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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표절”에 대한 저의 주장이 억지 주장일까요? 새로운 용어 인식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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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shin621
등록일
2015-09-18 12:54:35
조회수
3516
“설교표절”에 대한 저의 주장이 억지 주장일까요?


요즘은 전에 없었던 설교표절의 시시비비(是是非非) 로 교계를 떠들썩하게 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목회자에 대한 인식이 전과 같지 않은 터인지라 이 문제는 더욱 곤욕스럽게 하는 것이 사실이다. 문제는 단 한 번의 설교표절이 몹쓸 사람으로 각인이 되어 그의 목회 생명이 좌우된다는 점이다. 특히 미디어의 발달과 인터넷영역에서 교회홈페이지가 활성화되면서 이것이 설교표절의 시비를 초래한 계기가 된 것 같다. 네이버(naver)나 다음(daum) 검색창에서 필요로 하는 주제어를 검색란에 입력하면 수많은 설교들이 쏟아져 나온다.


전해들은 바에 의하면,

"요셉"을 검색하면 280 개의 요셉에 대한 설교 자료가 나온다 하고,

"행복"을 검색하면 1300개의 행복 설교 자료가,

"십자가"를 검색하면 900개의 십자가 설교 자료가 줄을 이어 나온다고 한다.

위와 같은 무수한 설교 자료들이 컴퓨터나 스마트폰, 테블릿PC만 있으면 누구나 쉽게 언제 어디에서나 마음대로 내 것처럼 사용 할 수 있게 되었다. 그야말로 설교 자료들이 풍성한 시대이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이 실시한 통계에 의하면 “교역자 363명 중 43%가 타인의 설교를 그대로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변했다” 고 한다. 거의 절반에 가까운 상당수의 목회자들이 부분 표절은 말 할 것도 없고, 표절을 넘어서서 설교를 그대로 베껴 쓰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어떤 이가 설교 표절에 대해서 쓴 것을 소개하면,

“󰋗설교는 창작이 아니다. 논문은 자기의 사상을 밝히는 주장과 창의성이 있어야 하지만 설교는 목사의 창의적이고 주관적인 자신의 사상이나 입장을 펼치면 안 된다. 설교는 성경 본문에 충실한 해석과 강론과 비유가 필요할 뿐이다. 그러므로 타인의 예화나 강론도 내게 필요하면 얼마든지 인용 할 수 있다.


󰋘모든 설교는 표절이다 내 설교는 모두 표절이다. 설교란 성경과 교리의 표절일 뿐이다. 설교는 학술논문도 아니고 소설이나 시 같은 문학작품도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일이다. 하나님 말씀을 표절하는 행위이다. 설교를 표절하라. 그러나 제발 제대로 표절하라! 성경 스토리를 제대로 표절하라.


󰋙좋은 설교를 표절하라! 예수를 표절하고 하나님을 표절하라. 그것이 진짜 설교이다.” 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타인의 설교를 그대로 베껴서 사용하거나 부분 표절하는 문제에 있어서 그럴 수도 있다는 주장이다. 그것은 모든 설교자의 설교는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단순 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으로 모든 설교의 주인은 주님이시다 라는 논리다. 과연 근거는 있을까?


필자가 신학생이었던 때는 교수가 교안을 한번 준비하면 한 학기동안만 아니고, 그다음 학년에도 되풀이 했다, 그래서 후배들은 선배들이 받아 적은 강의노트를 구하기에 급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설교자는 다르다. 작년에 했던 설교도 재탕이라는 인식을 누구나 갖고 있다. 그래서 한주일 설교하고 돌아서면 또 그 다음 설교를 준비해야 한다. 통상적으로 새벽기도회까지 한 주간에 7, 8회 설교를 하며 장례식, 결혼식과 심방이 겹치면 하루에도 몇 번 씩 설교를 준비해야 할 경우도 있다.


목회자는 설교만이 아니다. 교회 안 밖의 사람을 만나는 일, 각종 모임, 행정적인 일과 장년만 아니라 유아에서 노인까지 모든 이들을 돌보아야 할 사명이 있다. 뿐만 아니고 상당한 시간 기도해야 하며 성경을 읽고 묵상해야 한다. 이런 일들을 충실히 감당하면서 설교 사역도 잘 감당한다는 것은 목회자에게 너무나 과중한 부담이요, 바쁜 목회 일선에서 매번 설교를 준비하기란 여간 부담이 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인터넷과 방송에 널린 '설교'를 통째로 베끼거나 유명목사나, 남의 설교를 인용하고 싶은 유혹에 빠지기 쉬운 것이며, 그것이 사실로 들어나서 소란스러운 교회도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필자가 신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설교를 들을 때 토씨 하나 빠뜨리지 않고 그대로 받아 적었다. 그런 설교노트가 여러 권 있었다. 그 당시에는 목회관련 서적들이 주로 영어원서로 되어 있었고 그것을 자유자제로 읽을 수 있었던 분들이 설교에 뛰어 나고, 남달랐다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영어에 문외한인 사람들은 그걸 또 받아 적었다. 고신대학교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칼빈대학(부산감천소재, 칼빈학원)에서는 영어공부 붐이 일어나서 칼빈대학출신들 중에 영어실력이 뛰어난 분들이 많았던 것도 그 이유 중에 하나이다.


부산에 어느 유명 목사는 외국의 설교를 거의 그대로 번역하여 사용한다는 이야기를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다. 나중에 영어가 보편화되고 번역판들이 쏟아져 나오면서 들통이 났다는 소문이다.


우리 교단에서는 한상동 목사님을 모방하고 따라하는 것이 유행이었던 때가 있었다. 그의 설교는 물론이고 그의 독특한 음성, 걸음걸이, 설교하시는 폼까지 똑 같이 되려고 애썼고 흉내 내는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고, 실제로 목회에 많은 도움이 되기도 했다.


또한 복음주의 설교자라면 누구나 직, 간접이든 간에 위대한 설교자 로이드 존스, 스펄젼 , 어거스틴, 그리고 칼빈 과 풀핏 기타 개혁주의 노선의 설교와 주석들을 많이 참고하고 인용하여 설교했던 것도 사실이다.

우리교단에 지금도 생존해 계신 어느 선배 목사님은 교계 신문에 실린 설교를 읽으면서 좋은 설교는 그대로 해도 된다는 말을 저한테 했던 것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교계에서만은 설교표절이니, 베껴 쓰기니 하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근래에 와서 설교표절로 목회자와 교인 간에 소란의 원인이 되고, 결국 당회장에서 해임되고 임지를 떠나야 하는 안타까운 일까지 벌어졌다.


저는 여기에서 ‘설교표절’에 있어서 자유로운 목회자가 있을 까? ‘설교표절’을 표절이라고 단죄 할 수 있을까? ‘설교의 저작권’은 인정할 것인가? ‘설교표절’이 비윤리적인 행동인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모두 쉬쉬하는 분위기라서, 주관적인, 조금은 억지 같은, 욕할지도 모르지만 총대를 멘 심정으로 필역하고자한다.


설교는 논문이나 소설과는 다르다. 그러므로 설교를 표절이라는 동일한 기준으로 똑같이 적용하는 것은 맞지 않다고 본다. 설교에는 도사가 없고, 왕도도 없다. 설교를 성경기자들이 성경을 받아 적었듯이 설교를 준비하는 사람이 있을 까요, 바쁜 목회 일선에서 매번 영감을 받아 설교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렇다고 자신의 잠재의식 속에 저장된 지식을 떠 올려 설교를 작성하는 것도 말이 안 된다. 그게 제대로 된 설교일까?


어떤 유명 설교자는 한편의 설교를 만들기 위해 1백 권의 책을 참고 하며, 7시간 기도하고, 10시간 이상을 설교를 위헤 준비 한다고 했다. 물론 목회자는 하나님의 은혜로만 설교를 준비하고 또 설교 할 때도 성령의 은혜가 필수이기도 하다.


필자가 신학교 교수님들에게 배운 설교 작성법도 마찬가지다.

첫쩨는 설교할 본문을 선택하여 깊이 이해 할 것이며,

둘째는 주석과 관련서적을 참고하고,

셋쩨는 성경사전, 원어사전, 일반 서적 류를 읽고,

넷째는 TV, 인터넷, 신문잡지, 컴퓨터 자료(설교)를 읽기,

다섯째는 유명목사들의 설교를 참고하기 등, 이것이 가르치고 배웠던 설교 작성법이다. 여러 다양한 자료를 참고하여 거기에다 자기 의견을 보태라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만든 설교는 내 머리에서 짜내어 만든 설교보다 훨씬 바람직 할 수밖에 없는데, 수많은 자료들의 도움을 받아 설교를 작성했다면 그 설교는 표절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까? 찔림이 없을까?


어느 설교학 교수는 "다른 사람의 설교를 1편 읽고 설교하면 모방이지만 10편 이상 읽고 작성하면 창작" 이라고 말했다. 이말은 다르게 말하면 복음 적인 설교는 창작이 아니고 표절이다. 라 는 뜻이다.


구약과 신약 성경에 나오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의 설교들을 탐구해보면 표절이라고 볼 수 있는 여지도 있다. 신약의 사도들은 구약의 예언자들의 말씀을 똑같이 인용했으며 또 사도들은 선지자들이 전해준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영감 된 말씀을 그대로 전했다. 광야에서 외첬 던 세례요한의 첫 설교와 예수님의 공생에 첫 일성은 판박이다. (마3:2, 4:17) 하나님의 말씀은 가감하지 말고 에누리 없이, 탈 성경하지 말고, 즉 표절하여 그대로 전하고 지키라는 것이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이세 복음을 공관 복음이라고 한다. 서로 겹치는 내용이 많다는 이야기다. 다르게 말하면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말씀을 베끼고 표절했다는 의미다.


적어도 개혁주의 칼빈 노선의 목회자라면 복음을 그대로 전해야 한다. 같은 본문에서 같은 해석이 나와야 하고, 동일한 설교가 나와야 한다. 그게 복음적인 설교의 특징이다. 다르면 잘못 한 것이고, 자기 지식으로 창작했다면 그게 이설이다.


설교의 주인은 바로 말씀의 주인이신 성삼위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이 말씀 하실 때 직접 하시지 않고, 천사를 통해서도 아니고 강단을 통해서 말씀하신다. 그래서 누가 전하든지, 당나귀가 전해도(민 22:30)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하며, 결과적으로 설교는 그 설교말씀의 주인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믿는 것이 맞다. 다시 말하면, ‘내 설교, 너의 설교다’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객관적인 하나님의 말씀이다. 전하는 사람이 목사든 어린 아이던 상관없이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런 의미에서 ‘설교표절’은 표절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을 나누는 것이다. 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같은 설탕을 먹여도 벌을 통해서 나오면 벌꿀이 나온다. 같은 노래도 ‘가수가 부르냐? 음치가 부르냐?’ 에 따라서 달라진다. 고양이가 먹은 배설물에서 나오는 커피가 고가의 커피란다. 마찬가지로 남의 설교를 가지고 사용하는 사람의 성대와 믿음과 표현력에 따라서 감동의 무게를 더 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설교자체를 통해 은혜 받기 보다는 전하는 전달자를 통해서 은혜를 받기 때문에 누가 전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표절이 아니라 전체를 복사하여 사용한 설교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의 것을 나누는 행위요, 하나님의 떡을 나눠 먹는 일이 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요리하는 엄마는 어디든 좋은 음식이 있으면 그 것을 돈 주고 사든지, 거저 얻든지, 아니면 배워서 똑같이 만들어서 가족들에게 나누어 먹일 수 있다. 이때 가족들이 남의 것을 배끼고 도용했다고 욕하지 않는다. 오히려 식욕 잃은 가족에게 맛있는 것 해주었다고 고맙다고 할 것이다.


설교 표절이라는 말이 왜 나왔는지 안타갑기 그지없다. 십여 년 전만 해도 목사를 설교로 평가 하지 않았다. 주의 사자로 여기고, 연령 학식에 상관없이 존중하고 권위를 세워 주었다.


근간에 있었던 표절문제 시비 이후에 많은 교인들이 설교를 들으면서 표절의 시선으로 보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다. 목회자의 설교가 목회자 사역의 전부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목사의 표절 한 가지 허물을 가지고, 목회자의 모든 허물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말하자면 설교의 표절이 목회자의 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인식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에 쫓기고, 보다 복잡해지고 다양해지는 교회 업무 속에서 설교자의 표절과 복제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한다.

➀설교는 목회의 일부이지 다가 아니다 라는 인식이다. 찬송이나 기도는 하나님과의 쌍방의 교류라면, 설교는 설교자와 교인의 쌍방 교류다. 사람을 상대하는 것이 설교이므로 덜 중요하다고 보는 인식이다. 물론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도구임에는 틀림이 없고, 설교는 은혜 받는 방편이기도하다.


➁설교의 주인이 하나님이시라는 인식이다.

영적으로 보면 자기설교는 없다, 성경의 저자가 성령이듯이 제대로 준비한 설교도 성령의 감동으로 작성 되었으므로 그렇다 고 볼 수 있다. “잠언, 아가서”가 솔로몬이 기록했지만, 하나님의 말씀 인 것과 동일하다. 예수님은 “너희가 읽지 못하였느냐? 기록하였으되, 끊임없이 기록된 말씀을 참고하셨다. 하나님은 지금도 강단에서 설교자의 메시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직접 말씀하시고 계시므로 그렇다.


➂새로운 용어 인식이 필요하다. “짜깁기”는 “조직”으로, “표절”은 “인용”으로, “베껴쓰기” 는 나눔으로 고쳐 쓰면 좋겠다. 어디에 좋은 음식이 있다면 부모는 그것을 가져다가 자식에 줄 나누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➃성경의 역사는 곧 성령의 역사이다. 성경을 주제로 만든 설교도 성령의 역사이다. 라는 등식이 성립 된다고 보는 인식이다. 메세지를 선포할 때와 마찬가지로 ‘작성한 설교’도 성령의 감동으로 이루어진 하나님의 말씀이다.


➄용서와 사랑의 인식이다.

다윗 왕이 유부녀 밧세바를 간통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최전선에 보내어 전사 시킨 뒤 자기 아내로 삼았을 때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시켜서 철퇴를 내렸다. 그건 성경의 이치다. 왕이 잘못해도 맞아야 하고 목사가 잘못해도 맞아야한다. 그러나 그것은 다윗의 영혼을 소생시키며, 그를 변화시키기 위한 책망이었다.

끝으로 저의 주장을 엉터리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신학교에서 칼빈주의 신학을 정통신학이라고 배웠다. 칼빈주의는 바울주의, 바울주의는 곧 성경주의다 라는 것이다. 칼빈주의 신학의 핵심이 무엇인가? ‘만사를 하나님이 주장하신다.’ ‘사람에게 선포할 목사의 복음적인 설교 작성까지 하나님이 주장하신다.’ 는 사실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신학과 신앙의 측면으로 보았으면 한다. 무엇보다


설교 표절이라는 말은 어디서나 더 이상 거론 안 되기를 바란다. 그것은 설교자의 윤리와 양심에 맡기고, 한국교회 성장을 위해서도 표절의 의심을 버리고, 성경적이고 복음 적인 설교라면, 성령을 의지하면서 자신의 목소리로 담대하게 전하면 된다. 비판의식을 가지고 서로가 시험에 빠지는 것 보다는 교회가 유익한 방향으로 함께 가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귀하고, 훨씬 좋은 일이 될 것이다.
작성일:2015-09-18 12:54:35 61.4.215.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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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jt0526 2015-09-26 12:46:30
공의로우신 나의 하나님~

우리들의 무지와 어리석음을 용서 하여 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시옵소서ㆍ
간절히 바라옵고 원하옵건대
우리 항도교회를 너무 오래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ㆍ
나태함과 안일함으로 점철되어진
우리들의 신앙생활을 돌아보며 다시한번
허리를 동이는 시간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ㆍ
눈을 감고 귀를 막은채 거꾸로 걸어갔던 비루한
신앙생활을 청산하게 하여 주시옵소서ㆍ

주님 이시여~
너무 오래는 버려 두지 마시옵소서.
강가딘 2015-09-18 21:11:13
세상은 조그마한 표절로 인하여 한 가수가, 작가가, 학자가 곤욕을 치르고 자칫 나락으로 떨어질수 있음에도 어찌 이런 이야기가 나온단 말인가?
일주일내 놀고 먹다가 주말에 설교준비 하려하니 베끼기 밖에 안 되는 것이다.
목회자가 무엇이 가장 우선순위인가?
심방? 경조사 쫓아다니는것? 그건아닐 것이다.
진정 목회자가 기도하고 묵상하면 베껴라해도 베끼지 않을 것이다.
바쁘다는 핑계로.. 할 일이 많아서.. 이건 핑계가 되지않는다.
두손을 가슴에 대고 심장 뛰는 소리를 들어보라.
붘느럽지??않은가?
나도 지금이라도 속성으로 목회자 코스 밟아서 이거나 해볼까~
agiabba 2015-09-18 20:51:39
목사님, OO교회는 설교표절문제로 내홍을 겪고 있는 걸 오셔서 몇 번 설교하셨으니 잘 아실겁니다.
그러나 설교표절에 대한 이러한 "개인적인" 소신은 OO교회를 더욱 더 힘들게 하는 겁니다. 결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chojt0526 2015-09-18 19:30:50
어느날 예배시간이었다
한 목사가 설교(?)중이었다
성도를 병문안 후 느낀 감정을 얘기했다
나는 그때 그 목사가 하는 설교를(?)이미 인터넷에서 찾아서 읽고 있었다
설교원본의 목사님이 몇월 며칠날 특정 질병을 앓고 있는 성도를 찾아가서 이러저러한
모습으로 누워있는 환자를 보며 이러저러한 심정으로 돌아왔다~ 는 설교를
토씨 한개 안틀리고 키패드를 손으로 내리며 읽고있는 한 목사를
바라보며 참으로 황당하고 아연실색 했던 경험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그것은 인용도 참고도 아닌 더더욱 표절조차도 아닌
거짓말이었다




성도들을 물로 보고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는 행위 였다
kkk1379 2015-09-18 17:46:34
이글을 올리시기전 더 신중하셔야 했습니다.거두절미하고 서두에 말씀하신것처럼 단 한번의 설교표절로 그 교회가 그리되었을까요? 아님 두번의 설교표절로 그리되었을까요? 분명 설교표절 맞습니다 그리고 한번이든 두번이든 절대 하시면 안되지요? 칼빈운운하시던데...그럼 난 칼빈이 아니니 설교표절해도 된다는 그 마음 자체부터가 목회자로써의 본이 안됩니다. 설교를 유창하게 해달라고 하는게 아닙니다. 신방을 다니고 잘 봐달라는게 아닙니다. 진실로 성도를 성도답게 봐주시고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 전해주심 됩니다... 말씀 붙잡고 기도하고 또 기도해서 목사에게 맞추는 말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 있는 그대로를 얘기해주심 됩니다.우리 성도는 무엇보다 말씀에 갈급합니다 베끼는 말씀, 보고 읽는 말씀 다 필요없습니다.하나님 말씀만 전해주십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