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국가가 많은 동남아에서는 성탄을 즈음하여 교회들은 비교적 조용한 반면, 사원 일부와 백화점들이 트리 장식으로 분위기를 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가까이 가서 살펴보면 “메리 크리스마스”가 없이 “해피 뉴이어” 일색입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양은 비슷해 보일지 몰라도 그 속(문화와 종교)은 여전히 거리가 있습니다. 복음화가 쉽지 않습니다. 태국도 금년이 서기(AD) 2015년이 아니라 불기(佛紀) 2558년입니다. 한편, 지난 12월24일에는 미얀마 로힝가 무슬림 26명이 태국을 통하여 한국에 도착한 바 있습니다(그러나 국내 언론에는 이들이 1993년 내전을 피해 태국 난민캠프로 들어갔던 미얀마 소수민족 카렌족 출신으로 소개되었다). 이는 박대통령이 약속한 일이었습니다. 우리사회가 서구처럼 “외로운 늑대”를 키우는 격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 사회가 심각한 이념적 갈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면 미국과 호주, 그리고 구라파는 이슬람 종교로 말미암는 분열과 갈등이 심각합니다. 이 뉴스레터가 한국 사회에서 무슬림이 공개적으로 자기들의 “목소리”를 내기 전, 이에 대처하여 적절한 방법들을 도출해 내는 데 일조하기를 바랍니다.

1. 선거는 잘했는데 미래가 불확실한 미얀마
위 사진은Dec 12th 2015 일자The Economist 기사 내용이다. 아웅산 수지 장군을 만났지만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기사의 풍자화이다. 2011년 테인세인 대통령에게 권력을 이양한 전(前) 독재자 탄쉐는 막후 실력자로서 권력 이양을 약속하였지만 외국 언론들이나 국민들은 한결같이 미얀마 미래를 불확실하게 본다. “과연 야당이 승리하였는지 확실하지 않다”는 것이다. <풍자화: As Aung San Suu Kyi sits down with the generals, Myanmar’s political future remains unclear)>
 
2015년 11월 미얀마 총선 전, 남부 한 지역에 모인 여당 지지 승려들이 아웅산 수지가 무슬림에 가깝다고 비난하였다. 이날 불교과격집단인 “마바파”가 데모를 주도했다. 마파바는 불교도 여성이 타종교의 남성과 결혼을 금하며, 개종자의 경우 지방개종위원회에 허락을 받도록 하는 법안을 제기한 바 있다. <사진: 아웅산 수지를 무슬림으로 비난하는 버마 중들” (Nov 4th 2015, 23:03 The Economist)>
 
2. 금년은 테러의 해?
2015년은 과거 어느 때 보다 이슬람 테러가 많았던 한 해이다. 아직 통계가 나오지 않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테러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알라의 이름으로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잔인한 방법으로 살해당했다. 테러의 범위가 중동국가에서 구라파, 아시아, 북미주, 호주, 아시아 등 가히 전세계적이다. 특히 구라파의 안전이 심각한 위협을 받고 있다. 미국도
 
마찬가지이다. 한국인들도 지금까지 외국에서 100명 가량 죽었다는 발표가 나왔다. 그런데도 우리 국회는 테러방지법을 통과시키지 않고 있다.
 
3. ISIS와의 전쟁은 신학적 전쟁이다.
맥아더 장군은 한국전을 “신학의 전쟁”으로 표현한 바 있다. 지금 전 세계는 이슬람 테러와의 전쟁에 개입하고 있는데, 불행하게도 국제 정치학자들이나 정치가들은 이 전쟁을 신학의 전쟁, 영적 전쟁으로 보지 않는 우를 범하고 있는 것 같다. 성경은 종말에 적그리스도가 등장할 것을 예언하였다. 이미 무슬림 세계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학자들은 마호메트를 예수님의 자리를 도적질한 자로 말한다. 극단적인 표현이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중요한 언급이다.
 
국제정치학자들의 잘못된 낙관론
최근 발행된 세계적인 국제정치학회 Foreign Affairs: The Post-American Middle East (November/December 2015)의 두 편의 논문 “Beyond Counterterrorism”(반테러리즘을 넘어서)과 “ISIS as Revolutionary State” (혁명적 국가로써의 ISIS)는 세계적인 국제 정치학자들의 글을 통해 군사·정치적인 비(非)종교적 관점에서 ISIS대처 방안을 다루고 있다. 후자의 논문은 IS국가 건설도 과거 공산혁명, 프랑스 혁명, 모택동 혁명, 폴포트의 유토피아 혁명론이 실패한 것처럼 결국 실패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중동에 합리적이고도 민주적이 정권이 들어서고 이들과 잘 협력하면 IS를 제압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필자는 이것이 IS혁명론의 종교적 본질을 간과하는 우를 범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첫째로, 과거 혁명이론은 모두 영적, 종교적 가치관과는 무관한 세속적인 가치관에 기반을 두었다. 자체 내에 많은 반대자가 있었고 그들을 통해 시작되었다. 핵심대원들을 제외하고는 강압적이고도 강제적이었다. 그러나 이슬람 테러는 철저히 초자연적 가치관을 추구한다. 종교적 동기와 자발성을 근거로 대원 가입이 이루어진다. 종교적 신념과 신에 대한 충성심,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을 바탕으로 한다.
둘째로, 과거 혁명이론은 주로 지상에서의 정치적, 경제적 유토피아를 약속했다. 그러나 이슬람 테러리즘은 종교적 유토피아, 즉 낙원을 약속한다. 지하디스트에게는 죽은 후의 보상을 약속한다. 과거 혁명에 참여하는 자들은 죽을 각오를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테러리스트들은 도리어 죽음을 반긴다. 과거 혁명이론은 과거에 존재한 유토피아가 없었다. 다만 폴포트가 크메르 제국의 농촌국가를 이상화하였다. 그러나 이슬람 테러그룹이나 모든 무슬림들은 과거에 존재했었던 황금시대를 그리워하며 혁명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셋째로, 과거 혁명운동은 제한된 지역에서만 지지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현재의 많은 무슬림들은(특히, 수니파들은) 일개 국가를 넘어서 칼리프 국가 건설의 복원을 갈망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이라크의 후세인 지지자들은 더욱 적극적이다. 다만 IS의 살인 행위에 대해서는 실망하고 있다.
* 국제정치학자들은 주로 IS에만 관심을 둘 뿐 19개의 다른 이슬람 테러그룹들은 외면하고 있다. 이 가운데는 실제 IS에 충성을 맹세한 테러단체들이 많다. 빈 라덴의 죽음으로 오바마나 많은 사람들은 테러가 거의 종료된 것으로 여겼지만 이후 더 많은 단체들이 생겨났다. 얼마 전 요르단 국왕은 IS가 조금 제압되었다고 하더라도 다른 테러 단체들이 계속 존재하기 때문에 이슬람 테러는 앞으로도 ‘계속될 전쟁’이라고 밝혔다.
 
ISIS이념: 종말적 동기이다.
12월1일자 뉴스위크지에서 이슬람 전문가 쿠르트 아이켄왈드는 “테러리스트를 알라”는 글에서 IS 의 주된 동력을 이슬람 종말론으로 주장하면서, 이들을 이기기 위해 군사적 대처가 필요하지만 동시에 사랑으로 시리아 난민들을 품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구 세계에 퍼지고 있는 반 무슬림 정서가 도리어 ISIS와의 전쟁에서 패배를 의미하며 테러리스트들이 난민을 가장하여 미국과 구라파 나라에 침투할 것이라는 우려는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1) 미국에는 IS대원들이 소수지만 구라파에는 이미 수 천명의 대원들이 확보되었고, 가짜 여권과 서류를 만들 기술을 가지고 있어 굳이 난민들로 가장, 침투시킬 필요가 없다.
 
2) 시리아 난민들이 구라파로 가는 것은 저들의 이념과 반대된다. IS는 자기들의 뜻에 동조하는 무슬림들을 보호하여 이상국가를 건설하는 것인데, 난민으로 빠져 나가는 것은 저들의 국가건설 계획에 차질을 초래한다.
 
3) IS이념은 종말론이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지금은 종말의 때이다. 예수가 메시아로 와서 적그리스도와 싸우는 신자들과 함께 성전에 동참한다. 예수와 그를 따르는 자들은 적을 무너뜨리고 세상을 지배할 것이다.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연합군과 싸우는 것이 바로 이슬람 예언의 성취이다. 80개 나라에서 온 전사들은 다비크(이라크 도시)에서 적들과 싸워 승리하게 될 것이다. 서구는 “적 그리스도로, 외눈의 거짓말쟁이”이다. * 역자주. 코란에서 예수는 ‘이사’로 표현되며, 예언자 중 하나로 언급된다. 그러나 이는 성경의 예수와는 다르다.
 
4) 이미 IS는 구라파의 반무슬림 데모를 역이용하고 있다. 얼마전 그들은 12개의 영상을 공개하였는데, 내용은 구라파의 경찰들이 무슬림을 폭행하는 장면을 촬영한 것이다. 해당 영상으로 서구가 이슬람을 박해한다고 선전하고, 나아가서는 서구가 무슬림들을 기독교로 강제 개종시키려고 한다고 선전한다.
 
이슬람 전문가 제시카는 이미 저서 ISIS: The State of Terror에서 같은 주장을 하였다. 2012년 Pew연구소는 중동과 북아프리카 및 동남아시아 무슬림들을 대상으로 이슬람 종말론에 대한 여론조사를 하였다. 결과는 아프간은 83%, 이라크는 72%, 말레이시아는 62%의 사람들이 종말이 가까워 그들의 “마흐디”(메시아)가 올 때가 되었고, 더 큰 징조(Greater Sign of the Hour)가 이미 나타나고 있음을 믿는다는 내용이었다. 이슬람 예언에는 작은 징조와 큰 징조가 있는데, 전자는 주로 도덕적 타락이나 세속화와 관련된 것이고, 후자는 서구, 특히 기독교 국가들과 이스라엘이 이슬람과 대적하는 것을 의미한다.
 
상당수 이슬람 연구가들은 이슬람 테러의 동기를 이슬람 종말론과 결부시킨다. 전세계에서 수만 명의 청년들이 IS에 가담하는 동기는 우리가 생각하는 “외로운 늑대론”(사회, 경제적 소외론에서 자체에서 일어나는 테러범)이 아니라 종교적 동기가 더 크게 작용한다. 최근 로이터 통신의 한 기자가 IS가담 청년들에게 가담 동기를 묻자 “종말이 가까웠음으로 “위대한 전쟁”(Grand Battle)에 참여해야 한다고 인터뷰했다. IS가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죽이지 않냐고 되묻자 그것은 서방 언론의 날조일 뿐이라고 일축해 버렸다고 한다.
 
대안은 무엇인가?
난민은 위기이지만 동시에 기회이다. 사랑으로 품는 최선의 방법은 구라파로 들어온 이들을 복음화하는 것이다. 70년대 동남아 국가인 베트남과 캄보디아 공산화로 수백만 명이 미국과 구라파로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선교와 전도가 없는 구라파 교회가 이들에게 전도하였다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 호주로 간 이민자들 가운데 상당수가 복음화되어 지금 자기 나라의 복음화에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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