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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교회의 구원관과 신화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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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규
등록일
2011-01-06 20:19:28
조회수
4894
지방교회의 구원론

혹간 어떤 사람들은 워치만 니의 책을 읽고 은혜를 받았다고 하며, 그가 이단이냐고 묻는다.
지방교회를 조금 안다고 하는 어떤 사람들은 지방교회는 신론과 인간론만이 조금 다르다고 이야기하는 경우도 있다. 또 S 출판사에서는 워치만 니의 책을 발행하고 있다.
그러나 지방교회는 신론과 인간론과 함께 구원론도 기독교의 것이 아니며, 종말론, 교회론, 천국관, 재림관, 성경관도 전혀 다르다. 그들은 위트니스 리의 고백과 같이 기독교가 아닌 것이다.

이제 지방교회의 구원론에 대해서 위트니스 리와 워치만 니의 책을 인용하며 살펴보자.

지방교회가 말하는 구원의 정의:

1) 단체구원

지방교회는 단체구원을 주장한다.
그들에게 있어서 구원의 조건은 믿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을 하나님의 구원의 단위로 생각한다' 이런 종류의 생각은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계획에 반대된다. 하나님이 정하신 길은 개인들만이 아니라, 가정을 얻는 것이다. 하나님은 구약에서도 그 분의 구원의 단위를 계시하셨다. 하나님은 홍수로부터 단지 노아와 그의 아내만 구원하지 않으셨다. 그 분은 또한 그들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을 구원하셨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이 정하신 길의 훈련과 실행, 94쪽)

# 영생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이지만,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문제에 과거 내가 속했던 무리의 문제가 추가된 것이다.(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필수과정1. 1989, 10쪽)

# 하나님이 얻고자 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이지 목적이 아니다. 하나님은 단체적인 것을 원하신다. 하나님의 목적은 하나의 나라요, 하나의 민족이요, 하나의 단체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2쪽)

# 한 단체를 얻고자 하신다. 삼일하나님 그분 자신을 이스라엘 백성들 안으로 역사하게 하시어 그들을 한 무리가 되게하고, 단체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처, 하나님의 집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신약에 와서 이것을 매우 분명히 볼 수 잇다. 이는 곧 성도 개인의 신령함이 아니라 온 교회들이 하나님께 얻은 바 되고 거처가 되는 것이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성전이 될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33쪽)

(2) 지방교회는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그들은 이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 구원이라고 말한다.

# 성경에서 주의하면 구원은 지옥에서 구출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구출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세상이라는 이 단체는 하나님 앞에서 정죄된 것이기 때문이다.(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1쪽)

# 이제 우리는 성경에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이고 구원의 대상은 대체 무엇인가를 주의해야 한다. 성경에서 구원은 지옥이 아니라, 세상이다. 영생의 반대편은 멸망이다. 성경은 멸망을 구원의 반대편으로 여기지 않았다. 성경에서 우리에게 보여준 구원은 세상에서 벗어나는 것이다.(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필수과정1. 1989, 8쪽)

이들이 말하는 세상은 기독교를 포함한다. 즉 세상에서 단체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고 한다.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종말적으로는 이 세상은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는 곳"(계11:15)이다.
세상이 정죄된 곳이 아니라, 인간이 정죄된 것이다.
세상은 복음의 씨가 뿌려지는 곳(마13:38)이며, 생명주시는 곳(요6:33)이며, 성도들의 죄를 사하여 주시기 위한 곳이며(고후5:19) 하나님은 세상을 사랑하사 독생자를 구주로 보내신 곳이다(요4:14)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17)

(3)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는 지방교회

지방교회는 구원이 하나님의 사역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주장한다.

#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을 구원하는 일과 하나님을 구별해야 한다. 많은 경우에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반드시 다 하나님의 일은 아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사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지만 하나님의 일은 사람으로 하나님이 지으신 만물을 다스리도록 통치권을 차지하게 하려는 것이다.(워치만 니, 거룩하고 흠이 없어라. 14쪽)

# 타락 때문에 사람에게는 구속이 필요하다. 그러나 구속은 하나님의 목적이 아니다. 구속은 하나님의 목표가 아니다. 구속은 단지 하나님의 회복의 과정이다. 구속은 타락한 사람을 하나님의 목적으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다.(위트니스 리, 사람의 영, 1986, 45쪽)

# 우리 가운데서 구원이라는 단어를 상당히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흔히 남용하고 있다. 여러분은 구원 얻는 것과 영생을 얻는 것에는 구분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영생을 얻는 것은 개인적인 일이지만, 구원을 얻는 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영생을 얻는 문제일 뿐 아니라 또한 잘못된 무리에서 구원받는 문제이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인의 50 필수과정 1권, 1989, 10쪽)

즉 지방교회의 구원론은 일반 기독교의 것이 아니다.
지방교회는 도대체 왜 이런 주장을 하고 있을까?
즉 지방교회만이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단체구원을 주장하며, 세상에서 나오는 것이 구원이라고 주장하며, 구원이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개인의 일이라고 하는 이유는, 일반기독교에서 나와 지방교회로 와야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4) 사후천국을 부정하는 지방교회

과연 그들이 말하는 구원은 무엇인가? 그들이 사람이 죽어서 가는 천국을 부정한다

# 여러분은 세상 사람이 구원을 얻는 것은 개인의 행위의 문제가 아님을 기억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틀린 것은 그들의 위치가 틀렸기 때문이다....그러므로 구원 얻는 것은 개인의 행위가 어떠한 지의 문제가 아니라, 당신이 속해 있는 그 무리가 잘못이었다는 것이 문제이다.(워치만 니, 그리스도인의 필수과정 1, 1989, 10쪽)

요약하자면 지방교회의 구원론은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세상에 속한 일반교회를 단체로 나와 지방교회로 오는 것이 구원이라는 것이다.
이제 그들은 궁극적이고 종말적인 구원을 부정한다.

# 이 구원은 단지 죄사함이나 하늘에 가려는 소망의 구원만은 아니다. 우리는 장래에 날에 하늘에 가기를 기다릴 필요가 없다. 우리는 이미 하늘에 앉아있다. 이것은 칭의, 혹은 화목케 함의 구원이 아니다.(위트니스 리의 하나님 458쪽)

# 전통적인 그리스도인의 이해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아버지에 의해 보내심을 받아 우리 죄들을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그 분은 부활하고 승천하여 하늘에 계시며 그 영이 보내심을 받아 강림하여 우리가 그 분을 믿도록 영감을 불러 넣고 있다. 믿는 이들은 믿었고, 용서받았으며 의롭다함을 받았고 구속되었고 구원을 받았다. 믿는 이들은 또한 거듭났다. 그 다음 죽으면 믿는 이들은 예수께서 요한복음14장에서 예비하러 가시겠다고 약속하신 곳으로 가게 된다. 이 장소는 그들의 현재 생명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그들에게는 전혀 객관적이고 물질적이다. 결국 이러한 해석에 따르면 그 저택은 새 에루살렘, 곧 거룩한 성이 될 것이다. 이것은 모든 믿는이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것이다. 우리는 이런 이해가 전적으로 객관적이며 그 가운데 아무 것도 생명과 관련이 없다는 것을 볼 수가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오늘날의 전통적인 많은 신학 안에서 그들은 생명에 대해서는 그다지 많이 말하지 않는다.(새 예루살렘, 166-167 쪽)

# 죽으면 천당(국)간다는 말은 이교도의 가르침입니다. 사탄이 한 최대의 거짓말 중 하나는 '예수 믿고 죽으면 천당(하늘 어디엔가 있는 집) 간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성경근거가 전혀 없는 거짓말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이교도적인 거짓 사상이 버젓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이런 비성경적인 가르침은 믿음 생활의 초점을 흐리게 하고, 하나님의 구원의 최종 목적을 변질시킴으로 참된 성도들 생각 속에서 말끔히 씻겨져야 할 누룩인 것입니다.(지방교회 게시판의 글)

#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소위 하늘에 속한 저택이라는 것에 대한 미신적인 관념을 붙들고 있는데 요한복음14장3절은 그들이 주 예수께서 그들을 위해 그러한 저택을 예비하사 하늘로 가셨다고 믿고 있는 근거이다.(새 예루살렘. 205쪽)..... 그러한 미신은 여러 세기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일단 믿는 이가 죽으면 그는 즉시 하늘에 속한 저택으로 간다고 전하고 가르쳤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또한 이 구절에 따라 하늘에 속한 저택이 완성될 때 주님이 다시 오사, 믿는 이들을 이 저택 안으로 영접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위트니스 리의 새 예루살렘, 206쪽)

# 일반적으로 말해서 기독교는 사람들이 죽으면 주 예수를 믿는 한, 그들에게는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그들이 일단 죽으면 그들은 천당에 갈 것이라고 사람들에게 가르친다. 그러나 여러분이 왕국의 비밀을 안다면 여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위트니스 리의 왕국, 315쪽)

# "왕국이 임하옵시며"라고 기도하는 것은 아마 종교적인 형식에 불과할 것이다. 이런 기도를 수천만의 기독교인들이 천 구백년 이상을 해왔지만, 아직도 왕국은 오지 않는다. (왕국, 190쪽)

#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국이 자동적으로 임하며, 왕국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우리는 잠 잘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여러분이 이런 식으로 받아들인다면, 여러분은 이천년동안 잠잘 것이며, 왕국은 여전히 오지 않을 것이다.(252쪽)

여러분은 지방교회의 구원관에 대해서 이러한 증거를 본 적이 있는가?
이들은 기독교가 아니다.
위트니스 리는 스스로 지방교회가 기독교와 다르다고 자백한다.

# 오늘날 기독교 안에서 이 문제를 본 사람은 극소수이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29쪽)

# 오직 소수의 사람들만이 그리스도가 하나님-사람이심을 시인한다, 또 이 소수의 사람들 가운데서도 오늘 우리가 하나님-사람들임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53쪽)

# 마찬가지로 교회 시대에서 그분은 이러한 이기는 무리들을 기독교 안에서 찾을 수 없었다. 그 분은 오직 그분의 회복 안에서 소수의 이기는 자들을 찾아낼 수 있다. 계시록 14장은 비록 많은 이들이 구원받았지만 이기는 자들은 다만 144,000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67쪽)

# 이것이 무엇인가?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우리 존재 안으로 분배되시는 것이다. 이것은 "기독교가 아니다". 이것은 삼일하나님이 "그분 자신"을 우리 존재 안으로 분재하심의 실제이다(24쪽하나님의 경륜 안에 있는 두가지 비밀. 24쪽)

# 기독교에 속지 말자. 기독교에는 숱한 허사가 많고 특히 교회는 그렇다. 그러나 그런 말들은 거의 실제적이지 못하다. 신약계시에 따르면 교회, 그리스도의 몸은 지역[지방]교회 로서 표출된다. 내게 지방교회가 없으면 내 교회가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 교회는 지방교회 안에서 표현되기 때문이다.(교회와 신앙 2001년4월호. 미국 지방교회 홈페이지 내용)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주장을 정리하여 보자....여느 이단들이 그러하듯이 이들의 결론은 매우 단순하고 확실하여진다.
그렇다면 지방교회의 구원관, 천국관은 무엇일까?
그들은 그동안 단체구원을 주장하며, 구원은 하나님의 일이 아니라 사람의 일이라고 주장하였다. 또 세상에서 빠져나오는 한 무리가 구원을 얻는 것이라고 하였음을 우리는 앞에서 살펴 보았다.
지방교회는 기독교와 전혀 다르다고 주장해 왔으며, 이제 지방교회는 기독교는 사단의 거처이며 사탄의 보좌이고 사탄의 왕국이라고 공격한다.
그렇다면 결론이 무엇인가?
간단하다..... 오직 지방교회가 구원이며 천국이고 왕국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이 되는 것이 곧 구원이며 천국이며 부활이며 재림이 된다

# 끝으로 교회의 회복은 왕국생활을 확립하는 것을 포함한다. 이것은 로마서 14장17절의 바울의 말이 가르키고 있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의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 구절은 왕국이 교회를 사는 것임을 계시해 준다.(교회, 481쪽)

# 신약의 계시에 따르면 정상적인 교회생활은 왕국생활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규율, 즉 천국의 율 아래 생활한다면 우리는 마태복음 5.6.7장에 기록된 그런 유형의 생활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또한 교회 생활 안에서 왕국생활이 실행되게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왕국을 교회와 분리시켜서는 안된다.(교회, 218쪽)

이들에게 교회 생활은 곧 왕국생활이며, 하나님의 왕국과 교회가 분리되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이들에게 천국의 실제적인 생활인 지방교회가 천국의 나타남으로 되어지는 시간은, 기독교계가 불태워지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 그러므로 천국의 실제와 외형은 교회와 함께 시작해서 교회와 함께 나아갔다. 천국의 실제와 외형은 교회와 함께 하며 교회에 달려 있다. 한편으로 천국의 실제가 교회 안에 감취어져 있고, 또 한편으로는 천국의 외형이 교회의 외양과 함께 한다. 주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교회 시대를 끝내실 때 천국의 실제와 외형도 끝날 것이다. 그 때 주 예수님은 천국의 외형, 즉 소위 기독교계를 불태우실 것이다. 동시에 천국의 실제는 천국의 나타남이 될 것이다.(왕국, 667쪽)

# 그 영 안에서 살고있고 그 영 안에서 행하는 것은 교회 생활이며 이 교회생활이 곧 왕국이다 (왕국, 163쪽)

# 우리 모두는 왕국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한다. 그것은 단지 하나의 시대나 영역이 아니다. 왕국은 거듭나고 변화된 사람들의 건축이다. 이 건축은 지방교회 안에서 완성된다. (278쪽)

# 교회는 그 실제로서 천국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마태복음 16장19절의 주님의 말씀이 가르키고 있다. "내가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무엇이든지 네가 땅에서 매는 것은 하늘에서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내가 땅에서 푸는 것은 하늘에서 풀린 것이니라" 여기에서 천국이라는 말은 앞 구절의 교회라는 단어와 서로 바꾸어 사용된다. 이것은 참교회가 이 시대의 천국이라는 강한 증거이다.(교회 39쪽)

# 만일 우리가 주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또 이 구절들을 읽는다면, 정확히 같은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왕국이 참된 교회 생활임을 보게 될 것이다.(왕국, 163쪽)

# 우리는 오직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주 예수를 믿고 그분의 이름을 불렀을 때 신성한 영이 우리 안으로 들어와 우리를 거듭나게 했고, 우리로 하나님의 왕국 안으로 태어나게 했다.(왕국, 25쪽)

# 만일 교회가 왕국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가 깨닫는다면 우리의 생활은 크게 바뀔 것이다(162쪽)

정통신학의 천국이란 개념은 무엇인가? 정통신학에서 천국은 크게 세가지의 개념을 갖으며, 이것을 성경을 그대로 정리하고 요약한 것이다.

첫째는, 하나님이 직접 통치하시는 신정정치의 영역적인 개념
둘째는 종말적이며 궁극적이고 장소적인 개념의 실체.
세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순종하는 개인적인 성도로 구성되는 내면적인 의미

지방교회는 오직 세 번째 개념만을 천국이라고 정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개인적인 성도의 내면적인 의미를 오직 지방교회라고 단정하는 것이다.
이들은 두 번째의 개념을 부정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다면 부분적으로만 적용시키면 안된다. 성경은 분명히 두 번째의 개념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에게 “조지래드”라는 신학자의 견해를 하나 소개하려고 한다.
물론 이런 신학적인 소개를 하는 이유는 정통교회의 견해와 지방교회가 어떻게 다른가를 말하기 위함이다. 그는 교회와 하나님 나라의 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1) 교회가 곧 하나님나라가 아니다.(예수님과 초대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나라와 천국이 가까웠다고 설교했지, 교회가 가까웠다고 설교하지 않았으며, 천국복음을 전했지, 교회 복음을 전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행8:12. 19:8. 20:25. 28:23, 31)

2) 하나님의 나라가 교회를 형성한다.(왜냐하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면서 교회의 인간적인 교제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3) 교회는 하나님 나라를 증거한다.(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이 천국복음이....온 세상에 전파되리니"(마24:14)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4)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수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나타내는 성령은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낼 때 제자들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사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마10:8, 눅10:17)

5) 교회는 하나님 나라의 관리자이다.(왜냐하면 천국의 열쇠가 교회에 주어졌기 때문이다)(마16:19)

물론 교회도 하나님나라의 일부이지만, 하나님나라가 곧 교회라고는 할 수가 없다.
참된 교회는 어느 교파나 단체, 혹은 가시적이고 지상에 있는 유형적인 교회를 말하지 않으며, 어느 주장이나 어느 사상만을 가지는 무리가 되어지지 못한다.
다시 말하여 어떤 사상이나 어떤 획일적인 논리를 강조하며, 자신들 외에는 모두 잘못된 교회라고 주장하는 단체가 있다면, 그들은 이단이 분명하며 틀림없는 사이비가 될 것입니다.

과연 천국과 하나님 나라가 다른 뜻일까?
마태는 주로 천국(바실레이아 우라노스, Kingdom of Heaven)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또 마가와 누가는 주로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호 데오스, Kingdom of God)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나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을 비롯하여, 모든 성경기자들은 하늘(우라노스, Heaven)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다. 그 개념은 단지 대기권 위라는 장소만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라는 의미를 잘 설명하여 나타내주고 있다.
다시 말하여 하늘(우라노스, Heaven)이라는 개념은 "하늘, 포괄적인 천상(하나님의 처소)"의 개념으로 사용되고 있다.
그러나 마태는 천국이라는 용어만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6:33, 12:28, 19:24, 21:31, 21:43등에서는 하나님 나라(바실레이아 호 데오스, Kingdom of God)라는 용어도 함께 사용하고 있는데, 마태가 말하는 천국과 하나님의 나라는 사실상 아무런 차이점이 없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다시 너희에게 말하노니 약대가 바늘 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신대“(마19:23-24)

마태와 마가와 누가는 천국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용어를 거의 호환하여 사용하고 있으며, 즉 실제적으로 천국과 하나님 나라의 차이는 없다는 것을 말하여 준다.

또 성경에 의하면 아브라함은 천국, 하나님 나라에 있었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에 의하면, 죽은 나사로는 아브라함의 품에 있었다. 다시 말하여 나사로는 죽어서 천국, 하나님나라에 있었다.

마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마8:11)
누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눅13:28)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눅16:22)

또 모든 성경기자들이 사용하는 하늘(우라노스)이라는 용어도 "하나님이 계시는 곳"이란 의미로서 "포괄적인 개념의 천상"을 의미하며, 하나님 나라와 천국이라는 의미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다.

물론 정통신학에서도 성도들의 몸도 하나님 나라, 천국의 일부가 되어진다.
그 이유는 하나님 나라라는 개념이 하나님의 통치영역을 말하기 때문이다.....물론 교회도 하나님 나라 혹은 천국의 일부가 되어질 수 있다.
주님이 가르쳐준 기도와 같이, 하늘에서 이루어지듯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되는 궁극적으로 임하는 나라로써, 예수님과 함께 도래한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 하나님 곁, 하나님이 계시는 곳은 당연히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다. 우리의 몸과 교회만이 천국이며, (지방교회의 용어를 빌리자면) 천국의 실제가 된다는 주장은 전혀 비성경적이며 단편적인 주장이 되어진다.
하나님 나라, 천국의 개념을 지방교회는 오직 성도들의 몸으로만 간주하며, 원천적인 개념으로서의 하늘(우라노스)을 제외하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다시 말하자면, 죽어서 가는 곳은 천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분명 틀린다....

-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히11:16)

-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14:13)

-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 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딤후4:13)

-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빌3:20-21)

지방교회와 같이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이 천국이 아니라는 주장은 비성경적인 주장이며, 균형이 잡힌 부분적인 성경관이 아니며, 한 개인의 이상한 성경해석을 그대로 맹종하는 이단이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죽어서 가는 곳도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며 하늘이 되어진다. 우리는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질 것을 기도하여야만 한다.
예수님의 도래와 함께 시작된 나라, 믿는 성도들 자신으로 표현된 내면적인 세계도 물론 하나님 나라며, 천국의 일부이다. 이 땅에 도래한 하나님 나라는 진행적이며 확장적이며 마침내 실체로서 완성되어질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과 함께 하나님께 바쳐지는 완성되는 궁극적인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으로 표현된 새 예루살렘도 물론 하나님 나라이며 천국이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내가 가는 곳에 그 길을 너희가 알리라. 도마가 가로되 주여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삽나이까,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2-6)


지방교회의 기독론과 신일합일

지방교회, 몰몬교등은 사람이 하나님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친다.
우리는 그것을 신일합일설이라고 부르는데, 특히 지방교회의 신인합일설은 사람과 하나님의 구별이 없는 "똑같이 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을 지적하면, 지방교회는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은 직위를 가진다는 의미가 아니며, 연합적인 개념이라고 변명을 한다. 그러나 삼위일체론, 기독론과 마찬가지로 지방교회는 항상 자신의 사상을 위장하고 감춘다. 이것을 상세하게 밝혀보자.
만일 사람이 하나님같이 경배를 받는 직위가 된다면, 그것은 이단이 아니라 사이비가 되고만다.
우리가 비판하자는 것은 그 직위에 대한 비판이 결코 아니라, 사람이 하나님이 된다는 자체를 비판하는 것이다.
먼저 지방교회의 위트니스 리의 견해가 무엇인지, 그의 책을 보자.

(인간이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같은 부류라는 글)
# 우리는 그리스도와 하나님과 다 같은 부류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될 수 있고 그리스도도 우리와 하나가 되실 수 있다. 우리는 그 분과 한 영이 되었다.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신 목적은 하나님을 당신 안에 담기 위한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45쪽)

(인간이 하나님과 똑같이 된다는 주장)
# 그분은 우리와 같이 되셨다. 왜 그런가? 그 목적은 우리를 그 분과 똑같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오늘 여러분은 하나님의 생명을 가졌고 하나님의 성품을 가졌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하나님과 똑같은 것이다.(구약의 예표와 신약의 계시에서 본 하나님의 경륜, 63쪽)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이 된다는 주장)
# 바로 그 때 그들은 안팍으로 - 생명과 본성과 기질과 몸의 형태에서 -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게 될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4쪽)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와 같은 종류라는 주장과 주님이 첫 번째 하나님-사람이라는 주장)
# 만일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들은 누구인가? 자녀들과 아버지는 같은 종류가 아닌가? 요한복음3장6절은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라고 말한다. 당신과 당신의 부모는 모두 같은 종류, 육신의 종류이다. 6절은 또 말하기를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라고 말한다. 이 두 영은 같은 종류이며 또한 같은 근원이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 많은 하나님-사람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또한 우리가 믿고 경배하며 따르는 우리의 주님, 또한 첫번째 하나님-사람이다.(위트니스 리, 하나님-사람의 생활, 40쪽)

(하나님의 체현으로 똑같이 된다는 주장)
# 우리는 과정을 거친 삼일하나님 안에 있다. 바로 그 분이 우리 모두로 하나님의 체현이신 그 분의 맏아들과 똑같게 되도록 우리 안에서 역사하여, 결국 우리 모두를 하나님의 체현이 되게 하실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맏아들과 똑같이 된다는 주장)
# 이 삼일하나님이 우리의 거듭난 후로 우리 안에서 계속 역사해 오셨고, 우리가 하나님의 맏아들과 똑같이 될 때까지 그 역사를 계속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자들인 우리 모두는 거룩케 됨, 새롭게 됨, 변화, 형상을 본받음의 과정을 거쳐 우리의 온 존재의 영화롭게 됨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8쪽)

위트니스 리는 분명히 사람이 하나님과 똑같이 되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들은 이것을 하나님-사람(God-Man)이라고 부른다.
지방교회는 자신의 주장을 감추고 위장하기 때문에, 이러한 지방교회의 주장을 더욱 파악하고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미 올린 지방교회의 양태론과 인간론을 알아야만 한다.
인간론에서 보았듯이 이들은 인간을 영과 혼과 육의 삼분법으로 날카롭게 구별하여 분리시킨다.
그러한 삼분법을 염두에 두면서, 또한 우리는 다음과 같은 위트니스 리의 주장에 주목하여야 한다.
즉 초대교회부터 있었던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에 대한 기독론적인 이단주장이 등장한다.

(인성과 신성을 가진 예수와 사람이 똑같다는 주장)
#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맏아들이시므로 하나님의 많은 아들들인 우리는 그분과 똑같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혀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한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5쪽)

(예수와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연합되었다는 주장)
# 하나님의 성육신 안에서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왔고, 인성에 더해졌다. 이 하나님-사람의 부활 한 안에서는 인성이 신성 안으로 가져가졌고 신성에 더해졌다. 이것을 놀라운 왕복교통이다.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 이 두 본성이 서로 더해졌을 뿐 아니라,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고 서로 연합되었다.(새 예루살렘 237쪽)

이들은 인간을 부분으로 분리시키며, 마찬가지로 예수를 인성과 신성으로 분리시킨다.
이미 설명하였듯이 이들의 기독론은 초대교회의 이단적인 주장의 종합적인 견해인데, 이러한 주장을 살펴보자.

1) 예수는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의 결합이라는 일부 그노시스파
2) 하나님 자신이 그리스도라는 한 형태로 나타나셨다는 사벨리우스파의 양태론
3) 그리스도의 일부는 피조물, 일부는 창조주라고 하는 반신으로 만든 아리우스파
4) 인간이 육체와 혼과 영의 세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인성은 육체와 혼의 두부분이고, 그리스도의 신성이 영으로 들어온다는 아폴로내리스파의 견해
5)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하는 네스토리우스파

루이스 벌콥의 기독교 신학개론 197-198쪽을 올립니다.

기독론에 의한 몇가지 중대 오류 - 인성의 실재성에 대한 부정
제 2세기의 그노시스파는 그리스도의 참된 인간성을 주정하였다. 어떤 사람은 그리스도를 단순히 순화한 육체, 혹은 천적인 육체로 보고, 또 어떤 사람은 "인간적인 예수와 신적인 그리스도를 구별"하여, "신적인 그리스도는 임시로 인간예수와 결합하였다"고 보았다. 제 4세기의 싸벨리우스파는 "그리스도를 단순히 하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신 한 형태"로 생각하였다.

신복윤교수의 기독론에 대해서 살펴보자....

- 그(아폴로내리우스)는 사람이 신, 혼, 영의 3부로 구성되었다는 헬라철학의 3분설의 개념을 가지고 로고스가 죄의 좌소인 영의 자리를 취하셨다고 주장하였다. 그리스도는 신체와 혼만을 가지셨고 영의 자리는 로고스가 채웠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성을 축소하였다. 즉 그리스도는 영이 없는 인성을 입으신 것이다.(신복윤교수. 기독론에 나타난 이단, 102쪽)

이 초대교회부터 기독론의 이단적인 모든 다섯가지 주장을 지방교회가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그 중에서 위의 신복윤교수의 설명과 같이 특히 아폴내리우스파의 주장에 주목하여야 한다.
인간을 육체와 혼과 영의 세부분으로 분리하여 구별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을 분리시켜, 인성은 다시 육체와 혼으로 분리시키고, 신성을 영이라고 하여 세부분으로 구별한다.
물론 지방교회가 말하는 영은 구약과 신약(부활전)의 성령과 다르다. 양태론적인 견해로서 하나님이 예수님으로 예수가 부활의 영으로 과정을 거쳤다고 보기 때문이다.
즉 지방교회의 교인들에게 부활의 영이 내주하면, 그들은 곧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똑같이 됨으로서 그들은 이것을 부활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예수의 재림이라고 부른다.
이제 위트니스 리의 주장은 이해가 갈 것이다.

# 그러나 그 분의 인성에는 죄가 없으며 결코 이전에 타락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간의 부분은 구속될 필요가 없었으며 다만 높여질 필요가 있었다. 우리의 인성은 두 부분으로 되어있다. 한 부분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부분이고, 다른 한 부분은 타락되고 부패한 부분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48쪽)

# 하나님의 성육신 안에서는 신성이 인성 안으로 들어왔고, 인성에 더해졌다. 이 하나님-사람의 부활 안에서는 인성이 신성 안으로 가져가졌고 신성에 더해졌다. 이것을 놀라운 왕복교통이다. 사람의 본성과 신성한 본성, 이 두 본성이 서로 더해졌을 뿐 아니라, 한 실제, 한 인격으로 제삼의 성분을 산출하지 않고 서로 연합되었다.(새 예루살렘 237쪽)

# 비록 그분의 "인간의 부분"이 죽었지만, 죽지 않는 "그분의 신성한 부분"은 영원히 산다. 그리스도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실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자신 안에 신성한 요소 곧 거룩의 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같은 책44-45쪽)

# 그 분이 육체 안에 사셨을 때에 "그분의 한 부분"은 다만 사람, 곧 다윗의 씨였다. 그 부분은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 그러면 "그 부분"이 어떻게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는가? 그것은 죽음과 부활을 거쳐 인정됨을 통해서이다(같은 책 45쪽)

# 이 새 예루살렘은 과정을 거친 삼일하나님과 "변화된 세부분으로 된 사람과의 연결과 연합" 곧 한 총체로서의 하나님을 표현한 것이다.(하나님의 경륜과 하나님-사람의 합당한 삶, 16쪽)

그래서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는 부분적으로 피조물이 되어지며, 그렇기에 사람이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지방교회에서는 예수님은 하나님(영) + 사람(혼 + 육)이 되어지며 삼분법으로 해부되고 분리되어지고 만다.

# 그러므로 그분의 부활 이전에 그분은 그분의 신성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셨다. 그러나 그 분의 성육신으로 그분은 인성 안으로 들어가셨고 그 분의 존재의 부분으로 인간의 본성을 입으셨다. 그러나 그 분의 인성은 그분이 부활할 때까지는 "아들화" 되지않은, 즉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지 않았다.(위트니스 리, 그리스도 23쪽)

# (골1:15-18의 구절)이 구절은 그리스도께서 창조자이실 뿐 아니라, 모든 창조된 것들 가운데 첫 번째, 모든 피조물 가운데 첫 번째 이심을 계시한다.(그리스도 67쪽)

즉 지방교회에서는 그리스도와 지방교회 교인의 구별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이며, 똑같은 것이다.
작성일:2011-01-06 20:19:28 121.140.49.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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