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회(이종윤 목사)와 한국개혁신학회(주도홍 목사)가 주최한 종교개혁신학 국제학술대회가 지난 10일 서울교회(박노철 목사)에서 “Reformation Today-21세기에 있어 종교개혁의 의미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국제학술대회 오전시간에는 독일 레겐스부르크대(Regensburg Univ.) 한스 슈바르츠 박사(Hans Schwarz)와 프랑스 칼빈신학교(Calvin Seminary) 폴 웰스 박사(Paul Wells)가 각각 발표했다.

한스 슈바르츠 박사는 마틴 루터의 직업(Vocation) 이해의 중요성이라는 주제로, 종교적 소명만을 성직으로 이해한 중세적 사고와 달리 루터는 종교적 소명과 세속적 직업을 구분하지 않고 모든 인간의 직업적 활동을 즉각적으로 하나님과 연관된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각자의 직업에 대한 충성은 자신의 고용주를 향한 충성만을 의미하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님을 향한 충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직업에 있어서 중요한 점은 급료나 지위가 아니라 섬김이라는 품성이라고 다음과 같이 발표했다.

▲ 학술대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제와 수도승이라는 직업의 특권의식을 버리라!

슈바르츠 박사에 의하면, 바울은 소명(vacation)’이라는 단어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확대했다. 그러나 소명이라는 단어는 초대교회부터 수도원의 소명으로 제한됐고, 루터가 살던 중세 말 당시 이 용어는 종교적·사회적·신학적으로 엄격하게 제한돼 교회 직제, 특히 수도승들에 대해서만 사용되고 있었다. 루터는 이 개념을 각 개인을 포함한 세상적 활동으로 자유롭게 만들었다.

루터는 이를 통해 세속적 일을 필연적으로 부각시켰다기보다, 종교적 직업을 추구하면 어떤 특권을 소유할 수 있다는 관념을 거부한 것이라며 루터는 종교적 소명과 비종교적 사역을 구분하지 않았고, 모든 인간 활동을 즉각적으로 하나님과 연관되는 것으로 봤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각자의 직업은 직접적으로 하나님에 대한 섬김을 수행하는 것으로 여겼기에, 특정 직업에 고액의 보수가 지급되는 것을 부적절하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루터가 종교적 직업이 더 가치 있다는 발상을 거부한 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 앞에 자신의 선한 행위에 근거하기보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서 받아들여지고 의롭게 된다는 확신에서 비롯된 것이다. “(루터)에게 선행은 칭의를 위한 전제조건이 아니라 칭의에 대한 감사의 결과이고, 이런 점에서 세상적 직업은 이웃을 섬김으로써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었다.”

▲ 발표하는 한스 슈바르츠 박사

무의미한 삶을 양산하는 오늘날의 직업

그러나 종교개혁자 루터의 직업에 대한 이해는 산업화되고 도시화된 이 사회 속에서 대부분 사라지고 있다. “사람의 직업에 대한 현대인들의 이해는 고용주와 고용인에 의해 투자된 시간과 노동에 대한 최대한 보상으로 특징 지워진다.” 그러나 오늘날 양자 모두 직업에 순수하게 종사하지 않고 결국 단순히 무의미한 삶을 양산하고 있다. 건강문제, 동기부족, 사역의 품격 감소 등은 이러한 결과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의 작업 세계의 무의미성은 대부분 우리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기인한다. 가령, 제조 공정은 여러 곳에서 작은 단위로 축소됨으로서 우리는 더 이상 우리가 제조하는 물건이 어떻게 상품화되는지 알지 못한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흥미와 도전 그리고 사적인 매력을 추구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한다면 그의 일은 점점 지루하게 될 것이다. 이웃의 필요를 채워주는 개념으로서의 루터의 직업관은 우리가 흔히 급료를 받는 일보다 더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이웃의 필요를 채워 주는 것으로서의 직업에 대한 루터의 강조점이 오늘날 일터에서 재발견될 필요가 있다.”

 

신분(station)의 차이는 있지만 계급(hierarchy) 차이는 없다.

루터는 1)가정에서의 삶 2) 국가에서의 삶 3) 교회에서의 삶으로 신분을 구분하였다. 가정에서의 신분은 부모 자녀 과부들과 젊은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녀 종들까지 의미한다. 국가에서의 신분으 군주들과 귀족들, 재판관들과 행정관료들을 위시하여 남녀 종들가 하위 관료를 포함한다. 교회적 신분에는 설교자와 성례집례자들 뿐만 아니라 관리인들과 회중 회계담당자들과 이들을 섬기는 모든 사람들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은 혹자는 결혼생활에 있어서, 혹자는 영적인 점에 있어서, 혹자는 정부의 위치에서 살아가는 법과 고통을 겪는 법을 배울 수 있는 다양한 위치를 제정하셨다.

그러나 이들의 신분적 위치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높을 수 없으며, 모든 사람들의 목적은 다른 신분을 섬기는 것이다. 확언컨대 각자는 각기 특별한 신분에 위치하고 있으나, 어떤 이가 영적인 신분에서 정치적 또는 경제적 신분으로 변경하는 바와 같이 어떤 신분에서 다른 신분으로 변경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신분은 나름 고유의 고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신분이 다른 신분보다 더 좋거나 더 편리한 것은 아니다. 또한 죄가 없는 신분이 없는데 이는 하나님의 명령을 완전히 수행할 수 있는 신분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신분이 없이 평화와 훈육이 유지될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이런 신분을 만드셨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신분적 계급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각자의 신분은 인간 삶에 있어서 동등하게 필요한 것이다. 이러한 신분은 사회공동체내 특별한 지위에 관련된 의무를 수행하며 내 자신의 위치를 발견하게 해 준다. ‘신분이라는 용어는 직업소명과 동의어가 아니라 나의 소명을 완수하고 나의 직업을 수행하는 정황 또는 위치를 말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결혼도 일종의 소명이라고 루터는 주장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남녀로 창조되어 자녀를 생산하고 집안을 세워가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 종교개혁신학 국제학술대회 단체사진

직업은 타인을 섬기는 것이다.

루터에게 있어서 직업은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타인들과 공익을 보존하시는 한 가지 방식으로, 창조질서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도록 하나님께 명령받은 것이었다. 이웃을 돌보고 부모가 되어 자녀를 양육하는 행위는 우리가 받은 소명의 공통성을 보여 주고, 이러한 소명에 근거해 부자와 가난한 자, 권위 있는 자와 그 아래 있는 자의 차별성이 사라진 것이다.

직업에 대한 루터의 가르침은 오늘날에도 개별적이고도 자기중심적으로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행동을 반박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고, 우리의 사역이 공익을 도모하는 것임을 재발견하게 해 준다. 슈바르츠 박사는 직업에 대한 루터의 가르침에 대한 재발견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단순한 지적 동의가 아니라 우리 이웃의 필요를 채움으로써 하나님께 행동으로 응답하는 것이라고 결론을 맺었다.

한편 폴 웰스 박사는 존 칼빈이 말하는 중보자 그리스도의 삼중직을 주제로 발표했다. J. V. 페스코 박사(웨스트민스터신학대)성경 석의로부터 설교에 이르기까지: 칼빈의 에베소서 28-10절 이해와 사용을 중심으로’, 김영한 박사(숭실대 명예교수)오늘날 종교개혁 신학의 새로운 중요성’, 최갑종 박사(백석대 총장)칭의와 그리스도의 믿음: 로마서 321-31절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각각 발표했다.

오후에는 로버트 레담 박사(웨일즈 복음주의신학교)마틴 부처의 신학에 있어 선택과 확신’, 황대우 박사(고신대)마틴 부처의 예정론’, 김재성 박사(국제신대원)고통과 견인: 종교개혁의 유산과 한국교회, 리처드 C. 갬블 박사(리폼드신학대)기독교와 국가: 로마서 131-7절에서의 바울 신학에 대한 주석적 분석’, 이상은 박사(서울장신대)칼빈과 바르트의 신학에 있어 교회와 국가의 관계’, 김대웅 박사(총신대)다니엘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보호자들’, 김경렬 박사(총신대)아사셀 염소는 속죄제의 일부인가?’라는 제목으로 각각 논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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