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자유게시판

제목

호떡

닉네임
박홍철
등록일
2007-07-10 12:25:33
조회수
13193
상당히 어려운 처지에 놓여있고 어린 3남매를 둔 한 과부가
생계를 위하여 거리에서 호떡을 만들어 팔게 되었다

혹독한 추위와 어려움 속에서 호떡을 팔던 어느 날 노신사 한분이 와서
“아주머니 호떡 하나에 얼마입니까?” 하고 물었다
1000원이요 과부는 대답했다

그러자 그 노신사는 지갑에서 1000원짜리 지폐 한 장 을 꺼내
과부에게 주었다 그리고 그냥 가는 것 이었다

“아니 호떡 가져 가셔야죠” 과부가 말하자,
노신사는 빙그레 웃어며 “아뇨 괜찬습니다” 하구선 그냥 가버렸다
그 날은 참 이상한 사람도 다 있구나 하고 그냥 무심코 지나쳤다

그런데 이튿날 그 노신사가 또 와서 1000원을 놓고는 그냥 갔다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 1000원을 놓구선 그냥 가는 것이었다

그리고 봄, 여름, 가을 겨울 일년이 다 가고 거리에는
크리스마스 케롤이 울려 퍼지며 함박눈이 소복히 쌓이던 어느 날
그날도 노신사는 어김없이 찾아와 빙그레 웃으며 1000원을 놓고 갔다

그때 황급히 따라 나오는 과부의 얼굴은 중대한 결심을 한듯
상당히 상기가 되어있었고
총총걸음으로 따라가던 과부는 수줍은듯 하지만 분명히 말했다
.
.
.
.
.
.
.
“저... 호떡 값이 올랐어요”


참 재미난 이야기이다. 아마 웃자고 만든 이야기 일 것이다
하지만 위에 이야기에서 받기만 하는 사람들의 극단적인 이기심과
우둔하기 까지 한 뻔뻔스러움 그리고 그 마음에 어두움을 볼 수 있다

처음 도움을 받을 때 미안하고 고맙던 마음도 회수가 늘어갈수록
점점 사라지고 어느덧 당당해지고 뻔뻔해져 더 달라고 안달하며
왜 더 안주냐며 따지고 심지어 강제로 빼앗으려고 하기까지 한다

받는 것에 익숙하여진 사람들은 받는 그 물질에게만 관심을 집중하지
주는 사람들의 마음이나 형편, 사정 등은 관심도 없는 모양이다
뿐만 아니라 무엇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받기만하는 사람은 1000원짜리 지폐 이면에 있는
주는 이의 훈훈한 관심과 사랑을 볼 능력이 없다
받는 물질에 마음을 빼앗기면 주는 이의 마음을 못 보게 되는가 보다.

그 노신사는 추운 겨울날 추위와 배고픔 속에서 호떡을 먹고 싶어도
말도 못하고 침만 삼키고 있던 애처로운 과부의 어린아이들의 눈망울을
그냥 지나치지 못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려운 사정으로 가기 힘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루도 빠짐없이 아이들을 찾아간 것이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 된다
태초부터 우리를 향한 간절한 원함을 품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 못에서 구원하여 주셨건만
이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내용이 무엇인지 그 가치가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 별로 알 생각도 없이 구원, 천국 말로만 하는 경향이 많이 있다

또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은 얼마나의 아픔과 수고와 어려움을
당 했는가 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복 달라고 복을 더 달라고 때를 쓴다.
복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정리하면 우리의 계념의 복이란
우리 생각, 우리의 원함대로 되는 것이다

우리는 종종 우리 사정과 원함만을 관심하고 기도한다
왜 저 사람은 주면서 나는 안주냐고 혹은 왜 재는 되는데 난 안 되느냐
나도 누구처럼 돈 많은 부자가 되게 해 달라 던지
또는 무병장수와 만사형통을 빌며 때를 쓰기도하고 공을 드리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새벽마다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또는 밤마다 울며불며
몸부림을 치기도 하고 또 우리 중 어떤 이들은 뻔뻔하게 날짜까지
작정하고 40일 기도, 100일 기도로 부르짖고 심지어 아예 단체가 작정하고
나서서 기도회를 가지기도 한다

오직 우리의 원함을 이루기 위해 단결하여 일심으로...

이건 하나님께 팔 걷어 부치고 누가 이기는지 어디 한번 해보자는 것이지 무엇인가

심지어 열심이 특심한 이들 중에는 굶어가며 아주 협박적으로 안주면 목숨을 걸고
빼앗아 라도 오겠다는 식이다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아니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한 것이 있고 또 하나님이
무엇을 얼마나 잘못하셨기에 우리는 때를 쓰며 어떤 때엔 뻔뻔하게 고개를
꼿꼿이 쳐들고 항의하고 원망까지 하는가? 때로는 비굴하게 때로는 협박조로...

참으로 우리는 우리가 보아도 이해하지 못할 사람들이다
하물며 믿지 않는 사람들 눈에는 어떠하겠는가?
극단적으로 자기밖에 모르면서 입만 열면 예수, 하나님, 사랑을 말하는
참 희귀하고 별난 인종으로 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건 뭐가 상당히 잘못 되었다는 생각에 뻔뻔스럽게 나의 원함을 고집하던
비뚤어진 내 마음을 내려놓고 나의 관심을 예수님 자신에게로 집중했고
나의 모든 관념을 버리고 마음을 예수님께로 모았다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주목하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을 향해 침 뱉고 돌 던지는 사람을 감싸고 따듯이 품는 분이라면..
자신을 죽이는 사람들까지도 사랑하는 이분의 마음이야 말로 어떤 마음일까?

또 나를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님은
왜 무엇 때문에 자신의 목숨보다 나를 더 사랑하셨을까?
자기 대신 날 살려놓고 뭘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예수님의 마음에는 어떤 계획과 원함이 있을까?

나를 위해 죽으신 그 분은 무엇을 좋아 하시고 무엇을 싫어하실까?
음식은 어떤 것을 좋아하시고 또 무슨 color를 선호 하실까?

관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보니 궁금한 것이나
그 분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왜 나는 이런 것을 생각도 안 해봤을까...
그동안 입으로만 혹은 내 원함을 위해 하나님 예수님을 찾았지
내 마음에는 솔직히 하나님의 마음이나 원함엔 관심조차 없었다

분명한 것은 우리 하나님은 생각이나 마음이 없으신 하나님이 아니시다
좋아하시는 것도 싫어하시는 것도 마음에 간절히 원하심도 있으신 분이다
또 그 마음에 있는 것을 들어내시며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동안 나는 나의 원함에 갇혀 솔직히 이런 하나님을 너무나 무시했었다
이제 정말이지 돌이켜야한다고 생각 한다
만일 이런 생각에 동의 하시는 분이 있다면 그 분께 전하고 싶다
그러니 이제부터라도 예수님께 목숨 바쳐 충성하자는 것이 아니다

우리 마음이 우리의 생각과 원함에서 떠나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린
그 분을 향해야 할 것이다
적어도 진심으로 예수님께 관심을 가지자는 것이다

1000원짜리 지폐만 보는 것은 나 자신만을 보는 것이요
그 지폐의 이면을 보는 것은 주신이의 마음을 보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자 1000원이 아니라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
내 원함이 아닌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그 애절한 원함에 관심을...



“오 주여 혼돈과 흑암 속에서 해매는 마음에
빛으로 오신 당신께 관심을 가지게 하소서“
작성일:2007-07-10 12:25:33 75.83.159.3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게시물 댓글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목록
최신순 추천순  욕설, 타인비방 등의 게시물은 예고 없이 삭제 될 수 있습니다.
bansk 2007-07-19 21:07:24
죄송합니다. 붕어빵을 구워본 경험을 가진 사람으로 너무 마음이 아파서 쓴소리가 나왔습니다. 본 뜻은 이해하지만 저의 경험으로는 도움 받으면서 어떻게 하면 돕는 기쁨을 맛볼 수 있을까를 궁리하며 하나님께 호소하던 생각이 들어 글 올렸습니다. 해량하소서!
alexpark 2007-07-19 11:18:42
죄송합니다
저의 글이 워낙 배설물 같아서...
bansk 2007-07-19 10:03:39
음~! 차라리 호떡 장사 이야기 하지마시고, 길선주장로님처럼 자신의 진솔한 얘기를 하는 것이 훨~~ 낫다고 생각지 않으시는지요? 하나님 아버지가 얼마나 좋으신 분인데.... 일년동안 1000원짜리 한 장가지고 생색내시는 노신사로 그리십니까?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호떡 장사함 해보시지요.
bansk 2007-07-18 23:21:33
하나님은 고아와 과부를 신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우스갯소리라고 했지만 예화의 설정이 너무 마음이 아프군요. 상상해보세요! 어린자녀를 셋이나 둔 과부라면 젊은 여성인데,.... 그런 여성이 일년을 호떡을 팔았다면 성실한 여성이라 생각할 수 있지 않을까요? 노신사는 실제로 있을수 없지만 호떡장사하는 여성은 실제할 수 있습니다. 실제할 수 없는 노신사를 들어 실제할 수 있는 생존권을 위해 사는 가련한 사람들을 가슴아프게 하는 예화라는 생각이 들어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