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연초에 2015년의 최대과제는 고신대의 구조조정이고 이 구조조정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는 신대원의 독립이라고 천명한 바 있다. 고신의 경우 고려신학대학원(이하 신대원으로 칭한다)은 고신의 터요 기둥이며 그 심장부다.

 

교회의 세속화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모두가 다 아는 대로 고려신학교는 신사참배를 거부하다가 핍박을 당하고, 감옥에 가고, 순교했던 분들의 신앙 위에 세워진 학교다. 설립자들인 한상동, 주남선 목사님들의 신앙은 물론 당시 교수들의 대표자라고 할 수 있는 박윤선 박사는 철저한 개혁주의 신앙의 신봉자였다. 이런 신앙의 뿌리와 전통은 주님 오실 때까지 계승되어야 한다.

그런데 고신에도 성장주의와 물량주의라는 세속적인 풍조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고려신학교는 종합대학이 되었고 그러면서 설립정신과 그 전통은 점점 약화되고 있다. 따라서 미래 전망은 매우 어둡다. 구미 역사를 보면 신학교로 시작했다가 대학이 되고, 그러면서 신학교는 대학에 속한 하나의 대학원이 되고, 결국은 시대의 풍조를 따라 신학마저 자유주의로 변질돼버린 예는 수없이 많다. 심지어 신학이 인문학의 한 분야로 전락돼버린 경우도 많다.

고려신학교는 예외일 수 있을까? 아니다. 이미 그런 흐름 속에 들어선 지가 오래되었고 안타깝게도 그런 흐름의 과정에서 저항도 제대로 한 번 해보지 못한 채 흘러가고 있는 형편이다. 세속주의는 흰 옷에 때가 묻듯 교회를 서서히 더럽힌다.

 

고신의 영적 리더십의 중심은 어디로?

고신은 고려신학교로 시작되었다. 고려신학교가 발전하면서 대학부가 설치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고려신학대학으로 인가를 받았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신대는 신대원 중심이었다. 당시 인가된 대학의 학과들은 모두 확장된 신학교육 과정이었다. 그리고 학교의 최고책임자도 신대원 교수들이 맡았다.

그러다가 고신대가 일반대학으로 발전(?)하면서 고신의 중심부가 대학으로 옮겨졌다. 적어도 법적으로는 그랬다. 그리고 법적인 위상은 실제의 위상으로 정상화(?)되기 마련이기에 신대원은 고신대의 대학원들 중의 하나가 돼버린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는 것은 바로 이 부분이다. 학교의 편제상 대학원은 대학 총장의 지도와 감독 아래 있다. 그리고 학교법인의 정관에 의하면 고신대학교의 총장은 평신도라도 할 수 있게 돼있다.

한 때는 장로가 총장이었던 때도 있었다. 목사를 총장으로 세우면 되지 않느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목사라고 해도 그는 신학의 전공자는 아닐 수 있다. 현재도 고신대학교의 총장은 목사이긴 하지만 그는 신학자가 아니라 인문학자이다. 따라서 총장이 아무리 보수적인 신앙을 가졌다 해도 신학교수들과는 생각이나 신학적인 감각이 다를 수밖에 없다.

거기다 종합대학은 학문적으로 자유롭다. 또 감독 정부의 정책과 방침은 설립한 교회[종교]의 그것들과 크게 다를 수 있다. 이런 환경에서 학교를 설립한 교회의 교리나 설립이념대로 순수하게 지켜나간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현실은 점점 더 다급해지고 있다.

더구나 현실적인 문제는 훨씬 더 다급하고 강압적이다. 물량적 성장이라는 세속주의에 편승해서 발전(?)해온 고신대학교는 이제 그 발전이 도리어 학교의 큰 짐이 되고 있다. 급경사를 이루는 인구감소에다 학문적인 특수성이나 수월성을 갖지 못한 하나의 지방대학으로서 그 존립마저 위태로운 상황에 직면해있다. 그리고 고신대의 기독교 대학으로서의 정체성은 최고 당국자들의 희망 사항으로 약간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고신교회들이 설사 가진 바 모든 역량을 고신대와 복음병원 살리기에 쏟는다 해도 그 결과는 장담할 수 없는 현실이다. 김해복음병원이 부도가 났을 때 고신교회는 무려 200억 원이라는 막대한 교회재정을 투입해야 했고, 신대원의 지원까지도 상당기간 동안 중단해야 했다. 그러면서 우리 가운데에서 교회가 대학이나 병원을 직접 경영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가라는 의문이 제기되었지만 지금까지도 분명한 대답 없이 그냥 밀려가고 있다.

앞으로 대학사회에는 더 큰 위기가 쓰나미처럼 밀려올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벌써부터 교육부가 이 달 말에 발표하게 될 대학평가 결과가 일부 알려져 몇몇 대학들이 충격 속에 휩싸여 있다는 소문이다. 이런 충격은 해마다 더해질 것인데, 고려신학교의 운명을 불투명한 고신대학교의 미래에다 묶어두어서는 결코 안 된다.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전통을 지키기 위해 신대원은 반드시 독립해야 한다.

 

현실기피적이고 무책임한 신대원 교수들

그리고 신대원의 독립을 위해 가장 앞서 분투해야 할 사람들은 신대원 교수들이다. 그런데 지금 그들은 아주 무책임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교단이 영적인 위기에 있는 데도 그들은 교단 정치에 개입하지 않겠다. 교단 정치가 신학교에 들어오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지극히 현실기피적인 생각을 갖고 방관자들처럼 행동하고 있다.

고신의 신앙과 신학적인 전통을 이어가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교단 교회를 신학적으로 지도하고 올바르게 이끌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역사의식을 갖고 이 시대에 고신이 존재할 이유가 무엇이며 다가오는 미래에 우리가 생명을 걸고 수행해야 할 사명이 무엇인가를 깨우치고 그 방향을 제시해야 할 사람들이 누구인가? 그리고 이런 일에 가장 책임 있는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고려신학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서서히 떠내려가기 시작했고 앞으로 그 속도는 점점 더 빨라질 것이다. 한참이나 떠내려 간 후에야 이를 깨닫고 후회해봤자 아무 소용이 없다. 지금이라도 일어나야 한다. 신대원 교수들이 고려신학교의 설립자들이 가졌던 개혁주의 신앙에 대한 열정과 순교정신을 십분의 일이라도 가졌다면 현재의 상황을 정치 운운하면서 핑계하거나 방관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생각한다.

신대원 교수들 중에는 자신들이 나서면 자기들 밥그릇이나 챙기려는 사람들로 오해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참으로 기가 막힐 일이다. 그런 유치한 오해가 두려워서 교회의 신학과 순교신앙의 전통을 지키고 영적인 부흥을 주도해야 할 책임을 포기한단 말인가? 그야말로 그것이 진짜 밥그릇 지키기가 아니고 무엇인가?

 

신대원 독립의 구체적인 방안은 신대원에서 나와야

신대원의 독립은 그 실제적인 노력이 신대원에서 일어나야 한다. 구체적인 방향과 방법이 신대원에서 나와야 한다. 목회자들에게서 신학교를 지키려는 열정과 훌륭한 결정이 나오리라고 기대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들은 목회에 전념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맡은 교회 일만 하려해도 언제나 역부족을 느끼는 사람들이 목회자들이다. 총회로 모여도 현장에서 주어지는 안건에 관심을 갖다가도 교회로 돌아가면 대부분 잊어버리고 목회에 올인하게 된다.

고신대학교(신대원,복음병원 포함)의 미래를 위한 15인 특별위원회가 모든 문제를 충분히 검토해서 원만하게 결정해주리라고 기대할지 모르지만, 그분들이 충분히 검토하고 잘 결정할 수 있도록 하려면 여러 가지 방안들과 충분한 자료들이 제공되어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이나 거기에 따른 구체적인 정보들이 없이 어떻게 충분한 논의와 원만한 결정이 가능하겠는가? 그리고 우리가 보기엔 특별위원회도 진지한 기도와 논의를 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런데 당사자일 뿐 아니라 교회의 선생으로서의 영적인 권위를 가진 신대원 교수들마저 내몰라 하고 앉아 있으면 대관절 고신의 장래가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께서 그 책임을 누구에게 물으시겠는가? 왜 주도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책임을 회피하는가? 무감각인가? 무관심인가? 무책임인가?

 

고요함이 두렵다

거듭 말하지만 고신은 지금 역사적인 기로에 있다. 자랑스럽게 생각하던 조상의 유업은 영적으로든 현실적으로든 위기에 직면해 있다. 지금은 참으로 깨어 일어나야 할 때이다. 그런데 고신은 조용하다. 특별위원회도 조용하고 총회장도 이 일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인다. 신대원의 교수들도 조용하다. 우리는 이 고요함이 고신 지도자들의 3- 무감각과 무관심과 무책임 - 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 같아서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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