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영수 목사의 어머니 떠나신 날 댓돌위에 놓여있던 쓰시던 호미와 목장갑

 

▲ 박영수 목사(덕암교회 담임)

세상의 모든 것은 犧牲없이는 존재하지 못한다. 한 마리의 벌레, 보잘 것 없이 여기는 길고양이 한 마리에서부터 그 어떤 것도 모두가 犧牲을 기반으로 존재한다.

자녀들을 기르면서 늘 느끼는 갈등이 있다. 아이들이 나의 수고와 부모의 희생의 대가를 알지 못한다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나 역시 내 아버지 어머니의 犧牲에 대해 얼마나 알고 반응했었는가는 생각해본다.

어제는 이제 90을 바라보시는 부친이 혼절하셨다는 소식에 밤길을 달려갔었다. 깨어나신지 얼마 안 되신 부친은 무의식속에 자신이 들으셨던 가족들의 음성과 주변소음에 대해 정말 오랜만에 밝은 얼굴로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시면서 이제 다들 얼굴 봤으니 가라고 하셨다. 이제는 두 발로 걷기도 힘든 분이 여전히 자식들에게 혼자 할 수 있노라고 하시는 말씀을 들을 때 한편 죄스럽고 마음이 아렸다.

수 백 여 차례나 외적의 침입을 받으며 지켜온 이 나라 이 땅이다. 이 나라가 존재하기까지, 대한민국이란 나라가 세워지기 까지 얼마나 많은 이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그 음료가 되고 양식으로 일구어진 땅인가. 산성을 걸을 때는 쌓인 돌 하나 하나에서 그분들의 모습이 생생히 되살아 날때가 많다. 부친역시 일제시대 징용을 다녀오시고 6.25때 군복무를 하셨고, 열차사고로 폭발물이 터졌을 때 구사일생으로 살아오신 분이시다. 그때 만일 돌아가셨더라면 나도 이 땅에 없었으리라.

유난히 바람이 거센 봄 주일아침이다.

수없이 많은 이들의 犧牲의 손길로 다듬어진 논과 밭을 바라보며 오늘 내가 서 있는 이 땅이 모두의 犧牲의 손길과 피의 대가인 것을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꽃들의 犧牲으로 만들어진 봄날이다. 겨우내 품었던 그 희망들을 속절없이 다 쏟아내어 피어올린 보이지 않는 피의 계절이다.

바람이 분다.

오늘 내가 서 있는 이곳에서, 나의 모든 수고와 犧牲이 누군가를 살리는 발걸음이 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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