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헨리 죠지 "나라이 임하시오며" (2-2)

닉네임
임채호
등록일
2021-01-01 18:03:19
조회수
417

                                                              나라이 임하시오며

                                                               -헨리 죠지 연설문-

                                                                                                                2021. 1. 1. 개평교회 임채호

 

천국과 토지사유제

뉴욕의 정통장로교 신자인 에브너 토머스씨는 얼마 전에 이라는 우화를 썼습니다. 그는 필라델피아의 한 장로교 교회의 목사이자 지금도 권위 있는 자작으로 평가되는 성경 주석서의 저자인 그 유명한 토머스 박사의 아들입니다. 그는 의자에 앉아 꾸벅꾸벅 졸면서 자신이 죽음의 강을 건너가는 꿈을 꾸었습니다. 그는 좁은 일직선 길을 따라 가서 마침내 황금의 도시에 이르렀습니다. 잘 생긴 노신사 모습의 천사가 쪽문을 열고 이름을 묻고는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그 천사는 천국에서친구를 선택하려면 평판이 나쁜 천사들과는 어울리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충고했습니다. “뭐라고요! 여기는 천국이 아닌가요? 신참자인 토마스 씨가 꿈속에서 물었습니다.” 천국이 맞습니다.“ 문을 열어준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이곳에는 떠돌이 천사가 많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지요? 토머스 씨가 말했습니다.” 천국에서는 모든 사람이 풍족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요.“ ”얼마 전까지는 그랬지요.“ 문지기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래서 만일 하프에 광택을 내고 날개에 빗질을 하려면 누구든 스스로 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지구 문명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것과 같은 사유재산제를 채택한 이후 사태는 변해 버렸습니다. 이것은 적어도 상류층에게는 큰 발전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 후에 문지기 천사는 토머스 씨에게 숙소를 정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일러 주었습니다.“

저는 숙소를 정하고 싶지 않습니다.” 토머스 씨가 말했습니다. “그보다는 저 아름다운 푸른 언덕에 올라가 눕고 싶습니다.”

권하고 싶지 않네요.” 문지기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 언덕을 소유하는 천사는 무단침입을 좋아하지 않거든요. 제가 말했듯이 수 세기 전에 천국에서 토지사유제를 도입했습니다. 그래서 토지를 모두 나누어 가졌지요. 이제 토지는 모두 사유재산입니다.”

토지 분배에서 저같이 뒤에 올 사람도 배려하셨나요?”토마스 씨가 물었습니다.

아니오문지기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배려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일을 해서 저축을 한다면 2,3백 년 내로 좋은 땅을 구입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국에 들어올 때 공짜로 받은 날개를 저당 잡히면 일자리를 얻을 때까지 며칠간 숙식비는 어렵지 않게 마련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일은 빨리 추진하라고 충고합니다. 왜냐하면 천국의 인구가 계속 늘어나면서 많은 잉여 노동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떠돌이 천사 문제는 정말 골칫거리가 되고 있습니다.”

일을 하려면 어디로 가야 할까요?”토머스 씨가 물었습니다.

문지기 천사가 대답했습니다. “천국에서 주요한 산업은 하프와 왕관을 만들고 꽃을 가꾸는 일입니다. 하지만 개인 서비스 분야에 취업 기회는 많습니다.”

저는 꽃을 사랑합니다.” 토머스 씨가 말했습니다. “꽃을 가꾸는 일을 하러 가겠습니다. 저 건너 편에는 아무도 사용하고 있지 않는 것 같은 아름다운 땅이 있군요. 저는 저기로 가서 일을 하겠습니다.”

안됩니다.”문지기 천사가 말했습니다. “그 땅은 천리안을 가진 다른 천사의 소유입니다. 토지가치가 상승해서 큰 부자가 된 천사입니다. 그 천사는 토지가치 상승을 노리고 저 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기서 일을 하려면 그 땅을 사든지 빌리든지 해야 합니다.”

이 이야기는 계속되어서, 날개를 저당 잡히고 천국에서조차 버림받는 서글픈 떠돌이 천사들이 천국과 새 예루살렘의 거리를 메우는 상황을 묘사합니다.

여러분들은 웃으실 것입니다. 사실 이 이야기는 우스꽝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는 깊이 생각해야 할 교훈이 들어 있습니다. 정작 우스꽝스러운 점은,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 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도록 기도하면서도 도리어 땅에서 채택하고 있는 토지제도를 하나님의 천국에 적용하는데 있지 않습니까?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땅의 토지제도가 하늘나라에 적용된다면, 천국의 공기가 아무리 상쾌하고 천국을 가득 채운 빛이 아무리 밝고 천국의 채소가 아무리 잘 자란다고 해도, 우리가 땅을 분할 한 것처럼 천국이 분할 된다면 천국에서도 빈곤과 고통과 양극화가 분명히 나타날 것입니다. 이와 달리, 우리가 상상해 온 천국의 주민처럼 우리가 서로를 대한다면 이 땅이 바로 천국이 되지 않겠습니까?

 

정의와 평등의 나라를

나라가 임하시오며이 기도가 간구하는 나라를 생각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정의와 평등의 나라, 결과가 평등한 것이 아니라 기회가 평등한 나라임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또 사람들이 정의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해야 한다는 기독교의 기본원리와 이 땅 위의 우리 모두는 같은 아버지의 동등한 자녀라는 사실을 인정하기만 한다면, 하나님 나라가 이땅위에 임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동등한 자녀라는 것은, 우리 개개인이 그분의 하사품을 함께 누릴 동등한 자격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또 위락 생존하고 자질을 발휘하기 위해 하나님이 제공하신 원료에 노동을 투입할 동등한 자격이 있음을 의미합니다. 그렇습니다! 이 사실을 알면 하나님 나라의 도래에 대한 희망이 생겨나게 됩니다. 이 희망이 로마의 거리와 이교도의 땅에 복음을 전파시겼으며 혹독한 박해에 맞서서 기독교를 세상의 지배적인 종교로 만들었습니다.

초기 기독교에서 임하도록 해 달라고 기도했던 하나님 나라는 하늘이 아닌 지상의 나라였습니다. 만일 그리스도가 다른 세계에 관해 설교하셨다면 제사장과 바리새인이 핍박하지 않았을 것이며 로마 군사들이 그분의 손을 십자가에 못 박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기독교가 왜 핍박당했습니까? 초대 교인들이 왜 맹수에 내던져지고 폭군에 의해 화형을 당했습니까? 왜 박해와 고문을 당했으며 온갖 극악무도한 방법으로 처형당해야 했습니까? 기독교가 내세를 이야기하는 새로운 종교였기 때문일까요? 아닙니다. 로마는 모든 종교에 대해 관대했습니다. 로마의 판테온 신전에서 온갖 신을 모시고 있다는 사실과 로마가 피정복민의 종교에 아무런 간섭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로마는 자랑하였습니다. 핍박의 이유는 기독교가 정의와 복음을 위한 커다란 사회개혁 운동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한 어부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였고 노동자와 노예가 이를 로마에 전파하였습니다. 기독교 교리는 인간의 평등함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간의 형제 됨입니다. 이 교리는 당시에 문명 세계를 억압하고 있던 포악한 전제정치의 기초에 타격을 주었고, 포로의 족쇄와 노예의 굴레에 타격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노동하여 생산한 것으로 흥청거리는 계층이 있는가하면 정작 노동자 자신은 궁핍하게 살 수밖에 없는 엄청난 불의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노동하여 생산한 것으로 흥청거리는 계층이 있는가 하면 정작 노동자 자신은 궁핍하게 살 수 밖에 없는 엄청난 불의에도 타격을 주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초대 기독교가 핍박을 받았던 이유입니다. 그러다가 로마 특권층이 더 이상 기독교를 억압할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새로운 신앙을 왜곡하여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정작 기독교가 승리했을 때는, 초기의 순수한 기독교가 아니라 특권층을 섬기는 기독교가 되어버렸습니다. 기독교의 고위 성직자들은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인류의 형제 됨이라는 본질적인 교리를 설교하지 않았습니다. 모두의 아버지인 하나님이 인간을 편애하시는 분이며 수많은 인간을 대가 없는 노역에 빠뜨리는 저엄청난 불의는 하나님의 뜻과 명령에 의한 것이라는 신성모독적인 교리를 순수한 진리인 복음에 접목시켰습니다. 기독교가 실패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설교한 잘못된 기독교가 실패한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라면 우리 모두는 마땅히 그분의 하사품을 사용할 권리가 있습니다. 누구도 이 권리를 부정할 수 없습니다. 현 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조차 , ! 그 권리는 당연합니다. 하지만 실천에 옮기는 것은 불가능하지요라고 말합니다.

이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이 세상은 하나님의 세상이지만, 하나님의 정의와 뜻을 실천에 옮길 수 없는 세상이라는 뜻입니다. 이 얼마나 불합리하며 터무니없는 신성모독입니까? 만일 자애로우신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법이 단지 물질세계만이 아니라 도덕세계까지 지배하는 법이라면, 하나님의 뜻을 실천할 수 있는 방법, 즉 모든 피조물에게 평등한 정의를 베풀 방법이 틀림없이 존재할 것입니다. 원시 사회에서는 가능하지만 현대 사회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 문명은 이미 그런 단순한 방법을 적용하기 어려운 단계로 진보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를 뛰어넘을 정도로 진보한 것은 아니며 또 그럴 수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권리를 보장하는 방법은 존재합니다. 그 방법은 토지를 동일한 크기로 분할하는 것이 아니라,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를 징수하여 모든 사람이 같이 사용하는 것입니다. 토지가치는 개인의 노동과 무관하게 인구가 증가하고 사회가 개선되기 때문에 발생하므로 토지가치를 환수하여 공동으로 사용하면 모든 국민에게 토지에 대해 평등권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남보다 더 가치있는 토지를 차지하는 사람은 더 많은 세금을 내면 됩니다. 토지를 직접 차지하지 않느 사람도 여전히 토지세 수입을 평등하게 누릴 수 있는 수혜자가 됩니다. 참을 간단한 방법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방법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면 전능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얼마나 자비로운지 분명하게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을 꿰뚫어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망원경으로 별을 관측하든, 현미경으로 물방울을 관찰하든, 인체 구조나 동물 세계의 생태를 고찰하든, 어떤 분야의 물질세계를 연구하든, 우리는 거기에 창안자와 조정자가 존재하며 어떤 의도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런 느낌은 너무 강력하고 자연스러워서, 창조주의 지혜를 부정하는 사람들조차도 어떤 의도 내지 목적의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곤 합니다. 예를 들면 어떤 동물의 발톱은 기어오를 수 있도록, 그리고 물고기의 지느러미는 물속을 헤엄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합니다. 자연계의 법칙을 관찰하면 그 안에 어떤 지성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 수는 있지만 자비를 찾아보기는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인구가 증가하고 개선이 이루어지고 문명이 진보하는 곳에서 가치가 상승하는 유일한 요소가 토지라고 하는 우리 사회의 엄연한 사실은창조주의 자비의 증거입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사회법칙과 인간진보의 조화를 의미합니다! 공공 경비가 필요 없었던 원시시대에서는 토지에 아무런 가치도 붙지 않고 노동 생산물만 가치를 가집니다. 그러나 문명이 발전하고 분업이 발생하고 사람들이 중심지로 모여들면서부터는 공공 서비스가 필요해지고 공공 수입이 필요하게 됩니다. 이런 단계에서는 공공 서비스 대비책이 토지가치에, 개인의 활동과 무관하게 사회의 성장에 인해 발생하는 토지가치에 들어 있습니다.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는 방법

그렇습니다. 실천 방법은 존재합니다. 모든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의 동등한 자녀라는 원리를 실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전제하는 사람들은 단순명료한 방법이 있는데도 이를 외면하고 맙니다. 물론 현대 문명사회에서 토지를 동일한 크기로 분할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사회가 성장함에 따라 공공 수요가 증가하는 동시에 토지에서 발생하는 가치도 증가하여 공공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기금이 마련됩니다. 소유권을 침해하거나 생산자에게 부담을 주거나 근면과 절약에 대한 자연적 보상을 줄이지 않으면서 공적으로 징수할 수 있는 가치가 존재합니다. 뿐만 아니라 이것은 모는 독점 가운데 가장 악독한 독점을 막기 위해 반드시 징수해야 하는 가치입니다. 이런 사실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창조주의 의도에 따라 문명이 자연적으로 진보하면 불평등이 아니라 평등이 점점 더 커짐을 의미합니다.

나라가 임하시오며!” 우리는 나라가 임하시는 모습을 못 볼 수도 잇습니다. 그러나 그 실현을 믿는 사람이나 실현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신의 임무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엄청난 보상이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능력은 미약하더라도, 하나님 나라가 임하시도록 무엇인가를 하고, 전 우주에서 드러나는 선한 권능의 편에서 무엇인가를 하며, 이 세상을 마귀의 손아귀에서 빼앗아 정의의 나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인가를 한다고 느끼는 것이 바로 보상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임하시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 나라가 어딘가에는 틀림없이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는 마음속 깊은 곳에서 알고 있습니다. 그 나라의 도래를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언젠가 어디선가는 그 나라의 환영을 받을 것이며 왕이신 하나님이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

 

 

 

 

 

작성일:2021-01-01 18:03:19 115.160.2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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