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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의 현장에서 바라 본 묵상 (9)

사해에 있는 DAVID 호텔은 그 동안 묶었던 숙소 중에 가장 고급스런 5성급 호텔이었습니다.

이곳은 유럽 사람들이 휴양 차 묶는 호텔이기도 하고 사해에서 치료를 받기 위해서 묶는 호텔들이기도 합니다.

   
 

동양 사람들은 우리들 밖에는 보이지를 않았습니다주위를 둘러보니 여러 개의 호텔들이 보였는데 모두 다 크고 화려했습니다호텔 안에는 스파 시설이 잘 되어 있어서 사해를 그대로 체험할 수 있도록 사해 물을 가져다 채워 놓았습니다.

팀원들 대부분이 그곳에 가서 피로를 풀고 사해를 체험했지만 나는 그럴 여유가 없었습니다말씀 준비와 묵상과 사진과 묵상 올리는 것과 사진정리 등 밤늦게까지 일이 계속되었기 때문입니다이번에는 한국에서 올 때부터 가져온 감기가 나을 줄을 모르고 점점 더 깊어만 갔습니다.

아프다는 것을 드러내면 성도들이 염려하여 순례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인내하며 할 일을 해야만 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 사해의 일출을 보기 위해서 해변으로 나갔는데 구름이 잔뜩 끼어서 수줍은 해 얼굴만 잠시 보고 들어왔습니다.

   
 

오늘은 제일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마사다를 올랐습니다.

마사다는 이스라엘의 오늘의 힘든 현실을 지탱해 주는 정신적인 현장입니다모든 군인들이 마지막 훈련을 이곳에 와서 마무리하고 정신 무장을 하는 곳입니다.

   
 

이곳의 슬픈 역사는 주후 66-73년 까지 로마가 이스라엘을 침공했을 때에 마지막까지 로마에 대항여여 항쟁하였던 유대 열심당원 967명이 비극적인 죽음으로 마친 곳입니다이곳에는 헤롯이 지은 요새와 궁전과 저수조와 병기고와 목욕탕과 창고와 방어용 탑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시대의 교회당 터도 남아 있으며 열심 당원들의 회당과 정결 예식터도 남아 있습니다.

   
 

남쪽 요새 건물에서 내려다보면 로마군대가 마사다를 공격하기 위하여 만든 주둔지와 쌓아 올린 흙 언덕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를 향한 사단의 공격도 이처럼 집요하게 그리고 결코 포기하지 않고 공격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며 이곳을 내려왔습니다.

사해로부터 광야 길을 지나서 서남쪽으로 달렸습니다아브라함과 이삭이 머물렀던 브엘세바를 방문하는 일정을 시작한 것입니다브엘세바는 “7개의 우물” 이라는 뜻을 가진 세게브 사막 중심에 있는 오래된 도시입니다.

성경에는 단에서 브엘세바 까지(삼하3;10)” 라는 표현이 여러 곳에 나오는데 이 말은 약속의 땅의 영역을 표시하는 말입니다.

브엘세바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있어서 매우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고 그곳 이름을 브엘세바 라고 이름 하였다.(21;31)”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에셀 나무를 심고 거기서 영원하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다고 했습니다지금도 이곳에는 여러 그루의 에셀 나무가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삭도 후에 아비멜렉과 새로 언약을 맺고 새 우물을 파서 세바 라는 이름으로 불렀다고 했습니다.이곳에는 아직도 아브라함의 우물과 이삭의 우물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물이 가장 중요한 자산이어서 항상 전쟁의 중심에는 물과 관련되어 있었습니다.

나 혼자 유적지를 돌아보면서 여러 형태의 주거지와 광장과 창고와 고급 주택과 통치자의 집과 배수로와 거리들을 눈 여겨 보았습니다그곳을 나오면서 지하 곡식 창고와 물 저장소를 둘러서 나왔습니다.

   
   
 

오래 되었지만 이곳에도 사람들이 살았고 역사와 문화를 만들어 갔으나 지금은 황폐한 유적만 남아 있었습니다이렇게 인간의 삶의 터전이 끊어지게 된 이유는 전쟁이나 질병이나 자연재해(지진홍수,가뭄 등), 그리고 더 나은 주거 환경으로 이주하는 경우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터전도 영원하리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경고와 세상은 영원한 곳이 하나도 없다는 진리를 알려 주므로 우리의 소망을 하늘나라에 두어야 한다는 믿음을 굳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나는 잠시 에셀 나무에 손을 얹고 영원하신 여호와 하나님을 불렀습니다.

   
 

브엘세바로 부터 계속해서 북쪽으로 이동하여 쉐팔라(평지지역에 있는 라기스에 이르렀습니다.

라기스는 여호수아와 연합하여 싸운 아모리 다섯 왕 중 하나가 다스렸던 성읍이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앗수르 왕 산헤립은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전에 먼저 라기스 까지 포위하였습니다그런데 마지막까지 아세가와 함께 버텼던 성읍이었습니다산헤립은 히스기야로 부터 조공을 받고서 이 도성을 떠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산헤립의 라기스 공격 장면이 니누웨에 산헤립 궁전 벽에 장식되어 있다가 발굴되었는데 여기서 라기스 서신은 히브리어 연구에 매우 중요한 자료라고 알려져 있습니다바벨론 역시 예루살렘을 공격하기에 앞서 라기스를 공략하여 불 태워 버렸습니다.

이곳에는 3중 성문과 성벽의 유적이 남아 있고 가장 중심에 매우 큰 제단의 형태가 남아 있습니다.

   
 

제단이 있는 곳으로 걸어가면서 어느 곳보다 아름답게 핀 꽃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슬픈 역사의 현장에도 자연은 쉬지 아니하고 생명의 순환을 계속하면서 자기들의 이야기를 만들고 있었습니다그들은 아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야기를 계속 쓰고 있는 듯 했습니다.

라기스에서 벧 구브린 국립공원” 을 들어가는 길에 들판에 가득 개양귀비가 빨갛게 피어 있었습니다.

   
 

버스에서 내려 꽃 속에 묻혀 사진을 찍으며 꽃을 살펴보았더니 우리나라에 있는 개양귀비와는 꽃술의 형태가 매우 달랐습니다우리나라에 피는 개양귀비는 꽃술이 십자가형으로 되어 있는데 전혀 다른 것이나 잎새의 모양도 달라서 다른 꽃과의 식물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꽃을 보면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주인공이 꽃인지 사람인지 구분하기가 쉽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을 중심으로 사진을 찍어야 할까를 고민하였습니다그래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성도님들이 꽃보다 아름답다는 생각으로 사람 중심으로 꽃은 보조역할로 찍었습니다.

제가 찍은 사진 중에 꽃이 주인공이 되는 사진은 없습니다.

벧 구브린은 성경지명으로는 마레사입니다유다 왕 아사가 구스 사람 세라와 싸워서 승리한 곳이 마레사의 스바다 골짜기라고 말합니다.(대하14;9-15) 르호보암 왕이 애굽의 바로인 시삭과 전투 후에 요새화한 곳이기도 합니다이곳은 80개의 큰 동굴들이 통로로 연결되어 있는 종 동굴로 높이가 가장 큰 동굴의 경우 15m 정도가 됩니다.

   
   
 

기독교가 핍박 받을 때에는 이곳이 은신처로 사용되어져서 십자가가 그려진 동굴도 있었습니다.

비잔틴 시대에는 많은 교회들이 들어서 있었고 지하 비둘기 집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는 동굴을 들어가 보았으며영화 람보를 촬영한 큰 동굴도 탐방 하였습니다.

많은 유적들이 남아 있는데 로마 시대 원형극장이나 올리브기름 짜든 곳시돈인 매장 동굴 등이 유적으로 남아 있습니다지금은 이스라엘의 구브린 기브츠” 가 자연을 잘 가꾸어 정갈하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소렉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다가 벧세메스 유적지에 올라가서 사방을 둘러보았습니다.

   
 

엘리 제사장 시절 실로에 있던 하나님의 법궤를 불레셋에 빼앗겼는데법궤가 있던 곳에 불레셋의 다곤 신상이 부러지고 염병이 돌자 이스라엘로 다시 돌려보내는데바로 벧세메스로 보냅니다그때 새 수레를 만들고 젓 나는 두 암소로 끌게 하여 이곳으로 보내어 졌습니다.

나는 블레셋 쪽으로 눈을 들어 바라보면서 암소가 끄는 수레바퀴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하나님의 대한 믿음이 없던 그 당시 종교 지도자들이 법궤만 앞세워 전쟁을 하려고 했던 그 모습이 바로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 아닌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멀리 두 소나무 사이로 삼손의 고향이 보였습니다그 역시 하나님을 불순종했을 때에 불레셋의 포로가 되어서 노예로 전락했던 것도 똑 같은 인간의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물어 가는 해를 보면서 빠른 걸음으로 아세가의 언덕을 향해 갔습니다.

   
 

아세가는 괭이로 판 곳“ 이라는 뜻을 가진 성읍으로 여호수아가 기브온 전쟁에서 아모리 족속의 다섯 왕을 추격한 장소입니다당시 아모리인들은 하늘에서 쏟아진 우박 덩어리에 맞아 수많은 희생자를 내었습니다.(10;10-11) 이곳은 높은 언덕에 위치해 있어서 특별히 엘라 골짜기가 멀리 내려다보이는 곳입니다.

사울 왕 때에 불레셋과 이스라엘의 경계는 엘라 골짜기에 있는 소고와 아세가 사이였습니다그때 불레셋이 침공하여 아세가와 소고 사이에 에베스담밈에 진을 쳤는데 다윗이 골리앗을 쳐 죽임으로 승리한 곳을 내려다 볼 수가 있었습니다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은 아세가를 방비해서 요새화 하였고 남 유다가 멸망하기 전에 바벨론 왕 느브갓네살은 아세가를 함락시켰습니다.

언덕위에는 이정표가 있었는데 다윗-골리앗 조망대“ 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눈을 열어서 엘라 골짜기를 바라보았습니다다윗의 칼칼하고 초롱초롱한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 이라는 거구가 물맷돌에 맞아 퍽 하고 쓰러지는 장면을 보면서 양편 군사들의 반응이 어떻게 나타났을까를 여러 가지로 상상하면서내 나름대로 드라마를 쓰며 어두워진 산길을 웃으면서 내려 왔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사건의 배경을 우리 지형을 가져다가 맞추어 각본을 쓰고 연출을 하여 설교했었는데이제는 생생한 현장을 마음에 담아서 설교할 수 있게 되어 가슴이 설레였습니다.

다윗이나 골리앗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이 현장을 놓고 생각하면 생생한 현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는 버스에 올라 베들레헴으로 올라가야 합니다베들레헴은 팔레스타인 지역입니다이스라엘과 팔레시타인이 함께 공존하는 땅이지만 경제적인 수준은 너무나 격차가 심했습니다.

팔레스타인 자치구가 몇 군데 있는데 그 중에 베들레헴은 이스라엘과 매우 친화적인 관계에 있는 자치구입니다이곳은 이슬람과 기독교인이 함께 하는 곳입니다.

물론 이슬람교도가 많지만 시장은 항상 기독교인을 뽑는 것이 전례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그것은 국제 사회로부터 원조를 받는 일에 기독교인이 유리하다는 것을 시민들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몇 년 전에 이곳에도 세워진 분리장벽은 우리 눈에도 슬픈 장면으로 다가 왔습니다.

이스라엘로서는 생존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베들레헴 주민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감옥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이 감옥 같은 도시에서 묶습니다하루지만 그들의 아픔에 동참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김윤하  kyh3647@ne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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