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민현 목사 /안성삼일교회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치고 행복하기를 원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모르긴 해도 아마 이 세상에서 한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두가 행복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행복을 누리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는 것이 문제의 문제요 고민이다. 요즘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자살하는 사람이 많아지고, 또 우리가 잘 알듯이 세계에서 자살 율이 가장 높은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하는 것은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왜 자살하는 자들이 많이 생겨날까?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단정하여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은 행복하지 못하고 세상에서 가장 불행하다고 생각하는, 자기 자신을 짓누르 오는 것을 감당하지 못할 때 자살로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모두가 간절하게 바라는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그 이유가 무엇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행복을 누리지 못하는 모든 사람은 하나같이 행복을 눈에 보이는 외적조건들 속에서 찾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사실은 행복은 외적조건이 아니라 내적조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람은 눈에 보이는 외적 조건이 아무리 충족이 되었다 할지라도 그것으로는 절대로 행복해질 수가 없다. 그러나 나의 외적인 조건은 충분하지 못하고 모자라는 부분이 많아도 너무너무 행복해하는 사람은 수없이 많음을 우리는 얼마든지 보고 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이런 사람들은 하나같이 행복을 외적인 조건에서 찾지 않고 이미 스스로 내면의 세계인 마음속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고 있다는 것이다. 사도바울은 내가 ……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4:11-12)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은 바로 행복의 조건이 외적조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내면의 세계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내 자신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사느냐에 따라서 내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다른 말로 바꾸면 행복은 내 생각하기에 달렸다는 말이다.

여러분의 생각에 천재가 행복하겠는가, 아니면 바보가 행복하겠는가? 일반적으로 보면 천재는 행복하고 바보는 불행해야 맞는 것이다. 그런데 행복한 천재는 한 명도 없다는 것이다. 반면에 자신의 삶을 불행해 하는 바보도 없다는 사실이다.

일반사람들이 평생을 통해 갈망하던 모든 것을 한 손에 장악하고 황제의 자리에 올랐던,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나폴레옹은 세인트헤레나 섬에 유배당해 고백하기를 나는 내 인생의 참 행복했던 엿새를 알지 못한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평생을 보지도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헬렌켈러는 나는 삶이 너무나 아름답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 두말 할 것 없이 생각의 차이 때문이다.

세상 모든 사람이 추구하는 행복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에 있지 않고, 내면의 세계인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기억할 때 원하는 행복을 붙잡을 수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내 마음에 딱 맞는 배우자를 만나 참 행복을 꿈꿔 왔는가? 그렇다면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생각을 바꾸라. 그 이유는 내 마음에 딱 맞는 배우자는 절대로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서로가 부족하기 때문에 배필을 주셨고 부족한 부분을 메워 살면서 행복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부모와 자녀관계가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생각을 바꾸라. 그 이유는 부모 마음에 딱 드는 자식은 한 사람도 없다. 그리고 자식들이 마음으로 흡족해 하는 딱 맞는 부모도 이 세상에는 한 사람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 자신이 생각을 바꾸면 내 남편, 내 아내 때문에 행복해질 수가 있고, 내 부모 내 자식 때문에 행복해 질 수가 있게 된다. 여러분은 정말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의 마음의 자세와 생각을 바꾸라 그러면 언제인지 모르게 여러분의 마음에 참된 행복이 찾아들 것을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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