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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힘이 있을 때 주를 위해 수고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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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데반황
등록일
2013-09-04 08:47:42
조회수
5808
아직 힘이 있을 때 주를 위해 수고하라

전도서 12:1-14

1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2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3 그런 날에는 집을 지키는 자들이 떨 것이며 힘 있는 자들이 구부러질 것이며 맷돌질 하는 자들이 적으므로 그칠 것이며 창들로 내다 보는 자가 어두워질 것이며
4 길거리 문들이 닫혀질 것이며 맷돌 소리가 적어질 것이며 새의 소리로 말미암아 일어날 것이며 음악하는 여자들은 다 쇠하여질 것이며
5 또한 그런 자들은 높은 곳을 두려워할 것이며 길에서는 놀랄 것이며 살구나무가 꽃이 필 것이며 메뚜기도 짐이 될 것이며 정욕이 그치리니 이는 사람이 자기의 영원한 집으로 돌아가고 조문객들이 거리로 왕래하게 됨이니라
6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8 전도자가 이르되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
9 전도자는 지혜자이어서 여전히 백성에게 지식을 가르쳤고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여 잠언을 많이 지었으며
10 전도자는 힘써 아름다운 말들을 구하였나니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느니라
11 지혜자들의 말씀들은 찌르는 채찍들 같고 회중의 스승들의 말씀들은 잘 박힌 못 같으니 다 한 목자가 주신 바이니라
12 내 아들아 또 이것들로부터 경계를 받으라 많은 책들을 짓는 것은 끝이 없고 많이 공부하는 것은 몸을 피곤하게 하느니라
13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14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전도자 솔로몬은 이 세상 사람 가운데 가장 지혜롭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내린 인생에 대한 결론은 ‘헛되고 헛되도다 모든 것이 헛되도다’라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결론은 하나님의 나라를 배제한 결론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인생들에게 있어서 그 삶의 결국은 허무라는 것입니다.

저는 솔로몬의 결론을 믿습니다. 그 이유는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지혜를 주셨던 자이고, 따라서 저보다 훨씬 더 지혜롭고 경험이 많고 논리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9절에서 11절까지 보니 “또 깊이 생각하고 연구하였다”고 하며, “진리의 말씀들을 정직하게 기록하였다”고 증언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11절 후반은 결국 전도서의 말씀은 “다 한 목자가 주신 바”라고 합니다. 이는 전도서의 내용은 우리의 영원한 한분 목자이신 주 하나님께서 주신 계시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11절에 의해 전도서는 정경에 들어오게 됩니다. 즉, 솔로몬이 전한 전도서의 교훈은 하나님의 영감을 받아 주신 절대 진리인 것입니다.

전도서의 마지막 장에서 솔로몬이 내리는 결론은 영원한 세계와 연결되지 않는 모든 수고는 결국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고 그분을 위해 수고하지 않은 수고는 반드시 헛되다는 것입니다.

이에 불신자의 삶은 그 마음이 하나님을 향해 전적으로 부패하여 있기 때문에 철저하게 헛될 수 밖에 없습니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리라”(갈 6:8).

하지만 신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성령으로 살 수 있습니다. 그러한 삶은 하나님을 위한 인생이 되면서 영원한 가치를 누릴 수 있기에 영원토록 만족한 삶이 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갈 6:8).

솔로몬은 전도서를 마치면서 인생의 끝과 영원한 세계를 바라보며 독자들을 향해 권합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영원한 의미를 지닌 가장 가치 있는 삶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분의 명령을 날마다 순간마다 지키며 살아가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이러한 삶이 가능한 이유는 성령으로 거듭났기 때문이며 믿음으로 주 안에 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힘써 주 안에 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세세하고 철저하게 날마다 순간마다 지키는 것이 가장 복되고 영원한 보람있는 삶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사 가운데 가장 지혜롭던 솔로몬이 내린 결론입니다.

그리고 분명한 진리 하나는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사람이 알든 모르든, 우리가 행한 선행 및 죄악은 다 하나님 앞에서 심판 받게 될 것입니다. 선행에 대해서는 영원한 상을 베푸시고, 악행에 대해서는 그 악행으로 인해 받을 상을 잃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해 믿음으로 철저하게 순종해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솔로몬이 말하는 선행은 양심적인 차원의 선행이 아닙니다. 솔로몬이 말하는 선행이란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행하는 ‘순종’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셨는지 잘 연구하고 배워서 주 하나님을 따르며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상급을 받는 선행이 되는 것이며, 그것이 신자들의 본분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솔로몬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구체적인 삶을 격려하기 위해 전도서 12장에서 모든 사람에게 힘을 잃을 때가 찾아온다는 자명한 사실을 기억나게 만듭니다. 모든 인생에게 이 세상에서의 즐거움들이 사라지는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때는 다름 아닌 죽음의 날입니다. 세월이 지나 죽음이 가까이 오면 젊었을 때의 광채는 사라집니다. 사물들에 대한 예리한 감각들도 수그러듭니다. 인생 가운데 빛나던 시절이었던 해와 달과 별들은 구름에 가리울 것입니다. 솔로몬은 이 사실을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대조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겠습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절).

우리는 평생 하나님을 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을 발견해야 하는 때는 가능한 어린 시절이 좋습니다.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딤후 3:15).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훈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4).

하나님을 아는 것은 나이간 든 후보다 어린 시절에 아는 것이 훨씬 쉽습니다. 그 이유는 그 마음이 맑고 단순하며 전적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또한 육체의 힘이 최고로 발달하는 젊은 시기에 더욱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알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비유에 나오는 탕자는 모든 것을 탕진한 후에야 아버지를 기억하였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탕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인생의 모든 것을 탕진한 후가 아니라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 나라를 주실 때부터 아버지의 사랑과 돌보심을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을 탕진할 뿐만 아니라 죄악의 구렁텅이에 빠져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1절 후반을 보겠습니다.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1절).

곤고한 날은 몸이 쇠약해지는 때를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연로한 때가 되면 몸이 쇠약해집니다. 우리 인생은 반드시 늙음으로 인한 곤고한 때가 찾아옵니다. 성경에는 소위 “노인의 유언 장면”이 묘사되는데, 우리는 그곳에서 노인들의 몸이 허약하여진 것과 곤고하여진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이삭이 유언할 때 그는 늙었고 그의 눈은 침침하여 사물을 제대로 분별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삭이 나이가 많아 눈이 어두워 잘 보지 못하더라”(창 27:1).

야곱 역시 몸이 노후하여 늘 침대에 누워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병이 들자 “어떤 사람이 요셉에게 말하기를 네 아버지가 병들었다고 하므로 그가 곧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함께 이르니”(창 48:1), 늙은 야곱은 그때에야 간신히 침상에 앉아 손을 펴고 손주들을 축복하였습니다.
“나를 모든 환난에서 건지신 여호와의 사자께서 이 아이들에게 복을 주옵소서”(창 48:16).

신약에서도 비슷한 장면들을 보게 됩니다. 늙은 스가랴, 늙은 시므온, 또한 늙은 바울, 늙은 베드로 등, 그들은 육신의 장막을 벗을 때가 다가오자 아이들과 젊은이들에게 복을 빕니다. 그들은 젊은 때에 창조주를 기억하였던 자들로서 늙은 때에도 하나님의 뜻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며 후세들을 위해 복을 빌고 이 세상을 떠나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늙어가면서도 바울이 담대하게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고후 4:16).

이로 보건대, 속사람이 날마다 새롭게 되지 않고 오직 그 육체만 쇠약하여지는 자들은 참으로 허망하고 헛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늙어서도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며 그 속사람이 강건하기 위해 힘이 있을 때, 젊을 때에, 아직 건장할 때에 더욱 경건에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2절을 보겠습니다.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2절).

인생에는 젊음의 때가 있지만 그 광채를 잃는 때가 반드시 찾아옵니다. 이전처럼 힘을 낼 수 없습니다. 젊은이들의 예리한 눈에 비치는 이 땅의 아름다움은 얼마나 대단합니까! 위대한 시인들은 젊을 때 역사에 영원히 남을 시들을 지었습니다.

어린 아이들에게 이 세상이 밝고 흥미진진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자연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는 용량을 지녔으며, 이러한 용량은 얼마든지 무한하게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풍성함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린아이들의 세계를 결코 제한하거나 거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은 거듭난 영혼들의 눈에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 정도가 아니라 영적인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기 시작한다는 사실입니다. 위대한 시인 존 밀턴은 젊을 때 감각적인 눈이 열려 자연의 아름다움을 남달리 많이 보았습니다. 하지만 시력을 잃은 후에는 도리어 영적인 눈이 열려 그 동안 보이지 않던 하늘 나라의 더욱 귀하고 아름다운 영원한 것들을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직 비관론자들만이 젊은 시절의 힘과 지혜와 예리함과 매력을 멸시합니다. 하지만 젊다고 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성령으로 거듭나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3, 5).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의 젊음의 아름다움을 인정하지만 그 역시 결국은 ‘헛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깨닫지 못한 불신자들은 계속적으로 젊은 시절의 사랑스러움과 매력을 붙들어보려고 노력하지만 어느새 젊음의 즐거움과 행복은 손가락 사이로 빠져나가 사라질 것입니다.

3-8절은 죽음이 가까올수록 인간의 신체가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 시적으로 멋지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먼저 건장한 몸이 우람한 집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원래 인간의 몸은 하나님의 형상을 나타내며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지어졌습니다. 죄악이 들어오기 이전사람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어떠했는지는 지금 우리로서는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술적인 솜씨가 첫사람 아담과 하와의 몸 전체에 극도로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지금 인간의 몸은 타락에 의해 원래의 영광이 손상되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전히 인간의 몸은 참으로 신비하고 놀랍습니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올수록 인간의 몸은 허물어지기 시작합니다.

3절의 “집을 지키는 자들”은 양 팔을 의미하고 “힘있는 자들”은 양 다리를 의미합니다. 그런데 양 팔은 연약하여져서 흔들거리며 떨고 양 다리는 점점 구부러집니다. 맷돌질 하는 자들은 이빨들을 나타내는데 이빨이 한 둘 빠지면서 이빨이 적어집니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씹지도 못합니다. 창문들로 내다보는 자는 시력을 말합니다. 그런데 시력이 약해져서 자꾸 눈이 침침해지고 어두워집니다. 길거리 문들이 닫혀진다는 것은 귀가 잘 들리지 않게 되는 것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맷돌 소리가 적어진다는 것은 음식을 씹는 것이 힘들고 느려진다는 뜻입니다. 신경은 날카로워져서 작은 새의 지저귀는 소리만 들어도 잠을 못이루고 뒤척이다 일어납니다. 여러 소리에 쉽게 놀라며 목소리는 작아지고 높은 산에 오를 힘이 없어집니다. 높은 곳이 두렵고 머리카락은 살구나무 꽃처럼 새하얗게 됩니다. 메뚜기처럼 작은 일도 이제는 큰 짐이 되고 정력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러한 묘사들은 사람이 늙어서 이 땅의 여정을 마칠 때가 가까왔음을 알려줍니다.

6절을 보니,
“은 줄이 풀리고 금 그릇이 깨지고 항아리가 샘 곁에서 깨지고 바퀴가 우물 위에서 깨지고” 라고 묘사합니다. 이 묘사는 사람의 신체 기관들의 아름다움과 뛰어난 기능들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람의 척추는 은 줄로 묘사되었고 총명한 머리는 금 그릇으로 묘사되었습니다. 지치지 않는 심장은 계속 사용되는 항아리로 묘사되었고, 혈액 순환 시스템은 우물에서 사용되는 도르레(바퀴)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은 생명을 유지하는데 가장 중요한 기관들에 대한 묘사입니다.

죽음이 몸을 공격하여 그 귀한 기관들을 파괴하기 전까지는 은 줄과 금 그릇, 항아리, 바퀴 등은 쉬지 않고 활동을 합니다. 그러나 죽음이 가까올수록 그 기능들이 연약하여집니다. 그리고 마침내 죽음이 집 안으로 들어와 그 모든 것들을 파괴하여 기능을 상실하게 될 때 신체는 흙으로 돌아갑니다.

이처럼 죽음이 다가올수록 인간의 몸은 허약하여지면서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절과 2절과 7절은 반복하여 강조합니다.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몸은 흙으로 돌아가고 사람의 영이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하나님을 기억하라.”

사랑하는 여러분!
육체의 몸은 땅으로 돌아가 흙이 됩니다. 그러나 신자의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갑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께로 돌아갈 때 의식을 갖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뵙게 될 것입니다. 그때 주 앞에서 “잘 하였도다”라는 칭찬을 듣는 신자는 복됩니다.

한편 불신자의 영혼은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 영혼은 하나님과 완전하게 단절된 무한한 어둠속에서 이를 갈며 영원한 고통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이 땅의 먼지로 돌아간 육체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신자의 육체의 부활은 사람의 삶을 가장 충만하게 회복할 것입니다. 그때 신자는 자연의 몸으로 심고 영적인 몸으로 일어날 것입니다.
“이 썩을 것이 반드시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전 15:13).

따라서 하나님께로 돌아간 영은 훗날에 영광의 몸을 입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성도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집”을 덧입기를 간절히 소망하였습니다.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집 곧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줄 아느니라. 참으로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이렇게 입음은 우리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참으로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히려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 삼킨 바 되게 하려 함이라”(고후 5:1-4).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주께서는 우리를 구속하기 위해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빌 2:8).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롬 6:9). 마찬가지로 죽음은 더 이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은 우리의 영혼과 몸에 다 영향을 끼칩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함으로써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우리 영혼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들어갔고 우리의 육체는 주의 재림 때에 놀라운 변화를 경험할 것이니다. 즉,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았기 때문에 더욱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롬 8:23).

그때 우리 몸은 다시는 연약하여지거나 흔들거리거나 구부러지거나 이빨이 빠지거나 귀가 들리지 않거나 두통을 앓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고전 15:42-44).

이에 바울은 부활의 영광이 모든 신자들에게 기다리고 있기에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아직 강건할 때에 기회를 놓치지 말고 주를 섬기라고 당부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우리 신자들이 간절히 기다리며 바라는 그 위대한 순간이 마침내 임하면, 우리는 죽임 당하신 어린 양의 얼굴을 뵈며 하나님의 얼굴의 완전한 광채를 뵈옵는 상태로 변화할 것입니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전 15:26).

이처럼 성경은 중생한 사람의 궁극적인 모습에 대해 언급합니다. 나아가 동물계를 포함한 이 세상에 속한 모든 피조물도 그 날을 사모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라”(롬 8:19).

사랑하는 여러분!
솔로몬은 그의 삶을 마무리하며 결론을 내립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전 12:13-14).

솔로몬이 내린 결론은 인생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는 것”만이 의미를 갖는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경외란 노예가 주인의 매를 두려워하는 그러한 두려움이 아니라 존경하고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아들이 나타내는 거룩한 진심을 의미합니다. 또한 주의 명령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떳떳하기 위해 인간적인 의를 쌓는 율법적인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서 감사의 보답으로 하나님께 순종함을 뜻합니다. 즉, 우리로 하여금 사랑에서 나오는 순종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십자가의 구속을 감당하게 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실 것입니다. 그때 주께서는 우리가 어떤 사회적 신분을 가졌었는지, 얼마나 돈이 많았는지, 어떤 감정을 갖고 어떤 신앙 체험을 하였는지 평가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심지어 신앙 고백조차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때 주께서 귀하게 여기시는 것은 오직 우리의 거룩한 성품과 순종입니다. 거룩한 성품은 그리스도의 형상을 얼마나 닮아있는가 하는 것이며 순종이란 그분의 뜻에 따라 얼마나 내 주장을 버리고 내 삶을 드렸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내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타냄이 우리의 성품이 되어갑니다. 또한 주께 순종할 때마다 그분의 형상이 나의 내면의 사람을 빚어갑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영원한 실체는 오직 그리스도의 생명 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거룩한 성품과 순종만이 하나님 앞에서 가장 귀하며 영원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현재 우리는 십자가 그늘 아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며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될 날을 준비할 수 있습니다.

불신자들에게 말합니다. 더 늦기 전에 하나님 없이 살던 허망한 삶을 회개하고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마음에 영접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와 무관한 불신자로 죽음을 맞게 되면 그 사람은 지옥에 들어가 불못에 떨어집니다.

신자들에게 말합니다.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를 위해 사는 것만이 참된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왕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우리의 모든 삶을 드리기를 바랍니다. 즉, 고통의 때이든, 즐거움의 때이든, 좌절할 때이든, 형통할 때이든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기억하며 그분의 명령에 순종하기 바랍니다.

우리 인생이 쏜살같이 지나 죽음을 맞게 될 것을 기억하면서 아직 건장할 때, 기력이 있을 때, 특히 젊을 때에, 영원한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며 섬기는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스데반 황, 인천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작성일:2013-09-04 08:47:42 58.127.75.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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