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7일 서울삼일교회당에서 열린 창조론 오픈 포럼에서 고신대학교 신학과 교수로 재직중인 이신열 박사가 멜랑히톤의 창조론을 기고발표했다. 멜랑히톤의 창조론은 무엇인지 논문을 요약한다.

▲ 오픈포럼이 진행되고 있다.

 

멜랑히톤의 창조론 /이신열 박사

멜랑히톤은 누구인가?

인문주의자: 멜랑히톤(Phillip Melanchthon)1497에 독일 서남부 브레텐에서 태어나 1560에 세상을 떠났다. 그가 인문주의자가 된 것은 자연스런 것이었다. 11세에 아버지를 여의고 당대에 널리 이름을 떨친 인문주의자요 법률가이며 히브리어 학자였던 친척인 요하네스 로이힐린(Johannes Rruchilin)의 집에서 양육되었다. 멜랑히톤은 본래 필립으로 불렸으나 로이힐린의 권유로 검은 땅을 뜻하는 자신의 성을 헬라어에 상응하는 멜랑히톤으로 개명하도록 권했고 이를 받아들였는데, 이것은 당대에 유행했던 인문주의 영향이 얼마나 지대한가를 나타나고 있다.

그렇게 멜랑히톤은 로이힐린의 영향 아래 인문주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포르쯔하임의 라틴어 학교에서 교육받고 12살에 하이델베르그 대학에 입학하여 2년도 채 되지 않아 학사학위를 취득하였다. 그리고 튀벵긴 대학에서 수학자이며 천문학자인 슈퇴플러의 지도를 받아 3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하였다. 학교와의 약속대로 2년 동안 교수직을 수행하면서 요하네스 외콜람파디우스를 만나 천문학에 심취한다.

그리고 그의 나이 25세에 독일의 비텐베르그(Wittenberg) 대학에서 그를 교수로 초빙하여 헬라어 및 수사학의 교수로 부임하게 된다. 키가 150 센티미터에 불과하고 깡마르고 허약해 보이는 멜랑히톤은 루터를 위시한 많은 시민들에게 무시당하고 조롱을 받기까지 했지만 그의 교수취임 연설로 태도가 변화게 되었다. 멜랑히톤은 학문의 진보라는 제목의 연설에서 고대 로마와 그리스의 인문주의가 어떻게 중세 스콜랏에 의해 왜곡 또는 변질되었는가를 고찰하면서 헬라어, 히브리어를 기초로 한 고전교육의 중요성을 탁월하게 조명하였을 뿐 아니라 모든 학문의 토대로서 수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물론 시학, 역사학도 강조하였다. 이런 기초적 교육이 올바른 성경이해와 신학교육으로 들어가는 길이라고 확신차게 이야기한 것이었다. 이 연설로 인하여 루터는 마음을 돌려 멜랑히톤을 동료로 삼은 것에 대해 크게 환호하고 기뻐하였다.

종교개혁자: 종교개혁자 루터와 멜랑히톤은 서로에게 큰 도움을 주는 사이가 되었다. 전자는 후자에게서 헬라어 강의를 들었고, 후자는 전자에게서 복음을 배웠다. 그런 일로 멜랑히톤은 신학에 깊이 빠져 들어갔고 마침내 루터파에서 종교개혁을 대변하는 가장 영향력있는 신학자가 될 수 있었다.그는 이신칭의론을 수용하면서 로마 가톨릭의 사제주의를 인본주의적이며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했다.

이렇게 루터의 종교개혁적 사상을 수용하면서 로마 가톨릭으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멜랑히톤은 로마서 연구를 통하여 <신학총론>을 펴냈는데 이는 칼빈의 <기독교강요>보다무려 15년 전에 발표된 것이다.

 

멜랑히톤의 창조론

▲ 이신열 박사 고신대학교

신학총론을 중심으로: 1판에서 그는 창조론을 짤막하게 소개한다. 멜랑히톤은 창로를 하나님의 능력과 선하심에 대한 증거라고 주장한다. 창조에 대한 믿음은 차가운 이성적 견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자신의 모든 피조물에 그의 능력과 선하심을 쏟아부으셨다는 사실에 대한 살아있는 인식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피조물들을 돌보시고 다스리신다는 섭리를 논한다그는 무신론의 철학자들을 하나님의 창조의 발자국을 연구해야할 자연철학을 왜곡시켰다고 비판하였다.

2판에서 그는 초판과는 달리 왜 믿음이 창조 이해에 결정적인가를 인간 이성의 한계라는 관점에서 이성은 아담의 타락 이후에 아주 어두움에 빠져있다. 첫째, 법이 어떻게 자연법에 포함될 수 있는가는 다른 이들로 판단하게 하자. 히브리서 11장은 창조는 믿음으로 알 수 있다고 말한다.”고 주장했다.

1543년판 이후에는 창조에 대해 장이 따로 할애되었는데 여기서 그는 스토아학파와 에피쿠로스주의자들의 자연 이해를 더욱 자세하게 반박하였다. 1555년판에서 그는 창조를 무에서 창조라고 파악한다.

삼위일체론과 창조: 그는 신성의 신비를 탐구하기 보다는 경배하는 것이 더 올바르다고 했듯이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신비를 이성적으로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르침들이 실질적으로 어떤 유익을 주는 것인가에 관심이 있었다. 그러면 삼위일체의 창조는 어떻게 설명하는가?

(1)성부에 관해서는 당신 자신의 자유의지로 무에서 하늘과 땅, 천사들과 사람들 등 모든 모든 피조물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셨다.”고 함으로 창조주이심을 인정한다.

(2)성자에 대해서는 또한 한 분 주님이 계시니, 그는 유일하시고 아버지의 형상이시오,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창조된 말씀이시오, 참으로 영원하신 아버지의 영원하신 아들이시다.”고 하여 그를 통하여 모든 것이 창조되도록 하셨다는 것이다. 즉 아버지께서 그를 통하여 피조물의 창조를 선언하도록 하셨기에 성자를 통하여 창조가 수행되었다고 본 것이다.

(3)성령의 창조자 되심은 직접적으로 표현되지 아니하고 팔레스타인의 유세비우스의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모든 것을 창조하신 성령을 불러 아뢴다.”는 교부들의 입을 빌어서 증거했다.

멜랑히톤의 자연 이해: 그는 자연의 외적인 현상만을 고찰하는 차원에 머물지 않고 그 원인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특징이었다. 자연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섭리를 행사하시는 극장으로 비유되었다.

(1)질서: 피조세계에 나타난 질서는 하나님의 창조, 그리고 그의 섭리에 대한 증거이기도 하다. 만물의 질서는 영원 전부터 존재해왔던 것이 아니라 영원하고 건축자인 지성을 가진 존재, 즉 하나님에 의해 부여된 것이다. 창조자가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2)유용성: 자연세계는 인간의 거주지로 지음을 받은 것이다. 자연은 하나님의 계획을 따라 의도된 결과물을 도출함으로서 인간의 소용을 만족시킨다. 즉 자연은 인간의 소용을 만족시키는 유용성을 위해 있는 하나님의 도구로 보았던 것이다.

(3)섭리: 그는 섭리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살피시는 지식과 그의 모든 피조물을 보호하시는 통치로 정의한다. 눈은 우리가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획득하는데 안내자로서 주어진 것이다. 계속해서 그는 천문학을 경멸하는 자는 하나님의 통치와 섭리를 부인하는 즉 고의적 무신론자에 해당하다고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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