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우리의 교육현장은 공교육에 대한 불신과 이에 대한 반발로 심각한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교회교육의 현장도 마찬가지이다. 이러한 시점에 우리가 역사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은 반발로 인하여 또 다른 극단으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최근에 홈스쿨링 혹은 가정 신앙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이런 시점에 공적 신앙교육의 문제를 살피는 것은 극단의 치우침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를 방지하는 중요한 시도라고 생각한다. 때마침 이에 관한 심도 있는 논문이 지난 425일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있었던 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제65차 정기논문발표회에서 발표되었다. 고려신학대학원 기동연교수의 논문이 - “구약시대의 공적인 신앙교육” - 바로 이에 관한 논문이다.

기교수에 의하면 구약의 공적 신앙교육은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에 의해서 실시되었다. 그러나 구약의 공적 교육은 실패했다. 이러한 공적 교육 실패의 정점이 곧 이스라엘의 멸망 시점과 일치했다. 공적 교육의 실패 원인의 배경은 공적 교육의 주체들의 교만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경멸이었다. 이러한 교만과 말씀에 대한 경멸은 공적 주체들의 술 취함과 뇌물을 받고 하는 교육으로 나타났다. 한국교회의 공적 신앙 교육의 주체들은 기교수의 선지자적 논문을 통해서 교훈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기교수의 논문을 요약한 것이다.  

▲ 기동연 교수가 논문을 발표하고 있다.

구약시대의 공적인 신앙교육

구약 시대에는 고대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처럼 공적인 교육 기관이 있었고, 알파벳을 통해 많은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쓸 수 있었으며, 율법을 비롯한 성경책들과 기타 다양한 책들이 기록되어 보관 되었다. 이러한 것들은 구약 시대의 이스라엘은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여건을 갖추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구약 성경은 또한 곳곳에서 일반 백성들이 글을 읽고 쓸 뿐만 아니라 율법을 백성들에게 가르친 것으로 보이는 표현을 가지고 있다. 율법 교육이 가정에서도 이루어졌지만, 가정 외에서도 정기적인 교육이 시행되었다.

신명기의 십계명을 받은 언약적 배경을 백성들에게 설교하면서 모세는 먼저 신명기 5:1에서 모든 백성들에게 율법을 듣고 배우고 지켜 행할 것을 명령하고 있다. 그리고 이 메시지를 마무리 하면서 신명기 5:31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다시 십계명에 더하여 신명기의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주면서 이를 백성들에게 가르치게 한다(cf. 신명기 6:1). 율법 교육은 가정을 통해서 계승되기도 했지만 공적인 율법 교육도 병행되었을 것이다.29) 그렇다면 공적인 신앙 교육을 담당한 주체는 누구일까?

그 주체는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기관들과 현자들도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역할을 하였겠지만, 구약성경에서 서기관들을 통한 신앙 교육의 흔적은 찾기 어렵고, 현자들의 교육은 가정교육인지 공적인 교육인지 판단하기 어렵다. 하지만 레위 제사장들의 공적인 교육은 구약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교육 실패: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구약 공적 교육의 주체들이었지만, 구약 시대에 이들의 교육 사역이 얼마나 효과적이었는지 그리고 지속적이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역대하 17:7-9에서는 여호사밧 왕이 즉위한 지 3년째 되는 해에 자신이 신하들과 레위사람들 그리고 제사장들을 유다 전역에 보내어 백성들에게 율법 책을 가르치게 한다.

이 사건은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여호사밧은 아사의 아들이며, 역대하 15:3은 아사시대의 특징으로 제사장도 없고 율법도 없는 지가 오래 되었다고 했다. 역대하 15:3의 내용은 아사가 집권 15년이 되기 전의 일이었고 그가 종교개혁을 단행한 시기였다. 그런데 약 30년이 지난 후 아사의 아들 여호사밧도 레위 제사장들을 유다 곳곳에 돌아 다니게 하면서 백성들에게 율법을 가르치게 한다. 이런 현상은 제사장들의 교육사역이 이스라엘 역사에서 반복적으로 중단되거나 실패했음을 의미한다. 제사장들의 교육 사역의 실패가 정점에 도달하는 것은 공교롭게도 이스라엘이 멸망에 이르는 위기에 처할 때이다. 왜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그들의 교육적 사역에서 실패했을까?

실패의 원인: 구약 시대의 공적 신앙 교육 주체들이 교육자로서 가져야 할 기본적인 자세를 지키지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에게 교육을 위해 요구된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일까? 바른 신앙과 소명감과 같은 제사장 직과 선지자 직 수행을 위해 요구되었던 자세들이 기본적으로 요구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민족적 위기 때마다 종교 지도자들이 이런 기본적인 자세를 제대로 갖추지 못하고 극심한 부패와 타락에 빠져 있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특이하게도 구약 성경은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교육적 실패와 관련하여 두 가지 문제가 주로 언급되고 있다.

첫째는 술에 취해 정상적인 판단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백성들에게 교육하는 것이며, 둘째는 뇌물을 받고 교육하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주로 이스라엘이 멸망을 앞둔 시기에 집중적으로 발생했으며 그 배경에는 공적 교육의 주체들의 교만과 하나님과 그의 말씀에 대한 경멸이 자리 잡고 있다.

실패의 원인1-술 취함: 첫째 문제는 이사야 28:1-13에서 볼 수 있으며, 하나님은 에브라임의 멸망을 예고하면서 에브라임의 술 취한 자들의 교만을 질책한다. 이 술취한 교만한 자들은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며, 여기에는 다름 아닌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포함되어있다. 이사야 28:7은 이들의 삶을 토한 것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한 난장판과 같다고 하며, 취하고 비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선지자는 환상을 잘못 풀고 제사장들은 잘못된 판결을 내리고 가르친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자신들의 들보를 보지 못하고 남의 티끌을 지적하면서 서로를 향해 그런 꼴로 누구에게 지식을 가르치며 도를 전하려는가 하며 비난한다(이사야 28:9).

이사야 28:1-13의 메시지는 레위기 10:9-11에 있는 제사장들의 금주 규정과 직접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이 규정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주지 않고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직접 준 규정들이며(레위기 10:8), 이것은 9-11절의 규정이 레위 제사장들에게 매우 중요한 사역 자세라는 것을 짐작하게 한다. 나답과 아비후가 하나님께서 명령한 불이 아닌 다른 불로 분향단에 분향하다가 죽는 일이 일어난 직후에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에 포도주나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하였다. 포도주를 마시지 못하게 한 이유는 제사장이 술 때문에 제의 집례 과정에서 실수하여 죽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다. 하지만 레위기 10:10-11은 이에 더하여 제사장의 금주 이유로 두 가지를 덧붙이고 있다. 첫째는 거룩하고 속된 것과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금주 규정을 아론과 그의 아들에게 바로 주었을까? 전통적으로 유대인들은 그 배경에 나답과 아비후 사건이 자리 잡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이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은 불을 가지고 분향하러 들어간 이유는 술에 취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도 있겠지만 레위기 10:3에서 하나님이 내 거룩함과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고 한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이들의 행동은 하나님의 거룩함과 영광을 고려하지 않고 오히려 제의 규정을 멸시하거나 하나님께 대해 경솔한 자세를 가졌기 때문에 생겨났다. 그렇기 때문에 레위 제사장들에게 사역을 행할 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한 것은 그들이 바른 정신과 판단력을 유지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과 율법을 경시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막기 위한 목적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유다의 멸망 시기에도 제사장들은 정상적인 분별력을 상실한 상태에서 백성들을 가르쳤고, 공적 교육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제사장들의 교육의 실패는 포로후기 시대에도 발견된다. 말라기 2:7-8은 레위 제사장들의 공적 신앙 교육의 실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7 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켜야 하겠고 사람들은 그의 입에서 율법을 구하게 되어야 할 것이니 제사장은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거늘 8 너희는 옳은 길에서 떠나 많은 사람을 율법에 거스르게 하는도다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니 너희가 레위의 언약을 깨뜨렸느니라

이런 점들을 볼 때 이스라엘의 공적 신앙 교육의 회복은 교육의 주체인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의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경외심과 겸손한 자세에서 시작될 수 있다. 이러한 가능성은 에스겔 44:21-24에서 볼 수 있다. 에스겔 44:21-24는 미래에 하나님이 예루살렘 성전과 제사장들을 회복시킬 때 제사장들이 금해야 할 것을 진술하면서 제사장들의 금주를 언급한다. 에스겔 44:21-24에서는 금주에 더하여 제사장들의 결혼 규정을 언급한 후 레위기 10:10처럼 거룩한 것과 속된 것 그리고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의 구별에 대한 메시지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어서 에스겔 44:24에서는 레위기 10:11의 교육 수행의 주제를 좀 더 구체화하여 제사장들이 재판하고 절기에 법도와 율례를 지키는 것과 그리고 안식일 성별을 위한 사역을 할 것이라고 한다. 정상적인 판단력은 단순히 금주의 문제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다. 앞서 살펴본 레위기10:8-10과 이사야 28:1-13과 에스겔 22:26 그리고 말라기 1-2장에서 본 것처럼 레위 제사장들이 술에 취해 비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지고 제의와 성속의 구별 그리고 교육에 임한 배경에는 모두 그들의 교만과 하나님의 율법을 경멸하는 태도가 자리 잡고 있다. 에스겔 44:21-24에서 하나님이 레위 제사장의 금주 규정과 교육 사역을 다시 회복시킬 때 에스겔 44:15은 회복에 참여할 레위 제사장의 신분을 아주 분명하게 말한다. 그들은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을 반역하여 떠날 때 성소의 직분을 신실하게 지킨 사독의 자손 레위 사람 제사장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겸손하고 말씀에 대한 진정한 경외심을 가질 때 술 취하지 않고 바른 판단력을 가지고 공적 신앙교육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이며, 교육의 회복과 부흥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실패의 원인2-욕심: 구약 신앙 교육의 주체들이 교육 사역을 실패한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욕심이다. 구약 성경은 곳곳에서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이 뇌물을 받고 가르친 것을 질책하는 메시지를 가지고 있다. 이사야와 동시대에 활동한 미가는 3:11에서 제사장들은 뇌물을 받고 가르치며 선지자들은 돈을 받고 점 치는 짓을 하였다고 한다. 레위 제사장과 선지자들의 교육을 빙자한 탐욕은 유다의 멸망을 앞두고 강하게 나타난다. 예레미야8:8-10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한다고 탄식한다. 10절에 의하면 탄식의 배경에는 선지자와 제사장들의 탐욕이 자리 잡고 있어서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욕심내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고 한다. 이 표현과 아주 유사한 표현을 예레미야 6:12-13에서 볼 수 있다.

예레미야 8:10 그러므로 내가 그들의 아내를 타인에게 주겠고 그들의 밭을 그 차지할 자들에게 주리니 이는 그들은 가장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밑줄은 기교수의 번역)

예레미야 6:12 내가 그 땅 주민에게 내 손을 펼 것인즉 그들의 집과 밭과 아내가 타인의 소유로 이전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13 이는 그들이 가장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탐욕을 부리며 선지자로부터 제사장까지 다 거짓을 행함이라.

둘의 공통점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탐욕과 거짓을 말한다는 것이고, 둘의 차이점은 예레미야 8:108-9절에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탐욕에 더하여 서기관들을 통한 율법 왜곡을 언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서기관들의 율법 왜곡을 언급한 이유는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탐욕이 서기관들의 율법 왜곡과도 관련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마도 서기관들은 레위 제사장과 선지자 출신이었을 것이고 이들은 탐욕 때문에 율법을 조작하고 이를 백성들에게 거짓되게 가르치고 이익을 취했을 것이다. 에스겔22:25-26에 의하면 제사장들이 성과 속의 구별과 정한 것과 부정한 것의 구별을 하지 않고 하나님을 더럽히고 있을 때, 선지자들은 우는 사자처럼 사람의 영혼을 삼키고 재산과 보물을 탈취하며 과부를 그 가운데에 많게 하였다고 한다. 이들은 고관들의 악행을 숨기기 위해 회를 칠하고 스스로 허탄한 이상을 보며 거짓 복술을 행하고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고 거짓말을 하였다.

▲ 논문발표가 진행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공적교육의 주체들은 정한 것과 부정한 것 의로운 것과 불의한 것을 구분하지 못하고 하나님의 의와 영광을 훼손하는 짓을 반복하였다. 이에 더하여 레위 제사장들과 선지자들은 탐욕에 이끌려 뇌물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왜곡시켜 가르쳤다. 이들의 부패한 교육은 백성들을 돌이킬 수 없는 타락으로 이끌었고, 하나님의 정의를 철저히 외면하는 삶을 살게 만들었다.

구약 시대의 공적 교육의 실패는 한국 교회의 신앙 교육의 주체들에게 중요한 교훈이 된다. 한국 교회의 회복과 부흥을 위해 해야 할 일들이 많이 있지만,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바른 신학적 판단력을 가지고 교회 교육의 회복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탐욕에 이끌려 교인들의 세속적인 바람을 채워 주려고 하는 교육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그의 나라와 의를 세우는 교육을 감당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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