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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규 박사 /교회사CFI원장

한국교회 가운데 일부 교단은 천주교를 이교로 여기면서 천주교에서 받은 세례를 인정해 줄 없다는 견해를 견지하는가 하면 또 다른 교단들은 과거로부터 유지해온 입장 즉 천주교에 이단적인 견해들이 많지만 그 세례는 삼위의 이름으로 시행된 것이므로 입교문답을 하고 그 세례를 인정해주고 있다. 이에 대하여는 앞으로도 각 교단들에 속한 신학자들 간에 깊이 있는 연구와 토의가 필요한 것이다. 본고에서는 신학적인 논의 보다는 천주교가 세례 지원자들에게 실제로 세례에 대하여 무엇을 가르치고 있는지에 대하여 살펴보려고 한다. 그것을 알아야 할 이유는, 앞으로 우리 개신교가 천주교의 세례에 대하여 어떠한 시각으로 바라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에 접근함에 있어 중요한 참조점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비록 필자는 천주교 내에 여러 이단적 요소들이 있다고 가르쳐왔지만, 이러한 목적으로 천주교 측에서 펴낸 성인예비자교리(예비자용)의 내용을 소개해 본다.

조영엽 교수는 그의 가톨릭교회 교리서 비평에서 천주교가 말하고 있는 세례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서술하고 있다: “천주교에서는 가톨릭교회교리서1263조에서, ‘세례를 받으므로 원죄와 본죄(자범죄) 뿐만 아니라 죄로 인한 형벌까지도 용서받는다고 한다. 그리고 1265조에서는 세례는 모든 죄를 정화할 뿐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신다고 하며, 1279조에서는 세례의 열매 또는 세례의 은총은 원죄와 모든 본죄들(자범죄들)의 용서와 새 생명의 탄생, 그로 인한 성부의 양자, 그리스도의 지체 그리고 성령의 전(temple)이 된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일원이 되며, 그리스도의 사제직(priesthood, 제사직)에 참여케 된다고 한다.”(조영엽, 가톨릭교회 교리서 비평(기독교문서선교회, 2010), pp. 161-163.)

▲ Catacombs of Marcellinus and Peter

주지하다시피 천주교의 세례 성사는 7성사들(세례 성사, 견진 성사, 성체 성사, 고해 성사, 혼배 성사, 신품 성사, 병자 성사) 가운데 첫 번째 성사이다 강우일 신부가 감수하고 김웅태 신부가 엮은 성인예비자교리(가톨릭출판사, 2004. 재판2)는 성인예비자들을 위한 교리서이다. 물론 김웅태 신부는 파리 소르본 대학 종교학부에서 종교사와 종교적 인간학에 관한 연구로 학위를 취득하였고 가톨릭 교리신학원 부원장 및 가톨릭대학 신학부 교수 등을 역임하였지만 이 성인예비자교리는 평신도들 즉 예비자들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이므로 우리 개신교인들이 천주교의 세례관에 대하여 잘 알아볼 수 있는 자료로 보인다.

주지하다시피 천주교는 세례 의식을 가리켜 세례 성사라고 일컫는다. 그들은 세례 성사를 영신적으로 재생되어 그리스도를 닮은 새 사람이 되는 성사라고 한다. 세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묻히고 부활하여 새로 난 인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함께 와서 머무시는 궁전이 되며, 하느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참된 자녀로서 믿음과 희망 속에서 사랑의 영원한 속삭임의 생활을 영위하게 된다는 것이다(p. 355). 성인예비자교리에서는 물의 의미와 씻음에 대하여 가르친다. "교회가 세례를 집전할 때, 물이 부어짐으로써 신앙을 가진 성세 지원자의 영혼이 실제로 깨끗하게 되어 죄가 사해지고 하느님과 영신적으로 재생되어 그리스도를 닮은 새 사람이 되게 한다"고 가르친다(p. 355).

그러면 천주교가 예비자교육에 있어서 세례에 대한 근거로 제시하는 성경적 근거는 무엇일까? 그들은 세례자예비교육 시에 세례의 성서적 근거를 구약에서의 창 7:17-24(세상의 죄악을 물로써 멸망시킨다)와 신약 요 3:3-5(물과 성령으로 새로 나지 않으면 아무도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와 마 28:19-20(너희는 가서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을 내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을 들고 있다(p. 356).

그리고 그들은 천주교에 있어서의 세례란 믿음의 고백이라고 가르친다: “여러분은 모두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 안에서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입었기 때문입니다”(3:26). 천주교는 세례의 성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가르친다: “세례는 믿음을 고백하는 행위이며, 그 행위를 보증해주는 예식이다. 그래서 세례는 사람들의 겸손을 통해 참된 뉘우침(회개)을 드러낸다. 다시 말해서 사람은 세례를 통해 자신이 보잘것없는 죄인임을 겸손되게 인정하게 되고, 기쁜 소식인 하느님 나라와 영원한 삶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것이다”(p. 359).

그러면, 성인예비자교리에서는 세례의 효과에 대하여 어떻게 가르치고 있을까?

크게 두 가지 부분으로 나누어 가르치고 있다. 새로운 생명으로의 탄생하느님의 자녀, 상속자가 됨이다. 먼저 그들은 인간이 세례를 통해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고 한다. 왜냐하면 세례는 그리스도의 부활에 동참하는 것이기 때문이며, 영원한 삶을 살게 되는 까닭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겸손하게 자기 자신에 대해 죽음으로써 그리스도의 죽음에 참여하고, 또 그리스도의 성령을 받고 새 생명을 얻음으로써 그리스도의 부활을 살게 된다. 즉 세례를 받는 그리스도 신자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참여하고, 그와 운명을 함께 하며 고통과 죽음의 이 세상을 거쳐 기쁨과 생명으로 나가는 생활을 해야 한다. 그러므로 세례는 자기 이기심과 탐욕이라는 죽음의 길에서 서로 나누고 서로 섬기는 생명의 길로 들어서는 결단이며 삶의 태도와 변화이다.”(p. 360)

나아가서 성인예비자교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인간은 하느님의 자녀요 상속자가 됨을 가르친다. 이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들어온다(8:15)”는 뜻이라고 한다. 서로를 섬기는 새로운 삶의 태도로 말미암아 우리는 하느님의 백성이 되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가 되며 살아계신 성령의 궁전이 되는 것이라고 한다. 죄와 악으로 비참했던 낡은 인간에서 벗어나 죄와 악에서 해방된 새 사람으로 형제들과 더불어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한 몸을 이루게 되고, 세례 성사를 통해 하느님 백성으로서 취소될 수 없는 탁월한 존엄성을 지니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친다(p. 360).

이제 천주교의 세례 예식을 살펴보자.

천주교는 세례에 있어 질문을 한다. 세례자의 진정한 의도를 확인하는 질문인데,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하여 그리스도께 대한 확실한 믿음을 확인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로는 구마 기도를 한다. 진리와 사랑의 길을 걸어갈 수 있도록 온갖 악으로의 경향에서 벗어나게 해달라는 기도라고 한다(p. 361). 이러한 구마’(驅魔)는 필립 샤프(Philip Schaff)도 그의 교회사에서 설명하고 있듯이 초기 교회에서도 시행되었던 것이다. 처음에는 귀신들린 사람의 경우에 시행되었지만, 카르타고 공의회가 열린 256년 이후에는 그것이 세례 예식의 정규 부분이 되어 세례에 앞서 시행되었다(필립 샤프, 교회사2, SS 70. 세례).

셋째로 끊는 예식과 신앙 고백인데, 세 번에 걸쳐 끊어 버립니까믿습니까의 질문이 주어지는데, 이것은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으로서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라 영원한 생명의 길을 가겠는가, 아니면 죄와 악의 지배를 받으며 죽음의 길을 가겠는가를 최종적 결단을 요구하는 질문이라고 한다.

넷째로 물로 씻음인데, 세례에서의 가장 중요한 의식으로, 성삼위의 능력으로 원죄와 이전에 실제로 범한 죄를 씻어 냄을 의미한다. 다섯째로, ‘기름 바름인데, 새로운 생명의 부패를 방지하도록 하는 거룩한 신분(왕직, 예언직, 사제직)으로 축성됨을 뜻한다고 한다.

여섯째로 흰옷과 촛불인데, 새로이 받게 된 생명의 결백함을 뜻한다고 한다(3:27; 5:8). Philip Schaff도 서술했듯이, 초기 교회가 벌써 3세기 초부터 부가해온 세례의식들 가운데는 세례받는 사람을 십자가 군기를 따라가는 그리스도의 군인으로 여겨 그 사람의 이마와 가슴에 십자가 성호를 긋는 행위와, 하나님의 자녀이자 천상적 가나안의 시민이 되었다는 증표로서 우유와 꿀(그리고 소금)을 주는 행위, 그리고 머리에 기름을 붓고 촛불을 들게 하고 흰옷을 입히는 행위 등이 있었는데(교회사2, SS 70. 세례), 천주교도 그러한 전통을 유지해 온 것이다.

그리고 일곱 번째로는 세례명이 주어진다. 예비자가 세례를 받을 때 그들이 성인 성녀라고 간주하는 이들의 이름을 가짐으로써 그 성인 성녀의 생활을 본받기 위함인 동시에 자신의 신앙생활을 한층 드높이게 하려는 목적이라고 한다. 여덟 번째로는 대부모를 두게 되는데, 견진 성사를 받은 사람으로서 세례를 줄 때 참석하여 세례 받는 자를 영성적으로 인도할 것을 약속하는 사람으로 그 직무는 예비자에게 복음의 실천을 자신의 생활과 사회생활로 친절히 보여주고, 고통에서 도와주고 예비자를 보증하며 세례 성사 생활이 자라도록 도와주는 일이라고 한다.

천주교의 세례의식과 관련하여 아홉 번째로 생각해봐야 할 것은 세례의 주례자이다. 세례 성사의 주례자는 주교, 사제, 부제들이다. 사제나 부제가 없을 때, 죽을 위험이 있거나 특히 임종 순간에는 아무 교우나 올바른 지향만 가졌다면 세례 성사를 베풀 수 있다. 이때 세례는 조건부 세례인데, 후에 살아난다면 성사의 완전성을 위해 보례’(補禮)를 받아야 한다. 조건부 세례 시 의식이 있는 자에게는 교회외의 사대교리인 천주존재, 강생구속, 삼위일체, 상선벌악을 기본적으로 믿을 교리로 신앙고백을 하여야 한다(p. 361).

이상에서 우리는 천주교에서 사용하는 성인예비자교리에 나타난바 세례의 의미와 예식의 여러 측면들을 살펴보았다. 천주교는 세례 예식에 있어서 초기 교회로부터 부가해온 불필요한 요소들을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게 부가적이고도 불필요한 요소들은 세례의 본질을 모호하게 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있다는 사실도 확인하게 된다. 그러나 이 부분은 천주교에서 받은 세례를 우리 개신교에서 인정할 수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와 연관이 되어 있다. 그러므로 향후 천주교의 세례와 우리 개신교의 세례 사이에 공유되고 있는 혹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측면들에 대한 세밀한 분석과 비평 작업에 있어 우리 개신교 신학자들의 객관적이고도 공평한 태도가 요구된다고 본다. 우리는 교파나 교단들 간의 상이한 신앙적 정서와 교리들을 초월하여 계시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여야 한다. 이러한 신앙이 없이 신학 작업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학화 작업에 있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고도 객관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이 땅위의 성도들은 그렇게 하여 도출될 공의롭고도 객관적인 연구의 결과를 기대하고 있다. 이 과업은 결코 일개 교단의 교단 정서적 혹은 정치적 결의로, 혹은 신학자 개인의 자격으로 수행하여야 할 성격의 과업이 아니다. 이 과업은 신학자들의 학문간 상호통합적인 연구와 발표 그리고 토의를 통하여 결론에 도달해가야 할 성격의 중차대한 난제이다. 모 교단에서는 이미 천주교 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결의를 내리고 있고 또 이 문제는 향후 한국 개신교 전체의 문제도 될 수 있고, 동시에 교파와 교단을 초월하여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이 혼란에 빠져 있는 실정이므로, 여러 신학회 전체가 함께 모여 이 문제에 대한 건전한 견해를 도출해 주어야 할 것이다. Soli Deo Glo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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