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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 때문에 세상을 소동케 한 사람들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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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철
등록일
2007-07-23 14:57:02
조회수
18919
무엇 때문에 세상을 소동케 한 사람들인가?


신약성경 사도행전 17:6-7절을 보면 유대인들과 로마 관리들은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세상을 소동케 한다는 죄목으로 고소한다. 그러면 왜 그들이 세상을 소동하게 한다고 고소당했는가? 로마 제국의 법을 어기고 평화를 깨뜨린다는 죄목이었다.


오늘 한국 사회는 예수의 복음 때문에 세상이 감동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복음을 전한다는 것 때문에 세상을 요란하게 소동거리를 일으키며 세상을 혼란스럽게 빠뜨리고 다녔던 사람들이었다.


1. 복음 전파는 복음 때문에 소동이 일어난다.
1세기에 전파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세상의 어떤 이데올로기와 숭배에도 타협하지 않고 담대하게 전파되었다. 데살로니가 도시에서 일어난 사건을 바로 해석하기 위해 우리는 최소한 초기 그리스도의 공동체의 시대에 있었던 데살로니가 도시의 정치적 역사적 배경을 다시 살펴보아야 한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사도 바울의 선교가 이방인들에게 효과적으로 나타나자 어떤 유대인들은 장터에서 깡패들을 동원하여 떼를 지어 다니면서 그 도시를 소란케 하고, 바울과 실라 (Silas)가 있던 야손 (Jason)의 집을 덮쳤다. 그들은 바울과 실라를 찾지 못하자 야손과 그의 형제들을 그 도시의 통치자들에게 끌고 가서 이렇게 소리쳤다: “천하를 어지럽게 하던 이 사람들이 여기도 이르매 야손이 들였도다. 이 사람들은 다 가이사의 명을 거역하여 말하되 다른 임금 곧 예수라 하는 이가 있더이다 하니 (행전 17:6‐7).” 그러면 여기에서 유대인의 주장에 따르면,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지키지 않았다고 고소되었던 로마 황제 가이사의 칙령 (ton dogmaton dogmata Kaisaros)은 무엇이었을까요? 누가는 여기서 하나의 흥미 있는 이야기를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소개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 데살로니가에 실제로 존재했던 어떤 역사적인 실제 상황을 있는 그대로 보도하고 있는 것일까요?
저지 (E.A. Judge)는 데살로니가 시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가이사의 칙령을 언급하며 로마 제국주의의 황제의 칙령 하나를 소개한다. A. Judge, ‘The Degrees of Caesar at Thessalonica,’ Reformed Theolgical Review 30 (1971): 2. 이것은 기원후 16년에 디벨리우스 로마 황제 (A.D. 14‐37)가 발표한 칙령중의 하나의 칙령이다:

그는 (디벨리우스 로마 황제)점을 치는 자나 마술사들이나, 점성술사들은 무엇을 했던 것 간에 외국인 마술사나 점성술사들을 죽였다. 그리고 이 칙령 후에 디벨리우스 황제 시대에 그것을 몰래 시도한 한 시민들을 추방했다. 점을 치거나, 마술을 하거나 점성술을 하는 행위는 로마에서 그 어떤 사업이든지 간에 금지되었다. 2) Dio Chrysostom 57 15.8; Judge, ‘Decree of Caesar,’ p. 4.


이 칙령을 보면서 우리는 마케도니아 행정 장관들보다 왜 데살로니가 정치인들은 이와 같은 칙령을 강요하고, 점치는 것과 마술숭배와 점성술들을 금지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데살로니가에 있던 로마 행정 장관들은 다른 도시보다 ‘가이사의 칙령’ 3) Judge, ‘Decrees of Caesar,’ p. 5. 에 반대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아마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을 근거로 그들은 가이사의 칙령에 민감하게 행동했을까? 첫째로, 이 칙령과 관계되는 사실은 데살로니가에서 가까운 소아시아 북쪽에 위치한 팜블라고니아(Paphlagonia)의 지역 주민들은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개인적 충성의 맹세의 서약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것은 로마인들과 로마인이 아닌 종족들 사이에 맺어진 맹세의 서약들이다:


나는 나의 삶의 전반을 통해서 나의 행동과 말과, 생각까지 시이저 아우구스투스와 그의 자녀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을 지지하고 도울 것을 맹세한다.....그들의 관심이 무엇이든 간에 나는 나의 영혼뿐 아니라 몸을 아끼지 않을 것이고 심지어 생명과 아이들까지....나는 로마 제국 황제와 그들의 후손에 대하여 모독하고 그들을 대항하여 계획되는 모반들을 내가 보고 들을 때마다, 나는 이 사실들을 로마 정부에 보고하겠다. 그들이 로마 제국에 대해 원수라고 여겨질 경우, 우리는 그들을 공격하고 무기와 칼을 가지고 땅 끝까지 쫓아갈 것이다. Ibid., p. 6.


아마도 십중팔구 데살로니가에서도 행정 장관들은 로마 황제에 대한 충성의 맹세와 그 칙령을 지키지 않은 사례를 담당하고 심판해야 하는 책임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데살로니가에서 사도 바울과 그의 동역자들이 정치적인 선동자로서 여겨지는 어떤 정치적 요소가 있었는지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이미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사도 바울이 방문했을 당시 데살로니가에는 황제 숭배 사상이 유행했고, 로마 제국주의 이데올로기가 이미 만연되어 있었다. 사도행전에서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과 그의 동료 사역자들이 시이저의 칙령을 거슬려 행하고 있다고 고소하고 있으며, 그들이 다른 황제가 있다고 선전하고 다닌다는 지역 주민들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행전 17:7).

유대인들은 베뢰아까지 좇아와서 사도들이 로마 제국의 평화를 깨뜨리고 황제를 모독하는 예수라는 신을 전한다고 그래서 이것이 제국을 소동하게 한다고 다시 방해한다.
복음은 세상의 어떤 환경과 정치적 환경과 이데올로기의 위협과 환경에도 담대하게 전파되었다.


2 복음은 어떤 정치적 위협에도 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가 전도하고 돌아다는 것을 미친 사람처럼 광신도처럼 여겨도 그들은 복음을 전했다. 따라서 복음은 어떤 위협과 이데올로기에도 피하거나 타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1세기 신자들은 예수를 믿는 행위와 고백은 예수를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의 각오를 하고 예수를 믿었다는 것이다. 복음을 위해 죽을 수 있을 정도로 각오를 하고 복음을 전한 것이다.

데살로니전서에 따르면 바울과 실라가 데살로니가에서 전도하고 떠난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가 세워졌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인 중에 복음 때문에 행정 관리들에게 잡혀 순교하는 신자들이 있었다고 추측ehlsek. 그래서 그들ㄴ은 죽은 신자들의 재림 때에 어떻게 되는가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잠자는 이에 관하여는 내가 너희가 모르게 되기를 원하지 않노니 재림 나팔 소리가 날 때 모두 그들이 육체로 부활하고 공중으로 들림을 받게 될 것이라고 격려하고 있는 것이다.


3. 따라서 21세기에 복음을 전파하는 행위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복음이라는 것을 고려한다면 이것은 세상 사람들이 볼 세상을 사람들을 소동케하는 행위로 비쳐질 수 있다.
그러므로 타민족들에게 가서 복음 전파하는 행위와 사랑과 자비의 봉사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을 소동케하는행위로 비춰질 수 있다.


4 복음전파는 지혜가 필요하지마는 그것이 목숨을 각오하는 행위를 약화시키지는 않는다.
1세기 신자들은 복음 전할 때 그들이 잡혀가서 로마 관리들과 유대인들 앞에서 무엇을 말해야 할지 지혜가 필요했다. 그러나 복음 전하기 위해 그들은 어디다 갔다. 사실 그들은 복음 전파할 때 목숨이 위태로왔지만 보호해줄 국가의 정체성도 없었다. 단지 성령 하나님의 보호만 믿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주권에 따라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다가 일찍 죽고 늦게 죽는 차이만 있었다. 스데반은 일찍 죽었고 나이 많은 바울과 12 제자들은 모두 순교했다.


5. 1세기 신자들이 복음 전하는 복음 전파는 순교가 항상 동반했다. 따라서 교회의 복음 전도 행동은 실체로 목숨을 버리는 각오가 수반되어야 한다.
오늘날 이슬람 권을 포함한 미전도 족속에게 복음 전하는 복음 전파는 순교의 피가 반드시 동반된다. 일부러 죽을 필요는 없지만 순교는 각오해야 한다.
오늘날 현대 교회의 복음 전도와 선교는 지나치게 안전 위주이기 때문에 세상에서 복음 때문에 소동이 일어나지 않는다.


6. 이슬람권과 북한 그리고 나머지 선교를 말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피를 뿌리는 행동을 통하여 마지막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이루어진다. 순교자의 피가 아직 덜차서 이슬람권을 포함한 세상은 하나님 나라와 교회를 아직도 거세게 대적하고 있다.


1세기 신자의 복음 전파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는 각오를 하였으며, 실제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 자신을 버렸다.
작성일:2007-07-23 14:57:02 222.98.89.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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