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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태님의 "최갑종교수의 로마서 7장의 '나'는 누구인가?글에 대한 몇가지 분석과 문제점"에 대한 답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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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ab Jong Choi
등록일
2020-12-06 13:56:49
조회수
880
1. 7:17,20해석문제
전영태님은 제가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속에 거하는 죄니라"에서 후반부만 해석하고 전반부는 언급하지 않았다는 주장을 하셨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저는 "율법은 나에게 선한 것을 알게 하고, 내가 율법이 가르치는 선한 것을 행하기를 원하고 있지만, 실제 행동에서는 나는 율법이 가르치지 않는 오히려 미워하는 것을 행한다. 따라서 문제는 율법이 아니고, 오히려 나로 하여금 내가 미워하는 것을 행하도록 하는 내 속에 있는 죄이다. 이처럼 율법은 그 자체 선하긴 하지만 내 속에 있는 죄의 세력을 제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의 실제 행동에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오히려 율법은 원하는 “나”와 행위 하는 “나” 사이의 갈등과 분리를 가져온다... 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으로서 율법을 따라 선을 행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실제로 나의 삶을 지배하는 세력인 죄가 나로 하여금 율법이 가르치는 것과는 반대되는 것을 행하게 한다. 말하자면 나를 사로잡고 있는 이 죄의 세력이 내가 원하는 선을 하지 못하게 하고 오히려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게 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죄가 내 자아, 인격 그리고 삶을 분리시키는 주범이다"말에서 전반부와 후반부의 내용을 다 언급하였습니다. 그리고 제가 보기에 이 구절에 대한 전영태님의 논지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파악하기 힘듭니다.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라는 말이 신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는 말로 이해하는 것인지. 요일 3:6,9을 인용하셨는데 왜 요일 1:8, 10은 인용하지 않는지도 궁금합니다.

2. 7:7-13와 7:14-25의 주제 문제
롬 7장의 주제가 율법, 특별히 율법의 무능력이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첫째, 롬 7장이 율법으로부터 시작하여 율법으로 종결될 뿐만 아니라 7장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말이 율법/계명이기 때문입니다(29회). 둘째, 내가 한편으로 속사람으로 하나님의 법/마음의 법(7:22, 25)으로서 율법을 섬기기를 원하고, 다른 한편으로 육신으로 죄의 법/다른 법(7:23, 25)으로서 율법을 섬기기를 원하는 나의 이중성 때문에 7:24의 나의 탄식을 가져오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나를 구원할 수 없는 율법의 무능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8:3의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의 본문 자체가 율법의 무능력을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넷째, 저명한 로마서 주석가들(Cranfield, Kaesemann, Moo, Fitzmyer, Dunn, Stuhlmacher, Schreiner, 홍인규, 이상근 등)도 로마서 7장의 주제를 율법 혹은 율법의 무능력으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7:14-25이 성화라는 주장에 대하여
저는 한번도 로마서 7:14-25이 크리스천의 성화를 말하는 본문이라고 말한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저는 로마서 5-6장, 8장이 신자의 성화를 말한다고 하였습니다. 제가 말한 것은 로마서 7장이 모세의 율법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구원의 가능은 물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 수 있는 성화의 기능도 갖고 있다고 믿고 있는 바울 당대의 유대인들, 혹은 유대주의자들과 그들의 미혹을 받고 있는 자들을 바울이 반박하여 율법이 무능력하여 그와 같은 성화의 기능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데 있음을 강조하였습니다.

4. 7장의 "나"는 절대로 유대/이스라엘이라 할 수 없다
저는 로마서 7장의 연구에서 단 한번도 "절대"라는 말을 사용한 적이 없는데 "절대"라는 말을 사용하여 단호하게 반대하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이 세상의 그 누구도 성경 연구에서 "절대"라는 말을 함부로 사용할 수 없다고 봅니다. 성경 연구에서 우리는 모두 "겸손"이라는 말을 항상 기억하여야 합니다. 앞에서 언급한 저명한 로마서 주석가들은 물론 많은 로마서 연구가들이 로마서 7장의 "나"가 유대/이스라엘 혹은 아담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그렇게 보고 있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하여야 합니다.

5. 제가 "믿음으로의 구원의 확증은 성화를 통한 심판대 앞에서 확증된다"는 주장과 행함을 통한 구원을 주장하였다는 점에 대하여
저는 코람데오닷컴에서 발표한 글이나 그 밖의 다른 글이나 책에서 이와 같은 주장을 한 적이 없습니다. 제가 계속해서 주장한 것은 성경은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받는다는 가르침 뿐만 아니라 크리스천에 합당한 성화의 삶이 없이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양면의 주장이 있다는 것과 전자만을 가르치고 설교하지 말고 후자 역시 성경말씀으로 가르치고 설교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였습니다. 제가 많은 점에서 김세운 교수와 의견을 같이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 점에서는 분명하게 의견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2016년도에 출판한 제 책, [칭의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우리는 구원에 있어서 믿음과 은혜를 강조하는 바울의 가르침뿐만 아니라 행함을 강조하는 야고보서와 마태복음도 함께 가르치고 설교하여야 합니다. 심지어 바울도 로마서 서두(1:5)와 결언(16:26)에서 "믿음의 순종"(헬라어원문)을 말하면서 믿음은 항상 순종(행함)을 동반하여야 함을 강조하고 있습니다(역시 갈 5:6,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마지막으로 부탁을 하고 싶은 것은 제 글을 좀더 주의 깊게 다시 읽고 그리고 성경본문의 가르침이 과연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를 바랍니다. 로마서 7장의 해석문제는 기독교 초기 교부시절부터 논쟁의 대상이 될 만큼 결코 쉬운 문제는 아닙니다. 저의 모든 관심은 바울이 로마서에서 무엇을, 왜, 어떻게 말하고 있느냐에 있습니다. 2021년말 쯤 제 로마서 주석이 완성되어 출판될 것입니다. 그때 다시 보시고 문제가 있으면 연락주십시오. 제 글은 제 자신의 신앙과 학문과 인격을 대변하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신중하게 접근할 것을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로마서 7장의 해석문제와 관련하여 아신대 신약교수 장해경, "변증법적 긴장 속에 사는 크리스천의 삶? 로마서 7:7-25," [성경과 신학] 39 (2006): 54-88 ( 이 논문은 영역본은 세계적인 신약잡지 Novum Testamentum에도 실렸음)과 Jeffrey L. Phillip, "The Law Does Not Sanctify: A Considered Interpretation of Romans 7:7-25" (Jan. 4, 2020. 이 논문은 google. com에 치면 다운 받을 수 있습니다)을 살펴 보십시오.


출처 : 코람데오닷컴(http://www.kscoramdeo.com)
작성일:2020-12-06 13:56:49 73.122.231.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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