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내려진 학문적 결론의 대부분은 승리자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다. 역사는 언제나 승리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어 왔고, 철학의 역사는 이성과 합리성을 추구하는 서양의 정신사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한때 학문의 여왕으로 불렸던 신학 역시 승리자의 입장에서 연구되어져 왔다. 지금까지 교회의 역사는 유럽과 백인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오지 않았던가?  최근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학문적 태도를 반성하면서 지금까지 연구의 대상에서 소외되었던 비백인, 비유럽, 역사의 패배자, 피통치자, 여성, 제3세계의 관점을 중요시하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필자가 연구하고 있는 선교학 분야에서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종전의 연구가 복음을 전달했던 서양 선교사 중심이었다면, 최근의 동향은 서양 선교사가 전해준 복음을 수용 혹은 거부했던 피선교지 원주민들의 반응을 더 강조하고 있다.

한국교회가 미국교회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그런데 문제는 한국교회의 뜨거운 선교 열정에 비해 피선교지 원주민을 먼저 고려하는 성숙한 태도가 결여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복음을 전달하는 전달자의 입장만 중요하게 여겨왔다.

그들이 우리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우리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 그들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받는 사람들일 뿐이었다. 우리가 가든지 보내든지 하면 그들은 아무 생각 없이 받기만 하는 사람들일까?

천만의 말씀이다. 여기 필리핀의 코비 팜(Cobbie Palm)이라는 목사가 쓴 고발장이 있다. 필리핀 연합그리스도교회의 선교 부서에 일하고 있는 팜 목사는 필리핀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국 선교사 전체를 세계선교법정(World Mission Tribunal)에 고발한 적이 있다.

팜 목사는 고발장에서 한국 선교사들이 성과주의에 함몰되어 기존의 필리핀 교회를 와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미 필리핀 교회가 존재하고 있는 지역에 새로운 선교 교회를 설립하고, 기성 교인들을 빼내가는 이른바 양 도둑질(Sheep stealing)을 일삼고 있다는 것이다

팜 목사는 이것이 필리핀에 선교사를 파송하는 한국교회가 고도성장을 이룩한 비법이라고 비꼬고 있다. 한국교회의 선교 정책에 대한 대대적인 반성과 성찰이 필요한 지금, 우리에게 요구되고 있는 것은 선교 현지의 주민들을 먼저 생각하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신학적 반성이다. 그들은 그저 받기만 하는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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