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편집국으로 문자 한통이 날아왔다. 2013년 0000일자 본사 기사에 실린 사진을 삭제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문자가 온 후 여러 번의 전화도 왔다. “기사의 내용 가운데 사실과 다른 부분이 있나요?” “아니요.” “그러면 왜 사진을 삭제해 달라는 것이지요?” “그 당시에 살이 많이 쪄서 그렇습니다.” 요점은 살이 많이 쪘던 2년 몇 개월 전 자신의 사진이 실린 기사에서 사진을 삭제해 달라는 요청이었다.

언론사에서 이미 출판한 기사를 특별한 이유 없이 삭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 더군다나 과거의 살쪘을 때 사진을 삭제해 달라고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는 분은 유력한 교단의 목사 신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분의 사진이 실린 기사를 검색해 보고, 또 최근 그분의 사진을 검색해 보았다. 몰라볼 정도로 살이 쪽 빠져 있었다.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여서 처음에는 동일인인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 분의 입장에서 생각해 본다. 최근 기사도 아니고 몇 년 전 기사의 사진을 내려달라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연예인도 아닌데 그것이 무슨 큰일이기에 목회하기도 바쁠 텐데 연일 전화를 하고 메일을 쓰고 에너지를 낭비하고 있을까? 그 목사의 이름을 구글링해 보니 코닷의 기사가 제일 먼저 등장하고 거기에 그 목사가 그토록 싫어하는 과거의 살쪘을 때의 사진이 나타난다.

혹시 그 사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는 않았을까? 교회에서 목사를 청빙할 때도 외모를 많이 본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었기 때문이다. 아마 살이 쪽 빠져서 아주 경건해 보이고 스마트해 보이는 사진이 전면에 등장해야 여기 저기 이력서를 넣었을 때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또 외모를 가꾸기 위해서 얼마나 피나는 노력을 했으면 사람을 몰라볼 정도로 살을 뺄 수 있었을까? 이런 저런 생각을 마구 해 본다.

사회학 용어에 사회적 착각이라는 말이 있다. 대표적인 사회적 착각은 날씬한 몸매에 깔끔하고 좋은 옷을 입고 있는 사람을 높이 평가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을 낮게 평가하는 것이다. 짧게 말하면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다. 성경은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지 말라고 말씀하지만 이미 세상은 외모지상주의라는 말이 상식이 되었다. 그런데 이제 교회도, 목사 세계도 이런 외모지상주의의 사회적 착각이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니 씁쓸하다.

좀 더 용기를 가졌으면 좋겠다. 내가 과거에는 이렇게 살이 쪘는데 지금은 노력해서 살을 많이 뺐다고 결단력과 실천력을 겸비한 목사라고 오히려 역으로 홍보를 좀 해보면 어떨까? 또한 교회들도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오늘날 외모가 청빙의 중요한 조건이 된 한국교회 상황이라면 사도바울 같은 사람은 아마도 강단에 서보지도 못했을 것이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없었던 예수님도 비슷한 상황이지 않았을까?

살쪘던 시절의 사진을 지우려 하지 말고 우리 안에 자리 잡은 '착각'을 지워달라고 기도해야 하지 않을까? 살 빼려고 노력했던 것처럼 기도와 말씀에 전심을 다하여 진보를 이루었으면 좋겠다. 언론사에 전화해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기사를 삭제하라고 호통치는 용기로 진리이신 성경의 메시지를 과감하게 강단에서 외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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