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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를 둘러엎어도 되는가?[마 21:12-17 설교]

닉네임
황 창 기
등록일
2011-02-21 10:42:55
조회수
7298
첨부파일
 돌성전에 오신 참성전 3.hwp (81920 Byte)
화가 나면 나도 의자를 둘러엎어도 되는가?

제직회나 무슨 회의 도중에 화가 나면, 나도 의자를 둘러엎고 회의장을 박차고 일어날 수 있을까? 12절에 예수님이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셨는데?’ 그럴 수 없다! 본문의 내용을 잘 살펴보면 그 답을 알 수 있다. 우선 “예수님처럼! 말씀대로! 성경대로!”란 말은 ‘문자 그대로!’란 말과 같을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자. 우리는 이런 말을 많이 들어왔다. 그러나 예수님이 ‘의자를 둘러엎는다고, 나도 의자를 둘러엎을 수 없다’는 이유를 살펴보자.

요지: “성전 된 나는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왜 그럴까?

1. 성전에 오신 예수님은 내가 이미 와 있는 천국을 지금 여기서 내가 누릴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14-16절)
예수님이 오심으로 새로운 메시아[그리스도]시대가 이미 왔다. 즉 하나님 나라가 지금 여기에 도착하였으며, 이스라엘에게는 심판이 내려질 것을 앞 뒤 문맥에서도 보여주고 우리 본문에서도 보여주고 있다.

ㄱ)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쫒아내신 것 (12 절)은
[스가랴 14 장 21 절 읽기]
여기서“가나안 사람들”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못된 상인” 이란 말도 된다. 우리 본문 12 절에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상인들을 추방하신 것은 구약(겔 40- 48; 슥 6: 12- 13)에서 예언한대로 그리스도 즉 메시아를 기다리는 내용과도 일치한다.

ㄴ) 우리 본문 13 절에 이사야 56 장 7 절 말씀이 인용되었다는 점이다.
[사 56:7] 읽기
이 말씀은 신실한 이방인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메시야 [그리스도]시대를 예언하고 있다. 예수님이 이 말씀을 인용하여 꾸중하신다. 메시아로 오신 주님께서 성경을 맡아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사실을 알지 못함을 꾸짖으시는 것이다.

ㄷ)그리고 성전에 눈 먼 사람들과 저는 사람들이 나아오니까 주님께서 고쳐주신 사실 (14 절) 자체도 그리스도가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어떻게? 구약에서는 불구자들은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올 수 없었다. 즉
(신 23:1)(레21:17-19) 읽기.

ㄹ)그리고 어린아이들이 성전에 등장하는 자체도 (15 절) 주님이 오시어 새 세상이 이루어졌음을 보여 주고 있다. 사실 어린이는 진정한 제자의 모델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주님도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 18:3)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아이들이 소리치는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하는 말도 예수님을 메시야로 인정하는 찬양이다.

다시 요약하자면 본문은 물론 본문의 앞 뒤 문맥까지도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은 곧 메시야 시대 곧 하나님 나라의 시작이요, 육적인 옛 이스라엘은 물러가야 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 점은 예수 그리스도가 오심으로 우주보다 큰 만유적인 대 변혁 (The Great Transformation)이 일어날 것을 보여준다. 우리에게는 이 변혁이 일어난 지 2천 년이 지났다.

따라서 주님께 연합된 나는 하나님 나라에 이미 들어온 백성으로 왕이신 주님께 충성하여야 한다. 우리의 왕이요 주인이신 예수그리스도이시다. 반면에 주님이 싫어하시는 모든 것은 모양이라도 버려야!!!

요지: “성전 된 나는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왜 그럴까?

2. 성전에 오신 예수님은 내가 현재적 심판을 피할 것을 보여주시기 때문이다 <12-13절>

[[예수님과의 관계]] 모든 것을 예수님 중심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유대주의에서 시행해온 모든 율법과 제도가 바뀌기 시작한다. 예수님이 구약 이스라엘 지배적인 이야기의 종말이요, 변혁된 이스라엘 이야기의 절정이요, 목적 내지 완결이기 때문이다.

ㄱ) 돌 성전은 참 성전이신 예수님의 그림자이시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돌 성전에서 죄를 용서받는 제사가 있는 중에도, 죄를 용서해 주기 시작하셨다. 이제 돌 성전은 무너질 것이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를 용서받는 시대가 온 것이다. 이 당시는 옛 세상과 오는 세상이 포개져 겹쳐 있는 시기이다.

ㄴ) 그리고 비둘기 등의 희생제물과 예수님의 관계도 마찬가지이다. 제물로 쓰인 짐승은 그림자요 예수님은 참 제물이다.

ㄷ)또 제사장과 예수님의 관계도 그렇다. 대제사장도 예수님의 그림자로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한시적인 직분이었다. 원형이신 메시아[그리스도]가 오신 후에는 이런 모든 제도가 계속 존재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말하자면 예수님께서 참 성전이요, 참 제물이요 또 참 제사장이시기 때문이다.

[[ 이스라엘의 심판 ]]그렇더라도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임무 교대를 조용히 할 수 없었느냐 말이다. 사실 어떤 면에서는 소나 양과 비둘기 등 짐승들은 예수님이 오실 때까지 억울하게도 무고한 피를 흘렸었다. 그런 의미에서 그들의 등이라도 두드려 주고 어루만지며 쓰다듬어 줄만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왜 예수께서 폭력을 휘두르시고 (12 절) 폭언 (13 절)을 하셔야 하였던가?

그것은 주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하실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 인자로 오신 왕이요 메시야로 영접하지 아니하는 이스라엘에게 내려질 심판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시고 것이다. 예수께서 오셨지만 유대인 지도자들은 여전히 예레미야 7 장과 같은 상황을 연출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리미야 7장에서는 바벨론 포로 직전에 유대인 지도자들이 여호와 앞에서 온갖 죄를 범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성전에 나와 형식적인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 당시에도 종교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유익을 위하여 성전을 강도의 소굴처럼 만든 것은 예레미야 시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렘 7:8-11]읽기

여러분! 우리는 교회에 다니면서 이런 죄악을 범하고 있지 않느냐? 이런 삶을 일삼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면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12 절과 같이 예수님이 내쫓으시고, 상을 둘러엎으시고, 꾸중을 하신 것이다. 이 시점에서 오늘 설교 제목이 묻는 질문에 답할 수 있다.

예수님은 폭력을 휘둘러도 나는 상을 둘러엎을 수 없다! 여기서는 예수님이 심판자로서 죄를 예언적으로 심판하시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만이 하시는 일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면 이런 일은 할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으로서 예수님 자신의 죽으심, 주후 70 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그리고 우리 주님의 최후의 심판을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성도들은 심판이라고 하면 최후의 심판만을 생각한다. 우리 한국 교회는 지난 날 구원 및 천국의 미래면 만을 강조하는 유대주의의 가르침을 많이 탈피하였다. 이제는 천국의 현재면 과 미래면 을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다고 본다.

마찬가지로 심판에도 현재적 심판과 미래적 심판이 있다. 그런데 심판에 관해서는 아직도 유대주의 적 사고방식에 머물러 있다. 미래의 심판은 믿으면서 현재의 심판에 대하여는 별로 관심이 없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적 심판은 신자가 당하는 징계(히 12:5 이하) 차원이다.

[히 12:7-8]읽기

그러나 신자에게는 영원한 멸망의 심판은 없다 (요 5:24; 롬 8:1).
[요 5:24; 롬 8:1]읽기

“심판”이란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하는 것이다.
“그 정죄(κρισις: 심판)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요 3:19).

성경은 재난과 멸망을 수반하기 이전에 어두움과 짝하기 시작하는 것부터 심판이라 부른다. 여기서 우리는 심판의 현재 면을 보아야 한다. 성경은 심판의 현재적 면을 많이 말하고 있다 (히 10:26-30; 12:4-12; 고전 3:1-3; 11:27-34; 행 5:1-10; 딤전 5:24; 고후 5:10). 베드로 전서 4 장 17 절은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집 곧 교회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예화: 천안함 사건, 연평도 포격, 구제역... 우리에게 고칠 점이 많기에, 하나님이 경고하고 계시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말을 맺자!
“성전 된 나는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왜 그럴까?
이제 이 말은 계시사적으로 이해하여야 한다. 이 말은 계시사적으로 돌 성전은 예수님 육신인 참 성전의 그림자요, 우리 각 자도 성령의 전이며, 성도의 모임도 성전이다. 동시에 이 성전은 온 세상을 나타낸다. 예루살렘 성전에 오신 예수님은 나의 몸 된 성전은 물론 온 세상의 대왕으로 다스리시고 있다는 사실!

[고전 6:19; 고전 3:17] 읽기

나의 몸은 성령의 전으로서 나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것이기에 더럽히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성전으로서 우리는 주일 예배에 꼭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성도로서 성령님이 오셔서 평안히 거하시도록 예수님 안에서 참다운 새 성전으로 함께 지어져가야 한다[엡 2:22].

(남 전도회 여러 분! 이제 잘 기억하자.)

본 문은 두 가지를 보여 준다. 주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다. 말하자면 새 성전은 세우시고 옛(돌) 성전은 파괴된다는 양쪽 면을 드러낸다. 다시 설명하자면, 하나는 오순절 성령강림으로 창조된 하나님의 백성 (신약 교회)인 새 성전이 세워졌음을 보여준다. 또 하나는 주후 70 년에 로마군에게 예루살렘 성전 (육적 이스라엘)이 파괴되어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을 내다본다고 하겠다.

이 두 가지도 역시 재림 때 우리 주님의 권세로 온전히 일괄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예루살렘 돌 성전에 참 성전이신 예수님께서 오신 것을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의 왕이시오, 통치자로 오셨음을 보여준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였다!

우리는 그 때마다 하나님의 선지자, 제사장, 왕으로서 또 성전으로서 나는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주님의 뜻을 세우려고 최선을 다하며, 주님께 충성해야 한다.”[적절한 예화]


한국동남성경연구원장[www.kosebi.org]
010-7588-1397
작성일:2011-02-21 10:42:55 110.14.232.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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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panta 2011-02-21 10:50:59
완전한 설교 원고는 첨부파일에 있습니다.
Christpanta 2011-02-21 10:46:33
어제 대학교회에서 설교한 것입니다만, 여러 번 설교한 것을 특히 "쉬운 설교는 얕은 설교가 아님"을 실천하려고 많은 부분을 삭제하여 쉽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