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빈야드 운동과 유사 운동에 대한 비판적 평가


1) 초자연적 은사를 포함한 모든 은사는 성령의 주권에 속한다.


우리는 지금도 성령의 주권에 따라 은사들이 교회의 덕과 유익을 위해 주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기도하고 사모하는 자에게 성령은 다양한 형태의 은사를 개인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나누어 주기도 하신다(눅 11:13). 그렇다고 해서 성경에 언급된 ‘모든’ 열광적 은사들이 지금도 나타난다고 주장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과연 사도행전 2장의 방언이 지금도 계속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성령께서는 필요에 따라 그런 외국어 방언의 역사를 주실 수도 있겠지만, 사도행전을 일차적으로 구원 역사적인 계시의 진전이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하기 때문에 사도행전 2장에서와 똑같은 현상은 그 이후 시대에는 없다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덕을 세우는 데 사용된다면, 고린도전서 12장에서와 같은 방언은 오늘날에도 가능하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실제로 교회에 나타나는 은사들 중에는 교회를 세우기보다는 도리어 파괴하는 사탄의 역사도 있다.1) 때로는 은사라는 이름으로 오히려 성령의 주권을 무시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역작용 때문에 일부 은사들이 사라졌다고도 말할 수 없으며, 아무런 제한 없이 모든 은사들이 지금도 주어진다고 확언할 수도 없다. 선물인 은사들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주권에 속한다.


2) 이른바 초자연적 은사는 교회와 성도의 표지가 아니다.


교회가 복음 전파를 위하여 간구할 때, 성령께서는 자기의 기쁘신 뜻대로 여러 은사들을 주실 것이다. 그러나 몇 가지 초자연적인 은사들의 부재가 교회의 성장을 저해하는 원인이라고 단언하지는 말아야 한다. 현대 교회가 무능력하고 침체되어 있다면, 우리는 그 원인을 어떤 특정 은사들의 부재가 아니라 복음적인 설교와 간절한 기도의 부재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말씀의 올바른 전파와 간절한 기도가 부족하면 성령으로 충만한 교회와 성도의 생활도 기대하기 어렵다. 교회의 관심이 은사 문제에 지나치게 쏠려 있다면, 우리는 먼저 교회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순전하고 능력 있게 설교되며, 우리가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가를 살펴야 할 것이다.


3) 말씀에서 출발하지 않은 은사 운동은 더 극단적인 은사 운동을 강요한다.


역사적으로 많은 은사 운동이 실패로 끝난 이유는 더 과시적이고 더 극적인 은사를 행하여야 한다는 강박 관념에 사로잡혀 점점 말씀에서 벗어나는 불건전한 운동으로 치우쳤기 때문이다. 말씀에서 출발하지 않고 말씀의 검증을 받지 아니하는 은사 운동의 횡포는 공허감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런 공허감은 더 극적인 은사를 통해서만 해소되는 속성을 지닌다. 나아가 더 큰 신유나 기적의 이야기를 지어서 퍼뜨리는 사교(邪敎) 집단으로 변질될 가능성을 안고 있다.


4) 금니 변화 등의 현상을 ‘단적으로’ 성령의 사역이라 말하기 어렵다.


소위 성령의 은사라고 하는 것들 중에도 사실은 성령의 은사가 아니라 마귀의 미혹인 경우도 있다. 마귀도 때때로 큰 능력을 행하여 사람을 놀라게 만들기도 한다. 애굽의 술사들은 자신의 술법으로 지팡이가 뱀이 되게 하기도 했다(출 7:11,12). 또한 애굽의 강물이 피가 되게 하는 이적도 행하였으며(출 7:22), 개구리가 땅에 올라오게 하는 이적도 행하였다(출 8:7). 요한계시록 보면 거짓 선지자들이 큰 이적을 행하여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였다고 한다(계 13:13). 실제로 로마 제국 당시의 이교 제사장들이 이적을 행하여 동상에서 불이 쏟아져 나오게 하는 이적을 행하기도 하였고, 또한 황제의 동상의 복부에서 말소리가 나게 하는 이적도 행하였다고 한다(계 13:15 참조). 이처럼 마귀는 비상한 능력으로 사람들을 미혹하여 우상을 숭배하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더 잘 믿게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굳건하게 서게 하며, 복음 전파에 유익이 되며, 교회의 유익을 위하는 결과를 가져오지 않는 이적이라면, 과연 그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이적인지를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단지 이적 그 자체만 가지고 성령의 은사라고 단정 짓지 말고, 그것이 주어진 목적이 무엇인지, 어떠한 결과를 끼치는지, 하나님의 말씀에 합당한 것인지를 종합적으로 판단하여야 할 것이다.


전에 아프리카의 어떤 선교지에서 이가 빠지고 잇몸이 상해 음식을 못 먹는 이들에게 새 이가 생기는 기적이 일어났다는 보도가 있었다. 그 보도의 진위를 확인할 수는 없지만,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그러한 기적은 하나님의 긍휼의 손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멀쩡한 이를 금니로 바꾼다는 것은 성령의 역사라 볼 수 없고, 오히려 미혹케 하는 영의 역사일 수도 있다. 성령은 진리와 질서의 영이시며 특별한 목적과 의미 없이 기적을 남발하여 우리를 혼란과 무질서에 빠지게 하시지 않는다. 성령은 지금도 능력으로 역사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분명한 목적이 없이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는다. 우리가 살도록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성령께서 스스로 무너뜨려 우리의 삶을 혼돈케 하지 않으시는 것이다.


금니 현상을 성령의 역사라고 보는 이들은 그런 기적이 전도에 도움이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표적을 통해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는 있을지 모르나 그들의 영혼을 십자가의 주님 앞으로 인도하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고 오히려 거침돌이 될 수 있다. 기적과 표적으로 사람들의 의심과 불신을 단숨에 날려 버림으로써 그들이 믿지 않을 수 없도록 그들을 굴복시킬 수 있을지 모르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된 회개와 사랑의 반응은 이끌어 낼 수는 없다. 죄인들의 심령을 변화시켜 그들에게서 진정한 사랑의 순종을 이끌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십자가의 도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이나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이 십자가의 도가 미련하고 거치는 것이 되나 믿는 자에게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하였다(고전 1:18, 22-24). 기적을 통해서는 사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는 사건으로 예수님의 초자연적인 기사는 그 절정에 이르렀으나 유대인들은 그로 인해 더욱 강퍅해졌다. 과거 유대인들과 같이 지금도 사람들은 십자가의 메시야가 아니라 기적과 표적으로 세상을 압도하는 만능의 메시야를 원하고 있다. 이것이 광야에서 사탄이 제시한 유혹이며 십자가 밑에서 군중 원하던 것이다. 십자가 복음으로써가 아니라 마술과 같은 표적의 도움으로 사람을 끌려고 하는 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십자가의 능력을 온전히 의존하지 못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5) 그릇된 은사 운동은 교회의 질서를 훼손한다.


무분별한 성령 운동과 은사 운동들이 보여 주듯이, 교회의 질서를 깨거나 특정 은사나 또는 그것에 입각한 은사 교리만을 강조하는 것은 바울 사도의 교훈에 위배된다(고전 14:40). 이는 성령의 주권을 제한하면서 은사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교회를 단조롭게 만들 뿐 아니라 특정 은사를 얻기 위한 방법론의 횡포를 초래할 수 있다.2)


또한 이른바 초자연적 은사를 가진 자는 그것을 사모하는 대중을 장악하거나 폐쇄적인 집단을 형성할 수 있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이단이 펼치는 방법과 동일하다. 그러면 교회의 직분도 무시당하고, 공적인 예배도 파괴되고, 무질서가 지배할 것이다.

 

6) 성령의 사역에는 은사도 있지만 핍박과 순교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도 살리시고 없는 것을 불러 있게도 하신다(롬 4:17).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은 없다. 그런데 왜 굳이 ‘금니’인가? 혹 지극히 가난하여 치아 관리를 제대로 할 수 없는 민족들 가운데서는 이런 사건이 의미가 있을지 몰라도, 오늘날 우리나라와 같은 상황에서 이러한 기적은 더 이상 실존적 중요성을 가지지 않는다.3)

사도 바울은 자기 뒤에서 외치면서 괴롭히는 여종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었다(행 16:18). 창에서 떨어져 죽은 유두고도 살렸다(행 20:9-12). 그리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고 악귀들을 쫓아내었다(행 19:11-12). 그러나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였지, 신유나 그런 특별한 은사들을 전하지 않았다.


초대 교회에서 사도 외에 스데반과 빌립은 성령과 지혜가 충만한 대표적인 사람들이었다. 빌립은 사마리아와 여러 곳에서 효과적으로 복음을 증거하기도 하고 기적을 베풀었으나, 스데반은 순교를 당하였다. 스데반의 죽음은 일반적으로 기적을 기대하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메시지를 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치유와 번영이 아니라 고통스런 죽임을 당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운명은 당시 예루살렘 중심의 초대 교회를 주님의 의도대로 사방으로 흩으시고 부흥시키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므로 성령의 능력은 때로 우리의 불행과 고난과 어려움을 해결해 주기보다는 고난과 핍박과 순교를 감수하게 하는 능력이다.


또한 성령님의 능력은 놀라운 기적을 통해서만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평범한 삶 속에서 우리가 마주 대하기 힘든 이웃을 사랑으로 포용하는 것, 그들과의 관계를 의지적이고 윤리적으로 세워 가는 일 속에도 강하게 역사한다. 바울은 이적을 몸소 베푼 사람이었으나, 그 호기심 많은 세대에도 기적을 남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그는 자신에게 큰 고통을 주는 ‘육체의 가시’를 안고 살아갔으며(고후 12:7-9),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의 잦은 발병을 기적으로 고쳐 주지도 않았다(딤전 5:23). 기적은 요한복음의 말씀처럼 표적(表蹟), 즉 본질적 메시지를 가리키고 있는 표지일 뿐이다(참고. 요 2:11, 4:54, 6:2,26, 12:37, 20:30 등). 모든 이적의 은사가 가리키는 것은 궁극적으로 기적의 시행자이신 하나님과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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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990년대 말에 장로교 통합(1997), 합동(1997), 기독교성결교회(1998) 등은 빈야드 운동에 대해서 공식적 입장을 밝혔다.

 2) 윔버는 1977년 미국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Anaheim)에서 빈야드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를 개척하고, 1982년에 남가주 지역 교회들에 가입한다. 빈야드교회는 다시 척 스미쓰의 갈보리채플에 가입하지만 은사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서고, 윔버는 빈야드교회에서 다시 사역하면서 1982년에는 와그너와 함께 풀러에서 가르친다

  3) 윔버, 「능력 전도」 (서울: 도서출판 나단, 1991), 81 이하.

 4) C. Peter Wagner, How to Have a Healing Ministry without Making Your Church Sick (1988), 정운교 역, 제3의 바람 (인천: 나눔터, 1994), 19. 제1의 물결은 금세기 초의 오순절 운동이요, 제2의 물결은 1960-70년대에 로마교를 포함한 초교파적인 은사 운동이라 하겠다. 오순절 운동은 1900년 미국 캔사스 주 토페카의 벧엘 성경 학교(Bethel Bible College)의 교사 파함(C.F. Parham)이 성령 세례의 성경적 증거에 관한 숙제를 부과했는데, 며칠 후 오즈만(A.N. Ozman) 양이 성령을 받아 중국어로 말하였다고 한다. 파함의 제자인 세이무어(W.J. Seymour)가 1906년에 로스엔젤레스에서 일으킨 아주사(Azusa) 부흥은 오순절 운동을 세계적인 운동으로 변모시켰다. 7일간의 금식 후 처음으로 7명이 성령으로 세례를 받고 방언을 말했다는 것이다. 그 이후 방언은 제2의 축복인 성령 세례의 증거로 고수된다. 제1, 2의 물결은 성령 세례에 방언이 필수적이라고 보는 데 반해, 제2의 영향을 받은 제3의 물결 추종자들은 치유가 필수적이라 한다. 전에는 ‘성령 세례’가 중생 뒤에 받는 제2의 축복으로 간주되었으나, 이제는 그것을 구원 시에 받는 일회적 사건으로 보고 ‘성령 충만’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그 결과 제1, 2의 물결을 거부하던 세대주의자의들까지도 이를 추종하게 되었다. 제3의 물결은 방언과 치유는 기본이고, 다른 표적과 기사들이 현재에도 일어나고 있음을 강조한다.

 5) J.A. Beverley, “Toronto's Mixed Blessing,” Christianity Today, Vol. 39/10, Sept. 11, 1995, 23; 그들 교회의 다음 사이트를 참고하라, http://www.tacf.org/

 6) 합동 측 보고서 중에서 인용. “교리적인 지식을 갖추고 신실한 인격을 길러 나아가는 일은 그리스도인의 삶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기적에 대한 믿음을 갖는 것은 더욱 큰 의미를 지니고 있다.” 윔버, 「능력 전도」, 80.

 7) Kim, Sang-Bok, “The Place of Miracles Today,” ACTS Theological Journal, Vol. 5, 1995, 56-109. 치유 외에도 음악 목회, 리더십, 구제(outreach), 전도 등의 방법론도 계발한다

 8) 한국 지부도 은사의 전수를 강조한다, www.wli.or.kr.

 9) 전정희, “밀려드는 ‘新사도적 개혁운동’ 파도”, 「교회와 신앙」(www.amennews.com), 2006,6,5.

 10) F.D. Bruner, 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Eerdmands, 1976), 105.

 11) F.D. Bruner, A Theology of the Holy Spirit (Grand Rapids: Eerdmands, 1976), 105.

 12) 우리는 사도행전을 일차적으로 구원 역사적인 계시의 진전이라는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나 성령의 자유를 제한하는 식으로 이 입장을 해석하면 안 된다.

 13) 와그너, 「능력 전도」, 187 이하.

 14) 와그너, 「제3의 바람」, 240; 윔버, 「영적 성숙을 위한 7가지 제언」 (인천: 나눔터, 1994), 68.

 15) 칼빈, 「요한복음 주석」, 4:48 주석.

 16) 특히 고린도전서에서는 은사들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즉, 은사들은 바람직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말, 고전 12:8, 14:9,19, 15:2; 지식, 고전 12:8),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말, 고전 1:17, 2:1,4,13, 4:20; 지식, 8:10-11, 13:2,8, 14:6). 때로는 말이 방언과 동의어가 되어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14:6). 이것들이 교회의 덕(14:3,5,17)과 사랑(8:1; 롬 14:15; 고전 13:12-13)을 세우지 못할 때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지식이 약한 자를 세우지 못하고 파괴할 수 있다(8:10, 10:23).

 17) 특히 고린도전서에서는 은사들이 부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즉, 은사들은 바람직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말, 고전 12:8, 14:9,19, 15:2; 지식, 고전 12:8), 부정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다(말, 고전 1:17, 2:1,4,13, 4:20; 지식, 8:10-11, 13:2,8, 14:6). 때로는 말이 방언과 동의어가 되어 부정적으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다(14:6). 이것들이 교회의 덕(14:3,5,17)과 사랑(8:1; 롬 14:15; 고전 13:12-13)을 세우지 못할 때 부정적으로 나타난다. 때로는 지식이 약한 자를 세우지 못하고 파괴할 수 있다(8:10, 10:23).

 18) 이미 1593년에 현재 폴란드의 한 마을(Weigelsdorf)에서 7곱살 난 아이의 젖니가 금으로 씌워졌다는 기록이 있다, Robert Jütte, “Ein Wunder wie der goldene Zahn". Eine "unerhörte" Begebenheit aus dem Jahre 1593 macht Geschichte(n) (Stuttgart: Thorbecke 2004). 이것은 1746년에 Claude Mouton이 처음으로 근대 의학으로 금니 시공을 하기 훨씬 이전의 이야기여서 한동안 많은 사람들의 호기심을 일으켰다. 특히 그 당시 유럽의 안전을 위협하던 투르크에 대한 승리와 새로운 황금시대의 도래를 선포하는 하나님의 새로운 계시라는 해석이 두루 퍼졌다. 실망스럽게도 1596년에 그 금니의 색깔과 모양은 변질되었고, 조잡한 인공 치아임이 밝혀졌다. 그럼에도 그 기적에 대한 이야기는 사그라지지 않았고, 결국은 근대 과학의 관점에서 기적의 허위성을 입증하는 재료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처럼 기적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이 결국은 하나님의 특별한 계시에 대한 신뢰성까지도 떨어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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