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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디 넓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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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진
등록일
2008-08-18 09:04:01
조회수
5272
성경적 속죄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그 피를 쏟으시며 사람들이 받아야 할 죄 값을 대신 지불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속죄의 피는 그 효력에 있어서 만물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에 조금의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렇게 만물의 모든 죄를 속죄하기에 부족함이 없는 피흘림이 실제적으로 누구를 위하여 있었는가를 바르게 알아야 합니다.
알미니안주의에서의 보편 속죄를 칼빈주의에서의 제한 속죄를 주장합니다. 보편 속죄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는 것이고 제한 속죄는 택자들 만을 위하여 피를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양자가 속죄의 효력을 누리는 대상에 대하여서는 차이가 없습니다. 보편 속죄에서는 ‘믿는 자’로 이야기하고 있고 제한 속죄에서는 ‘택자’라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속죄에 대한 성경의 진술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첫째는 택한 자들만을 언급하는 경우입니다(마 1:21, 롬 8:32, 딛 2:14, 요일 4:10 등). 둘째는 모든 사람을 언급하는 경우입니다(딤전 2:6, 4:10, 딛 2:11, 히 2:9). 여기에서 모든 사람이 택함받은 사람들 모두라고 하는 것은 전후 문맥과는 아무런 상관없는 것입니다. 교리를 전제하고서 그 교리에 정당화하기 위한 해석일 뿐입니다. 셋째로 속죄의 범위와 실제적인 효력을 누리는 택한 백성들을 함께 언급하는 경우입니다(벧전 3:18, 요일 2:2). 베드로 사도는 속죄가 죄- 독립형용사로서 죄인으로 번역 가능- 자체에 대한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죄 자체는 모든 우주의 죄가 내포되어 있으며 죄인이라고 할 때에는 택함받지 못한 사람이 포함됩니다. 요한 사도는 세상과 우리 곧 교회로서 택함받은 사람들을 구분하고서는 속죄가 세상을 대상으로 하고 있고 그 속죄의 효력을 교회가 누리고 있다고 증거합니다.
너무나도 유명한 요 3:16에서도 독생자가 주어진 대상으로 세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본문에서 믿는 자와 세상은 너무도 명백하게 구분되어집니다. 믿는 자는 택자들이며 세상은 택자들로 한정되지 않습니다. 세상에 주어진 독생자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고 말씀하고 있기에 그때의 독생자는 단순히 성육신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십자가 죽으심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자만을 위하여 주어진 것이 아니라 세상에 주어졌습니다. 세상에 주어진 독생자를 믿는 사람들이 그 효력을 누리게 됩니다.
각각은 모두가 문자적으로 진리입니다. 어떤 부분만이 진리이고 다른 부분은 비진리인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교리는 그 모두를 포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칼빈주의 내에서도 속죄에 있어서 보편 속죄가 이야기되고 있습니다. Charles Hodge는 ‘Systematic Theology’(Phillipsburg:R &R, pp.398-399)에서 속죄의 범위에 대해서 선택된 모든 사람과 구분한 모든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결론을 진술하기 이전에 어거스틴의 견해를 인용하였습니다. 미국 연합장로교회는 1925년에 새 신조를 작성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다”하였습니다(‘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 G.I. 윌리암슨, 136페이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은 분리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그 인격에 대하여 만유적 인격(골 1:16,20)과 교회적 인격(고후 5:14)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사역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유적 인격으로서 만유를 위하여 죽으셨고 교회적 인격으로서 택자들이 그 효력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을 통한 피조물의 회복(롬 8:19-22)은 속죄가 제한적이지 않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 회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과 별개로 가능하지 않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사역을 토대로 그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만물의 통일과 충만(골 1:20)도 마찬가지입니다. 속죄 사역이 택자들에게만 한정되는데, 만물의 통일과 충만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온 세상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도 속죄 사역에 근거한 것입니다. 그분이 세상의 속죄를 위하여 자신을 드렸기에 심판을 집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택자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 세상, 만물을 위하여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리고 그 효력은 택자들 다르게 말하면 믿는 자들이 누리게 됩니다.
작성일:2008-08-18 09:04:01 122.128.147.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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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nugoodman 2008-12-04 21:44:24
출애굽 사건이 비유관계가 아니라고 한적은 없지만
님의 댓글은 마치 구속 사역에 대한 참고로 역부족하다는 늬앙스를 보였습니다.

제한적 속죄와 보편적 속죄라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던것은 사실입니다.
이해가 부족한 상황에서 보편적 속죄라는 용어을 이해하면서
님이 "만물의 통일","피조물의 회복"을 이야기 했기 때문에
만물(인간, 동물, 무생물, 지구환경, 우주환경,...)과
피조물(인간 및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것)에 대한 속죄로 이해했습니다.
즉, 님이 속죄에 대해서 인격체뿐만 아니라 다른 무생물까지 확대해석하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뭐 일반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제일 처음달린 댓글에서 저와 같이 이해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정말 모든 사람이란 뜻에서 글을 쓰려면 "만물"이 아닌 "만인"이라고 썼어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속죄에 대해서는 죄와 관련된 인격체에 대한 것이라 설명하였던 것입니다.
'부차적인 효과'라는 말도 같은 맥락입니다.
"구속사역이 만인에게 끼치는 것과 더불어 만물에게 끼치는 영향"이란 뜻으로 한 말입니다.

논리적 비약이란
논리가 확정되거나 인정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른 논리의 전제로 사용하여 이후 논리가 인정될 수 없는것을 말합니다.
님이 주장하는 보편적 속죄가 과연 맞는 말입니까? 누가 인정해줬습니까?

제가 보기에는 인정되지 못했다고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보편적 속죄가 사실인양 말하고 있으며
지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논리적인 비약이 발생한 것입니다.

택자 비택자의 인격적 존재 여부에 대한 것은 용어이해부족으로 인한 오해라고
앞에서 설명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시 죄가 속하여지지 않는 대상에 대해
속죄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왜냐하면 속죄라는 말자체가 효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속죄의 효력"이라는 말이 거북스럽게 느껴집니다.

님은 지극히 인간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제한적인 생각안에
전능하신 하나님을 제한하려는듯 보입니다.

알마니안주의의 보편적 속죄가 옳다고 이야기 하렵니까?
아니면 적당히 섞어보자는 의도입니까?

공부를 해본바 알미니안이 주장의 전제는 인간 중심이었습니다.
즉, 인간이 생각하는 지성과 논리에 부합하여야 한다는 전제를 깔고 시작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거 아닙니까?
"내가 믿어 주니까 하나님이 구원을 할 수 있는 것이지,
내가 믿어주지 않으면 아무리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라 하더라도
날 구원시킬 수는 없지!"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말입니다.

인간의 입장에 서서 하나님이 베푸시는 구속사역을 이해하려 하고 있습니다.
베푸는 이의 의도를 파악하려면, 베푸는자의 입장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pcj5016 2008-11-20 13:05:02
그림지와 비유 관계가 아니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칼빈주의 5대 교리에서 속죄에 대한 부분은 제한적 속죄라고 부르고 알미니안주의에서는 보편적 속죄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신학적으로 통일되어 있는 내용이지요.
보편적 속죄가 속죄 효력 인정을 뜻하는 것은 아니랍니다.
왠만하면 공부 좀 하십시오.
알미니안에서 말하는 보편적 속죄가 무슨 뜻인지를요.
기본에 충실은 여전히 님이 들어야 할 말이고요.

논리적 비약...
내용을 적으십시오.
근거는 없이 단지 본인의 단정을 옮겨놓지 마시고요.

인격적 존재에 대한 말로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여전히 모든 사람이 해당되지요.
택자들만 인격적 존재이고 비택자들은 인격적 존재가 아니랍니까?

성경에 있는 내요을 따라 말하십시오.
성경은 예수님에 대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하실 분이라고 하시면서 동시에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님에게 이미 전제되어 있는 논리로 성경의 가르침을 제한하려고 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부차적 효과라는 말은 성경에 그것이 속죄와 연결되어 있지 않을 때에나 가능한 말이랍니다.
pnugoodman 2008-11-19 13:42:46
출애굽 사건은 십자가 사건의 그림자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보아서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면 그림자와 비유를 보아야 합니다.

기본에 충실하라고 한 이유는 님께서 말한 "보편적 속죄"와 "제한적 속죄"라는 말 자체가 올바른 단어의 선택인지는 의문스러웠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신의 생각이 정당하고 올바르다라는 것을 덧글에서 기정 사실화 하고 있으며 근거없이 현대 교회가 자신이 제시한 기준에 부합하지 않는다라고 확정하고 있습니다.
짧은 글에서 논리적 비약이 너무 심했기 때문에 기본에 충실하라고 한것입니다.

속죄라는 말은 죄가 있는 것을 대상으로 하는 말이기 때문에 지극히 인격적인 존재에 대한 말로 제한될수 밖에 없는 말입니다. 또한 죄가 속하여 지는 행위 또는 상태에 대한것이기 때문에 죄가 속하여지지 않은 사람에게는 속죄라는 말은 성립될 수가 없습니다. 님이 말씀하신대로 속죄가 가능한 대상에는 포함될지 모르나 속죄라는 말을 쓸정도는 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님이 말씀하고 있는 보편적 속죄라는 말은 모든 사람들, 세상, 만물에 대해서 속죄 효력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즉,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에 대해 속죄의 효력을 인정하고 있기에 어불성설입니다.

님께서 말씀하신 피조물의 회복이나 만물의 통일, 충만이 정확하게 뭔지는 모르겠으나 글에 쓰신 의미상 그것은 "보편적 속죄"라고 할것없이 "예수님의 속죄사역에 의한 부차적효과" 정도로 표현하고 이해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합니다.
pcj5016 2008-10-22 13:49:52
예수님의 속죄를 출애굽에서의 피바름으로 직결시키고 그것으로 결론을 내리려고 하다니요.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 아니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십니다.
옛 언약에서 새 언약으로 넘어가는 예수님의 구속 사역에 옛 언약을 넘어서는 확장이 있게 된 것입니다.

기본...
상대방에게가 아니라 스스로에게 하여야 할 말인 듯합니다.
pnugoodman 2008-10-02 21:08:39
정확하고 또 정밀한 예수님 그리스도의 속죄
그 문설주에 피가 발린집을 건너 뛰었듯이
예수의 피는 낭비가 없고 정확하십니다.
양의 피는 이스라엘을 위해 뿌려졌다고 하지만, 더 정확하게 말하지만 집 문설주에 바를 사람들을 위해 뿌려졌다고 봐야합니다. 기본에 충실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