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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공개념의 선구자, 헨리 죠지의 글 맛보기 1

닉네임
임채호
등록일
2020-08-29 14:24:33
조회수
459

토지공개념의 선구자, 헨리 죠지의 글 맛보기 1

진보 속의 빈곤

어느 사회에서나 물질적 진보가 이루어지면 빈곤과 그 부수적인 문제가 같이 나타난다. 이 엄청난 사실을 통해 우리는 진보가 일정한 단계에 이른 곳마다 존재하는 사회문제는 어느 지역의 특수한 사정에서 기인한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든 진보 그 자체에서 발생됨을 알 수 있다.

인정하고 싶지 않은 사실이지만, 금세기에 들어 생산력이 엄청나게 증가했고 또 지금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데도, 극심한 빈곤을 퇴치하거나 고통 받는 노동자의 짐을 덜어주는 경향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빈부격차를 더 심하게 하고 생존경쟁을 더 치열하게 만들고 있다. 꼬리를 이은 발명의 덕으로 인류는 한 세기 전에는 꿈도 꾸지 못할 힘을 가졌지만, 고도의 노동절약적 기계장치를 갖춘 공장에서 어린이들이 일에 시달리고 있다. 새로운 힘이 만개한 사회에서 대중은 자선에 의지해서 살아가거나 그 한계선상에 있다. 한편에서는 거대한 부를 축적하고 있는데 여전히 굶주리는 사람들이 있으며, 갓난아이들은 나오지도 않는 젖을 빨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재산을 탐내고 부를 숭상하는 것을 볼 때 궁핍을 몹시 두려워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약속의 땅은 신기루처럼 우리 앞에서 날아가 버린다. 지식나무의 열매도 손대면 부스러지는 소돔의 사과처럼 우리가 얻는 순간 변질된다.

부가 엄청나게 증대된 것도 사실이고 평균적으로 보아 더 안락해지고 여가도 많아지고 교양이 향상된 것도 사실이지만 이러한 개선이 일반화되지 못했다. 사회의 최하층은 개선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최하층의 상태가 어느 곳에서나 어느 면에서나 전혀 개선 된 점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생산력 증가에 따른 개선은 어느 곳 어느 면에서도 없다는 뜻이다. 이른바 물질적 진보라고 하는 추세는 건강하고 행복한 인생의 필수 요소를 기준으로 볼 때, 최하층의 상태를 개선해 주지 못한다 .아니 실제로는 최하층의 상태를 오히려 압박한다. 새로운 힘은 기본적으로 사회를 향상하게 하는 효과가 있지만, 오랫동안 품어온 희망과 믿음과는 다른 사회구조의 밑바닥에서부터 작용하지 않고 상층과 하층의 중간 어느 지점에 작용한다. 마치 커다란 쐐기가 사회의 밑바닥이 아니라 그 한가운데를 관통하는 것과 같다. 그리하여 분리점의 상층에 있는 사람들은 향상되지만 하층에 있는 사람들은 부서지고 만다.

미개 부족의 경우, 노동생산물 총량은 얼마 되지 않지만 각자 독립 생활을 해나갈 능력이 있다. 각자 자신이 살 집을 지을 수 있고, 나무와 가죽으로 카누를 만들 수 있고, 옷을 만들 수 있고, 무기나 덫이나 도구나 장식품을 만들 수 있다. 누구나 자기 부족이 알고 있는 자연에 대한 모든 지식을 안다. 예를 들면, 먹을수 있는 식품은 무엇이며 어디에 가면 캘 수 있는지를 안다. 짐승, , 물고기, 곤충이 서식하는 방식과 장소를 안다. 해와 별 또는 꽃의 방향과 나무에 붙은 이끼를 보고 길을 찾아갈 수 있다. 즉 모든 필요한 물자를 스스로 조달할 수 있다. 자기 부족에게 떨어져 나와도 살아 나갈 수 있다. 그리하여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의 관계에서도 자유로운 계약 당사자가 될 수 있다.

이 미개인과 문명사회의 최하층 노동자와 비교해 보라. 사회의 부 가운데에는 인간의 아주 기본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데 필요한 물자도 많다. 그런데 노동자는 이 가운데 한 가지 물자 내지 그 물자의 아주 작은 한 부분을 생산하면서 산다. 노동자는 자기가 일하는데 필요한 도구조차 만들 수 없으며, 자신이 소유하지도 않고 또 소유할 능력도 없는 도구로 일을 한다. 노동자는 미개인보다 더 오랜 시간 힘들게 일을 하지만 미개인이 얻는 단순한 생활필수품 이상을 얻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미개인이 누리는 독립성을 잃고 산다. 자신의 힘으로 욕구를 직접 충족하지도 못하고 , 다른 사람이 동시에 일해 주지 않으면 간접적으로 충족하지도 못한다. 이 노동자는 생산자와 소비자로 구성된 거대한 고리의 연결 부분에 불과해 자신을 분리할 수 없다. 다른 사람이 움직이지 않으면 혼자서 움직일 수도 없다. 사회속의 지위가 낮을수록 사회에 더 의존하게 되고 무엇이든 혼자 힘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이 아주 줄어든다. 자신의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노동을 하는 힘조차 자신의 통제 밖에 있다. 다른 사람의 행동에 따라서 또는 자신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는-마치 태양계에 영향력을 미칠 수 없듯이-어떤 일반적인 원인 때문에 힘을 빼앗기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원초적인 저주를 은혜처럼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다. 사람들은 단순한 육체노동이 그 자체로 악이 아니라 선인 양 그리고 수단이 아니라 목적인 양 생각하고 말하고 주장하고 법제화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노동자는 인간성의 본질적인 요소, 즉 신처럼 환경을 변화시키고 통제하는 능력을 잃고 만다. 노동자는 노예나 기계나 상품이 되어버리고, 어떤 점에서는 동물보다도 못한 존재가 되고 만다.

나는 미개 상태를 감상에 젖어 동경하는 사람이 아니다. 루소, 샤토브리앙, 쿠퍼의 자연사상을 순진한 어린이처럼 추종하는 것도 아니다. 나는 자연상태가 지능과 물질이 빈곤하며, 그 생활이 저급하고 협소하다는 것을 안다. 문명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운명이며, 인간의 모든 힘이 해방되고 고양되고 세련된 것이라고 믿는다. 문명의 혜택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는 처지에서 미개상태를 그리워하면서 아쉬워할 수도 있지만 , 이는 인간이 반추동물을 선망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을 똑바로 보는 사람이라면 우리 문명의 핵심에는 아무리 미개인이라도 자기 처지와 바꾸고 싶어 하지 않을 계층이 널리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 것이다. 테라델푸에고의 토인, 호주의 흑인, 북극의 에스키모, 고도로 문명화된 영국의 최하층 중에서 하나를 고른다면, 앞의 세 미개인의 운명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부의 한 가운데서 빈곤한 계층은 미개인이 누리는 인간다운 자유도 없이 빈곤하기만 하기 때문이다. 미개인보다 오히려 더 협소하고 왜소한 생활을 하면서 하늘이 내린 능력을 성장시킬 기회도 없기 때문이다. 미개인보다 더 넓은 세상에 산다고 하지만 이는 누리지 못할 축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진보와 빈곤에서

작성일:2020-08-29 14:24:33 115.160.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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