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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신교단 환원의 진실은? (강남일교회 이재술원로장로)

닉네임
김윤종
등록일
2012-06-12 10:09:11
조회수
7322
총회 홈페이지 게재원고
총대총대 – 교단설립 60주년 기념 사업 추진 위원회


고신 교단 설립이 과연 分裂이냐 分立이냐?


Ⅰ. 예장 승동 측과 고신 교단의 合同과, 고신 환원의 진실은?


고신 교단 설립 제60주년을 맞이한 지금도 교단, 교계 일부에서 문제삼고 있는 고신 교단 설립이 분교냐 분립이냐의 양론과 예장 승동 측과 고신 교단의 合同 및 고신 환원의 진실은 무엇이냐? 그 역사적인 진실과 문제점의 이해를 돕기 위해 아래와 같이 몇 가지의 자료와 所見을 제공하오니 살펴보시고 교단적 次元에서 그 역사적 진실을 밝혀 史實대로 定立하기 바랍니다.

(1) 史實定立의 기준

첫째: 본건은 하나님의 섭리와 한국 장로교 역사의 뿌리, 즉 고신 교단 창립의 역사적인 흐름 次元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일제해방 南北分斷 6.25사변 교회분파)
둘째: 고신 교단의 설립목적에 비추어 살펴보아야 한다. (고신총노회 발회식 선포문 參照)
셋째: 대한예수교장로회의 소위 상속받은 長子교단이 어느 교단이며 (예: 에서와 야곱 – 가인과 아벨: 장로교 족보의 본관, 종파, 分家, 合家 등) 평양신학교의 정통신학을 전수받은 신학교가 어디냐?
넷째: 고신 교단이 1952.9.11에 分立하지 않고 당시 남부총회 (37회) 교권파와 타협, 同行했다면 그 결과 여하? (장로교 정통신학 개혁주의 진리 파수)
다섯째: 만약 고신 교단이 예장 승동 측과 合同하지 않고 또 고신으로 환원하지 않았다면 그 결과 여하? (고신이 초기에 분립 후 50여 교파가 分敎)

위의 정립 기준에 의거, 이해하기 쉽도록 비유로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다.

(2)문제점의 경과

1. 일제해방 후 1945/8/17자 주남선 한상동목사, 손양원 전도사 외 10여명이 (기념사진 12명) 출옥하자마자 곧 그분들의 옥중기도제목이 씨앗이었던 한국장로교회 재건 5大 원칙 3大 방안 발표, 당시 교역자의 자숙 2항목 설정 等 그 옥중기도 제목대로 추진하였다. 그 과정을 고신 설립 씨앗과 고신생명나무교회로 비유하여 특히 그 시대가 요구하는 한국 장로교 재건, 정화, 개혁주의 복음화 운동 위해 일제해방 전에 실종되고 허물어진 제단, 짓밟힌 초대교회적인 정통신앙의 씨앗을 찾아내고, 환란 박해에서 살아남은 교회터전-생명교회노회-의 베임 받은 그루터기를 되찾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였다.


2. 1945/9/18일 경남노회 복구를 선언하고, 재건노회를 조직하고, 1946/6/11~14 남북총회에서 전국 총회 제 27회 時 신사참배하기로 결의한 것을 취소결의(32회)하여 일제하 교회터전을 갈아엎고 평양신학교의 설립목적 그 전통신학을 승계 받기 위해 1946/9/20 고려신학교를 설립하여 대 단지 통합터전 안에서 고신 씨앗을 뿌리고 생명나무 그루터기를 찾아 살리는 등의 개혁 자립하는 노력을 겨우 해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일어난 1950/6/25 사변의 수난과 교회 터전분쟁 세속풍파 속에서 북한교회는 사라지고 당시 진리의 노선이 혼돈한 때 살아남은 생명나무 고신 씨앗을 남부총회에서 챙겨 1952/9/11 고신 총회 터전을 회복시켰다. 겨우 현상유지로 버티면서 경영하는 과정에서 1960~1961년을 맞아 고신터전교회신학교만으로는 그 한계가 있고 당시 교세확장시대의 흐름을 자각한 당시 교단 지도자들이 서둘러 교단간의 합동을 결정하고 당시 신앙의 노선이 같은 것으로 보이는 터전씨앗생명나무 대 단지 터전인 예장 승동 측 합동교단에 고신생명나무교회 전부를 이식혼식(교단합동)하여 2년간 재배(운영경과)한 셈이다. (그러나 합동 절차와 합동 상황판단의 오류 有)


3 . 그러나 막상 합동하여 2년간 공동경영 해보니 일제시대 전후하여 오랫동안 교단주변환경과 풍토가 맞지 않고 그 옥토와 같은 터전생명나무들이 변질, 오염 시들고 병들어 회생, 재건, 정화운동(회개개혁 합동원칙위반)이 어려워 견딜 수 없어 만부득이 하여 1963/9/17에 다시 본 터전 고신 교단 및 고려신학교의 터전으로 재 이식(교단환원, 신학교복교) 보식재배한 결과 원상회복 및 목적달성 하기에는 역시 애로와 난관이 있었다. (합동과 환원의 명분-책임문제 발생, 합동위원의 회개 사과-제13회 환원총회록 p.33참조)


4. 결과적으로 합동이식 당시 고신교회수 590중 환원 당시 교회 수 435로써 결국 155교회의 손실을 보게 되었다.


5 . 환원 후 고신 교단은 재 이식 보식한 교회생명나무를 새로 번식 재배하여 열매를 맺게 하니 환원 후 39년 만에 겨우 1732교회로써 고신 교단 설립 제 6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다.


6 . 고신 교단 설립-합동환원 관계약사는 아래와 같다.(별지참조)

2012. 6
고신 총회 자문위원
전 총회 헌법개정위원
전국 원로장로회 증경회장
이 재술 장로
(010-7186-8405)



Ⅱ. 고신 교단 설립, 예장합동과 환원관계 약사

1. 1945.8.17 주남선 한상동목사, 손양원전도사 외 20명 출옥
2. 1945.9.2 경남노회재건 신앙부흥회 준비委 조직
3. 1945.9.8 남부大會 개최(새문안교회)
4. 1945.9.18 南韓선봉으로 경남노회 복구선언, 재건노회 조직. 당시 교역자들의 자숙 안 2항목 결정. 자숙 후 시무투표를 하기로 하다 – 자숙회개기도회 개최
5. 1945.12.3 48회 정기 경남노회에서 탈퇴선언, 진리운동 지지하는 67교회로 신도大會, 자숙회개재건노회조직
6. 1946.6.11-14 제 32회 총회 제1회 남부大會 개최 (12개 노회)
7. 1946.6.12 남부총회에서 27회 총회 시 신사 참배한 것 취소하기로 가결하다. 조선신학교를 총회 직영하되 고려신학교로 개칭하기로 하다.
8. 1946.5.20 고려신학교 설립 기성회 조직
9. 1946.8.20 진해신학강좌 6/23 1회 강좌 강사 박윤선목사.
10. 1946.9 KNCC 한국기독교연합회 조직
11. 1946.9.20 출옥 지도자 중심으로 평양신학교의 정통을 계승하기 위해 고려신학교 정식 개교하다(금성중학교). 이사장 주남선 목사, 교장서리 박윤선목사
12. 1946.10 북한기독교연맹 조직
13. 1946 경남노회 김길창 파가 불법 경남노회 조직하므로 노회가 분열되다.
14. 1947.1.3 법통경남노회 조직. (6개 노회)
15. 1947.4.18-22 제2회 남부총회 – 전국 총회계승33회 (총 회장 이자익)
16. 1947.10.14 고려신학교 박형룡교장 박윤선목사 한부선 선교사 교수취임
17. 1948.5.27 박형룡교장 신학교육문제 대립으로 사임 (한상동목사 충격 받아 1주간 입원) (8.15 고신 떠나서 1953.10.13 총회신학교 취임)
18. 1948.8.5 제 2대 고려신학교 교장 박윤선박사 취임
19. 1949.4.22 조선예수교장로회를 대한예수교장로회로 명칭 변경
20. 1949.5.27 제 35회 총회에 경남노회 수습전권위원보고 고려신학교 한부선 선교사 단절강단교류금지 *교회학교 지도방침(4) 제정
21. 1950.4.21-25 제 36회 분규로 비상 정회하다 9/5 속회하기로 친일목사세력교권으로 경찰동원진압유회 9/5 속회 6.25사변으로 속회 不可
22. 1950.5.12 총회 특별위원회 결의- 경남노회 분열이전. 제51회 회복노회 조직하기로
23. 1951.5.25 제 36회 총회에서 출옥자 중심의 경남법통노회 총대입장권발행 접수거절(축출) 총회와의 관계단절
24. 1951.5.27 교단난국극복 건승을 위한 특별 금식기도회 갖다.
25. 1951.9 교회생활의 3大 원리채택-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
신앙생활의 3대요소 채택-믿음, 소망, 사랑
26. 1951.10.21 순교자 추모예배- 전국교회가 일제히 실시하기로
27. 1952.2.29 교회재건운동- 각 교파 연합재건협회 조직하다.
28. 1952.4.29-5.21 제 37회에서 경남법통노회 총대12명 제명. 고려신학교파와 단절-경남법통노회 57회에서 총 노회 조직하기로 가결하고 신도大會 개최
29. 1952.9.11-12 고신총노회 조직하다, 교회 수 302 / 세례인 4419명 (총노회 조직목적: 전통적인 고신 정신을 지지하는 전국교회를 규합, 통합하여 개혁주의 신앙운동으로 장차 법통총회를 계승하기로 한다.) 총노회 발회식 선포문 참조.
30. 1952.9.12 자숙 후 3일간 부흥회 개최키로 하고 10.16일 총노회 발회식 갖기로 하다.
31. 1952.9.22-3주간 전국 목사 장로 전도사의 자숙기간으로 정하고 신사참배공인 죄와 자인죄를 통회자복하는 회개운동 전개하다. (죄: 신사참배, 신도연명가입, 미소기바라이기타공인죄와 자인죄) * 자숙기간 중 공 예배 인도, 성례, 모든 주례, 공중대표기도 중지하기로
32. 1953.3.1-6 제2회 총노회 개최하다 (지방회: 대구, 경안, 경주, 전라)
33. 1953.4.26 제38회 총회에서 27회 신사참배하기로 결의한 것을 취소선포하고 기도회 가졌다 (1954.1.24 합동 39회 신사참배결의조항 삭제결의하고 선포하다)
34. 1953.6.10 기독교 장로회 分立 (김재준목사 성경유오설로 이탈)
35. 1954.3.12-13 제3회 총노회 개최
36. 1955.4.19-20 제4회 총노회 개최하다
37. 1956.4.17-19 제5회 총노회 개최하다
38. 1956.9 교회와 교역자의 지도원리4항목 제정 반포하다(41회)
39. 1956.9.19-20 총노회 6회를 총회 제6회로 개편하고 고려신학교 개교10주년을 기해 개혁운동전개-과거 잘못을 회개하고 개혁 시정하여 새롭게 도약할 것을 선포하다. (6노회 568교회 / 세례인 15350. 총회장 이약신 목사)
40. 1957.2 박윤선교수가 교회당소송문제반대로 교장 직 사퇴 후 9月 총회에서 소송하지 않기로 합의하므로 복직하다.
41. 1957.9.19-20 제7회 총회 개최하다.
42. 1958.9.23 제8회 총회를 개최하다 장로교 교시 9항목 제정 반포하다.
43. 1959.9.22 제9회 총회 개최하다 (총회회수 44회로 통산 건은 현행 9회로 하기로)
44. 1959.9 예장44회에서 총회원칙 5와 정책4항목결정선포
45. 1959.9.28 제 44회 총회에서 합동 측 分立하다.
46. 1959.11.24-29 통합 측에서 보수개혁 측 분립하다
47. 1960.2.19 합동 측과 통합 위해 W.C.C를 탈퇴하기로 가결하다.
48. 1960.7.9 박윤선박사 교장직 사임(해임). 주일성수 건덕 上 이유로 징계한 것은 신학과 교리문제가 아닌 主日에 부득이한 일ž자비의 일로서 성경적 교리적으로 부당함을 밝혔으나 이사회와 갈등-징계 사임하다
49. 1960.10- 박윤선 교장직 해임에 반대의 뜻 – 견해를 같이하는 한부선 선교사도 고신 교단, 고려신학교와의 공식 관계 단절되다
50. 1960.9.20 제 10회 총회 개최하다 (회장 송상석 목사) – (합동 제25회). 신앙 노선이 같은 예장 승동측과 고신 교단과 합동하기로 가결하다(합동취지 및 선언문 參照) 각 노회에 수의하기로 하다
51. 1960.9.21 부득이한 경우의 한계: 본인 신앙양심에 거리낌이 없어도 남에게 부덕, 건덕 上 문제화될 때 도덕적 책임을 지도록 하다
*주일 성수의 한계: 성경과 예배지침, 신도게요서에 명시된 대로 지키도록
52. 1960.12.13 합동 제 45회 (고신10회) 속회하여 합동총회 개최하다 (총대: 고신 측 130, 승동 측 233, 계 363명) (합동총회장 한상동 목사)
53. 1961.9.25-27 제 46회 총회 (고신 11회) 개최하다 (회장 한상동 목사)
54. 1962.9.24 총회 창립 50주년 기념식 거행 (통합, 합동 – 총회 조직일 1912.9.1 자)
55. 1962.10.17 합동 측이 합동원칙을 위반하고 고려신학교가 분교가 되므로 부득이 총회는 환원하고 따라서 고려신학교는 복교하기로 하다. 고려신학교의 복교를 선언하다 (한상동 목사-이사회 합의 下)
56. 1963.9.17-19 고신 환원총회 개최하다 - 7노회, 437 교회 / 세례인 9523명
고신 제 13회 환원 총회에서 합동위원으로부터 합동 및 환원에 대한 책임자의 사과는 받고 (합동지도 잘못한 것 회개 사과) 총회적으로 전국 목사, 장로, 교역자는 1주간 (9/23-9/29) 자숙회개하기로 결의하다 (자숙은 합동에 대한 자숙이며 환원은 절차 上 불비한 점이 있음: 질의응답)

▶ 고신 교단의 분립 – 교단 간 합동과 환원한 이후 – 관계 중요한 총회 결의사항을 아래와 같이 略記한다

57. 1965.9.6 재단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고신)총회유지재단의 설립 허가 받다
58. 1965.9 – 고신 교단의 교육이념 설정하다 (15회)
59. 1967.5.17 학교법인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고려학원 설립허가 받다
60. 1968.2.15 제52회 속회에서 통합 측과 합동 측이 합동하였음을 확인하다.-합동안, 합동원칙
61. 1968.4.8 복음병원부설간호학교 설립인가
62. 1969년 제19회총회시 신앙고백대소교리문답을 교단 신조로 채용, 합동 제54회 총회시 반포한 성직자의 활동관계4대지침 수용
63. 1970.12.30 복음병원을 학교법인고려학원 수익기관으로 편입
64. 1973.5.9 송상석목사 대 법인이사회 간 분규 법원판결
65. 1973.9.20 제 23회 총회 정회 – 12.17 제 23회 총회 속회
66. 1974.12.4 송상석목사 면직
67. 1974.9 개혁주의 교회의 3大 표시 설정하다 (24회)
68. 1976.1.6 한상동목사 서거하다
69. 1976.9 고신 교단의 이념 설정하다
☞신 구약성경과 본 장로회 표준문서들 (신앙고백, 大小교리문답, 교회정치ž권징조례, 예배지침)에 의한 개혁주의신학을 따라 믿고 전하고 생활한다 (26회)
소송문제에 대한 총회의 입장
“사회법정에서의 성도간의 소송은 부득이한 경우와 교회법에 불복하는 경우 외에는 소송하지 않는 것이 총회의 입장이다”로 천명하다
☞ 소송반대파는 총회를 떠나 반고소파 교단을 신설하다
70. 1978.2.5 고려신학대학을 고려신학대학원으로 인가 받다
71. 1980.9 고려파를 고신으로 명칭 변경
72. 1981.2.19 복음병원을 고신의료원으로 개편하다 (복음병원 설립목적 참조)
73. 1983.4 의학부를 의과대학으로 개편
74. 1984.2.13 의료법인 용지의료재단을 인수하여 1984.3.8자 김해복음병원으로 개원하다
75. 1986.9. 제36회 대한예수교장로회총회로 명칭 통일 표기는 "General Assembly of Presbyterian Church in Korea"로 하다.
76. 1988.9.20 신사참배 상기 50주년 기념 기도회 갖기로 하다
77. 1992.9 이단은 사도신경 고백거부와 삼위일체 하나님을 부인하며 본 교단총회에서 이단으로 규정지은 집단에 한한다 (42회)
78. 1992 고신 교단 헌법개정 (1992년판)
79. 1993.3.1 고신대학을 고신대학교로 교명 변경하다
80. 1996.2.1 고신언론사 출범
81. 2001.9.17 제 51회 총회가 복음병원 노조 데모로 폐회하고 10.9일자 총회총대위원연석회의 개최하다 (101명)

Ⅲ. 1960.9.20 합동과 1963.9.17 고신환원에 대한 評價자료

1. 합동과 환원은 고신의 신앙과 생활에 혼란 초래 – 고신정신 퇴색 등 많은 것을 잃었다. 박형룡, 박윤선 두 박사도 잃었다 – 합동절차에도 하자가 있어 떳떳하지 못했다 (50주년 許)




2. 합동 측, 통합 측, 기장 측에서 – 고신 측 총노회 조직 분립에 대하여 처음 총회록 기타기록에는 '분열, 이탈'이라고 표현, 기록하였으나 그 후 교단 연혁 및 교단 약사기록에는 '분립'으로 고쳐 기록한 바 있으나 타 교단마다 그 분열, 분립 의원인과 사유는 명백히 밝힌 바 없다.


3. 제 36회 속회 총회는 고신파를 정죄하고 이들을 잘라냈다. 그러나 출옥성도 중심의 고신파는 경남법통노회를 구성하여 분립하였다. 고려신학교 파는 대의명분이 뚜렷하였다. 즉 신사참배문제ž교회재산문제, 진리 파수, 철저한 청교도적 신앙과 회개운동 제창하는 등 깨끗하게 분립하였다 (간추린 한국교회사).


4. 分立과 分敎의 한계: 정치문답조례 – 정치공리 제 3문답: 교회설립규례, 회원 입회, 퇴회, 분립교회 – 교회직임자는 치리법 신복 要


5. 조례 445문답: 교파 교회분열은 – 분교의 大罪이며 – 성경위반자, 권면 시 회개치 않는 자 外에는 분교 불가함
한계 적용 분류 - 분열:분파, 이탈:탈퇴, 축출:분리, 분립:分敎


6. 분파분립의 동기 및 근본 원인은: 일제 해방직후 출옥 지도자 중심의 남부 총회, 경남법통노회로 재건ž조직된 고신파는 처음부터 (고려신학교 개교, 고신총노회 조직 때) 고신 환원할 때까지 교단적인 중대한 결정이나 사건 발생 시 마다 고신 관계 당사자는 물론 교단 총회, 교회지도자 전원이 자숙, 회개, 개혁의 진리운동을 계속한 반면, 일본기독교조선장로교단에 속해 기득권 가진 교권주의파는 신사참배 결의한 것 취소하고 단 한번 회개하였으면 사죄된 것으로써 계속 개혁운동함을 반대하면서 고신파를 독선, 교만, 분열주의교파로 정죄, 축출시킨 것이 큰 원인이라 할 수 있다

Ÿ 학교법인 고려학원 관선이사 파송
Ÿ 학교법인 고려학원 이사회 조직(회복)
2012 고신 교단 헌법개정 (2012년판) 발간
이하 생략
작성일:2012-06-12 10:09:11 183.101.17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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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ly3136 2012-06-13 10:24:32
이미 제36회 총회 때 본 교단의 모체인 경남법통노회가 분열하여 나온 게 아니라 축출된 게 너무도 분명한 만큼 고신의 교단 설립은 분열 아닌 분립으로 정립함이 옳다고 본다. 게다가 논자에 의하면 합동, 통합, 기장 측 교단에서도 분립으로 기록하고 있다지 않은가!
환원에 있어서도 그렇다. 논자에 의하면 총회나 노회 석상에서 지도자 전원이 자숙하고 회개하였다고 하면 이것은 곧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성경에 '죄를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주님도 죄를 용서하시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신다'(요일1:9)고 했으니 이제는 과거사를 이쯤 정리하고 우리 교단 나름 개혁주의운동을 계속해 나아가며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는데 매진해야 된다고 본다.
참고로 이글을 쓴 이재술원로장로를 소개한다.그는 현재 강남일교회의 원로장로로 금년 만90세(1922년 생)이며 거창 출신이다. 그는 우리 교단의 태동기와 합동과 환원과 성장기를 모두 거친 본 교단의 역사의 산 증인이다. 고 남영환목사와 함께 교단에 깊이 관여하였으며 교단사를 연구하는 분들이 자문을 구할 정도로 그가 가진 자료는 사실에 가깝다. 그는 고령에도 불구하고 몇 회 총회 사건과 총회록 페이지를 기억할 정도로 기억력은 탁월하며 지금도 꼼꼼하게 기록을 남기며 집필을 할 정도로 건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