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디아스포라포럼(오상철 박사)과 국민일보, CBS, CTS 등이 공동주최하는 2회 한국교회 희망 토크쇼가 기독교연합회관에서 지난 7일 열렸다. 대담은 오상철 박사(연세대 겸임교수)의 사회로 지형은 목사(성락성결교회), 이동현 목사(라이즈업무브먼트 대표) 그리고 권오병 교수(경희대학교)가 참여했다. 토크쇼 형식으로 진행된 이야기를 토론자 별로 정리해 보았다.

오 박사는 2015년 한국교회 통계조사 프로젝트를 실시하는 과정에서 한국교회의 희망적인 부분들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토론 참가자들에게 과연 한국교회에게 희망이 있냐고 질문을 던졌다.

▲ 왼쪽부터 이동현 목사, 지형은 목사, 권오병 교수, 오상철 박사

성경적 가치관이 우리의 희망이다.

지형은 목사는 한국교회의 희망은 성경에서 나와야 한다고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성경이 믿음, 소망, 사랑은 항상 있을 것이라고 말씀했으니까 어떤 경우에도 희망은 있다고 생각한다. 예레미아 시대에도 희망은 있었다. 예레미야 시대의 희망은 망함은 통해서 오는 희망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에도 희망은 있었다. 한국교회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비기독교적인 사고들을 끊임없이 성경적으로 개혁해 나가야 한다. 바람잡는 희망, 긍정적 사고의 희망등은 비성경적 희망이며 통속적인 희망이다. 성경적으로부터 오는 희망을 잡아야 한다.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통로는 성경이기 때문에 한국교회의 희망은 말씀에서 오는 희망이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서 물량주의, 맘몬주의에 오염된 한국교회의 리더십을 인도적 인륜도덕, 법치적 민주주의, 상생의 시장경제 시스템 이라는 세 가지 관점으로 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천주교, 불교 보다 사회봉사를 많이 하기 때문에 희망이 있다고 말해서는 안된다. 이런 것이 근본적인 희망의 근거는 될 수 없다.

한국교회의 부패와 타락에 대해서 많이 이야기 한다. 그러나 사실 부패와 타락은 어느 시대나 있었던 것이다. 한국교회의 진정한 위기, 근본적인 문제는 시대의 틀이 바뀌는 것을 파악하지 못하는 것이다. 1907년 평양 대부흥, 70년대 대형 집회들을 이야기 하며 그 때로 돌아가자는 의견들이 있지만, 70년대 한국교회의 가치관들이 정말 말씀에 근거한 가치관이었는지를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근본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을 성경말씀대로 바꾸어야 하는데 기성세대와 똑 같은 틀에 갇힌 사람을 만들려고 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질문을 진지하게 던져보아야 한다.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 구심력이 약해졌다고 말한다. 구심력을 우리의 가치관과 정체성이라고 보고 원심력을 사회를 향한 영향력이라고 볼 때, 구심력이 약해지면 원심력도 약해지고 구심력이 강해지면 원심력도 강해진다. 따라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한국교회의 가치관을 말씀을 따라 바꾸어 나가야 한다. 로마서8장 말씀에 미리 아시고,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게 하셨다까지는 과거형이 맞다. 그런데 영화롭게 하셨다라고 기록한다. 성도의 영화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과거형으로 쓰셨다.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함을 보여준다. 근원적인 희망은 바로 이 말씀이다. 그 말씀을 믿는 믿음 안에 한국교회의 근원적인 희망이 있다.

 

가치관의 틀을 바꿀 때 희망이 있다.

이동현 목사는 한국교회의 시스템화를 지적하면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갔다. 최신 컴퓨터 시스템이 있어도 전기 에너지가 없으면 구동되지 않는다. 요즈음 한국교회는 시스템화 되어 버려서 하나님의 에너지를 상실했다. 이런 예들은 차세대 사역에서도 발견된다. 99년부터 차세대 사역을 해오고 있는데, 세속주의와 싸워야 하는 한국교회 차세대 사역이 세속주의와 싸우기는커녕 세속적 방법들을 차세대 사역에 도입하여 시스템화 하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유행을 따르는 세속적인 시스템에는 희망이 없다. 사람을 키워서 성경적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가는 예수의 제자를 만드는 일이 중요한데, 유행을 따르는 세속적인 시스템으로는 사람을 키울 수가 없다.

따라서 우리는 집회를 한 달에 한 번으로 줄이고 매주 기독교 세계관, 즉 가치관 교육을 강조했다. 그 결과 우리 아이들은 자기가 다니는 학교에서 스스로 전도 집회를 해서 친구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수준까지 올라갔다. 다원화된 사회에서 참된 가치를 이야기 할 수 있는 근본적인 틀을 차세대에게 만들어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동성애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 하기위해서 우리는 더 큰 틀에서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오늘 이렇게 양복을 입고 토론회에 참석을 했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 토론회장 바닥에 타일을 깔고 커다란 수조를 들여놓고 물을 채워서 토론회장을 수영장으로 바꾸어 버렸다고 생각해 보자. 양복을 입고 있는 우리들은 이상한 사람들이 된다. 왜 수영장에서 양복입고 돌아다니는 거야! 자칫 잘못하면 양복입고 왜 옷을 안 입고 다니냐고 수영장에서 소리치는 꼴이 된다. 지금 이 시대가 이와같은 모습이다. 우리가 동성애 문제를 다룰때도 근본적인 세계관과 가치관의 틀을 먼저 이야기 하고 그 틀을 바꾸어 줄 필요가 있다.

사실 한국교회의 구체적인 희망은 우리의 다음세대이다. 따라서 차세대를 키워내는 신학이 필요하다. 다른 말로 하면 포스트 모더니즘적 신학이 필요하다. 수영장을 예배당으로 바꿀 수 있는 새로운 사상과 철학을 세워내야 한다. 말씀을 오늘날의 사람들이 이해하기 위한 언어로 전할 수 있는 신학이 필요하다.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문제이다. 마치 회의장을 수영장으로 만들면 양복 입은 사람이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처럼, 토양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에 성경이 이상하게 되었다. 이런 토양을 바꾸는 작업을 한국교회가 해 나가야 한다.

결국은 사람이 희망이다. 요즈음 세상은 교회가 무엇을 한다고 감탄하지 않는다. 세상은 이제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보고 감동한다. 이제 교회는 어떻게 이런 사람을 세우는가에 집중해야 한다. 이제 교회가 성도들의 삶을 지원하고 사역을 지원하는 방향으로 바뀌어야 한다.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 시각을 바꾸어야 희망이 보인다. 라이지 업 코리아는 만여개의 교회를 직접 방문해서 청소년들을 모이게 한다. 몇 몇 대형교회를 중심으로 모이게 한 것이 아니다. 이와 같이 교회가 접근방식을 달리해야 한다. 틀을 바꾸어야 한다. 구조의 틀, 관점의 틀, 마음의 틀을 바꿀 때 희망이 보인다.

 

하나님 앞에 정직할 때 희망이 보인다.

권오병 교수는 소록도 한센 병 환자들을 위한 봉사 프로그램에 갔다가 어떤 환자가 교수님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겠소? 라고 물어 보았을 때를 회상하며 다음과 같이 말을 이어갔다. “교수님 천국에서 만날 수 있겠습니까?”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나는 확실한 대답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사건이 하나님 앞에서 나 자신을 정직하게 살필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드리고 싶은 말씀은 하나님 앞에 정직할 때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교회의 상황을 사회과학적 방법을 동원해서 정직하게 조사해서 공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미자립 교회는 사회봉사를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이번 조사 결과는 달랐다. 이제 막 시작하여 한 가정, 두 가정 모이는 교회도 사회봉사를 하고 있었다. 이런 교회들을 포함하여 51%의 교회가 적극적으로 사회봉사를 하고 있었다. 개척교회, 미자립교회 등 소위 어려운 교회들이 힘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회봉사를 감당하고 있다는 것이 희망이다. 사회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교회가 51%이고 그 가운데 교인들이 직접 참여하여 사회봉사하는 교회는 43%이다. 이것은 실제적인 사회봉사가 정기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이다. 이번 조사를 하면서 우리의 희망이신 예수님을 따르는 한국교회의 희망을 보았다.

오상철 박사는 통계조사의 에피소드를 다음과 같이 소개하며 토론회를 마무리했다. 30년 동안 독거노인들에게 연탄을 공급하신 목회자를 만나서 이야기를 듣고 싶어 연락을 취했더니 거절했다. 그래서 두 번 세 번 부탁한 끝에 만나게 되었다. 그 목사님은 절대로 나의 이름을 밝히지 말라고 신신당부를 하셨다. 상급이 있다면 천국 가서 받겠다는 것이었다. 이런 목회자들이 한국교회 아직도 많이 계시다. 이것이 한국교회의 희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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