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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애인 목사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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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로니
등록일
2016-07-12 15:41:37
조회수
3935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감사합니다. 대단한 글은 아니지만, 교단에서 조금은 보기 드문 장애인 목사로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느낀 이야기를 해 봅니다. 내 생각이 다 맞지도 않고, 다른 분들의 생각과 다른 것도 많겠지만, 장애인 목사로 개척교회, 작은 교회의 입장에서 생각한 것들이니 그렇게 보아주면 좋겠습니다. 글이 좀 길어서 읽기 편하도록 끊어서 번호를 붙였고, 경어체를 쓰지 않음을 양해바랍니다. (샤론교회 김윤근 목사)

1) “자네는 여기 뭐하러 왔나?”
1984년 4월, 노회 고시부에 신학입학 허락청원을 받기 위해 갔을 때 면접장에서 처음 들은 질문이다. 신학입학 허락청원을 받기 위해 갔는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 할 말이 없어 그냥 잠자코 있었다. 고시부원들도 다른 목사후보생들에 대해서는 이런 저런 질문을 하였으나, 내게는 아무 질문도 하지 않았다. 그냥 앉아 있다가 나왔다. 결과는 당연히 허락 보류였다. 그렇게 해마다 입학허락 청원, 계속허락 청원을 받으러 노회 고시부에 갔으나 허락 여부는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 결과도 신학대학원 1, 2학년 때는 보류였는데, 3학년 때는 허락되어 있었다.
후에 찾아 보니 노회에서는 1985년 봄노회 때 총회에 ‘지체 부자유자 신학대학원 입학여부’를 질의하였고, 제38회 총회(1988년)에서 행정부가 “장애자 목사 안수 제한을 해제하고 목사 안수하기로 하다.”고 결의하였다. 결국 강도사로 5년이 지난 1993년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2) 나는 소아마비로 왼쪽 다리를 저는 지체 3급 장애인이다. 첫돌 무렵에 소아마비에 걸렸고, 목사로서 일하기 나을까 하여(혹시 교회로부터 청빙받을 수 있을까 하여) 1993년 이리자로프 수술 (ilizarov treatment, 원형의 외고정 기구를 사용하여 뼈를 서서히 연장하는 시술)을 했으나 결과가 좋지 않아 목발을 사용하게 되었다. 하지만 지체 3급 장애는 장애인의 세계에서는 별 것 아니다. 훨씬 심한 장애인들이 많기 때문에 그들 앞에서 ‘나도 여러분과 같은 장애인입니다.’ 하기가 민망하다. 참고로 소아마비는 1952년 미국의 조너스 솔크(Jonas Edward Solk, 1914-1995) 박사가 백신을 개발하였고, 우리나라도 1984년 이후 소아마비 환자가 발생하지 않아 2000년 10월에는 소아마비의 종식을 선언하였다. 솔크 박사는 소아마비 백신의 제조법을 특허로 등록하자는 제의를 뿌리치며 “나는 백신을 특허 등록하지 않을 것입니다. 저 태양을 특허로 신청할 수 없듯이 말입니다.”라고 하였다. 소아마비는 퇴치 캠페인이 시작된 1988년에 전 세계 125국에서 35만 명의 환자가 발생했으나, 올해는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에서 16명의 환자만 나왔고, 사실상 소멸되었다. 요즘 아이들은 솔크 박사 등의 덕분에 소아마비로부터 해방된 것에 감사해야 한다.
요즘은 뇌성마비, 소아마비 등과 같이 선천적이거나 어릴 때의 병으로 장애인이 되는 것보다 사고로 인한 후천적 장애인이 훨씬 많다. 다른 말로 누구나 장애인이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선천적인 요인이나 병, 사고 등 후천적 요인으로 장애인이 되었지만, 그들 중 누구도 장애인이 되고 싶어서 된 사람은 없다. 자신에게 장애가 없다면(비장애인이라면) 감사할 일이지, 자신이 장애인이 아니라고 장애인을 다르게 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독일의 전 대통령 리하르트 폰 바이츠제커가 이런 말을 했다. “장애인이 아니라는 것은 정녕 일해서 얻어진 대가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언제라도 잃을 수 있는 선물이다.”
우리는 몸의 부활을 믿는다. 그때는 애통하는 것이나 아픈 것도 없는 영화로운 몸을 입는다. 나도 그때 장애가 없는 영화로운 몸을 입을 것이다. 그러면 천국에서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 천국에서는 영원히 살 것이니, 장애가 없는 다리로 백만 년 쯤 달려보고 싶다. 혹 여러분이 천국에서 달리고 있는 사람을 보거든 그게 나인 줄 알면 될 것이다.

3) 노회 고시부의 입학허락 청원이 그때는 봄노회 때 있었다. 그래서 내 문제가 논란이 된 것은 신학대학원에는 이미 입학하여 다니고 있는데, 노회에서는 입학허락을 받지 못한 것이다. 그 후 (아마도 나 때문에) 먼저 노회의 입학허락을 받아야 신학대학원에 지원할 수 있도록 절차가 바뀌었다.

4) 내가 신학대학원에 입학할 당시 합격자 사정에서도 논란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 레위기 21:17-21의 규례를 들어 장애인은 목사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는 교수가 있었다. 후에 들은 말로는 합격자 사정 때 장애인 입학을 강하게 반대하는 교수가 늦게 참석하는 바람에 통과되었다고 한다.

5) 내가 신학대학원에 가고 목사가 되고자 한 것은 주님의 부르심과 강권하심의 결과다. 당시 우리 교단에서 장애인에게 목사 안수를 하지 않음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신학대학원에 갈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모태신앙으로 어릴 때부터 목사가 되라는 말을 많이 들었으나 의식적으로 그 길은 아니라고 생각하였다. 고교 동창 중에서도 황 목사(강서교회), 이 목사(울산동부교회) 등 5명이 목사가 되었으나, 나는 결코 아니라고 꿈도 꾸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4년 동안 목사 아닌 길을 찾았지만 열리지 않았다. 당시는 장애인이 갈 수 있는 학과나 취업 자리가 상당히 적었는데, 그나마 택한 길도 늘 마지막 순간에 막혔다. 그러면서 계속 기도하는 가운데 주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신학대학원에 들어가기로 하였다.

6) 신학대학원에 입학하고도 처음에는 어떻게 쓰임받을지 막막했다. 노회 입학허락 청원부터 보류되자 더욱 그랬다. 신학대학원을 그만 둘까 고민도 많이 했다. 그래도 주의 부르심을 분명히 받고 왔으니 무슨 길이 있겠지 하고 계속 있었고, 신학대학원에 입학한 지 10년 만에 목사 안수를 받았다(41회로 입학하여 졸업은 42회로 하였다).

7) 목사 안수를 받으면서 나로서는 절실한 목표를 가졌다. “장애인도 목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싶었다. 그것은 나 자신에게도 중요한 일이지만 다른 장애인에게도 목회자의 길이 열리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대개 장애인 목사는 장애인 교회나 장애인 사역을 하라고 한다. 내게도 그런 제안이 몇 번 있었다. 그러나 장애인 목사가 보통(비장애인)의 목회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는 것이 훨씬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였다.
흔히 사람들의 외모나 풍기는 인상을 보고서 “저 사람은 목사 같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나를 목사로 보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장애인이 목사일리 없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번은 모 노회에서 서기소에 서류를 받으러 나갔더니 “넌 뭐야?” 하더라.

8) 요즘 우리 사회는 장애인에 대한 인식과 배려가 상당히 개선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장애인에 대한 생각이 사회보다 한참 뒤떨어져 있다. 장애인을 구제와 돌봄의 대상으로만 생각하는 것이다. 여러 교회들이 장애인 사역을 하고 있지만 구제와 돌봄의 대상일 뿐이지, 장애인이 교회와 복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기회는 거의 없다. 보통은 장애인 목사와 장애인 교회를 묶어 장애인 게토(ghetto)로 만드는 것으로 만족한다. 느그들끼리 살라는 것이다. 사회에서는 장애인에 대한 최고의 복지를 (구제받고 도움받는 것만이 아니라) 일하고 사회의 일원으로서 역할을 하게 돕는 것이라 한다. 오히려 교회는 장애인들에게 일할 곳은 없고 도움이나 받으라고 한다.

9) 혹시 장애인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가 있는가? 아니면 장애인 목사가 여러분의 교회에 와서 설교한 적이 있는가? 한 번도 보지 못했거나 거의 없을 것이다. 장애인 목사에 대하여 부정적 인식과 거부감이 많기 때문이다. 이전에 있던 교회에서도 교육기관이나 행정은 맡기지만 심방은 못하게 했다. 교인들이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교회에서 잔뼈가 굵었고, 교회의 모든 기관에서 안해 본 일이 없다. 장애가 있으니 좀 불편하고 이동에 시간이 조금 더 걸린다는 것 외에 못할 이유가 없지만 교인들이 보기에 좋지 않단다.
지금 우리 교인들은 목사의 장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 너무 감사하다. 몇 년 전 교인의 장례식이 겨울철 산에서 있었는데, 장로님이 눈이 쌓인 먼 산길에 목사를 업고가서 장례식을 하였다. 나는 장애인이기 때문에 약속 시간에 늦는다든지 하는 일이 없다. 못하거나 못 갈 일이라면 처음부터 안된다고 하고, 약속했으면 좀더 일찍 나서기 때문에 늦는 법이 없다. 그럼에도 교인들은 장애인 목사가 불편하단다.

10) 내가 목사가 된 이유, 목사로서 하고 싶은 가장 중요한 일은 장애인도 일반 목회를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래서 다른 장애인들 중에도 소명을 받아 목사가 되고 선교사가 되어 복음과 교회를 위해 일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교단만 해도 내 뒤에 장애인 목사가 얼마나 나왔는지 모른다. 아마 거의 없는 줄 안다. 장애인 목사가 목회하는 경우가 거의 없고, 간혹 장애인 목사가 나와도 일할 데가 없다. 청빙하는 교회가 없다. 늦게 안수를 받았지만 내가 목사 안수를 받은 지 금년이 23년이다. 지금까지 우리 교회를 제외하고, 설교하러 가 본 교회가 18교회다. 대부분 개척 초기의 후원교회이거나 주변의 아는 교회들이다. 그중 타교단 교회가 4교회다. (설교가 시원찮으니 그렇겠지만) 설교하러도 부르지 않는데, 장애인을 담임목사로 청빙할까. 예수님은 날 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고치시며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하셨는데(요한복음 9:3), 장애인들은 어떻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낼 수 있을까. 그냥 도움이나 구제받는 대상으로 살라는 것일까.

11) 목사후보생, 강도사를 거쳐 1993년 목사 안수를 받고 3년쯤 지나니 더 이상 있기가 어려워짐을 느꼈다. 현재 한국교회의 시스템은 모든 목사가 당회장(담임목사)이 되도록 만들어져 있다.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3년 가량 있으면 떠나야 하고, 그 다음 진로는 다른 교회의 당회장이 되거나 개척하거나, 선교사로 나가야 한다. 부목사도 목사인데 실제로는 목사가 아닌 듯하다. 받은 은사를 따라 부목사나 다른 사역(찬양이나 행정, 교육 등)을 하는 목사로 은퇴까지 할 수는 없는가. 현재 시스템에서 부목사는 당회장이 되기 전의 과정에 불과하고, 또 부목사로 좀 오래 있다고 해도 새로운 당회장이 오면 (특히 나이의 역전 관계로) 떠나야 한다. 교회 수, 즉 당회장 수는 한정되어 있고 매년 배출되는 목사의 수는 많다 보니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한다.

12) 부목사로 더 이상 있기 어려워 떠나야겠는데 갈 곳이 없었다. 정확히 말하면 오라는 교회가 없었다. 그럼에도 섬기던 교회에는 금년 안에 사임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연말이 가까워지면서 여러 군데 큰 교회의 당회장들께 편지를 썼다. “이러이러한 형편의 장애인 목사인데, 할 수 있는 분야에서 은퇴까지 일할 수는 없겠습니까?” 그러나 읽기나 하셨는지, 한 군데도 답이 없었다. 결국 1996년 12월초에 교회를 사임하고 무임목사로 나왔다. 목사직이 밥 먹기 위한 수단은 아니라 여겼기 때문이다. 산동네에 월세집을 얻어 살면서 주의 인도하심을 기다렸다. 아내와 초등학생 남매와 함께 매일 가정기도회를 하면서 목사로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달라고 간구하였다. 3년까지 기다려 보고도 교회를 섬길 길이 열리지 않으면 다른 길로 가라는 뜻으로 알겠다고 했는데, 2년 6개월이 지나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다.

13) 무임목사 시절 개척의 꿈을 품고서 큰 교회, 작은 교회, 개척교회를 다니며 견학을 했다. 매주일 그렇게 (아는 사람이 있는 교회는 피하고) 교회를 찾아다니는데, 어느 주일 아침에 아이들이 “아빠, 오늘은 어느 교회로 가요?” 하고 물었다. 퍼뜩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의 신앙교육 때문에라도 이렇게 떠돌아다니기만 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여 장년예배와 초등부예배가 동시에 있는 교회를 찾았다. 지역에서 손꼽히는 대형교회가 마침 그 조건에 맞았다. 특별히 가 보아야 할 교회가 없으면 그 교회에 가서 아이들은 초등부에 가고, 우리 부부는 장년예배를 드리고, 마치면 같이 집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2년 가량을 그 교회에 출석하였다. 대형교회들이 으레 그렇듯 그 교회도 스스로 등록하는 사람이 아니면 일체 아는 척하지 않았다. 매주 정장을 입고 목발을 짚고 아이들과 함께 가는 장애인 가족이지만 가끔 얼굴이 마주치면 ‘안녕하세요.’ 하는 목례 외에는 아무 인사도 없었다. 교인들에게 알아서 찾아오고 알아서 등록하도록 자유를 준다고 했다. 그럼에도 매주 많은 숫자가 등록하였다. 그렇게 2년 동안 가끔 ‘안녕하세요.’ 하는 외에는 한 마디의 인사나 대화도 없이 다녔다.

14) 몇 년이 지난 후 기독교서점에 갔는데, 2년여 동안 다녔던 그 대형교회의 선임여전도사가 마침 서점에 왔다. 나는 그 여전도사를 알고 있고, 여전도사도 나를 알아보았다. 그런데 서점 주인이 나더러 “목사님” 하고 부르자, 그 여전도사는 놀라서 “목사님이세요?” 하였다. 나는 그냥 예 하고는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15) 얼마 후 차를 운전해 가는데 그 교회 목사님(지금은 원로목사)의 방송 설교가 나왔다. 마침 4월 20일 장애인의 날 무렵이어서 목사님은 장애인에 대해 설교하였다. 그러면서 “우리 교회는 장애인을 사랑하며 장애인 사역을 아주 모범적으로 잘하고 있다.”고 하기에 방송을 꺼버렸다. 대형교회들이 제일 자랑하는 장애인 사역이 사랑부(정신지체장애인) 사역이다. 사랑부가 힘들고 귀한 사역이지만 사랑부가 있다고 장애인을 사랑하고 장애인 사역을 잘하는 교회라고 하는 데는 동의할 수 없었다. 2년 넘게 매 주일 목발을 짚고 출석하는 장애인에게 한번도 ‘안녕하세요.’ 이상의 말 한 마디 없는 교회가 장애인을 사랑하는 교회인가?

16) 무임목사로 3년이 지나면 다른 길로 가겠다고 기도했는데, 3년 직전에야 겨우 교회를 개척했다. 지금도 교회 개척이 어렵고 그나마 개척교회의 10% 가량만 살아남는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걸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아내와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4식구가 광안동 주택가 2층 30평 건물에 전월세로 개척을 시작하였다. 그래도 16년 동안 아직 살아있고, 현재 30여 명의 교인과 거의 자립 재정에 가까운 교회가 된 것이 기적 같고 감사할 따름이다.
개척교회의 위치를 정하기 위해 부산 안팎에 안 가 본 곳이 없다. 유망한 곳들도 많았으나 그림의 떡이었다. 유망한 곳, 신도시 지역은 접근조차 힘들었다. 돈이 없었기 때문이다. 저기서 교회를 하면 되겠다 싶은 곳이 많았지만 그곳은 내게 허락되지 않았다. 당시 내가 하고 싶던 자리에 개척한 교회들이 잘 된 경우가 많다. 가진 것 총동원하여 당시 2천5백만 원으로 집과 교회당 전세를 나누어 걸고, 월세도 안고 시작했다.
작은 장소, 월세를 주는 임차건물이지만 교회당을 깨끗하게 꾸미려고 노력했다. 그랬더니 (내가 먼저 요청하지 않았으나 어떻게 알고) 후원을 하겠다며 답사하러 오는 교회 교인들이 “아이구, 이 정도면 괜찮네요.” 하고는 다른 곳을 후원하겠다며 갔다.
우리 교회가 어느 보육원을 몇 번 후원한 적이 있다. 한 번 가보니 정말 아이들이 코를 흘리며, 제대로 못 먹고,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다. 요즘도 이런 곳이 있나 싶을 정도로 한눈에 불쌍하고 도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어떤 보육원 원장이 자기 보육원의 아이들을 내 자식같이 잘 입히고 잘 먹이고, 시설도 잘 갖추어 운영했더니 후원자들이 없더라는 말을 하는 것이 생각났다. 농어촌교회나 지하실의 교회가 열악한 것이 사실이다. 더 어려운 곳을 먼저 후원하는 것이 맞다. 그렇다고 후원받기 위해 일부러 열악하고 초라하게 있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더 어려운 곳을 찾아 후원하면 되지, “이만하면 괜찮네요.” 소리는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17) 교회간의 거리가 직선으로 300m 이상으로 규정되어 있다(헌법 헌법적규칙 제2장 제2조). 악의적으로 다른 교회 바로 옆에서 개척하는 것은 나쁘지만 자기 건물이 없는 개척교회나 작은 교회의 경우는 지키기가 쉽지 않다. 우선 교회에 임대해 주는 건물주가 많지 않다. 내 경험으로는 특히 천주교와 불교 신자들이 그랬다. 요즘은 월세 위주라 월세도 만만찮고, 이런 저런 조건을 따지면 남의 건물에 세드는 교회들은 선택의 폭이 좁다. 심지어 한 건물에 교회가 둘 이상 있는 경우도 간혹 있는데, 무슨 사정이 있을 수 있다는 생각도 해야 한다. 오죽하면 그럴까 싶어 나는 이해가 된다.

18) 개척교회를 하면서 대형교회, 후원을 해주는 교회들이 부러웠다. 현재 제법 자리를 잡고 있는 교회들은 거의 1980년대 이전에 개척하였거나(그때는 어디서나 십자가만 세우면 된다고 할 정도였다.) 신도시 같은 발전 지역에 자리잡은 교회들이다. 간혹 분립한 교회들이 그나마 생존하고 성장한다. 사회가 변화하면서 농어촌교회 → 도시교회 → 신도시교회로 교인들이 이동하였고, 거기에 중소교회 → 대형교회로의 수평이동이 겹쳐지면서 교회도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심해졌다. 교회는 돈이 아니고, 돈이어서는 안 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돈이 있어야 교회가 유지되고 살아남는다. 자기 건물이나 교인 없이 시작하는 개척교회가 살아남는 것은 기적이다.
우리 교회에는 지난 16년의 역사 동안 “근처로 이사를 왔는데 여기서 신앙생활하겠습니다.” 혹은 “작은 교회를 같이 섬겨 보겠습니다.” 하고 스스로 찾아온 교인이 한 명도 없다. 정말 단 한 명도 없다. 이웃의 교회들 주보나 홈페이지를 보면 스스로 왔다는 새가족들이 많은데 정말 부럽다. 우여곡절 끝에 전도하고 초청하고 데려오고 끌고온 가족이나 친구, 이웃들이 지금 우리 교인의 대부분이다. 그렇게 우리 교회에 첫발을 디디고 세례를 받고 직분을 받고 섬기는 교인이 되었다. 우리 교회를 통해 전도받아 믿고 구원받은 성도와 이미 천국 가신 어른들도 제법 많다. 감사할 뿐이다. 초신자로 처음 교회에 발을 디디고 한 걸음씩 자란 우리 교인들이 고맙고 자랑스럽지만, 교회의 성장 속도는 달팽이처럼 느리다. 그러면 “그게 진짜 교회의 모습입니다. 하늘의 상이 많겠습니다.” 하고 칭찬하듯 말하지만 공허하게 들릴 때가 많았다.

19) 최근에는 청년들이 대학 진학과 취업을 위해 서울 등의 타지역으로 가는 일이 많다. 지방대학이 취업 등에 불리하기 때문이다. 우리 교회의 청년들도 여러 명(가정)이 타지에서 살고 있다. 나이 많은 교인들은 천국 가시거나 거동이 불편하여 요양병원으로 가시는 경우가 계속 생긴다. 그렇게 줄어든 빈 자리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다.
우리 사회 인구 구성의 급격한 변화(노년층 급증, 유아수 급감으로 인한 인구절벽)로 교회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 작은 교회나 농어촌교회는 더 심각하다. 생존 자체가 불투명하다. 대형교회나 자기 건물이 있는 교회는 아직은 별 걱정 없다. 자기 발로 찾아오는 수평이동 교인들이 많기 때문이다. 대형교회의 가장 큰 교인 공급원은 수평이동이다. 흔히 파레토 법칙(Pareto principle, 80 대 20 법칙, 전체 결과의 80%가 전체 원인의 20%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따라 대형교회도 일꾼이 적다고 하는데, 작은 교회는 오죽하겠는가. 목사 부부 외에는 일꾼이 희귀하다.

20) 요즘 교인들은 작은 교회, 개척교회는 부담스럽다고 아예 찾지를 않는다. 부담은 오히려 대형교회가 더 많은데도 작은 교회는 무조건 외면한다. 흔히 우스갯소리로 남자들이 찾는 결혼 상대의 조건은 무조건 예쁜 여자라고 하듯이, 요즘 교인들이 찾는 교회의 조건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대형교회다. 특히 우리 교회는 개척교회, 작은 교회, 자기 건물도 없는 교회, 장애인 목사가 있는 교회라는 점들이 합해져서 더욱 그랬다. 간혹 자기 교회의 예배에 늦어서 오는 교인들도 있지만 축도만 마치면 도망간다. 우리는 아예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하고 인사하는 외에 “어디서 오셨습니까? 집이 어디세요? 어느 교회 다니세요? 등록하시지요.” 같은 말은 못하게 한다.
그간 절실히 느낀 점은 처음 오는 초신자는 교회가 작거나 개척교회거나 장애인 목사가 있거나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데, 교회 물을 조금이라도 먹은 교인은 그걸 따지더라는 것이다. 주일예배나 수요기도회나 새벽기도회 등에 왔다가 “교회가 참 아담하고, 분위기가 좋고, 목사님의 설교도 좋네요.” 하면서도 결국은 이웃의 큰 교회로 등록하였다. 자기 가정이나 교회의 어려운 문제를 두고 상담해 주고 같이 기도해 주지만 문제가 해결되면 자취를 감추는데는 예외가 없었다. 자기 교회의 목사와는 (목사의 시간상 또는 자기의 체면상) 상담조차 못한다고 했다. 많은 경험을 한 지금은 아예 초신자를 찾지, 다른 교회의 교인은 전혀 기대하지 않는다. 나는 지금도 도로변 지하에 있는 교회나 허름한 건물에 있는 작은 교회, 여행하다가 지나는 길의 농어촌교회를 볼 때면 가슴이 아프다. “저 교회에서는 또 어떤 교역자와 교인들이 고생하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21) 그래도 작은 교회를 섬기는 교인들이라고 하나님이 특별한 복과 은혜를 주셨다. 지난 세월 동안 우리 교회는 ‘자녀들이 잘되는 교회’라는 별명을 얻었다. 작은 교회를 기쁨으로 섬기는 교인들에게 주시는 은혜의 상인 줄 안다. 결혼 15년 만에 5대 독자를 얻은 교인도 있고, 진학과 취업과 결혼까지 척척 길이 열린다. 직장도 다 괜찮다. 대기업 사원, 학교교사가 대부분이다. 결혼한 자녀들이 아기도 순조롭게 가지고, 아들 딸 순서까지 기도한 대로 낳는다. 그래서 ‘기도하면 동화 같은 일이 일어난다.’는 표어를 갖고 있다.
우리 교회는 설거지 당번에 장로를 비롯한 남자 교인들도 들어간다. 오히려 남자들이 더 깨끗하게 잘한다. 작은 교회이다 보니 청년들과 신혼부부들이 선배들의 모습을 보고 잘 배워서 가정적이고, 힘든 일은 남자들이 한다. 오전예배 기도인도(대표기도)는 서리집사 이상이 돌아가며 한다. 목사가 설교원고를 준비하듯 기도원고를 준비해서 하는데, 다 잘한다. 웬만한 장로들보다 낫다.

22) 요즘 한국교회의 문제들 중에는 교인들의 책임도 크다.
“대형교회에 문제가 많다, 작은 교회를 살리자.” 이런 말들을 하지만 오늘 한국교회의 문제의 큰 원인이 교인들에게 있다고 본다. 목사들의 잘못도 크지만 교인들의 잘못도 결코 작지 않다. 그렇게 문제를 일으키고 비난을 받는 교회에 왜 붙어있는가? 불평을 하면서도 결국은 대형교회를 찾고, 외국물 먹고 박사학위를 가진 목사를 찾는다. 작은 교회에 있을 때는 별 일 아닌데도 큰소리를 치다가 뜻대로 안되면 떠나면서, 대형교회에 가서는 끽 소리도 못한다. 별것 아닌 문제로 목사와 교회를 비난하고 떠나는 교인을 볼 때면 그렇게 떠날 수 있다는 것이 부럽다. 나도 때로는 다른 교회, 내가 가고 싶은 교회로 가고 싶을 때가 있다.
교회는 세상의 어떤 분야보다 규모의 싸움이 더 치열하다. 대형교회는 모든 것이 장점이고, 작은 교회는 작다는 것과 교회당 건물이 없는 것 자체가 치명적인 단점이다. 세상에는 공정거래니, 독과점규제니, 중소기업 적합업종 보호라는 것도 있지만 교회는 그렇지 않다. 교회는 무한경쟁 세계다. 억울하면 출세를 하라는 말이 제일 잘 통하는 곳이 교회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억울하면 큰 교회 되라. 말로는 “다 같은 하나님의 교회지요. 오히려 그렇게 전도하여 일꾼 만드는 교회와 목사의 상이 크지요.” 하면서도 자기는 작은 교회를 외면한다. 예외가 없다. 주변의 교회들 중 돈 있는 교회는 신도시에 땅 사고 건물 지어 옮겨가 대형교회가 되었고, 돈 없는 교회는 어느 날 사라지더라. 그러면서 대형교회 목사들은 “교회의 부흥이 다 주의 은혜입니다.”라고 하는데, 없어진 교회들은 은혜가 없어서겠지.
세상에는 벤처투자라는 것이 있다. 기술은 있지만 자본이 없는 창업기업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 기업의 미래 가능성을 보고 투자하는 것이다. 그렇게 투자하는 것을 엔젤(angel)투자라고도 한다. 천사처럼 도와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개척교회, 작은 교회는 “같이 섬기겠습니다.” 하는 천사 교인이 없다. 하나님의 교회이니 하나님이 갚아 주실거라고 하면서도 스스로 실천하는 사람은 없다.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교인이 동역자가 되어 주면 작은 교회의 목사들에게 큰 힘이 되겠지만, 희귀하다. 나는 아직 보지 못했다. 목사들이 교인을 그렇게 만들었고, 교인들이 목사를 그렇게 만든다.

23)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사무엘상 16:7) 더운 여름에 한 자매가 배꼽티를 입고 예배에 왔다. 예배 후 목사가 옷차림이 좀 그렇다고 조용히 말하니까, 자매는 눈을 똥그랗게 뜨고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잖아요.” 하더란다.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지만 사람은 외모를 본다. 맞다. 그래서 교인들도 외모(교회 건물, 주차장, 시스템, 화려하고 볼 것 많은 예배, 찬양팀, 심지어 목사의 인물이나 학벌 등)를 보고 교회를 선택하나 보다. 교인들이 볼 만한 외모(멋진 건물과 시설 등)를 갖추는 것이 교인들이 찾고 부흥하는 비결인가 싶다.

24) 요즘 교인들은 교회와 집이 가까운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에는 교회 가까이 집이 있는 것이 좋다고 했으나, 지금은 적당히 떨어진 곳에 있으려고 한다. 일부러 이사간다. 교회 가까이 있으면 예배뿐만 아니라 새벽기도회, 수요기도회, 교회의 봉사 모임이나 행사에 빠지기가 눈치보인다. 적당히 떨어져 있으면 그런 부담이 없고, 주일에 가는 것만으로도 대단하게 보인다. 우리 교회 주변에도 타교회의 직분자들이 여럿 있지만 새벽기도나 수요기도회는 (자기 교회에) 가지도, (가까운 교회로) 오지도 않는다. 자기 교회와도 떨어져 있으려고 이사를 하니 자기 집 주변의 작은 교회는 더욱 가지 않는다.
개척교회 시절 늘 하던 기도제목이 있다. “삭개오, 사울, 수가성 여자같이 처음 믿는 교인들과 아굴라 브리스길라 부부 같은 일꾼들을 보내 주시고 붙여 주옵소서.” 조지 뮬러는 5만 번의 기도응답을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이 기도를 수만 번 했다.

25) 개척교회 목사는 상당 기간 어디를 가나 “교인수가 얼마나 됩니까?, 교인들이 많이 늘었습니까?” 하는 질문을 받는다. 상대방은 가장 궁금한 질문이지만 개척교회의 목사에게는 가장 힘든 질문이다. 대형교회야 천 명, 만 명 단위이니 대답하기도 쉽지만, 개척교회는 한두 명이 크고 그 한두 명 때문에 교회가 좌우되기도 한다. 잘 믿고 잘 섬기는 일꾼들은 대형교회로만 몰리고, 개척교회에는 불신자나 사연 많은 교인들이 주로 온다. 내 생각으로는 개척교회의 교인 한 사람과 대형교회의 교인 한 사람은 무게가 다르다. 하늘의 상도 교회의 규모에 따라 상대평가로 주어질 것이라 자위한다. 같은 직분으로 같이 일한다면 작은 교회를 섬긴 종들에게 더 많은 상을 주심이 합리적이라 본다.

26) 찬송가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어디든지 가오리다.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 들고 가오리다. 소돔 같은 거리에도 사랑 안고 찾아가서…” 부른다. 목사들도 부름받아 나섰지만 어디든지 가지는 않으려 하고, 교인들은 더하다. 무조건 대형교회, 편한 교회, 부담없는 교회, 볼 것 많은 교회, 적당히 신앙생활하기 좋은 교회를 찾는다.
고 임택진 목사님의 일화가 있다. 청량리중앙교회가 2백 명 정도일 때 8백 명 정도 출석하는 교회로부터 담임목사 청빙을 받으셨다고 한다. 어느 정도 목사님도 갈 마음이 있었던 것 같은데 그 눈치를 챈 장로님들이 못 가시게 막았다. 그러면서 “큰 교회로 가시면 생활비 많이 드리겠지요. 우리도 다음 달부터 당장 생활비 올려 드릴 터이니 가지 마세요.” 간청했단다. 그와 같은 장로님들의 말에 정말 평생에 듣기 힘든 명언이 목사님으로부터 나왔다. “소시장에 묶어 놓은 소는 부르는 사람에 따라 값이 올라도 가고 내려도 가지만 나는 소시장의 소가 아닙니다.” 그 말씀을 하시곤 그냥 청량리중앙교회를 떠나지 않기로 결심하시고 은퇴 시까지 흔들림없이 목회를 하셨다.
목사들은 대우가 좋은 교회 대형교회로 가고, 교인들도 대형교회 편한 교회 부담없는 교회만 찾는다. 요즘은 찬양대 지휘자, 반주자, 독창자, 악기 연주자, 방송사역자들까지도 모두 사례를 받는다. 직업이 없거나 생활이 어려운 봉사자의 경우에는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 봉사를 마치 아르바이트하듯 돈으로 계산하며 옮겨다닌다. 심지어 대형교회가 스카웃하여 빼가기도 한다. 괜찮은 실력자들은 모조리 쓸어간다. 대형교회에서 많은 사례비를 받으며 스카웃되는 것을 경력으로 여기기도 한다. 이런 봉사자들은 작은 교회, 사례를 줄 수 없는 교회는 아예 갈 생각을 하지 않는다. 어쩌다 교인들이 이렇게 되었는지 답답하다. 대형교회들부터 봉사자들에게 사례를 주지 말아야 한다. 이런 풍토를 고쳐야 한다. 그래야 봉사자들이 작은 교회도 선택할 수 있다. 대형교회가 돈의 힘으로 교인들뿐만 아니라 봉사자들까지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교회 안의 3D(더럽고 힘들고 위험한) 분야인 교사, 식사당번, 주방당번 등은 맡을 사람이 없다. 어떤 교회는 일당을 주고 도우미를 사오기도 한단다. 흔히 기도하면서 “예배를 돕는 찬양대…” 운운하는데, 무슨 예배를 돕는가? 예배에 수종들고, 섬기는 것이지. 또 목사를 ‘귀한 종’이라고 하는데, ‘귀하신 주님의 종’ 혹은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종’이라고 해야 한다. 종은 원래 종놈이라고 불러야 하는데, 놈 자를 뺀 것만으로도 영광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많은 목사는 ‘귀한 종’이 되었고, 그렇게 불러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

27) 개척교회는 그야말로 개척한 교회다. 개척(開拓)이란 사전적으로 ‘거친 땅을 일구어 논이나 밭과 같이 쓸모있는 땅으로 만드는 것, 새로운 영역이나 운명이나 진로 따위를 처음으로 열어 나간다.’는 말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개척교회는 거의 성공하지 못하고, 분립하거나 번듯한 건물과 교인들을 가지고 시작하는 교회라야 겨우 생존한다. 최근에는 담임목사가 직접 분립하는 경우가 많은데, 담임목사의 명성에 따라 쉽게 성공한다. 흔히 분립개척이란 말을 하는데, 내 생각에 그건 ‘분립’이지 ‘분립개척’은 아니라고 본다. 개척교회를 해본 나로서 분립개척은 ‘땅 짚고 헤엄치기’ 개척과 같다고 생각한다. 너무 심한가. 정말 맨손으로 개척하는 것이 개척인데, 개척의 성공은 어렵다.

28) 그래도 교회를 새로 시작하는 것을 개척이라고 한다면 개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분립이나 분립에 준하는 것이 낫다. 개척교회 성공의 비결은 여러 교인들이 같이 시작하는 것이다. 분립이면 더할 나위 없고, 교역자가 단독으로 개척하더라도 교인들과 같이해야 빨리 자리를 잡는다. 여기서 대형교회의 도움과 희생이 필요하다. 개척하는 교회에 자원하는 교인을 보내 주든지, 그게 어려우면 1-2년 정도 파송이라도 해 주면 좋을 것이다. 개척교회에 새로운 가족이 와도 둘러보니 자기 혼자 있다는 것을 보면 부담스러워서 등록하지 않는다. 몇몇 교인들이라도 앉아있으면 그나마 등록하기가 쉽다. 그런데 이런 걸 대형교회나 목사들이 몰라서 안하는 것이 아니다. 알지만 목사들은 자기 교인을 떼주기 싫고, 교인들도 자기를 희생하기 싫어하기 때문이다.
개척교회에 꼭 필요한 봉사자(반주자, 교사, 전도 잘하는 교인, 찬양팀, 주방봉사 가능한 교인 등)를 자원받아 파송해 주면 그게 가장 좋은 후원방법이다. 그 교인들이 열심히 출석하여 섬기고, 십일조 등의 헌금도 개척교회에 드리면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 최고의 후원방법이다. 대개 후원헌금을 보내주는 것으로 끝나는데, 그것보다는 교인들을 파송하는 것이 더 좋다. 1-2년 정도 약속한 기간이 되면 본교회로 돌아가도 되고, 계속 그 교회에 남겠다고 할 경우 허락해 주면 더 좋고. 나도 개척하면서 (피아노는 어떤 권사님이 집에서 쓰던 것을 주셨는데) 반주자가 없어 이웃 교회들에 편지를 보냈다. 1-2년 정도 반주자 한 사람을 파송해 주시면 극진히 대하고 기간이 되면 돌려보내겠다고. 그랬더니 한 교회도 답장이 없었다. 묻는 내가 바보지. 나중에 물어보니 “우리 교회도 반주자가 부족하다.”고 하더라. 좀 실력있는 지휘자, 반주자들은 다 사례비를 주어야 한다고 해서 포기했다.

29) (나도 받아보았기 때문에) 개척교회, 농어촌교회, 미자립교회, 선교사를 후원하는 교회들에게 부탁하고 싶다. 지원을 요청하는 곳이 많아 지원 대상을 선정하고 예산을 집행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은 이해한다. 그렇지만 후원받는 교회도 같은 하나님의 교회로 존중해 주는 자세가 아쉽다.
① 후원헌금을 보내는 시기를 일정하게 해주면 좋겠다. 교회마다 대개 첫 주일은 담임목사 사례비, 둘째 주일은 다른 교역자들과 직원들 사례비… 하는 식으로 지출을 하는데 선교비나 후원헌금도 일정한 시기를(셋째 주일이나 넷째 주일 하는 식으로) 정해서 보내주면 좋겠다. 후원을 받는 교회로서는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기다리는 생명줄 같은데 당최 언제 올지 모르는 경우가 있다. 매월 말일을 기준으로 보내는 경우가 많고, 심지어 달을 넘기는 경우도 있다. 같은 하나님의 교회를 후원한다면서 말일에 보낸다는 것은 그렇지 않은가. 그 사역이 교회의 끝순위인 것처럼 보인다. 후원받는 교회(선교사)도 언제 올지를 알아야 재정의 운용계획을 세울 수 있지 않겠는가.
② 일정 기간(대개 3-5년)이 지나 후원을 종료하는 경우에는 마지막 해에 미리 통보를 해주면 좋겠다. “귀 교회는 … 금년까지 후원을 하겠습니다.” 그러면 신사적이고, 후원받는 교회도 예산수립 때 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무런 통보도 없이 어느 달부터 후원헌금이 안 온다. 그렇다고 후원교회에 물어볼 수도 없고, 초조함 속에 다음 달을 기다려 보고 그때도 오지 않으면 포기하게 된다. 교회가 성장하여 후원이 필요없는 교회가 아니라면, 구조적으로 항상 도움이 필요한 농어촌교회와 선교사들은 한번 정하면 계속 후원해 주는 것이 좋다고 본다.
③ 후원받는 교회(선교사)는 당연히 연말에 감사의 인사와 함께 교회(선교지)의 현황을 보고한다. 현실적으로 농어촌교회나 개척교회, 선교사들이 연말마다 계속 부흥하고 성장했다고 보고하기가 쉽지 않다. 제자리걸음이라도 하면 제법 선전한 것이다. 그것을 후원교회가 이해해 주면 좋겠다. “우리가 이렇게 기도하고 후원하는데 교회가 계속 성장하지 않고 그런 모양이니…” 하면 후원받는 교회(선교사)는 보고를 뻥튀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농어촌교회나 선교사들의 경우 죽지 않고 살아만 있어도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④ 후원받는 교회의 목사를 한번씩 초청하여 설교하게 하고 잘 대접하는 것이 큰 격려가 된다. 후원받는 교회의 목사들은 설교 초청을 받는 일도 드물다. 후원하는 교회가 한번씩 초청하면서 되도록 부부 동반하라고 하여 대접해 주면 힘을 얻을 것이다. 사례비도 특별히 주고.

30) 조기 은퇴를 하는 목사들이 있다.
100세 시대라고 하니 70세 은퇴가 빠르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사회의 직종 가운데 목사는 70세 은퇴이니 비교적 긴 편이다. 최근 좀 깨어있다는 목사들이 조기 은퇴를 하는데, 그분들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너무 떠들지 말고 조용히 하면 좋겠다. 조기 은퇴하는 목사들의 경우 거의가 대형교회이거나 원로목사들이다. 그런 목사들은 조기 은퇴해도 여생을 살 수 있는 길이 보장된다. 또 은퇴 후에도 이곳 저곳에서 일할 수 있고, 또 일하고 있다. 결국 조기 은퇴하여 칭찬받고, 생계 걱정 없어 안심이고, 계속 일할 수 있으니 더욱 좋다.
작은 교회, 농어촌교회의 목사들은 정년을 채운다고 눈치를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버텨야 한다. 어떤 교인은 아예 핀잔을 준다 “OO교회 목사님은 조기 은퇴하고 젊은 목사가 와서 교회가 활력이 넘친다고 하네요.” 정년을 다 채우고 은퇴를 해도 은퇴하는 순간부터 살 길이 막막해진다. 목사직이 밥 먹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지만 현실은 그렇다. 심지어 은퇴하고 나면 노후를 의지할 집 한 간도 없다. 교회의 어려운 형편을 잘 알기에 무리하게 요구할 수도 없다. 그래서 작은 교회 목사들은 대체로 조용히 떠난다. 그리고는 세상의 관심 밖에서 혼자 힘겹게 여생을 살아간다.
은퇴목사들의 경우에는 거의 할 일이 없다. 당연히 생활이 어렵다. 그러나 원로목사 정도로 은퇴한 분들은 오라는 곳이 그래도 있다. 교회들이 은퇴목사, 특히 생활 보장이 되지 않는 은퇴목사들을 자주 불러서 설교를 하게 하고, 일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주면 좋겠다. 교회들이 임직식 등의 행사를 할 때 은퇴목사들을 초청해 순서를 맡기면 어떨까.

31) 목사(교역자)도 어느 날 소천받는다. 그리고는 바울 사도가 말한 것처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앞에서 자신의 일생과 목회에 대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목사의 죽음을 적어도 교단이 알리기는 해야하지 않을까 싶다. 대형교회 목사나 이름있는 목사, 교단적으로 한 자리 하시던 분들은 크게 기사가 나고, 추모의 글도 실리고, 장례식도 중계하듯 하는데, 무명 목사들은 그야말로 조용히 사라진다. 신문에 부고기사가 있듯이, 적어도 교단지에는 목사(교역자)의 죽음을 알리는 작은 기사라도 공통적으로 있어야 한다고 본다. 유명하거나 무명이거나 교단 목사(교역자)의 죽음을 알리는 기사난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한평생 교단 안에서 목회하고, 교단과 교회를 위해서 나름대로 일한 목사(교역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우가 아닐까.

32) 대형교회의 여러 차례 주일예배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대형교회는 교인들이 몰려오니 부흥하고 더 큰 교회당을 짓는다. 그래도 몰려오는 교인들을 감당할 수 없어 주일에 여러 차례의 예배를 드린다. 그러나 적당히 하면 좋겠다. 어느 정도 크기의 교회당에 2부 혹은 최대 3부 정도의 주일예배로 끝내야 하지 않을까. 내 생각에는 오전에 가능한 예배로 끝내야 한다고 본다. 그 이상은 교인을 받지 말든지, 분립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심지어 5부, 6부 예배가 있다고 자랑하는 교회도 있다. 1부 예배가 아침 7시쯤이다. 겨울에는 캄캄하고 잠자는 시간이다. 그런데 그 아침 7시, 1부 예배가 상당히 인기있다. 이유는 7시 예배를 드림으로 주일은 지켰으니 나머지 하루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가족들과 놀러가거나, 결혼식에 참석하거나, 쉬거나, 다른 약속을 할 수 있다. 요즘 교인들의 얄팍한 꼼수를 만족시켜 주기에 안성맞춤이다.
교회가 지점도 세운다. 그래서 한쪽 교회는 영상으로 설교를 본다. 그런데 그 지점 교회도 금방 가득 찬다. 교회의 네임 밸류(name value)와 목사의 명성이 큰 몫을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무교회주의나 인터넷으로 예배하는 교회를 문제삼을 수 있는가. 교인들이야 그렇게 몰린다 해도, 목회 양심상 교회가 주일 5-6부 예배나, 지점교회까지는 하지 말아야 하지 않을까. 그런 교회에 가는 교인도 문제지만 그렇게 꼼수 신앙의 길을 열어주는 것이 더 문제 아닌가. 교인들의 필요와 편리를 채워주는 그런 편리한 교회가 있으니 더 몰리고, 그걸 부흥이라고 한다.

33) 한국교회의 병폐 중 하나로 목회세습을 든다. 나는 목사들의 신분을 (신라시대의 신분제인 골품제도를 빗대어) 성골, 진골, 잡골(雜骨), 무골(無骨)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요즘 사회에서 말하는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 심지어 손가락 빨고 나왔다는 것과 같다. 목회세습은 주로 성골, 진골 목사들이 한다. 성골, 진골 목사들은 어릴 때부터 교회에서 교육비 지원을 받아 마음껏 공부한다. 외국 유학비도 교회에서 대준다. 유학갔다 오면 이력서가 더욱 빛나고, 교회에서 청빙받기도 유리하다. 목사후보생이나 강도사 시절에도 아버지나 유력한 인사들의 후광을 입어 부교역자 자리도 좋은 곳으로 간다. 담임목사 자리도 좋은 곳으로 쉽게 가더라. 가만 보면 목사들끼리 자녀들을 서로서로 챙겨주더라. 성골 진골로 태어나, 온갖 교육 다 받고, 좋은 자리로 가서 부교역자 생활하다가 중견 교회 담임목사가 되고 결국 세습을 한다. 목사의 자녀들이 신학대학원을 가는 경우는 대부분 성골 진골 목사들이 많다. 잡골이나 무골 목사들의 자녀들은 목사가 되려고 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가시밭길을 뼈저리게 아는데 그 길로 가려 하겠는가. 나도 내 자녀들에게 굳이 목사(사모)가 아니라도 좋은 교인이 되어 섬기라고 한다.
잡골이나 무골들은 줄이라도 잘 서야 한다. 정치적으로 유력하거나 든든한 줄을 잡으면 유리하다. 정치적인 목사들의 경우 한번 자기 밑에 들어온 사람은 끝까지 책임진다. 그래서 그 세력이 유지되고 무섭다. 서로 끌어주고 밀어주고… 그렇게 하여 세력을 형성하고, 그들만의 리그를 만든다. 노회만 가도 목사수에 따라 장로 총대수가 결정되니 대형교회는 표수가 상당히 많다. 그러니 잡골 무골 목사들, 작은 교회들의 의사는 소리도 없고 반영되지도 않는다.
목사는 주님께 부름받았으니 주골(主骨)이 되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요즘 교회들이 담임목사 청빙 광고를 내는 것을 보면 저기에 과연 누가 해당할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예수님이나 제자들이라도 가능할까. 베드로의 이력서를 내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부임하는 목사를 보면 더 존경스럽다. 그 까다로운 조건들을 다 갖추어 칭빙을 받는 것을 보면 대단하다. 그런데 그 청빙조건들이 주골(主骨)을 찾는 것일까.

34) 대형교회는 블랙홀과 같다. 주변의 모든 교인들을 다 빨아들인다. 그래서 더 크게 교회당을 짓고, 시설을 갖추고, 교역자를 늘이고, 시스템을 갖추고, 화려한 영상과 볼거리를 제공한다. 차량까지 돌리니 교인들은 대형교회로 몰린다. 호수나 하천의 포식자 블루길, 배스처럼 대형교회는 작은 교회들의 생존환경을 파괴한다. 대형교회의 교인들이 불신자에게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교인들을 끌고가는 것을 많이 보았다. 교회에서는 그렇게 가르치지 않는다고 하지만 적어도 교인들이 상식을 갖추도록 지도해야 하지 않을까. 일년 동안 한 사람도 등록시키지 못하면 안된다, 직분을 뗀다고 강요하니 다른(작은) 교회의 교인들이라도 끌고가려고 한다.
오는 교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고 한다. 그 말은 맞다. 제 발로 오는 사람을 어떻게 막을까. 그래도 대형교회가 불신자 전도에 초점을 맞추고, 일정 수용능력을 벗어나면 분립하든지, 불편한 환경을 그대로 두어야 할 것이다. 그러면 불편한 교인들이 다른 데로 간다. 그런데 대형교회들은 무한 확장을 하여 오는 교인들을 다 받고 끌어오기도 한다. 결국 한국교회의 블랙홀, 포식자가 된다. 작은 교회들이 먼저 죽지만 나중에는 대형교회도 죽는다.
경주의 최부자네 가훈에는 “사방 백 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것이 있다. 대형교회도 자기 주변에 굶어죽는 작은 교회가 없게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주변을 살피면 얼마나 좋을까. 대형교회, 도시교회는 작은 교회와 농어촌교회들과 공존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대형교회들에게 지금 당장 “그 교회를 통해 전도받은 교인들만 남고 이전 교회로 돌아가라.”고 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런만큼 농어촌교회와 작은 교회들이 대형교회 성장의 모판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래에도 농어촌교회와 작은 교회가 살아야 도시교회, 대형교회도 산다. 블랙홀처럼 주변 지역의 교인들을 빨아들이는 자세를 버려야 한다. 주변 지역의 작은 교회들이 할 수 없는 사역과 전도의 바람을 일으키면서 같이 공존하고 성장하도록 배려해야 한다.

35) 요즘은 교회가 시끄러운 경우 마지막 해결책은 돈이다. 목사의 중대한 범죄나 잘못 때문에 교회가 시끄러운 경우에는 목사가 잘못을 인정하고 깨끗이 사임해야 한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목사는 쉽게 사임하지 않는다. 자기의 잘못을 쿨하게 인정하고 나가면 그걸로 끝이기 때문이다. 반면 끝까지 버티고 우기면 교회는 시끄러워지고 교인들은 이쪽 저쪽으로 나누어진다. 교회가 분쟁 중인 어떤 교회의 원로목사님이 “싸움하는 교인들의 눈을 보니 눈동자가 이상하게 되더라.”고 하였다. 교회가 나누어지고 목사가 버티면 결국 해결책은 돈으로 하게 되고, 오래 버틸수록 그 액수가 커진다. 그래서 교회의 분쟁은 갈수록 해결이 어려워진다.
공무원은 파면이나 (향응이나 공금 횡령으로) 해임을 당할 경우 퇴직금이나 연금이 깎이고, 징계나 형사처벌에 따른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의원면직(자신의 의지로 사직)하는 것도 금지되어 있다. 즉 제대로 벌을 받고 그에 상응한 불이익도 받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목사는 큰 잘못을 저지르고도 교회에서 나가 주는(?) 조건으로 거액을 받는 실정이다.
잘못을 저지르고, 교회를 시끄럽게 하고서도 돈을 받고 떠나는 목사들의 경우 정상적으로 목회하고 은퇴하는 목사보다 더 많이 챙긴다. 돈으로 해결하는 교회도 문제고, 그렇게 하도록 부추기는 듯한 노회도 문제다. 노회에서 목사들은 나중에 자기도 그런 경우를 당할 수 있다는 생각에 되도록 목사편을 든다. 그렇게 오가는 돈은 교인들의 헌금이다. 그렇게 돈잔치를 하는 교회들을 보면서 작은 교회의 목사들은 허탈해진다. 작은 교회는 사례비도 작을 뿐더러 은퇴를 해도 별다른 예우를 기대할 수 없는데 말이다.
예전에 목사들은 3가지 준비 – 설교할 준비, 이사할 준비, 죽을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한다고 했다. 지금은 이사할 준비 대신 버틸 준비를 해야 되는지 모르겠다. 교인들 앞에서 본이 되도록 살면서 목회하고, 혹 자기의 잘못으로 교회가 시끄러워지면 솔직히 잘못을 인정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36) 안식년 문제도 이야기하고 싶다. 내가 알기로는 원래 안식년이 토지에 관한 제도가 아닌가. 토지에 안식을 주고, 가난한 자들을 배려하는 것이 안식년인 줄 안다. 그걸 사람에게도 적용하여 대학의 교수들이나 목사들이 안식년을 한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는 안식일, 토지에게는 안식년 제도를 주신 것이 아닌가.
안식년이 필요한 것은 선교사들의 경우일 것이다. 다른 문화권에서 힘들게 사역하였으니 안식년을 통해 영육의 쉼과 회복이 필요하다. 일반 목사나 대학교수에게 안식년이 꼭 필요한가. 목사나 교수에게 적당한 쉼과 회복이 필요하다는 것은 다 안다. 하지만 안식년을 챙기는 목사는 그리 많지 않다. 대형교회나 소위 깨어있는 교회의 목사들이다. 그들은 평소 교회로부터 예우를 받고, 부교역자들도 있고 한데, 안식년도 가진다. 작은 교회의 목사들은 혼자 일하여 쉬지 못해도 교회의 형편이 여의치 못하니 안식년은 꿈도 못 꾼다.
최근 작은 교회의 목사들은 투잡(two job)을 가지거나, 사모도 맞벌이를 많이 한다. 교회의 재정이 어렵기 때문이다. 사모들 중에는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따서 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목사나 사모들은 쉬는 날이 없다. 평일에 돈을 벌고 주일에는 교회를 섬긴다. 이들이야말로 정말 안식이 필요하지만 먼 나라 이야기다.

37) 전도가 어려운 시대다. 사회의 변화와 경제적 풍요함 속에 교회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가 전도를 방해한다. 노방전도가 어렵고 효과는 미미하다. 전도지를 받지도 않고, 아무렇게나 버리고 가는 경우 다 주워야 한다. 전도지를 받고 교회를 찾는 사람은 사막에서 꽃을 찾는 만큼 어렵다. 커피를 나누며 전도해도 싫다고 외면한다. 음식(호박죽, 부침개, 반찬 등)을 나누며 전도하는 것도 쉽지 않고, 간혹 음식이 상했다고 시비를 건다. 한때는 아파트가 전도의 황금어장이라 했고, 고구마전도법에서는 ‘아파트 문을 여는 법’에 대해서도 열강했지만 지금은 아파트가 철옹성이다. 아예 입구에서부터 출입이 제한된다. 아파트에 가서 전도하면 경비원이 달려와 항의가 들어왔다고 사정을 한다. 무시하고 전도를 강행하면 경비원 밥줄을 끊게 된다. 또 한번씩 목사나 장로나 교인들이 사회적 지탄을 받는 사건의 주인공이 된다. 반인륜적이고 엽기적인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면 전도가 더 힘들어진다. “너나 잘하세요.”라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도 자주 이웃초청주일을 하면서 가족이나 친구, 이웃을 초청하고 전도한다. 관계를 이용해 초청하고 전도하니 겨우 몇 명 정도가 믿기로 작정하고 등록한다. 일을 벌이고 사람을 만나고 힘쓰다 보면 그래도 열매가 있다. 대형교회에는 스스로 찾아오고, 가족 단위로 오고, 직분자들이 오지만, 작은 교회는 불신가정에서 처음 믿는 한 사람이 겨우 온다. 대형교회에는 자기 손으로 먼저 등록카드를 내지만, 작은 교회는 동록시키기가 조마조마하고 어렵다. 그렇게 한 사람이 믿고 등록할 때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하다는 것을 실감한다.

38) 작은 교회라고 목사가 작거나 교인이 못난 것이 아니다. “위대한 사람은 키를 하늘에서부터 잰다.”는 말이 있다. 오히려 훌륭한 목사와 교인들이 작은 교회를 섬기고 있다. 열악한 환경과 재정의 어려움, 엄청난 격차에서 오는 위화감, 아무리 해도 성장하지 않는 현실에 대한 무력감과 좌절감, 현실적인 생활고, 고생하는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견디며 산다. 대형교회라고 목회가 쉽지는 않겠지만 적어도 교회의 존립에 대한 걱정과 가정의 생활고가 없는 것만으로도 부럽다.
우리 교단에 나 말고 장애인 목사가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른다. 혹 있다면 감사와 위로를 전한다. 장애인으로서 목회에 성공한 선배가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 농어촌교회, 개척교회, 지하실에 있는 교회, 작은 교회를 섬기는 모든 목사(교역자)들, 장애인 목사들이여, 파이팅!!! 우리를 부르신 주님께서 맡기신 교회를 위해 끝까지 견디고 분투하자. 작은 교회에서 아무리 고생해도 70세면 은퇴하고, 그리고 천국간다.
길을 가다 시멘트 담벽이나, 아스팔트 길 옆에 핀 한 송이 노란 민들레를 본다. 어쩌다 거기에 씨가 떨어졌는지, 또 그 시멘트 사이에 어떻게 뿌리를 내리고 자랄 수 있었는지 모르지만, 민들레 한 송이가 거기 있는 것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눈길 한번 주지 않지만 민들레는 거기서 피어 씩씩하게 산다. 단단한 시멘트 사이에 연약한 뿌리를 내리느라 얼마나 아팠을까. 꽃밭이라면 부드러운 흙 속에 친구들도 많으련만, 혼자서 외롭기도 하였을 것이다. 개척교회, 작은 교회, 지하실에 있는 교회, 농어촌교회들도 이런 민들레와 같다고 생각한다. 힘들고 외롭고 알아주는 사람 없지만 주께서 보고 계시리라. 그리고 알고 계시리라. 사람들은 보지 않고 몰라도 주님 한 분 아시고 미소지어 주시면 된 것 아닌가. 주께서 심으신 그곳에서 복음의 꽃을 피우고 주님만 바라보며 살자.
작성일:2016-07-12 15:41:37 118.223.135.2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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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7-16 20:11:31
저희 교회에서 오래전에 장애인 교회를 장소를 빌려준적 있습니다 목사님글 을 읽고 할말이 없습니다 교회에서는 서로사랑 하라고 가르치고 진작 본인은 위선 과 권위 를 내세우니 너무라도 부끄럽습니다 신사참배 안한교단 이라고 자랑 하면서 이웃을 사랑하지 않으면 주님이 가르치는 계명을 어기는것 입니다 목사님 힘내세요 우리는 정신적 장애입니다 이제 저도 장애를극복하겠습니다 큰도전 을 주신 목사님 감사합니다
2016-07-13 18:45:24
참 많이도 힘드셨겠다 싶네요. 저도 산골에서 23년째 사역하고 있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습니다. 그리고 저의 동기목사님이시면서 이웃하고 계사는 목사님은 2급 장애를 안고 참 즐겁게 목회를 하십니다. 그래요 목사님! 실망스러운 교회의 모습에 힘드시더라도 우리는 주골이지 않습니까?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인정하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즐거움으로 감당하도록해요. 마음다해 응원하며 기도합니다. 힘내시고 멋진 목회 하시다가 천국에서 뵙도록 합시다. 긴 글 감사합니다. 꼭 건강하시기를 ,..
2016-07-13 10:41:34
귀한 글 잘 읽고 갑니다. 주님의 위로가 목사님과 우리 모든 목회자들에게 함께 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