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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날을 목숨 걸고 지키십시오[퍼온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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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창 기
등록일
2011-01-24 19:43:41
조회수
8042
어떤 문화나 환경에서도 인간은 대체로 지난 한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내다보는 한 시점을 포착합니다.

시간관념 혹은 시대관념 a sense of time을 나는 어떻게 가지고 있는가? 특히 크리스천으로서 가져야할 시간/시대관념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2천년 전 초대교회 공동체는 우리와 사뭇 다른 시대관념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히브리서 9장 마지막 부분의 세 구절에 보면 신기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 나타나시고(24절); 나타나셨느니라(26절); 나타나시리라(28절)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한글 성경은 현재/과거/미래로 구분하는 것 같습니다.

영어 번역은 대부분이 now to appear, now ... has appeared, will appear처럼 부정(不定)현재/완료/미래로 되어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은 부정(不定)과거/완료/미래입니다.

비교해 보면, 한글 성경의 과거형은 영어/헬라어의 완료형으로서 과거에 나타나심이 현재도 나타나계심이라는 의미일 것입니다.

한글 성경의 현재형은 영어/헬라어 성경에서는 과거인지 현재인지 부정시제(不定時制)로 되어 있습니다. 즉, ‘나타나심’ 사건을 시간적으로 특정하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언제냐? 라는 질문에는 답변이 애매합니다.

그래서 이해를 돕기 위해 풀어 쓴 것 같습니다. 과거에 오셔서 현재도 계시지만 미래에 다시 오실 것이라고. 이것을 한마디 우리말로 표현하기가 불가능합니다. 영어/헬라 어법의 ‘부정시제’가 있어도, 애매한 건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런가?

초대교회 공동체는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표현할 때 시제를 넘나들었기 때문입니다.

성탄 때에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재림 때에 그리스도가 다시 나타나실 것입니다.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의 시대는 성탄과 재림 사이, 예수 그리스도의 첫 나타나심과 두번째 나타나심 사이에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왜 중요합니까?

첫 번째 나타나심으로 하나님의 다스리심 속으로 우리는 ‘들어간다’고 표현합니다. 그러나 아직 완전한 다스리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완전으로 향하는 과정이라는 암시입니다. 그리스도의 다시 나타나심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나타나심의 목적이 완성되기 때문입니다.

내가 만약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의 실재성(實在性), 연속성(連續性)이라는 시대관념 속에 산다면, ‘연말연시, 송년/망년, 송구영신, 신년’ 같은 단어가 나를 규정할 수 없습니다. 그 속에 예속되거나 갇혀 있을 수 없습니다.

볼더한인교회의 시대관념은 그리스도의 새창조 사역을 기점으로 삼고 그 세계관을 가지고 이 땅에서 크리스천 삶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나는 날마다 새로워지는 새창조를 경험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을 가장 분명한 그림으로 볼 수 있는 타임은 따로 있습니다. 바로 주일입니다. 주일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알리는 첫날이요, 새창조를 선포하는 날입니다. 주일을 기점으로, 신호로 나는 월-토요일을 살아내야 합니다. 새창조된 부활의 삶을 살아내야 합니다.

새해이기에 새롭게 다짐하는 세속적 시대관념은 이제 없습니다. 새해가 아니라 날마다 새롭게 되는 시대관념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주의 날, 주일’이기에, ‘부활의 날, 새창조의 첫날’이기에 내가 드리는 예배에 목숨을 걸어야 합니다. 그래야 다음날을 live-out, work-out 살아 낼 수 있습니다.

완성될 새창조의 날을 고대하며,

황용기 목사
작성일:2011-01-24 19:43:41 110.14.23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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