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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괴지심(自愧之心)

닉네임
이광수
등록일
2014-01-27 20:23:48
조회수
4050

자괴지심

 

매섭게 추운 2013년 12월, 아쉬움을 안고 한 해를 마무리 하게 되고

새해를 주님의 말씀안에서 살아 가리라 결심한 새벽기도 시간이다.

하늘이 희끄머레 하게 옷을 벗고 있었고 동녘이 해 맑은 물감으로 서서히

진하게 그려지고 있었다.

겨울 새벽은 움츠리다 보면 날이 밝아 버린다.

깊이 생각해 본다. 나는 누구인가? 자괴지심(自愧之心) 이란 말이 생각난다.

나는 목사, 목사라는 이 말이 오늘은 조금 생경하게 들렸다. 나는 참 목사인가?

목사답게 살아 왔는가? 지금도 살고 있는가? 위선자는 아닌가?

“그들은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3-4)

이 말씀은 오늘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이리라.

목사는 무수한 설교를 한다. 목사에게 가장 큰 짐이 되기도 하지만 반면에

설교 한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모른다.

목사는 설교를 듣고 은혜 받기보다 설교하고 은혜 받는다.

그러나 목사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설교 말씀대로 살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수십 년을 설교를 가르친 목사님에게 정중하게 질문을 한 적이 있다.

“목사님은 설교를 어떻게 준비 하십니까?”

그 목사님은 서슴없이 “삶속에서 항상 준비하지요.

그리고 책상에서 정리해서 설교 한답니다. “ 라고 대답하셨다.

설교자는 스스로 설교 말씀대로 생활 하고 그 내용을 전해야 한다는

의미임을 깨달았다.

설교 한편을 완성하기 까지 반세기가 소요 되었다는 말이 있다.

그 설교 속에는 셀수 없는 인생의 무수한 아픔, 슬픔, 기쁨 등의 사연들이 쓰며 있다.

설교는 연설이 아니다. 한 인간이 허둥대며 몸부림치면서 승리하고 또 넘어지면서

걸어온 전 생애의 뭉클 뭉클한 진액의 고백이다.

바람직한 설교는 복음의 핵심인 십자가와 부활이 내포된 메시지이리라.

목사는 매일의 생활 가운데 항상 설교 준비를 하게 되며 보는 것. 듣는 것

생각하고 체험한 모든 것이 설교 재료가 된다.

삼킨 꼴을 되새김질하는 소처럼 말씀을 항상 마음에 간직하고 반추하며

날마다의 생활 속에서 그 말씀대로 삶을 만들고 꾸미고 다듬어야 한다.

그리하여 그 말씀이 설교가 되고 이렇게 설교가 설교자의 생활 속에서 열매가 맺힌 후

그것을 설교 해야 하리라.

“나는 이 설교가 나의 생활 속에 이렇게 영향을 미쳤다.” 라는 자기 간증적인 외침일 때

감동 적인 설교가 아닐까? 믿고 체험한 후 설교할 수 있고 믿지 않고도 설교 할 수 있다.

새벽 예배를 마치고 전등불이 하나씩 소등되고 커튼 사이로 밝음이 눈짓 할때

설교자는 기도의 동굴속에 깊이 들어가서 울부짖음으로기도 하고 메시지를 전해야 하리라.

혼신의 힘을 쏟아 눈물로 부르짖는 기도, 그때에 성령의 역사를 경험 하게 되리라.

이러한 설교자가 그리워진다.

언젠가 후배 목사가 저에게 질문 하였다.

“목사님 어떻게 하면 설교를 잘할 수 있습니까?

“예수 잘 믿으면 설교 잘 하지요” 이렇게 대답 했다.

그 목사가 놀란 표정으로 다구처 다시 물었다. “목사님 그런 대답도 있습니까? “

“있지요” 설교 방법은 서툴고 어색해도 잘 믿으면 설교 잘합니다.

입으로 외치는 설교도 있지만 삶의 설교도 있다고 생각 합니다. “

런던에서 생긴 사건이다. 술과 싸움으로 거리를 난장판으로 만든 취한이(醉漢)

경찰에 체포되어 끌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잘되었다고 생각하며 은근히 좋아 하였다.

그때 갑자기 한 어린 소녀가 달려와서 그 취한과 나란히 걸으며 말했다.

“아저씨와 경찰서까지 만이라도 함께 가드리고 싶어요.”

취한은 이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목이 메고 눈물이 뺨으로 흘려 내렸다.

“고맙다 너는 예수님 같구나.” 취한은 이렇게 말했다.

이 소녀가 구세군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캐 더린 부스(1929-90)였고 그가

12세 때의 모습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교훈을 주는 행동이 아닐까?

“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 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우리가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으면 온전한 사람이라. “ (약3;3-4)

설교 말씀을 듣고도 그 말씀 따라 살아가지 못하는 성도들이 많다는

사실은 주님의 마음을 한없이 아프게 하며 말만하고 행하지 아니하는

목사들도 주님의 마음을 탄식하며 쓰리게 하리라.

과연 나는? 자괴지심(自愧之心) 이 말을 깊이 새김질해 본다.

작성일:2014-01-27 20:23:48 112.153.114.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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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수 2014-02-14 12:49:01
푸른 하늘씨
짧은 한마디가
마음을 뭉클 하게 만드네요.
고맙습니다.
이광수 2014-02-03 10:29:18
강 목사님!
“설교와 설교자”는 귀한 옥서입니다.
쥐구멍을 찾습니다.
다시 “자괴지심”입니다.
감사 합니다.
강종수 2014-02-02 19:21:39
지적을 당연히 받으시는 이광수목사님의 인격에 감동합니다. 아무리 벗이 되어도 선한 이끔에 대하여 좀처럼 달게 받기 힘든 것이 교만으로 살아 있는 人性인데, 겸허하신 인격에 감동받습니다.
이광수 2014-02-01 17:57:09
정금같이 오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는 믿음의 벗 황 목사님!
학창 시절부터 항상 올 곧게 생각하고 행동 하셨지요?
저의 졸문(拙文)에 답 글을 쓰셔서 깨닫게 하심 감사드립니다.
목사님 말이 맞습니다.
그때그때 떠오르는 생각이나 느낌을 자연스레 표현하다 보니
부족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학자가 보는 관점에서는 너무도
당연한 지적이지요.
깊이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푸른하늘 2014-01-31 19:12:26
이러한 마음을 저를 포함해 온 교회가 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