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토론방

제목

자살은 구원 없음, 으로 결론 짓습니다.

닉네임
강종수
등록일
2014-02-25 16:59:02
조회수
4417
우리가 칼빈주의의 예정론에 대한 여러 설명을 듣고 당위하게 여길 수 있으나
경험으로 우리 자신을 돌아보면,
자살하는 사람 심정을 누구라도 이해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까지 오게하시고
미래를 주 안에서 승리하기를 소망케 하신 것은
순전 주님의 은혜로 알고, 도우시는 손길을 체감하기를 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살이라는 삶의 마무리는
그 어떤 변명으로도 복음의 생명력을 놓고
변명할 여지를 얻지 못합니다.

만약에 그런 죽음에 대한 경계와 명확한 구원론적 판단이
서지 않거나 동정과 겸손(?)으로 유예하고자 하고
또 그렇게 함이 사랑으로 각색해버리면
우리는 그 진리의 절대적 가치에 대한 여러 면,
각양의 교리로 설명해야 할 문화적인것과 아울러 삶의 전반에
절대 진리의 명제를 유명무실하게 해버릴 우려를 안게 됩니다.

때문에, 자살은 생명의 하나님께 버림받음으로 결론 짓는 것이 모든 이들에게
천국과 지옥으로 판단하실 하나님의 명분과 공의를 온전케 한다고 여깁니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지혜와 판단력,
그리고 그림자처럼 따라 다니는 인정에 사로 잡혀 사랑과 심지어 건덕으로
치부해보려는 너무도 인간적인 애정 때문에,
진리를 자칫 낭만적으로 해석할까봐 두렵습니다.

자살로 인생을 마무리하는 일에 대한 비관적 판단만 안쓰럽고,
멀쩡히 살다가 일반인으로 마구 죽어가는 - 지옥가는 그들에 대한 설교,
믿으면 천국, 불신자는 지옥의 명제가 언제라도
복음 메시지의 2명제 1주제에 충실해야 하듯 일반인의 죽음도
사실은 불신이면 지옥이라고 할 때, 왜 여기에는 동정을 갖지 않는지,
자살에 대한 비판을 할 때에 꼭 저같은 사람을 공격하는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자살한 자는 지옥을 간다고 하는 말하기 불편하다면,
자살 하지 않고 자연사 해도 지옥간다는 말하기는 쉬운 일인지 ....
우리가 지금, 복음 앞에서 하나님의 공의, 그 사랑을,
그 구원의 기회를 버리는 자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한 공의의 기회를
무시한 자를 어떻게 안타까워 할 대상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화가 나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아들을 주셨고,
이 사실 앞에 녹아져서, 죄많은 우리는 그냥 주여, 하고 나아갔더니
이렇게들 용서의 은혜를 얻고 기쁨으로 목숨을 귀하게 드리고자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복음을 만난 자들의 생명력이요, 하나님께 감사함이거늘,
자살하는 자들이 많아지니까,
복음의 핵심과 하나님의 공의마저 오해하려는 것은
같은 죄인들로서 부당한 소지가 아니겠습니까?

죽을만큼 아픈 상처와 어떤 고민과 죄가 있을 때,
바로 그 자리에 주님이 필요하여 오셨고,
고난과 죽음으로 대속하심이 복음 아닙니까? 그 말 하는 곳이 교회 아닙니까?

방지를 위함도, 상담도 결국은 교회가 생명을 공급하려는
복음, 복음에만 살리는 가능성이 있고 우리 사람의 인정으로는
생명을 감당할 수는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하려는 듯이, 자살을 해도 구원받을 것처럼,
우울증이니, 병고니, 이런 일로 자살하면 구원얻는다 하니,
어디까지가 자기 의지인지, 구별하기도 어렵기도 하나,
우리가 하나님의 어떤 특별한 진노가 아니라면,
믿음을 가진 자라면 죽는데까지 가게 하지 않으실 하나님으로 믿습니다.

만약에 흔한 세상의 형편을 교회도 꼭같이 염려해주고
위로 한답시고 복음과 진리의 거룩한 권위가 없이 교회 내부에서
자살을 방조하듯, 말을 흐리면 불신자들이 우리 믿는 자들을
하나님께 희망없는 자들로 볼 수 있지 않겠습니까?

세상에서 힘을 잃고 죽을 만할 때,
교회로 나와 희망과 생명을 얻게하는 곳이 되어야 함이 교회의 본질적인 생명인데
교회, 그것도 지도자가 자살을 해버리면, 우리가 무슨 말을 어떻게 변명하리요.

저는, 교인이 자살하면 구원없음으로 결론 내림은,
복음의 원리가 그러하고 하나님의 교회의 권위가 그러한 줄 압니다.
작성일:2014-02-25 16:59:02 183.97.181.2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2014-02-26 10:16:43
귀한 글 잘 읽었습니다.
여기가 토론방이니 강종수님이 작성한 글은 함께 토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밝히는 바는 강종수님의 글에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함께 토의해서 혹 나은 '성경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답변들'이 나올 수 있지 않을까 여겨지기 때문입니다.
댁글은이런곳에님께서 작성한 동성애니 진화론이니 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당연 반론하며 세상에 더 구체적인 성경적인 글과 대안을 내 놓아야하겠지만 덩치가 너무 큰 것이니 강종수님이 작성한 자살에 대해서만 함께 토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도 아주 깊이 생각해 본 적은 없고 그냥 드는 생각만 나누며 함께 생각을 나누기를 원합니다.

1. 성경에 자살하면 지옥간다는 성경구절이 있는가?

2. 타인을 살인한 자는 구원 받을 수 있는가?
만약 가능성이 있다면 자신을 살이한 자는 구원 받을 수 있는가?

3. 자살의 자유의지를 어디까지 볼 것인가?
예1>조선 말 캐나다 선교사로 조선에 와서 2년 동안 솔내에서 한국인들과 함께 생활하며 살았던 매켄지 선교사가 '일사병의 고열'로 '정신착락'을 일으켜 권총으로 "자살"한 사건에 대해 지옥에 갔다고 말할 수 있는가?
예2>태아가 탯줄을 목에 감고 죽을 경우 자살인가? 그렇다면 그 태아의 영혼은 어찌 되는가? 칼빈의 기독교 강요처럼 영아일 때는 부모가 언약의 자손인가 아닌가가 가장 큰 기준이 될 것인가?

4. 칼빈의 기독교 강요의 "예정론"은 그 순서에 있어서 "구원론" 다음에 나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지는 않는가? 과연 "알미니안 주의"와 타협점은 없는가?
예>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렸을 때 모세가 만든 놋뱀을 보는 자들만 살아났는데 놋뱀을 보기 위해 천막에서 나오는 의지는 인간의 선행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은혜인가?

그냥 제가 강종수님 글을 보며 떠오르는 단편들만 몇 가지 적어보았습니다.
혹 글을 보시는 분들이 함께 토의하면 좋은 성경적 답변들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마음에 글을 올렸습니다. 미천한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혹 내용 중 알려주실 것들이 있으시면 댓글 달아 주시면 저도 겸비한 마음으로 읽고 더 성경적인 답변을 찾아 보도도록 하겠습니다.
2014-02-25 23:56:42
아멘입니다. 복음을 흐리게하는 인본주의적 사랑 타령에 분명하게 아니오라 해야합니다.
어제 본 뉴스에 홍석천 서울대 특강에서 동물적 사랑 나눔을 자랑스럽게 했답니다.
학문에 전당엔 이미 인본주의적 교육이 판을 치는 작금에,
교회에 그런 쓰나미가 몰려올 것입니다.
특히나 동성애에 대한 어물쩡한 교회의 태도는,
진화론의 등장에 결국 타협적인 태도를 보여 교회를 무너지게 한 일의 재판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최근 계속 일어나고 있는 자살에 대해서도 분명한 태도를
선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살은 결코 사랑으로 어물쩡 덮을 일이 아닙니다.
크리스찬들의 분명한 고백이 절실히 필요한 이유입니다.
댓글은 이런 곳에 많이 달려야 복음이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