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목회자료실

제목

한국동남성경연구원 특강 [Peter J. Leithart]

닉네임
황 창 기
등록일
2008-12-22 07:59:12
조회수
5855
첨부파일
 korea_script,__3[번역과].hwp (80896 Byte)
1. 첨부파일을열어보세요.
2. 원문과 번역을 문단별로 실었습니다.
작성일:2008-12-22 07:59:12 119.64.148.3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Christpanta 2008-12-28 00:11:31
mr.문, 반갑네. 고맙네.이 분야는 너무 중요하지만, 새로운 분야이라 한국교회 목회자들에게는 생소한 줄 잘 알지? 그런데 이런 글을 쓸 정도로 신학적 성숙을 보여주니 여간 기쁘지 않네. 계속 연구하기를 바라네.
yukdan 2008-12-25 01:35:29
안녕하세요 교수님~!
문지환입니다. 건강하시죠. 연락 한번 드린다는게 항상 그렇습니다.^^;;
예수님 중시적 성경이해와 exegesis및 eisegesis의 관계에 대해 제 나름 쓴 글이 있어 댓글로 올립니다.
.
.
"출34장에 대한 바울의 해석인 고후 3:12-18은 구약본문을 그 문맥과 다르게 그리스도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있다. 왜 문맥을 무시했을까?"

이 같은 물음은 구약본문해석에 대한 상당히 흥미로운 해석학적 질문을 야기한다. 바울의 미드라쉬(midrash)적인 구약해석을 오늘 우리도 수용할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헤리스가 말한대로 구약 본문에는 모세의 광채가 사라지고 있다는 언급이 없다(헤리스, 같은 책, 468.). 그것이 모세 직분의 영광스러움이라는 설명도 없다. 모세 직분이 완전한 성취(telos)를 내다보는 임시적 성격이라는 구절도 없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것을 '없어질 것'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사실 이것은 해석(exegesis)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사건을 경험한 바울의 주입적 석의(eisegesis)에 가깝다. 이전 가말리엘 문하에서는 가질 수 없었던 관점, 예수님을 만나고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사역을 실존적으로 체험한 후에야(행9장) 획득하게 된 그 관점을 가지고 해석한 본문이라는 것이다. 이는 예수님 중심(Christocentric)의 관점이며 한걸음 더 나아가 그리스도 완결적(Christotelic) 관점이다(그리스도완결적이란 용어는 웨스터민스터신학교의 피터 엔즈가 『성육신적 관점에서 본 성경 영감설』(CLC, 2007)에서 제시하고 있는 대로,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경험한 우리가 새로운 시각을 가지고 구약에 접근하는 것을 의미한다.). 율법을 완성하신 예수님의 인격과 사역을 이해하고 보니 과거 모세의 영광은 부분적이고 임시적이었다는 사실을 바울이 알게 된 것이다. 예수님을 모르면 율법의 임시성도 모른다. 따라서 율법이 임시적이라는 바울의 언급이 당시에 생소했다는 베스트의 주장은 틀린 말이 아니다. 이런 새로운 관점에 따라 바울은 출애굽기 본문을 취급하고 있다. 실제 1세기 초대교회 및 신약저자의 해석은 그리스도 중심적, 그리스도를 지향하는 해석이었다(베르너 진론드, 『신학적 해석학』, 38; "(초대)기독교인들의 구약 사용에 대한 궁극적인 이유는 단지 예수는 구약에 약속된 그리스도라는 사실에 있다." D. L. Baker, 『구속사적성경해석학』, 282.). 예를 들어 호11:1은 과거 출애굽을 회상하는 본문이지만 마2:15에서는 예수님을 예언하는 본문으로 제시된 것 등이다. 이러한 예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초대교회가 정경인 구약을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혹은 그리스도 완결적으로 해석했다면 오늘 우리 역시 당연히 예수님 중심적으로 구약본문을 읽고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계몽주의와 합리주의에 입각한 서구적 해석학은 과학적이고 분석적인 방법론이 성경 해석의 정도(正道)라고 가르쳐왔다. 그러나 성경은 무려 약 2500년 전부터 기록된 문서이다. 고대인들의 세계관에 입각해 기록된 책이란 의미다. 그들은 현대 문법적, 구조적, 역사적 해석을 전혀 몰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에 대해 과학적, 분석적 해석 방법만을 고수하는 것은 역사적 오류를 성경해석 안에 주입하는 것이다. 바울 및 초대교회와 같은 고대인들의 성경해석, 곧 예수님 중심의 해석을 배우는 일이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히브리적 관점 및 고대인들의 세계관으로 기록된 구약을 그들 자신이 해석하는 방법대로 읽을수록 구약의 진의(眞意)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구약을 예수님중심으로 읽으려하는 것은 사실상 본문의 표면적 의미, '하나의 의미'를 넘어서는 일이다. 그것은 본질적으로 시공간을 초월하는 영적인 작업인데, 솔직히 문법-역사적인 해석은 '그때 거기서'의 의미를 밝히는 일에는 유용하지만(결코 거부하거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때 거기서'를 넘어 '예수님과 관계하는 의미', 그리고 '오늘 여기에'까지 이르는 살아있고 운동력 넘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대는 부족하다. 사실 예수님을 거치지 않으면 도무지 우리가 구약의 인물들-아담과 노아와 아브라함과 모세와 다윗등-을 만날 길이 없다. 그들은 우리와 혈통, 국적, 성별, 생활양식 어디하나 통하는 구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한분 예수님을 지향하면서 성경에 등장했다. 쿨만의 표현대로 이스라엘은 한분 예수님께로 집약된다. 그 예수님께서 이제 교회와 관계하시지 않는가. 예수님이 없이는 교회가 구약을 도무지 바로 알 수가 없다
admin 2008-12-22 23:51:06
연구보고및 발표논문방으로 전문 실어놓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