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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무 교수님의 글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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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콩달콩
등록일
2016-11-08 10:22:11
조회수
2313
1991년에 고려신학대학원을 입학했다. 부산서면교회 은사이셨던 신득일 교수님(고신대학교 구약학)께서 유 교수님에 대해 알려주셨다. 실력 있는 좋은 분이니 잘 배우라고 하셨다. 학기가 시작되고 강의를 듣게 되었는데, 가슴이 뛰었다. 얼마 후에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 이후로 학교를 졸업하기까지 열심히 배웠다. 스터디 그룹을 만들고 1~2주에 한 번씩 별도로 공부를 하였다.
 
내 가슴을 울린 말씀 중에 하나가 “어린이아에게도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바른 이해가 담긴 말이라면 그 말을 누가 하든지 그 말을 듣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였다. 스터디 그룹은 그 내용이 실천되는 장이었다. 누구보다도 존경하며 따랐다.
 
“건강한 개혁신학은 진정한 회개 위에 가능하다.” 그분이 신대원 개교 7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Ecclesia semper reformanda: 고신교회와 신학 70년의 회고와 전망”이라는 주제의 논문(http://www.kscoramdeo.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87)의 한 부분이다.
 
건강한 개혁신학이란 <칭의 논쟁>(새물결플러스)에서 진보적 개혁파의 대표로 나온 마이클 F. 버드가 한 말이 실천되는 신학이다. “교회가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면 교회를 향한 주해적·신학적 도전의 국면에서 당신의 전통이 지닌 진실성을 단순히 재진술하는 것은 소용이 없다. 우리는 반드시 “모든 내용을 시험해야”하며(살전 5:21), 만약 우리의 전통이 성서와 맞지 않다면 그것은 기꺼이 수정되어야 한다.”
 
성경과 맞지 않은 전통을 포기하는 것이 회개이다. 그것이 신학이든지 관습이든지 생활 방식이든지 말이다. 이를 거부하는 신자는 없으리라고 생각한다. 문제는 생각은 그렇게 하지만 실천하느냐이다.
 
유해무 교수님은 어떤가? 자신의 글을 실천하고 있는가? 경인노회에서 제명을 당하기 전에 노회의 참빛교회 담임목사이셨던 김윤하 목사님은 유 교수님께 내 문제에 대한 자문을 구했다. 신학적인 사안이었기에 신학적인 평가가 필요하였기 때문이다. 그 일로 인해 학교를 찾아가서 유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런 것은 없었다. 당시에 개척교회를 하고 있었는데, 10년간 사역을 잘해서 교회를 부흥시킨 후에 그 문제를 제기하라고 말씀하셨을 뿐이었다. 유 교수님이 김 목사님에 드린 답변 곧 내 주장에 대한 성경적인 평가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답변은 내 제명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유 교수님은 자신의 말을 따르지 않으면 나만이 아니라 가족들이 크게 고생한다고 말씀하셨다. 제명되고 그 이후의 내 삶은 그분의 말씀대로 되었다.
 
그 모습이 그분이 주장하는 바와 부합되는가? 아니다. 전혀 아니다. 그분의 논문 내용에 머리로는 적극적으로 수용하지만 마음으로는 수용되지 않는 이유이다. 그분의 모습은 ‘신학자로 먹고 살려면’(1004번)이라는 글을 적은 원인이 되었다.
 
구약 성경의 선지서에는 거짓선지자들이 나온다. 그들의 삶의 행태가 윤리적으로 특별히 악했는가? 그런 내용은 없다. 그들이 하나님을 부인했는가? 그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정죄되었는가? 이유는 단 하나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에게 말씀하시고자 하는 바와는 다른 내용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시고 언약에 신실하신데, 이스라엘은 그 후손들이기에 하나님의 의해 멸망하는 일은 없다고 했다. 그 주장은 칼빈주의에서 성도의 견인이 주장하는 바와 내용적으로 똑같다. 세부적으로는 약간의 다른 뉘앙스가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그렇다.
 
칼빈주의의 성도의 견인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르다는 것은 이미 밝혔다(979, 986, 994, 999, 1000). 진정으로 건강한 개혁신학은 진정한 회개 위에 가능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하셔야 하는가? 교회의 교사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계신 신학자로서 어떻게 하셨을까? 침묵과 회피가 바른 태도가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분명하다.
 
내 경험에 의하면 신학자나 목사들은 자신들이 옳다고 생각하며 가르쳐왔던 바가 잘못이었음이 밝혀질 때에 그것을 인정하기 힘들어한다. 성도들에게 잘못 가르쳤음에 대해 공식적으로 사과를 하여야 하는데, 결코 그렇게 하지를 않는다. 회개와는 정반대로 행하는 것이다. 구약의 거짓선지자들과 내용적으로 똑같은 주장을 하면서도 그 모습에 대해 그 어떤 심각한 반성이 없다. 거짓선지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와 심판을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면 그러한지 참 놀랍기만 하다.
 
잘못 이루어진 신학의 내용도 수정하여야 한다.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그것은 너무나도 당연하다. 그렇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어떻게든지 그것을 지키려고 할 뿐이다. 루터나 칼뱅이나 여러 칼빈주의 신학자들을 지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고 있는 것이다.
 
나는 칼빈주의나 알미니안주의 그 어느 것도 전적으로 수용하진 않는다. 그렇기에 칼빈주의자도 아니고 알미니안주의자도 아니다. 그렇지만 개혁주의자라고는 생각한다. 위의 버드의 주장을 받아들이고 따르려고 한다는 면에서 그렇다. 나는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진정한 개혁주의자가 되어 개혁주의자로서의 길을 걷기를 바란다. 거짓선지자와 똑같은 주장을 하며 사는 삶에서 하루라도 속히 벗어나시기를 바란다.
 
“건강한 개혁신학은 진정한 회개 위에 가능하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천할 때에.
 
 
추신, 전적 부패, 무조건적 선택, 보편적 속죄, 불가항력적 은혜, 은혜에서 탈락할 수 있음. 이 다섯 가지가 구원론의 다섯 소주제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생각한다. 이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닫힌 성경 열기>(등과빛 출판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작성일:2016-11-08 10:22:11 14.42.15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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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cjj5016 2016-11-18 10:08:49
스데반 황님. 이 문제와 관련하여선 저를 위해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세요. 복음을 엉터리로 이해하고 거짓선지자와 똑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자신을 바로 인식하고 돌이키는 것요. 주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junshikhwang 2016-11-15 11:22:11
박창진 님이 아직 복음의 기쁨과 자유를 누리지 못해서 많이 슬픕니다. 나름 님을 위해 기도하지만, 복음, 곧 정말 좋은 소식이 어찌, 내 순종에 의해 구원이 왔다 갔다 하고, 또한 구원 조차 확신할 수 없는 불안한 상태에 서 버리셨는지.... 생각날 때 계속 기도하겠습니다. 주의 은혜가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pcjj5016 2016-11-09 09:55:02
순종으로 구원받는다가 참이면 구원받지 못했다면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도 참이다.
구원받았다면 순종한 것이다는 참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십자가의 한 편 강도를 생각하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영접함과 동시에 이 땅에서의 삶이 끝났고 순종의 기회 자체가 없었지만 그는 구원받았다.
순종하지 않았다면 구원받지 못한다도 마찬가지로 참일 수도 있고 거짓일 수도 있다. 십자가의 한 편 강도와 같은 예외가 있기 때문이다.

순종으로 구원받는다고 하면 자연스럽게 순종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여기에 대한 답이 바울 사도의 진술이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자기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둔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얼마만큼의 순종이면 구원받는가라는 질문이 뒤따른다. 이에 대한 답은 모른다이다. 성경에 그에 대한 진술을 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순종으로 구원받는다고 하고선 순종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해선 답변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사는 길을 찾아간다. 자신이 속한 진영 안에서 안전을 보장받는 길을. 교회의 교사라는 신학자로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는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이런 현실이 개탄스럽다. 그러면서 코람데오를 외치는 것에 대해서는 슬프기까지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