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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승주 목사 주님의교회담임

64회 총회에 올라온 안건 중에서 미자립교회 목사의 이중직을 허용해 달라는 안건이 올라 왔다. 총회는 이에 대해서 이중직 허락 청원은 부결하고 총회 차원에서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을 적극적으로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연구하는 것이 가하다는 결과로 처리되었다.

이에 대해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안일한 결정이라느니, 대책 없이 책임 없는 결정을 했다느니 여러 가지 말들이 많다. 심지어 “목회자의 이중직, 불법에서 활성화까지”라는 주제를 가지고 <목회사회학연구소>와 <목회와 신학>이 주관하는 포럼이 열리기도 했다. 이제 목회자의 이중직 문제는 더 이상 미루고 있을 사안이 아닌 듯하다. 포럼에서 발표한 내용에 의하면 조사자 중 목회자 겸직에 찬성하는 비율은 73.9%였단다. 그리고 그 가장 큰 이유는 “생계를 위하여 겸직할 수 있다”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별히 20대 목회자의 경우 겸직에 찬성하는 비율이 92.3%로 나왔으며 60대 이상에서는 겸직에 반대하는 비율이 더 높았으나 그 외 연령대에서는 찬성하는 비율이 더 높았다고 한다. 전임사역자의 겸직에 대해서는 53.4%가 무방하다는 대답을 보였고 반대는 41.2%였으며 파트사역자의 경우에는 91.4%가 무방하다는 대답과 6.4%가 반대한다는 대답을 하였다고 한다. 이런 인식의 배경에는 생계를 위해 이중직을 가지고 있는 목회자가 많이 있다는 반증이며 또한 그것을 암묵적으로 인정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러나 실상과는 다르게 교단 헌법은 헌법해설 189문에서 목사가 부업을 가지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그 이유는 ‘복음을 전하는 자는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아라.’는 말씀에 근거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예외도 인정된다. 목사의 경우 농업이나 상업의 일이 허용될 경우에는 당회와 시찰회의 결정이 있어야 하고 시찰회가 감독하도록 되어 있다. 심지어 45회 총회 결정은 목사 부인이 직업을 가지는 것도 원칙적으로는 할 수 없지만 교회 형편상 당회의 허락이 있는 경우는 예외로 하고 있다. 이것은 마치 헌법이 실상을 반영하지 못하는 낡은 법으로 비춰진다. 하지만 한 가지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미자립교회 목사들이 과연 이중직을 간절히 원하고 있는가? 생계가 막막하고 너무 힘들어서 이중직의 현장으로 어쩔 수 없이 내몰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실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들도 생계 걱정이 없고 형편이 허락한다면 복음 사역에 전심전력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지원하던 교회의 지원이 끊기고 노회가 돌봐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이중직을 가진 경우가 허다하다. 매년 도와달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구차하고 어렵겠는가? 그래서 목사 부인은 총회의 결정과는 상관없이 직업을 이미 가지고 있고, 목사도 이중직의 선택이 불가피한 상황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를 두고 목사의 이중직을 제의하는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이기적인 생각이 든다. 미자립교회의 목회자에게 스스로 생활비를 해결하라고 하는 것과 같은 뉘앙스가 주어진다.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를 위해 노회적으로, 총회적으로 대책 마련을 해보았는가? 가령 S.F.C간사들처럼 목회자의 생활비를 모두 총회에서 거두어 공평하게 분배해 주는 것이라든지, 총회 상회비를 미자립교회 목회자들의 생활 대책으로 운영한다든지, 목회자의 생활비 상한선을 규제하는 피크제 도입 후 나머지는 분배하는 등의 대책을 세워 보았는가 말이다. 당장 현실이 이러하니까 낡은 법을 바꾸자고 하는 주장을 하기 전에 서로를 배려하고 공평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 그리스도인다운 것이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이번 총회의 결정에 동의한다. 다만 그에 따른 실천적인 노력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목회자의 이중직 주장의 이면에는 미자립교회의 지원을 적극적으로 하지 않으려는 저의가 있지 않은지 의심해 본다. 또한 이 법을 만들고 나면 실제 혜택은 미자립교회 목회자보다 재력이 튼튼한 교회의 목회자가 누릴 가능성이 크다. 자본이 없는 교회의 목회자는 수익성 사업을 하기 어렵다. 하지만 교인수가 많고 재정이 넉넉한 교회는 수익성 사업을 창출하고 얼마든지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에 대한 세세한 규정을 해놓지 않으면 부익부 빈익빈 현상은 가속될 것이다. 그리고 교회도 재정적 부담을 줄이기 위해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를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 교회는 생활비를 주지 않아도 목회를 하고 설교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중직을 가진 목회자를 청빙할 것이다. 그에 따른 사역의 약점은 부교역자를 많이 두어서 해결하려고 할 것이다. 그에 따라 부교역자의 처우와 상황은 더욱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다. 법을 고쳐서 문제를 해결하려하지 말고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하고 무엇보다 쌍생의 방법이 연구되어져야 한다. 미자립교회의 목회자도 여건이 허락되고 생활비 염려가 없는 목회를 진심으로 꿈꾼다. 누가 ‘목회자의 이중직’을 원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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