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원호 목사 광주은광교회

어느 여학교 교장 선생님은 학생들 머리를 쓰다듬는 버릇이 있었습니다. (요즘 같으면 난리 났겠죠?) 쑥스러워하는 아이, 좋아하는 아이, 도망치는 아이, 반응은 제각각이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다들 아줌마가 되었습니다. 동창회가 모였습니다. 노인이 되신 교장 선생님도 초대를 받아 오셨습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아줌마들이 교장 선생님께 몰려와서 머리를 들이밀며 말했습니다. “선생님, 머리 쓰다듬어 주세요.” 머리를 쓰다듬으시던 교장 선생님의 사랑은 학생들의 인생에 자양분이 되었고, 훗날 그들은 그런 선생님의 마음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머리를 들이댐으로써 고마움을 표현했습니다.

교회 유치부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아이들은 한 명 빼놓고선 전부 형편없는 모습으로 교회에 오곤 했습니다. 선생님은 예배 전에 늘 아이들의 머리를 빗겨주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은 깜짝 놀랍니다. 항상 깨끗하게 오던 아이가 꾀죄죄한 몰골로 온 겁니다. 아이는 선생님께 머리를 들이밀면서 말합니다. “선생님, 머리 빗겨 주세요.” 아이는 선생님이 다른 아이들 머리를 빗겨주는 걸 늘 부러워하다가 그 날은 엄마가 빗겨준 걸 일부러 헝클어뜨려서 교회에 왔던 겁니다.

오래전 어느 교회에서 집회 인도를 했습니다. 하루는 제직들을 위한 설교를 했습니다. 설교 중에 등 두드려주는 일을 하라고 강조했습니다. “나이가 들면 좋은 것 한 가지 있다. 마음이 너그러워져서 웬만한 건 넘어갈 수 있게 된다. 그런데 교회에는 그와 정반대로 가는 분도 있다. 그분들은 교회 생활을 오래 했기 때문에 무엇이 옳고 그른지, 무엇이 더 낫고 더 못한지 잘 안다. 그분들은 그 잣대를 가지고 젊은 사람들 들들 볶아 댄다. 그러지 말고 나이가 들수록 젊은이들의 등을 두드려주도록 하자.” 다들 아멘하면서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히 장로님 한 분이 큰 은혜를 받았다면서 저를 점심 식사에 초대하셨습니다. 저는 선약이 있다고 거절했지만 하도 강권하시는 바람에 11시에 갔습니다. 그날 점심은 두 끼를 먹어야 했습니다. 그분은 덮어놓고 저를 자기 교회 목사로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 교회 담임목사 앞에서 그런 말을 하는 바람에 많이 난처했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가 재미있습니다. 그날 교인들은 제 설교를 들으면서 서로 눈짓을 교환하면서 조마조마해 했다고 합니다. 한편으로는 불똥이 어떻게 튈까 해서, 다른 한편으로는 속으로 고소해서.. 그 장로님이 딱 그런 분이었다는 겁니다. 은혜는 참 희한하게 오기도 합니다. 그 장로님이 어떻게 되셨는지는 모릅니다. 한 가지, 그 장로님은 제게 반면교사로 오래 각인되었습니다. 그 후로 저도 웬만하면 양보하고 넘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죽고 사는 문제 아니면 그냥 넘어가지 뭘..” “까짓것 조금 틀리면 어떠냐? 조금 못하면 어떠냐? 일하면서 재미있고 행복하면 됐지..” “세월 지나고 보면 별 거 아닌데 뭐 그리 열 낼 거 있냐?” 이런 생각들이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등 두드려주는 일은 귀한 사역입니다. 우리의 손과 눈빛과 표정과 따뜻한 말 한 마디가 다른 이들의 인생에 고귀한 자양분이 될 수 있습니다. 훗날 훌륭한 아줌마 아저씨가 된 아이들이 머리를 들이민다면, 상상만으로도 미소가 머금어지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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