 향하는교황과 질 낮은 곳으로향하는 개신교 목회자들을 대비하여 비꼰 만평을 낸 바 있다. 이름 있는 목회자들의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우리 사회 속에 칭찬과 감동을 불러일으키기보다 오히려 빈축과 성토의 대상이 되고 있다. “에이! 한국의 목사들!” 교회 안팎에서 목사의 이름은 구제불능의 기피어 취급을 받고 있다. 앞으로 뜻이 있는 유능한 젊은이들이 목사 되겠다고 나서는 것은 갈수록 찾아보기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럴수록 목회자의 질이 더 떨어질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교회 자체의 질이 떨어지는 것은 이미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송인규 교수가 소장으로 있는 한국교회탐구센터에서 지난해 말 그리스도인 청년들의 성의식을 조사한 바 있다. 글로벌리서치에 의뢰해 1000명의 그리스도인 청년들을 대상으로 인터넷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남성 59.4%, 여성 44.4%가 이미 성경험을 가진 바 있고(전체 52%), 2-3회 이상 부부 못지않은 지속적인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전체 43%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현실이라면 한국교회의 영적, 도덕적 방어선은 이미 무너졌다고 보아야 한다. 교회 안의 청년들이 교회 밖의 청년들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아니 달라야 한다는 의식조차 없다. 장기화되는 청년 실업의 증가와 결혼 여건의 불안정성으로 말미암아 이런 문제는 더욱 심화될 것이 뻔하고, 앞으로 교회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심각한 혼란 상황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래도 이 땅의 교회는 계속 살아남아야 한다. 아무리 어려워도 주님께서 그의 교회를 포기하지는 않으시기 때문이다. 모든 여건들이 불리하게 돌아가도 주님의 교회를 이끌어갈 사역자들은 계속 배출되어야 한다. 다만 가장 우려되는 것은 이런 것이다. 사사기 17-18장에 보는 것처럼,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가 은 이백을 들여 신상을 만들고 신당과 에봇, 드라빔까지 갖추어 놓았지만, 적법한 제사장을 찾지 못하였을 때, 우연히 자기 집에 유숙한 베들레헴 출신의 한 레위 청년에게 네가 나와 함께 거주하며 나를 위하여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라”(17:10) 청하였고, 그가 이를 받아들여 미가의 집과 나아가 단 지파 전체를 우상숭배의 온상으로 만들었던 일이 있었는데, 이 일이 이 시대에 다시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우려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목사 지망생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목사 한 사람 구하기가 어려운 시기가 될 때,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17:6) 행하는 일이 영적 방어선이 무너진 교회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자행될지도 모른다. 제발 그렇게 되지 않기를 바라지만, 지금 일어나는 교회의 이중성과 청년들의 의식 변화를 볼 때 사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는 이미 한국교회의 한 켠을 물들이고 있다고 보아야 한다.

지금은 신학대학원을 흔들 때가 아니다. 지금은 내일을 대비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지금 교회나 각 기관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들의 시대는 금방 끝이 난다. 정말 시간이 얼마 없다. 로마의 역사가 무너지는 어두운 시대에 교회의 명운조차 장담할 수 없던 암담한 시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어거스틴 같은 사람을 부르시고 세우셨는데, 지금 우리가 암브로시우스 같은 사람이 되어 나 죽기 전에 한 사람의 어거스틴이라도 세워 놓고 눈을 감고자 하는 열망이 가득하여야 한다. 지금 하나님 중심의 바른 정신을 가진 신실하고 실력 있는 목회자를 세워놓지 않으면 사사 시대의 어두운 그림자가 한국교회 전체를 뒤덮어버리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신학대학원이 그 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교계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것을 잘 알고 있다. 교수들을 비롯하여 학교의 구성원들이 이 일을 깊이 자성하고 틈 날 때마다 우리 자신을 채찍질하고 있다. 그러나 과거 때문에 내일에 대한 기대와 독려를 접어서는 안 된다.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큰 것을 이루어 가도록 질책하고 촉구해야 한다. 그것은 신학대학원 자체의 존립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 시대 이 땅에서의 하나님 나라와 그의 교회를 위한 책무 때문이다. 신학대학원을 흔들려면 바르게 흔들어야 한다. 더 높은 스탠다드를 요구해야 한다. 더 질 좋은 목회자를 배출해주도록 다그쳐야 한다.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 전체의 영적, 신학적 지도력을 확립해가는 신학교가 되도록 심할 정도로 흔들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을 이루기 위한 최소한의 인프라 기반을 흔들려 해서는 안 된다.

지금 신학대학원은 꽤 괜찮은 궤도에 진입해 있다. 교수의 구성, 앞으로의 불가피한 축소 여건을 감안한다면 다시 얻기 어려운 좋은 구성을 이루고 있다. 교수들의 사기와 의욕, 학생들의 만족도, 상당히 좋은 편이다. 학교의 교육 수준, 세류에 편승해서 쉽게 가려고 타협하지 않고 있다. 배출해 낸 졸업생들 중에 미국의 유수한 대학으로 유학을 간 학생들이 그곳에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는 고무적인 소식들을 듣고 있다. 우리 학교의 교육 수준이 세계무대의 스탠다드에 비추어 결코 떨어지지 않음을 자부한다.

앞으로 학문적 지도력과 세계 선교에의 기여를 위해서도 구체적인 사안들이 논의되고 있다. 질 높은 논문들을 영문 저널 형태로 발간하여 세계 속에서의 학문적 교류를 해 나갈 것을 생각하고 있다. 세계 선교를 위해서도 서구 교회들이 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잘 할 수 있는 것과 결합하여 협력하도록 구체적인 제안들이 거론되고 있는 상황이다.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 개혁주의 신앙의 세계교회 건설!”, 이것이 한 때의 구호로만 그치지 않고 조금이라도 실현되는 것을 보고 싶다. 이를 이룰 수 있는 여건들이 한결 좋아졌다. 계속 꿈을 꿀 수 있도록 서로 격려하고 힘을 모았으면 좋겠다.

지금은 흔들 때가 아니다. 앞으로의 10년은 지금까지의 10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지금은 포도원의 마지막 한 시간의 기회라는 생각이 든다. 이 한 시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고신 교단과 한국교회는 급속히 사사 시대로 진입할지 아니면 다시 한 번 일어나 빛을 발하도록 보다 건강한 내일의 교회의 기틀을 다질지가 판가름 난다. 이 시대의 바나바를 길러내고 숨어 있는 사울을 찾아내어야 할 때이다. 서로의 의기가 투합하여 땅 끝까지 복음의 변화를 일으킬 생명력 있는 사역자들을 길러내어야 할 때이다.

흔들려거든 더 높은 스탠다드와 비전을 앞세워서 신학대학원이 더 정신 바짝 차리도록 흔들어 달라. 하지만 아무리 사정이 급박하더라도 애써 다져 놓은 인프라 기반을 흔들려 하지는 말라. 이것을 흔드는 것은 단순한 이전 이상의 문제임을 주지했으면 좋겠다. 그것은 그나마 가동되고 있는 비전의 상실이요 전의의 상실을 가져올 수 있다. 내일을 걱정하는 고신인들의 내적 기력의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다시 한 번 고신은 안 된다는 자학의 깊은 골이 드리울까 우려된다. 건물은 다른 곳에 다시 세울 수 있을지 모르지만, 한 번 무너진 전의와 의욕을 다시 세우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긴박하게 미래를 대비해야 할 어쩌면 마지막 기회의 시간을 이런 식으로 날려버린다면, 앞으로의 10년은 잃어버린 상실감을 다시 추스려 때 늦은 기회를 잡으려고 애쓰는 형국이 되고 말텐데, 그것은 이미 지나가버린 기회를 붙잡으려는 것과 거의 다를 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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