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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열린 하늘과 찢긴 휘장 (막 1:9-15; 15:33-39) 송영목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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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 창 기
등록일
2007-10-16 01:24:33
조회수
5106
이 설교는 읽기와 듣기가 너무 다릅니다. www.daehaak.org 에서들어보세요 [황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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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국회스럽다’가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지난 한글날에 국립국어원이 사전에 나오지 않는 신조어를 소개했는데, 그 뜻은 이익을 위해서라면 비열하게 다투거나 날치기와 같이 비신사적인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노풍당당’이란 연세가 많은 분들이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고 활기차게 사시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답다’는 무슨 뜻일까요? 우리가 어떻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답게 산다는 말을 들을 수 있을까요? 무언가 불신자와는 달리, 그리고 예수님을 닮아가야만 그런 말을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시간 그 답을 들어봅시다.

요지: "나는 하늘 백성으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한다."

첫째로, 왜 우리는 하늘 백성으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야 합니까? 우리는 하늘의 은혜를 맛보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막 1:1절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시작이라"고 선언합니다. 그러므로 막 1장과 막 15장도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으로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많은 일들 사이에 유사한 것이 있습니다. 마태복음의 산상설교와 누가복음의 평지설교가 비슷합니다. 주님이 2번 행하신 예루살렘 성전 정화도 비슷합니다. 이 시간 살펴볼 것은 세례 받으실 때와 죽으실 때 일어난 비슷한 사건입니다. 막 1:10절의 예수님의 세례 받으실 때 하늘이 열린 것을 schizo (현재 수동태 분사. being rent)라는 동사로 설명합니다. 막 15:38절의 예루살렘 성전의 휘장이 찢어진 것도 schizo (아오리스트 수동 직설)동사로 설명합니다. 이 둘 사이에 무슨 관련성이 있을까요? 마 26:65절에 예수님이 인자로서 심판하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은 대제사장이 옷을 찢는 모습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구약에서는 왕, 선지자 그리고 제사장이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님도 공적인 임무를 수행하기 전에 세례를 받으십니다.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지고 성령이 임하십니다. 기름을 머리에 부음 받았던 구약의 왕들처럼, 예수님 위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예수님이 그리스도라는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죄가 있어서 받으신 세례가 아닙니다. 세례를 받으심으로써 회개한 죄인과 예수님 자신을 동일시하십니다. 하늘이 갈라진 것은 예수님이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하늘의 복을 이 땅에 가져오시는 사역을 하실 것을 예고합니다.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중보자이십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그분은 하나님이신 동시에 사람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살지만 하늘에 시민권을 두며 순례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도 하늘의 신령한 은사와 은혜를 맛보도록 성령이 임하십니다. 예수님 위에 임하신 비둘기 형상의 성령은 곧 창조 전에 수면 위에 운행하시던 하나님의 신이십니다. 즉 성령 충만을 입으신 예수님이 이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시 2:7절과 사 42:1절의 성취대로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자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으신 여러분.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의와 하나님에 대해서 살고 계십니까? 성령으로 행하십니까? 여러분의 삶에 하늘이 열려있습니까? "내가 너를 사랑하고 기뻐한다"는 하늘의 음성이 들리십니까? 아니면 나를 사랑하고 이해해주는 아무도 사람은 없다라고 생각하십니까? 특별히 병약하고 지친 심령에게 하늘이 열리고, 하늘의 음성이 들려져야 합니다.

하늘이 열리고 사랑한다는 음성을 듣고 성령을 받으신 예수님은 바로 다음 사단에게 시험을 받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예수님을 믿어 성령이 임하고 하늘의 백성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단의 시험은 계속됩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오직 하늘의 은혜로만 가능합니다. 하늘이 열린 사람은 전도하고 말씀을 전하고 영적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하신 사역을 우리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힌 사람은 하늘의 음성을 발합니다. 그것은 악한 감정을 가지고 성도를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격려하는 것입니다. 하늘에 시민권을 두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그 사랑을 나누어줍니다. 그 사람은 세상의 풍파와 어려움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사단의 전략은 설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외쳤던 스펄전목사님은 이런 말도 했습니다: "만약 우리에게 작은 믿음만 있다면 천국 갈 수 있고, 큰 믿음이 있다면 저 천국을 이 땅에 내려오도록 할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열린 하늘의 은혜를 설명합니다: "예수님을 묵상할 때 모든 상처가 치유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묵상할 때 모든 슬픔이 근절됩니다. 성령님의 감화력 안에는 모든 아픈 곳을 잊게 해주는 진통제가 있습니다. 여러분의 슬픔을 잊고자 하십니까? 여러분의 염려들을 잊고 싶으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깊고 깊은 바다에 잠겨 보십시오. 하나님의 광대함에 몰두해 보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은 안식처에서 나오는 것처럼 기운을 차리고 생기가 돌아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신성이라는 주제에 대해 열심히 묵상하는 것보다 더 영혼에 위로를 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슬픔과 비탄의 굽이치는 파도를 그처럼 진정시키며, 시련의 바람들을 평온하게 해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열려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으로 삽시다.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자녀로 삽시다. 죄악과 미움과 증오 가운데 살면서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만들지 맙시다. 우리의 말과 행동과 생각은 "너를 보니 내가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다"라는 인정을 하나님으로부터 받을 만합니까? 우리의 언행심사를 성령님이 통제하십니까? 아니면 하고 싶은 대로 함부로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해 버립니까? 함께 기도합시다: "우리를 하나님의 기쁨과 사랑하는 자, 그리고 성령의 사람으로 바꾸어 주옵소서."

둘째로, 우리는 어떻게 하늘의 백성으로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보혈의 공로를 힘입어 제사장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큰 소리로 "내가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부탁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 후에 죽으실 때 돌 성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성전에는 두 개의 휘장이 있습니다. 첫 번째 휘장은 제사장의 뜰로부터 성소로 들어 갈 때 성전 입구에 있는 휘장입니다. 이 휘장은 ‘마삭’이라고 불립니다 (출 26:36). 두 번째 휘장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더 내부에 있는 휘장인데 ‘파로켓’이라 불립니다 (출 26:31). 이 두 휘장은 모두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수를 놓아 짠 것입니다. 차이점이 있다면 둘째 휘장 즉 지성소 입구에 있는 휘장에는 그룹 천사들이 수놓아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찢어진 성전 휘장은 첫 번째 휘장일 가능성이 많습니다.

성소의 입구에 있는 이 첫 번째 휘장을 이스라엘 백성 누구나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휘장은 레위인을 제외한 일반 백성이 성소로 접근하는 것을 막았습니다. 그렇다면 레위인과 제사장이 구별되게 섬겼던 곳의 휘장이 찢어진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두 가지 측면으로 살펴 볼 수 있습니다. 심판적인 측면과 구원적 측면입니다.

심판적인 측면에서, 예수님을 배척한 유대인들의 삶의 중심이었던 예루살렘 성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의미합니다. 예루살렘에서 시행되는 구약의 제사제도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파괴로 끝이 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예루살렘성전을 심판하고 버리시기 전에, 하나님께서 그 곳을 떠나버리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이 심판이 얼마나 큰 것이었기에 마 27:51절에서는 바위도 터지고 쪼개어졌다고 합니다.

구원적인 측면에서 보면, 이 휘장이 찢어지는 것은 레위인과 제사장의 직무가 이제 모든 사람에게 개방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레위의 집에 주어진 사명이 다 마쳐져서 해산되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은 지성소 휘장 뒤에 머물러 계실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이 땅에 사셨을 때 성전의 성소에 들어 갈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레위인도 제사장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집이 아들 예수님에게도 닫혀 있었습니다. 이것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첫 번째 휘장이 찢어짐으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으신 예수님이 레위인의 임무를 모든 사람에게로 개방합니다. 이스라엘백성은 지금까지 성전을 레위인에게 빼앗겼던 것입니다. 이제 모든 이스라엘백성이 성전을 되찾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는 것을 금지 당했으나 이제 하나님을 보게 됩니다. 이제 첫 번째 커텐이 찢어짐으로 성전의 문이 활짝 열립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그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산 길이요 휘장은 곧 저의 육체라" (히 10:19). 골고다 십자가 밑의 이방인 로마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 제자들은 도망갔지만 이방인이 이 예수님을 향해서 구원을 얻을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부장에게 하늘의 보좌가 열립니다.

십자가 위에서 참 성전이신 예수님이 찢기심으로 그림자인 돌 성전의 휘장도 찢깁니다. 하늘의 성전의 그림자 성전인 예루살렘의 돌 성전의 역할이 다했다는 선언입니다. 레위인과 제사장만 들어갔던 성전은 이제 쓸모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새롭고 산 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직행할 시온의 대로가 믿는 자에게 열렸음을 가르쳐 줍니다. 사실 예수님 자신이 육신 성전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예수님 속에 감추어진 하나님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계시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숨어 계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를 가리던 휘장처럼, 예수님의 육신 성전이 찢어지지 않으면 사람들이 하나님을 볼 수 없고 만날 수도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열방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도록 예수님의 육신 성전은 찢어져야만 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성령의 전인 우리의 부서짐, 우리의 육체적인 죽음 역시 하나님의 영광을 직접적으로 보는 영광스러운 사건이며 하나님을 직접 만나는 복된 사건이 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님이 세례 받을 때 하늘이 열려서 하늘이 이 땅에 내려왔습니다. 이 사실을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 재확인해 주십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이 찢기심으로 열려진 하늘 은혜의 성소로 나아오라고 초청하십니다. 그 산 길은 보혈의 대가를 치른 것이지 값싼 것이 아닙니다. 죽음의 그늘에 있던 사람에게 산 길, 은혜의 길, 하늘의 길을 주신 것이 복음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님이시니, 다른 중보자를 의지하지 말고, 하늘 보좌로 직행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기도요 예배를 통해서 가능합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사람과 하나님의 기쁨으로 삽시다. 기도하십시오. 이 생명의 길을 통해서 하나님을 만나도록. 전하십시오. 예수님이 생명의 길 되심을! 아멘.




댓글

황창기
할렐루야! 참으로 은혜로운 설교였습니다. 내가 아는 친지들에게 들어보라고 메일을 보냈지요.그런데 다시 들어와 보니까 '동영상'이 없네요!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설교는 읽는 것보다 을어야 하니까요. 동영상이 제 때에 뜨도록 부탁합니다. 10/14

송영목
죄송합니다. 주일 저녁에 올리도록 조치 취해 놓았습니다. 10/15

홍성수
첫째 휘장과 둘째 휘장에 대한 이해 또한 그리스도 예수님의 구속의 사건에 대한 풍성한 이해를 잘 드러내는 명확한 복음설교입니다. 우리 앞에 열린 새롭고 산 길을 따라 담대하게 행진하는 대학교회 또한 그 속에 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감사합니다. 동영상을 올리는데엔 작업시간이 소요되는데 가급적 빨리 올릴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작성일:2007-10-16 01:24:33 125.189.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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