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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에 대한 답변 및 다양한 논의들(예:칭의 받은 자의 탈락 가능성)

닉네임
LostTemple
등록일
2023-06-18 19:00:33
조회수
340
▪️1.
지난 번 04.30.2023.경에 이곳 '코람데오'홈페이지 토론방에 올려드린 제 글에 어느 회원분께서
"그래서 결론이 무엇입니까? <김세윤 박사의 칭의론>이 옳다는 것입니까???"
라는 질문차원에서의 답글을 달아주셨으므로 이에 심히 감사드리며 해당 회원님께서 가려워하시는 부분을 먼저 긁어드리는 것으로 '교두보'삼아 논증을 계속해서 이어가볼까 합니다.

▪️2.
먼저 답변을 드리자면 저는 이렇게 우뢰(:Βοανηργές:'우뢰처럼 쉴새없이 시끄럽게 하는' **호크마 주석의 막 3:17 참고**)의 아들'과 같은 한반도에서 성격 제일 급하신 분들을 배려하고자 지난 번 글 서두▪️2.에 이미 제 결론을 적어드렸습니다만 안타깝게도 성격이 너무 급하셔서 제대로 못 보신 것으로 보여집니다. 수고스러우시겠지만 다시 한 번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 차분하게 마음을 가라앉히시고 확인해보시길 바랍니다.

▪️3.
더불어 추가로 답변드리자면, 이러한 질문들이 나오는 것 자체를 뒤집어서 역으로 생각해보자면 '프로테스탄트(개신교)'라는 신앙의 플랫폼 안에 서 계신 많은 분들(특히 개신교지도자분들)께서 당연히 정독 및 연구하셨어야 할 <루터의 작품들(특히 『로마서 강의』나 『갈라디아서 강의』와 같이 보석같은)>을 안 혹은 못 읽어보셨기 때문에 생기는 대표적인 증상이라 추정됩니다.

▪️4.
즉, 만약 제대로 읽어보셨다면 이미 그 자체로 <16세기 종교개혁시대의 칭의론>에 대한 엄청난 정보력과 분별력이 확보되는 것이므로 <김세윤 박사님의 칭의론>에 대한 날카로운 분석이 스스로 가능하셨을테니 위 ▪️1.과 같은 질문이 절대 나올 수 없다는 것이 제 생각입니다(몹시 가려운 부분을 스스로 어느 정도 긁어냄으로서 가려움증에 대한 해소가 다소 가능해진다는 말씀). 다시 한 번 정중하게 부탁드리지만 <루터의 작품들>을 (마치 시42:1의 말씀과 같이 사슴이 시냇물 찾기에 갈급해하는 그 '절박함⚫️【1】'으로) 꼭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기 때문입니다."•••맛보아 알찌어다" - 시3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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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❶-1.- 『『 팔레스타인에선 가을이 되면 사슴들이 짝짓기를 한다. 많은 숫사슴들은 자기가 사랑할 짝을 찾아나선다. 이때 사슴들의 몸에는 타는 것 같은 <목마름>이 생긴다고 한다. 사랑할 짝을 찾아다니다가 이 <목마름>이 온몸에 엄습하면 사슴들은 오직 물을 찾아 헤매게 된다.
❶-2.- 그런데 중동 지방에는 물이 귀하다. 귀한 물을 찾아 헤매던 사슴들은 <심한 목마름>으로 기력이 다하게 되고 나중에는 헛것을 보기도 한다. 마구 달리다가 헛것이 보여서 찾아가 보면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서, 결국은 뜨거운 태양 아래 거꾸러져 입에 '거품'을 물고 죽어간다. 사슴들은 본능적으로 앞발로 땅을 파다가 눈을 부릅뜨고 죽어간다고 한다. 그렇게 죽어가는 사슴들에게 있어 <한 모금의 '물'은 곧 '생명'>이었다.
❶-3.-이러한 이해 위에서 씌어진 시편 42편의 ‘시냇물’은 요한복음 4장에 나오는 ‘생수’와 같은 뜻을 지닌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생생한 '영적 교통'을 의미하는 것>이다. 시편 기자는 들판을 다니다가 한 모금의 물을 얻지 못해 비참하게 죽어 있는 수많은 사슴들을 실제로 목격했던 사람이었다.
❶-4.-맹수에게 물린 것도 아니요, 병든 것도 아닌데 그토록 건강한 사슴들이 상처 하나 없이 광야에서 쓰러져 죽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한 잔의 물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깨달았던 사람이었다.
❶-5.-우리의 마음 중심도 <시냇물을 찾아 헤매는 사슴>과 같아져야 한다. 그런 마음으로 '하나님과 교제'해야 한다. 사슴에게 물이 없음은 곧 '죽음'이었던 것처럼, 우리에게 있어서 <생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의 고갈>은 곧 '죽음'과도 같음을 기억하자.』』

✔️출처:<❶-1.~❶-5.< http://www.duranno.com/bdictionary/result_vision_detail.asp?cts_id=21342 > 두란노 『비전 성경사전』
중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같이'에 대한 해석 >

❷- 오늘날에도 저를 포함한 한국교회 역시 이러한 차원에서 <루터의 여러 작품들 속에 다채롭게 녹아있는 '올바른 칭의론'>에 대한 심각한 갈증과 갈급함을 호소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쇠퇴'를 넘어 '존재자체'가 위협받고 있는 존폐위기의 벼랑 끝 상황속에서의 한국교회가 <새로운 전기>를 맞이하려면 말입니다.
❸-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루터는 이미 다음과 같이 지적했습니다. "isto articulo stante stat Ecclesia, ruente ruit Ecclesia: 이 (칭의의) 조항이 서면 교회가 서는 것이요, 그것이 무너지면 교회가 무너지는 것이다." ✔️원 출처:WA 40/3. 352,3. ◀--▶ <간접인용 출처 < 『마르틴 루터의 신학』(대한기독교서회)/한스-마르틴 바르트 > p.349 >
❹- 만약 어떤 교회가 죽어간다면 반드시 그 교회 가운데 <칭의론>이 쓰러져 있다(거짓 칭의론 난립)는 뜻이요, 반대로 어떤 교회의 생명력이 왕성하다면 필경 그 교회의 칭의론이 온전하게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사멸화되어가는 한국교회를 살리려면 반드시 <올바른 칭의론의 회복>부터가 선행되어져야 함을 시사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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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저희가 제 아무리 <장로교>라는 '칼빈주의 노선'위에 서 있다 할찌라도 '루터'의 작품들을 제대로 살펴보아야만 합니다⚫️【2】. '루터'를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칼빈'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럼 '칼빈'의 저작물들 자체도 '루터'의 영향권으로부터 완전한 독립된 환경에서 창조된 칼빈만의 독자적인 산물이었을까요? 절대 그렇지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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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❶- 날짜:2022년 10월 25일, 장소:총신-신대원 개교 100주년 기념 예배당에서 종교개혁 505주년 기념 《마르틴 루터와 개신교 종교개혁》이란 학술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❷- 그때 네 분의 발제자 중 3번째 발제자셨던 박영실 교수님('마르틴 루터의 칭의론'에 대해 발제하심)에 따르면 20년 동안 칼빈학회 회장을 역임하셨던 <셀데르휘스 헤르만>께서 칼빈출생 500주년을 기념하여 2009년에 방한하셔서 위❶ 과 같은 장소에서 대략 다음과 같은 말씀을 남기셨다 합니다.
❸-"<존 칼빈>이야말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교사다. 그러나 <존 칼빈>은 16세기 종교개혁자 가운데에서 'one of them(그들 중 한 사람)'이었다. 더불어 <루터>에 관한 것도 좀 더 소개되었으면 좋겠다. 왜? <루터>도 우리 개신교의 참으로 중요한 유산이니까!"
✔️ 해당영상 링크 출처:<❶~❸ < https://www.youtube.com/live/kCc4UgBifOo?feature=share&t=9073 >>

❹- 참고로 위 링크의 영상을 클릭해보시면 확인 가능하시다시피 '종교개혁'을 기념하여 열린 <루터와 개신교 종교개혁>에 대한 학술 세미나 현장에 '파리'가 날릴 정도로 청중석이 횡함을 발견하실 수 있습니다. 4번째 발제자셨던 <김용주 박사님>께서 이 부분을 지적하셨습니다. 목회후보생들의 종교개혁 공부에 대한 의욕들이 너무 없다고 말입니다(참고:https://www.youtube.com/live/kCc4UgBifOo?feature=share&t=7999 ).
❺- 평신도분들은 고사하고 장차 한국교회의 미래를 이끌어가야 할 리더 목회자분들이 이렇게 중요한 <루터의 '칭의론'이나 '성화론'>등에 대한 관심과 열정들이 전혀 없다시피 하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에 더욱 암담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 보셔도 무방할듯 싶습니다. 작금의 '경고 시그널'들은 <오픈게임> 정도라는 말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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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예를 들어 이미 아시는 분들께서는 잘 아시겠지만, '루터'와 '츠빙글리'⚫️【2】 가 한때(루터의 말년에) 『성찬론』을 놓고 격렬하게(심지어 이교도만도 못하다는 저주까지 퍼부으며)분열•대립하였습니다. 허나 '칼빈'은 대척점 선상에 있는 두 신학자 가운데서 '중재하는 형태의 성찬론'⚫️【3】.을 정립함으로써 '츠빙글리'에게 극대노한 루터의 냉각수 역할을 하는 탁월한 지혜를 발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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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2】:
"(츠빙글리가) <성찬 제정의 말씀>에 대해서 '상징적 해석'을 처음 제시한 것도 「에라스무스」에게서 기인하였을 것이다."
✔️ 원 출처:멜란히톤이 1529년 10월 12일 쓴 편지 참조(Corp.Reform.IV.970)
◀--▶ 간접출처: << 『교회사 전집 제8권 스위스 종교개혁』(크리스챤다이제스트)/필립샤프 > p.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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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3】:
❶- "전하는 바로는,루터는 비텐베르크의 서점에서 <칼빈의 성찬>에 관한 소책자를 발견하고서 그것을 읽고는 다음과 같은 평가를 했다고 한다.:
❷- 《저자(칼빈)는 틀림없이 학식이 깊고 경건한 사람일 것이다. 만약 츠빙글리와 오이콜람파디우스가 처음부터 이런 식으로 의견을 개진했다면, 아마도 그런 논쟁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출처:< ❶~❷ < 『교회사 전집 제7권 독일 종교개혁』(크리스챤다이제스트)/필립샤프 > p.551 >

❸- "칼빈은 그의 신학에서 '츠빙글리'와 '루터'를 중재하고 있다."
✔️출처:< ❸ < 『교회사 전집 제8권 스위스 종교개혁』(크리스챤다이제스트)/필립샤프 > p.24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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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주지하듯 '루터'와 '칼빈'은 25살 정도 나이차가 있긴 했지만, 종교개혁1세대와 2세대의 선두주자들로서 교류 자체가 상당히 제한적이었던 시대적 한계 속에서 부족하게나마 교류하며 서로간에 영향을 주고 받고 있었다 볼 수 있습니다⚫️【4】. 물론 직접적인 만남은 한번도 성사되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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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4】:
❶- 『『 그리고 둘째로는 이 책(세네카의 '관용론'에 관한 주해서)을 쓰기 위해, 그(칼빈)는 '옷감 장수'였던 한 독실한 <루터주의자>의 집에서 은둔해있었는데, 그 결과 신교의 영향에 직접적으로 그리고 끊임없이 노출되어 있을 수 밖에 없었다는 점이다.
❷- 그런데 왜 칼빈은 하필 <루터주의자>의 집에 은둔해있었을까?
❸- 아마도 그곳에서 책을 쓰는 동안, 가톨릭 교인들인 자기 친구들의 간섭과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았는 최적의 장소라고 판단했던 것 같다.
•••<중략>•••
❹- 아니 더 정확하게 얘기하자면, 성령님께서 그를 그곳으로 인도하셨던 것일 것이다.
•••<중략>•••
❺- 그런데 대략 이년쯤 지난 어느 날, 칼빈이 프항스를 떠나 스위스에 망명해 있을 당시, 이 마음씨 좋고 두려움이 없었던 집주인(루터주의자)은 그의 열정적인 포교활동으로 인해 체포되어 '화형'을 당하게 된다.』』

✔️출처:< ❶~❺ < 『종교개혁의 거장들』(은혜출판사)/로버츠 리아든 > p.317~318 / 제4장:사도 개혁가 존 칼빈:"영원히 지워질 수 없는 기억" 중 >

❻- 이러한 관점에서 살펴볼 때 칼빈은 상당히 젊었을 때부터 루터의 영향권 안에서 생활했다 보여지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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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그러함에도 위와같은 여러 사실들을 종합적,유기적으로 근거 및 추론하여 볼 때 더더욱 <루터의 칭의론>의 바탕위에서 <칼빈의 칭의론>을 살펴보는 것이 《종교개혁 칭의론의 여러 퍼즐조각들》을 보다 입체적으로 풍성하게 조망이 가능해진다 볼 수 있습니다.

▪️9.
샘플을 하나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다음의 글은 2016년 12월경 종로구 연동교회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이신칭의,이 시대의 면죄부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 김세윤 박사님과 함께 메인강사셨던 박영돈 목사님의 발제문 가운데 일부를 살펴보자면 이렇습니다.



⬛️10.
"바울서신에서 '칭의'에 기초한 구원의 확실성에 대한 바울의 일관된 주장과 논지와 대립될 정도로 분명하게 <칭의의 유보와 탈락>을 말하는 구절은 없다. •••<중략>••• 이런 관점에서 칭의를 이해할 때 칭의의 '취소'나 구원의 '탈락'을 말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을 뿐 아니라 <신학적인 모순>에 빠지는 것이다."
✔️출처:< ⬛️10.< https://calvary-church.tistory.com/m/15945833 > '5.성화와 분리된 칭의는 방종을 조장하나 성화와 구별된 칭의는 참된 경건의 바탕이 된다.' 중 다섯번째 문단 >


▪️11.
위 박영돈 박사님께서는 2016년 '미래포럼' 당시에 한국 칼빈주의 신학자의 대표격으로 참가하셨고 실제 위와같은 내용의 발제를 하셨습니다. 박 목사님께서는 <김세윤 박사님의 칭의론> 내용 중 일부분에 대한 인정 및 동의 하신 점도 있으셨으나 결정적으로 가장 격렬하게 반대되는 지점이 바로
《《 ★칭의받은 자는 성화에서 하자(조금 '죄'짓거나 '실수')가 있다 할지라도 구원이 취소되는가의 여부 》》
였지요!

▪️12.
여기서 먼저 '박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칭의'와 '루터'가 프로테스탄트 후세들에게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전수하고자 했던 '칭의'가 같은가 다른가를 먼저 살펴봐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완전 다릅니다. 이 부분은 이미 제 먼저의 글을 충분하게 읽어보셨다면 제대로 아시리라 보여집니다.


▪️13.
그렇다면 김세윤 박사님께서는 '루터의 칭의론'에 대해 완벽하게 이해하고 계신가하면 그것 또한 '교착상태(Deadlock)'에 빠진듯한 느낌을 자아냅니다. 무슨 말씀인고하니 <김세윤 박사님의 칭의론>은 <루터의 칭의론>과 주장하신 내용면에서는 당시 해당 포럼에 참여하셨던 <전통적 칭의론 신학자분들>보다는 훨씬 더 일치하셨지만, 정작 김박사님께서는 당시 <전통적 칭의론 신학자분들>께서 주장하신 '초월적 칭의론'과 <루터•칼빈의 칭의론>을 동격으로 오해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즉, 김박사님께서는 루터,칼빈도 죄인이 예수를 믿는 그 순간에 마치 로또 당첨되듯, 구원 당첨,천국행 당첨을 가르쳤다고 보셨던 것입니다.


▪️14.
이는 마치 성경 구절 중

"또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두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이 둘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셨다.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 마태복음 21:28-31

과 같은 상황인 것입니다.


▪️15.
즉,루터의 칭의론을 기준으로 위 ▪️14.의 말씀에 적용해본다면

아버지가 '루터'
맏아들이 '김세윤 박사님'
둘째아들이 '한국의 전통적 칭의론 신학자분들'

이 되는 셈입니다.


▪️16.
다시 한 번 간단하게 요약하자면,

•김세윤 박사님:"한국교회 뿐만 아니라 루터,칼빈도 칭의론에 있어서 다 틀려먹었어! ,칭의는 세례 때 시작,내세에 초월적으로 완성됨"

•루터:"칭의는 세례 때 시작,미래(내세)에 초월적으로 완성됨"

•한국의 전통적 칭의론 신학자분들 :"한국교회의 칭의론은 루터,칼빈의 16세기 종교개혁의 칭의론을 잘 계승했어! 칭의는 죄인이 예수를 믿는 그 순간 그 즉시 초월적으로 '단번에'⚫️【5】 완성됨"

입니다. 그래서 위 ▪️14.의 마태복음 성경구절과 같이 완벽하게 <꼬인관계>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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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
❶- 보통 '단번에' 구원이 초월적으로 완성된다고 주장하시는 분들께서 <유1:3>구절을 애용하셔서 이에 대한 아래의 인용 주석들을 통해 분명하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❷-『『 하팍스(ἅπαξ,단번에)라는 단어는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단번의" 구원 행위에 관한 메시지이고(롬6:10; 히9:12;9:26-28;10:10; 벧전3:18)
❸-결코 변할 수 없기 때문에, 《유다서》 독자들이 <계속해서 충성해야 하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을 때 '처음'으로 받았던 바로 그 복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❹-또한 이러한 강조는 바울이 마찬가지로 거짓 가르침에 직면했을 때 각 교회들이 그 교회들을 세운 사도들로부터 처음에 받은 복음을 굳게 붙잡으라고 호소한 것과 전적으로 일맥상통한다(롬16:17; 고후11:4; 갈1:9).
❺-바울과 유다는 둘 다 초기 기독교 선교의 공통의 원칙을 반영하고 있다.』』

✔️출처:< ❷~❺ < 『WBC주석•유다서』(솔로몬)/리처드 J.보컴 > p.70~71 >

❻-추가로 <호크마 주석>의 해당 구절에 대한 내용은 이러합니다.
❼- 『『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사도들'에게 전해지고 '사도'에 의해서 '교회'에 전해진 기독교 구원의 중심 메시지는 <단번에>전해진 것으로 결코 변할 수 없는 진리이다.』』
❽-즉 이 <유1:3구절>의 강조점은 거짓 교리가 난무하는 상황에서 '정통성'을 따지기 위한 '단번에 전해졌다'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지 우리의 구원이 '단번에' 초월적으로 완성되었으니 기뻐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아래의 ⬛️21.~⬛️25. 칼빈의 고린도전서 주석 내용에도 선명하게 잘 나와 있듯이 예수를 믿는 자들은 이제 겨우 '시작점'에서 막 출발한 자들이지 이미 '결승점'에 다다른 자들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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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그럼 과연 칭의 받은 자에 대한 구원탈락여부 입장은 각각 어떠할까요?

• 김세윤 박사님:탈락 가능!

• 루터:탈락 가능!⚫️【6】

• 한국교회의 전통적 칭의론 신학자분들:탈락 불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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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6】:
❶- 『『 그는 그가 '의롭다'(칭의)고 한 모두를 '영화'롭게 하지 않으며
❷- 그가 '부른'모두를 '의롭다'고 하지 않으며
❸- 미리 안 그들을 모두 부르지 않는다. 』』

✔️출처:< ❶~❸ < 『로마서 강의』(두란노아카데미)/루터 > p.398 >

❹- 위 ❶의 내용을 중심으로 "칭의받은 자라 해서 전부 다 천국(영화)에 이르지 못하는가?"라고 루터교회 측에 공식적으로 문의한 결과 돌아온 답신은 "그렇다"였습니다.
❺- 이 부분에 대하여 기회가 되면 보다 더 '클로즈업'하여 상세히 다루어보기로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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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그럼 칼빈의 입장은 어떠할까요? 칼빈도 루터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19.
『『 즉, 모든 이스라엘(출애굽) 백성들은 동일한 "운동장"에 모였고, 모두가 동일한 출발선에 서 있었으며, 모두가 동일한 코스를 달렸고, 모두가 동일한 소망을 품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상'을 받지 못하고 <★탈락>하였다는 것이다.
⬛️20.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그들이 범죄하였던 '죄악'을 똑같이 반복한다면, 그들에게 임했던 <하나님의 심판>이 우리에게도 임하리라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이기 때문이다.

✔️출처:< ⬛️19.~⬛️20.< 『칼빈주석•고린도전후서•칼빈500주년 기념판』(크리스챤다이제스트)/칼빈 > p.355>


⬛️21.
『『 고린도 교인들은 자신들 앞에 당면한 믿음의 싸움이나 경주에서 이제 겨우 '출발점'을 떠난 자들임에도 불구하고,
⬛️22.
마치 자신들이 군 복무를 이미 다 마친 <퇴역군인>이나, 달리기 코스를 <이미 다 완주한 선수>라도 되는 것처럼, 의기양양하게 자랑하고 다녔다.
⬛️23.
바울은 그들이 그런 식으로 자만심에 가득 차서 그들 자신을 헛되이 자랑하고 다니는 것에 대해서 이렇게 일침을 가한다.
⬛️24.
"내가 보니, 너희는 출발점 위에 편안히 드러누워서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마음 편하게 즐거워하고 있기 때문에, 나는 너희에게 너희와 똑같이 행하였던 옛적의 이스라엘 백성이
⬛️25.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를 알려 줄 것이니,너희가 그들의 사례를 보고서 정신을 차렸으면 좋겠다. 실제로 너희는 그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들게 될 것이다.』』

✔️출처:< ⬛️21.~⬛️25.< 『같은 책.』 > p.347 >
작성일:2023-06-18 19:00:33 58.228.6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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