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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잃은 양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누가복음 15:1-10)

닉네임
스데반 황
등록일
2017-02-12 17:15:46
조회수
1492
잃은 양을 찾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누가복음 15:1-10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3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 비유로 이르시되
4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의 하나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들에 두고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지 아니하겠느냐
5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6 집에 와서 그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7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
8 어떤 여자가 열 드라크마가 있는데 하나를 잃으면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찾아내기까지 부지런히 찾지 아니하겠느냐
9 또 찾아낸즉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말하되 나와 함께 즐기자 잃은 드라크마를 찾아내었노라 하리라
1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


오늘을 포함해서 앞으로 3주 또는 4주 동안 누가복음 15장을 다루게 될 것입니다. 누가복음 15장을 이해하는데 있어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일차적인 문맥이며, 그 후 성경 전체의 주제인 새언약, 곧 십자가의 복음과 연결하는 것입니다. 이에 일차적인 문맥은 1절과 2절이기 때문에 우리는 1-2절을 마음 속 깊게 새긴 후에 누가복음 15장을 해석할 것입니다.

일단 1-2절을 보겠습니다.
[
1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2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눅 15:1-2)

예수님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러 나아온 ‘모든 세리와 죄인들’을 ‘읽은 양’, ‘잃은 은전’, ‘잃은 아들’과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반면에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께 나아와 주의 음성을 귀담아 들으려고 하기는커녕 예수님을 대항하여 수군거립니다. 여기서 수군거린다는 원어 (디아공기조)는 불만과 못마땅함을 표현하면서 “와글와글 떠들다”, “수군거리다”, “불평하다”, “투덜대다”라는 뜻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데 예수께서 여리고로 지나가시면서 세리장 삭개오의 집에 들어갔을 때도 사람들이 ‘디아공기조’하였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눅 19:7).

그 당시 바리새인들은 조상의 유전과 율법 해석을 기초로 하여 수많은 금지 조항과 의무 사항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켜야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만일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하나님의 백성의 명단에서 제거한 후 주의 백성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이에 의무 조항을 지키지 못한 자들과 죄인으로 간주된 자들은 유대 사회 속에서 천대를 받으며 사회적으로 정상적인 권리를 행사하지 못했습니다.

유대교의 장로의 전통에 따르면 유대 나라에 속하지 않는 자들은 “이 땅의 백성”이라고 불리었습니다. 물론 그들 자신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렀습니다. 즉, 그들에게 있어서 사람들은 단지 두 부류였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종교 지도자로 삼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과 그렇지 않은 “이 땅의 백성”이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소위 ‘하나님의 백성’을 책임지고 인도하는 지도층이었습니다. 그들은 조상의 유전에 따라 “이 땅의 백성”에게 속한 자들에게는 돈을 꿔주어서도 안 되고, 법정에서 증인으로 세워도 안 되고, 그들에게 비밀을 말해도 안 되고, 자녀들을 맡겨서도 안 되며, 구제 자금을 건네주어서도 안 된다고 가르쳤습니다. 특히 “이 땅의 백성과 함께 동반하는 것”을 강력하게 금하였습니다. 심지어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의 고백 중에는 “하나님을 분노하게 만드는 이 땅의 백성이 멸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이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이러한 장로의 전통 가운데 세리와 죄인들은 이 땅의 백성에 속한 자로 분류되어 있었습니다. 특히 세리들은 로마를 위한 기생충들이라고 불리면서 부당한 세금을 거두는 혐오 대상으로 여겨지고 있었습니다. 한편, 이 땅의 백성에 속한 자들로는 토색하는 자, 불의한 자, 간음하는 자, 세리, 행상인, 동물 가죽으로 옷이나 물건을 만드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누가복음 18장 11절에 보면, 예수님의 비유 내용에서 바리새인의 기도가 나오는데 이러한 내용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

이처럼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세리들과 죄인들과 거리를 두어야 했고 결코 그들과 함께 해서는 안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서 1절과 2절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편, 예수님은 유대 사회에서 랍비와 종교 지도자, 그리고 뛰어난 서기관으로 인정을 받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장로의 유전과 전통을 어기고 “이 땅의 백성”들과 함께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향해 지니게 되는 인식은 매우 황당하고 경악스러운 것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린 내용은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을 ‘이 사람’이라고 부르며 결코 메시아나 선지자나 서기관이나 선생으로 인정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들은 무리로 뭉쳐 수군거리며 예수님을 죄인들과 세리들과 사귀는 수치스런 분으로 인식하면서 예수님께 존대어를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의 수군거리는 내용은 참으로 놀라운데 그 내용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복음”이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죄인을 영접하고 죄인과 음식을 같이 먹도다!”
그들은 수군거리며 욕하기 위해 이 말을 했지만, 이 말은 하나님이 계획하고 친히 실현하신 하나님의 가장 깊은 비밀인 복음이었던 것입니다.

출애굽기 24장을 보면 모세와 주의 백성의 지도자들이 동물의 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주의 보좌 앞에 나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
6 모세가 피를 가지고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지고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 인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 같이 청명하더라
11 하나님이 이스라엘 자손들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셨더라
](출 24:6-11)

여기서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영접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을 같이 나누십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동물의 피를 통한 언약이었습니다. 이는 그 어떤 죄인이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통한 새 언약에 의해 하나님 보좌 앞에 나아가 주님과 맘껏 교제하며 먹고 마시는 것을 예표하는 내용입니다.

예수께서 새 언약을 제정하십니다. 그 장면 역시 예수께서 죄인들을 영접하여 자기의 피와 살로 만찬을 나눈 것이었습니다.
[
25 식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하셨으니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고전 11:25-26)

즉,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영접하고 죄인과 음식을 같이 먹는 것”은 구약 전체에서 예표되어 왔던 복음이며 새 언약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은 죄인을 영접하고 그들과 하나가 되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
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 및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 및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막 2:16-17)

그러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그들에게 속한 자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을 전혀 알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손가락으로 귀를 막고 세리들 및 죄인들과 함께 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점점 더 미워하고 멸시하고 멀리하였던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장로의 전통을 가지고 교만한 가운데 복음 사역을 막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질타하셨습니다.
[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
46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눅 11:39, 42-44, 46-47, 49, 52)

이처럼 바리새인의 관심은 자기 영광이며, 이 세상이었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더 많은 돈을 착취하는데 있었고, 세리들과 죄인들을 멸시하면서 교만 가운데 높은 자리에 앉는 것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생명과 거룩과 사랑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종교 형식과 인간의 의를 자랑하였으며 특히 장로의 전통으로 자신들의 권위를 세웠습니다. 이에 그들에게는 경건의 모양은 있었지만 생명으로 나타나는 경건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죽은 종교성만 있는 위선적인 종교 집단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그분의 기쁨이 어디에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데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 나라와 관련해서 늘 우리 예수께서 하신 마지막 말씀이 누가복음 14장 35절에 있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믿음으로, 성령의 조명하심 가운데 알아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적이며 신학적인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주의 말씀을 책 잡으려고 찾아오고, 반면에 세리들과 죄인들은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찾아왔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바울이 말한 것과 정확하게 같습니다.
[
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9 기록된 바 내가 지혜 있는 자들의 지혜를 멸하고 총명한 자들의 총명을 폐하리라
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의 도를 전하는 미련한 방법으로)(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스데반 황 일부 수정)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22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23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24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25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하심이 사람보다 강하니라
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29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전 1:18-19, 21-29)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들을 귀 있는 자들을 섭리 가운데 모으십니다. 여러 상황을 통해 그들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주의 일꾼으로 하여금 복음을 외치게 합니다. 이때 그 상황에서 성령께서 들을 귀 있는 자들의 마음 속에서 역사하십니다. 이 현상이 15장 1절입니다.
“모든 세리들과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예수 그리스도께) 가까이 나아오더라.”

이것이 우리 예수님의 잃은 양 비유 및 잃은 은전 비유의 직접적인 배경입니다. 예수께서 비유를 말하신 이유는 바리새인들의 어둠을 드러내고 부끄럽게 하려 하심이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찾는 죄인들을 향해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기 위함입니다.

7절과 10절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죄인’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지만 아직 구원을 얻지 못한 자이거나, 또는 구원을 얻었을지라도 불신앙의 상태에 머문 신자를 의미합니다. 그들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섭리와 성령의 역사로 인하여 그리스도 앞에 나아와 주의 말씀을 듣고 구원 받거나, 또는 다시 하나님과 온전한 교통의 자리에 나아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그리스도께 나아오게 하셔서 그들의 죄를 십자가의 보혈로 사하여 주시고 그들을 품에 안으실 것입니다. 아무튼 그들은 하나님의 품을 떠난 죄인입니다.

비유 내용은 무척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양 백 마리가 있는데 그 중 하나를 잃었습니다. 아흔 아홉은 안전한 곳에 있지만, 양 한 마리는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양의 주인은 그 잃은 양을 찾아낼 때까지 찾아 다닐 것입니다. 그리고 찾아내면 너무나 즐거워하며 그 양을 어깨에 매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는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아내었노라.” 라고 기뻐합니다.

또 다른 비유는 어떤 여자가 열 개의 은전이 있었는데 그 중에 하나를 잃어 버렸습니다. 그러자 등불을 켜고 집을 쓸며 그 은전을 찾을 때까지 부지런히 찾습니다. 그리고 결국 찾아낸 후에 벗과 이웃을 불러 모으고 “나와 함께 즐거워하자. 잃은 은전을 찾아내었다”고 하며 기뻐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이 비유에 대해 덧붙여 설명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늘에서는 회개할 것 없는 의인 아흔아홉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것보다 더하리라”(7절).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와 같이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 기쁨이 되느니라”(10절).

일단 비유에서 중요한 것은 백 마리의 양과 은전 열 개는 각각 주인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주인의 것인데 잃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잃은 것을 찾아 나섭니다.

이 비유를 말씀하신 예수께서는 잃은 양에 대해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
10:14 나는 선한 목자라 나는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0: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0: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 터이니 그들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0:17 내가 내 목숨을 버리는 것은 그것을 내가 다시 얻기 위함이니 이로 말미암아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느니라

10:26 너희가 내 양이 아니므로 믿지 아니하는도다
10:27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그들을 알며 그들은 나를 따르느니라
10: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29 그들을 주신 내 아버지는 만물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요 10:14-17; 요 10:26-29)

특히 누가복음 15장 본문에서 4절과 8절을 보면, 주인은 그 잃은 것을 “찾아내기까지” 찾는다고 말합니다. 즉,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해 양의 주인 또는 은전의 주인은 찾을 때까지 결코 포기하지 않는 주인인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는 잃은 양은 주인에게 한없이 소중하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마태복음 18장을 보면 예수님의 잃은 양의 비유가 똑같이 실려 있는데 다른 내용이 추가되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이 작은 자 중의 하나라도 잃는 것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뜻이 아니니라”(마 18:14).

이로써 우리가 아는 것은 하나님은 자기 양을 결코 잃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뜻입니다.

100과 10은 예수님의 비유에서 완전수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다 찾아내실 때까지 쉬지 않고 수고하며 찾아 다니실 것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잃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끝까지 찾아내어 구원하실 것입니다. 주의 택한 백성을 다 찾아내시면 그때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즉, 오늘 본문의 비유의 핵심은 잃은 양 하나와 잃어버린 은전의 주인은 반드시 그 잃은 것을 찾아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하나님이 잃은 양을 찾은 결과는 그 양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입니다. 이 표현을 예수님은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주인은 참으로 기뻐합니다. 잃은 양을 찾은 주인은 너무나 기뻐서 그 양을 어깨에 메고 집으로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서 잔치를 배설하고 같이 기뻐하자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의 친구들과 이웃은 잃은 양을 찾은 주인과 함께 한없이 즐거워합니다.

10절을 보면, 예수님의 설명이 나오는데, 죄인 한 사람이 회개하면, 즉 하나님께서 잃었던 백성 하나를 찾으시면, 하나님의 천사들도 기뻐한다고 알려줍니다. 또한 주인의 벗과 이웃들도 함께 즐거워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잃은 양 하나를 찾아내면 하늘에서는 한 없는 기쁨이 있음을 알려줍니다. 이는 주인에게 속한 모든 친구들과 이웃들과 하늘의 천사들이 함께 즐거워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은 잃었던 한 영혼을 찾은 것에 대해 함께 즐거워함으로써 주인과 한 마음인 사실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누가복음 15장에서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즐거움에 도리어 반대하는 자들로 드러납니다. 즉, 그들은 세리들과 죄인들이 돌아오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고, 도리어 그들을 찾으려고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하고 미워하고 반대하는 모습에서 자신들의 정체를 드러냅니다. 그들의 정체는 그들의 아비가 하나님이 아니라 마귀인 것입니다.
[
8:41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한 일들을 하는도다 …
8:42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 이는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나와서 왔음이라 나는 스스로 온 것이 아니요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이니라. …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8:45 내가 진리를 말하므로 너희가 나를 믿지 아니하는도다
8:47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나니 너희가 듣지 아니함은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요 8:41-42, 44-45, 47)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지 않고 그분에게 오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도 아니며 하나님의 잃은 양들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잃은 양은 반드시 하나님의 완전한 섭리에 의해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지금 내 관심이 어디에 있는지 살펴보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 속에 바리새인적인 요소들이 있다면 회개하고 제거하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기쁨이 아니라 슬픔이 될 수 있습니다. 탕자의 비유에 나오는 큰 아들이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대적했던 바리새인 및 서기관의 자리에 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만일 정녕 하나님께 속한 자가 아니라면 그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대적하며 주의 잃은 양에 대해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입니다. 도리어 잃은 양이 돌아오면 혹시 기득권 및 세상 영광을 빼앗길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에 무척 화를 내며 방해하며 못마땅하게 여길 것입니다.

잃은 양 및 믿음의 길에서 벗어난 택한 백성을 찾아내는 것은 하늘 아버지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택하신 소자들 중에 하나라도 그리스도께로 돌아오지 못하도록 막는 자가 있다면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엄청난 죄를 짓는 것입니다. 그러한 죄를 짓는 부류가 있었으니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서 종교 지도자 역할을 하던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었습니다. 지금 시대로 치면 자기의 탐욕과 영광을 위해 예수님과 하나님의 이름을 팔아 종교 놀이는 하는 자들이 그러합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께 속한 자들의 특징은 한 영혼이 중생하는 것을 보고 가장 기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기쁨에 동참하는 것이며, 또한 그 나라가 다 찰 때까지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기를 바라며 희생하고 수고하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예수님께서 알려주신 우리 하나님은 우리를 찾아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의 영광을 내려 놓으시고 사람의 몸을 입고 마구간으로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심지어 자기 백성을 찾아 그 백성의 더러움을 씻겨주고 영광스러운 백성으로 세우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자기 생명을 바치시고 나아가 그분의 영을 우리에게 쏟아 부으신 분입니다. 그분은 아무나 닥치는 대로 찾기 위해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 ‘내 양’을 찾으러 오셨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버려진 상태에 있던 우리를 찾아내셔서 어깨에 메시고 한없이 즐거워하셨던 분이 바로 우리 예수님이십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열심에 의해 우리는 마침내 죄 사함을 받고 중생하여 영생을 얻게 되었으며 이제는 주인이 계신 하늘에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 있습니다.

공간 복음을 잘 보면 예수께서 잃은 자를 찾아 다니시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누가복음 8장 26절 이하를 보면 예수님은 갈릴리 바다를 목숨을 걸고 건너가셔서 거라사인의 땅에 가신 후 그곳에서 귀신들린 광인을 구원하신 후 곧바로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오십니다. 또한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사마리아 여인과 그 동네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부러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택한 자들을 철저하게 찾아 구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십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이 비유를 들으며 바리새인의 정신을 철저하게 버릴 각오를 하셔야 합니다. 그 정신은 하나님의 마음에 무관심한 정신입니다. 그 정신은 하나님의 잃은 양에 대해 무관심한 정신입니다. 우리에게서 바리새인의 정신이 제거되어야만 잃은 양을 찾는데 쓰일 수 있는 성령의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세상적인 교양과 세상적인 자랑과 품위 있는 종교 생활을 위해 모이는 곳이 아닙니다. 한 때 죄인이었으나 하나님이 찾아내셔서 복음을 듣고 중생한 자들이 모이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들은 이제 교회를 통해 계속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잃은 자들을 찾는 사명을 갖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들 역시 하나님의 이름으로, 특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들을 찾았던 자들에 의해 주께로 돌아온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잃은 양을 찾아 나설 때 주의 종들이 아는 것은 잃은 양들의 처지나 상황은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입니다. 그들의 과거가 어떠한지도 전혀 중요하지 않습니다. 단지 그들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다가오는지, 그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바리새인들도 온 땅을 뒤지며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현대의 신*천*지 및 여러 이단들처럼 쉬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세상에서의 자기 집단의 세력을 위해 도움이 될 사람을 찾는 것이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잃은 양들을 찾아 나서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아시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교인 한 사람을 얻기 위하여 바다와 육지를 두루 다니다가 생기면 너희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도다”(마 23:15).

그러나 우리의 목자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종들이 잃은 양을 찾는 것은 양의 줄 어떤 이득 때문이 아니라, 길을 잃고 위험에 처해 있는 그 양의 유익을 위함입니다. 우리 역시 과거에 모두 각기 제 길로 갔던 잃은 양들이었지만, 우리에게 오직 영생을 주시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기업으로 주시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역시 그러한 순수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기쁨에 동참하기 위해 잃은 양들을 찾아 다니며 그들을 위해 우리의 시간과 재물과 사랑과 관심을 쏟아 부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보답하는 길이며 또한 하나님의 참된 기쁨을 채워 드리는 삶의 모습인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작은 다이아 반지를 잃어 버렸습니다. 평생 가난하게 살았지만 남편이 열심히 수고해서 그럭저럭 잘 살더니 결혼 50주년에 남편이 다이아 반지를 해주며 가장 깊은 감사와 사랑을 고백한 것입니다. 그러나 슬픈 것은 그 후 남편이 병이 들어 시름시름 앓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따라서 그 할머니에게는 그 반지가 남편을 기억할 수 있는 가장 귀한 물건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손가락을 보니 반지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곳에는 없고 집에 있는 것이 분명했습니다. 그래서 집을 찾고 쓸고 뒤지며 그 반지를 찾았습니다.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그런데 5살짜리 손주가 할머니의 간절한 소망을 알고는 같이 찾아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장난감을 넣어 둔 큰 통에서 이 손주 아이가 반지를 찾아냈습니다. 알고 보니 할머니가 손주와 놀아주려고 장난감 통을 뒤지다가 반지가 그곳에 빠졌던 것이었습니다. 할머니는 반지를 찾은 기쁨에 어쩔 줄 몰랐습니다. 할머니는 손주를 바라보며 얼마나 대견스럽고 사랑스러운지 그 끝이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할머니는 손주를 통해 가장 귀한 반지를 찾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가장 큰 선물은 잃은 양을 찾아드리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의 관심이 하나님의 관심과 같다면, 그리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분의 기쁨이 되고 싶다면, 우리의 역시 하나님의 잃은 양에게 모든 관심을 쏟게 될 것입니다. 그 절정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시고 이 땅에 친히 잃은 자를 찾으러 오셨습니다. 이에 하나님은 그 아들로 인하여 지극히 영원히 기뻐하며 감사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잃었다가 찾은 자들은 다름아닌 저와 여러분인 것입니다.

이 자리에 앉아 계신 하나님의 백성들이여!
복음을 들고 나가 온 세상 사람들에게 외치기 바랍니다.
“오라 듣는 자도 오라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계 22:17)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외치기 바랍니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7-28).

사도 야고보와 다니엘 선지자는 말합니다.
[
약 5:19 내 형제들아 너희 중에 미혹되어 진리를 떠난 자를 누가 돌아서게 하면
5:20 너희가 알 것은 죄인을 미혹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자가 그의 영혼을 사망에서 구원할 것이며 허다한 죄를 덮을 것임이라

단12:3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
](약 5:19-20; 단 12:3)

이 자리에 예배하는 아이들은 아이들 세계 속에서 잃은 자들을 찾기 바랍니다. 학생은 학생 세계 속에서 주의 잃은 학생들을 찾기 바랍니다. 직장인은 직장에서 잃은 자를 찾기 바랍니다. 심지어 가정에도 잃은 자가 있으니 가정에서도 찾기 바랍니다. 잃은 자를 찾는 것은 무작정 예수 믿으라고 강요하고 안 믿으면 지옥 간다고 협박하는 것이 아닙니다. 잃은 자를 찾는 우리들의 심정은 그들을 참으로 사랑하며 항상 그들을 위해 기도하며 특히 그들 앞에서 주의 영광을 가리지 않기 위해 철저하게 올바르고 따스하고 거룩한 삶을 사는 것이 잃은 자를 찾는 우리의 자세인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과 함께 우리 모두가 다시 한번 잃은 자를 찾는 도구들이 되어 우리 주인의 기쁨이 되고, 또한 주의 기쁨에 영원토록 동참하게 되는 복된 주의 백성들이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Copyright@스데반 황 목사, 그리스도의 보혈 교회]
작성일:2017-02-12 17:15:46 211.235.60.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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