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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한편

제목

하나님의 복음 [롬 1:1-7]

닉네임
황 창 기
등록일
2007-10-16 01:07:12
조회수
4834
대학교회 [www.daehaak.org]에서 설교한 것을 들어 보세요. 설교는 읽는 것보다 듣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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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독재로 시달리던 미얀마 [버마]에 민주화를 갈망하는 승려 및 시민들의 궐기로 희생자가 여러 명 생기고 국제적인 비난에 직면하였다. 그러자 Ibrahim Gambari가 유엔특사로 유엔의 메시지를 가지고 갔다. 감금당한 야당지도자 앙산 수치 여사를 만나고, 군부에게 민중들의 민주화 열망을 들어주라고 하였다.
로마서는 마치 이런 특사 또는 대사 편지 [ambassadorial letter]와 같다고 한다. 마치 대사가 낯선 나라에 와서 신임장을 제시하고, 자기가 속한 출신 나라의 관심사를 전달하고 변호하는 것과 같은 내용을 담은 편지라는 말이다.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 로마 황제가 통치하는 로마에 와서 ‘예수님이 유대인이 학수고대하던 그리스도요, 우리 성도들의 주인’이라고 주장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4절]이 전문용어처럼 되었다. 그 때까지의 순교의 피와 많은 성도들의 고난으로 이루어진 증언이다. 그러나 복음이 처음으로 들어가는 곳곳마다 그랬지만 예수님이 곧 그리스도 [왕]란 말은 로마에서도 쿠테타 성 발언이었다. 이것은 그 당시 사회로는 도저히 말할 수 없는 금기 사항이다.

그리고 당시 로마에 있는 교회 안에는 유대인 출신과 이방인 출신이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로 어울러야 하는 중대한 과제가 있었다. 교회 바깥은 글라우디오 황제의 유대인 추방령 [행 18:2]과 그 다음 황제 네로가 이 칙령을 풀어주어 유대인이 떠나는 것을 반기던 사람들이 다시 그들을 용납하는데 대한 사회적 갈등도 많았다. 엄청난 사회적 문제 속에 주님의 나라를 세우는 바울이 쓴 이 로마서이기에 특사 편지라는 말이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고 하겠다.

로마서의 서론은 1:1-18이며, 이 서론의 중심주제는 크게 2 가지로, 하나는 ‘하나님의 복음’이요,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의’이다

따라서 위와 같은 제목으로
“주님 변혁은 나의 변혁이다!”라는 요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우리는 생명에 필수적인 공기와 물을 평소에 예사로 여길 때가 많다. 마찬가지로 우리 신앙에 기본인 ‘복음’에 대해서도 예사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오늘 이 설교로 이런 잘못을 고치는 계기가 되기 바란다.

“주님 변혁은 나의 변혁이다! 왜 그런가? 이를 위하여 먼저 복음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겠다.
1. ‘하나님의 복음’이란 무엇인가?
본문에서 복음은 ‘선지자들로 성경에 미리 약속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에 관한 것’[2절]이라 하였다. 도대체 하나님의 아들에 관해서 무엇이 어찌 된 것이 복음 즉 ‘기쁜 소식’이란 말인가?
복음은 3절과 4절 내용이다.
[3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이 내용을 어떻게 이해할까? 우리는 고전 15:3-5절에서 이미 복음을 잘 알고 있다.
복음은 “...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여기에 동사가 4개 나온다. 따라서 복음은 ‘해석이 없는 4 동사’ [동작 = 사역; Christ's four verbs without interpretation/ G. Machen]라고 대학교회에서 여러 번 설명한 것을 기억할 것이다. 예수님의 하신 일 4 가지 [동사]가 왜 복음인가? 이를 믿으면, [고린도에 사는]사람이 바로서고, 구원을 받는 [고전 15:1-2]기적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여기 우리 본문 3절, 4절도 이런 식으로 복음을 설명해보자! 사실 칼빈과 같은 개혁주의 옛날 학자들은 3,4절이 예수님이야말로 ‘완전한 사람이면서 완전한 하나님’이심 [예수님의 신인양성]을 기록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3절은 예수님의 ‘인성’을 설명하고, 4 절은 예수님의 ‘신성’을 묘사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러나 구원사적인 새로운 시각으로는 복음이란 ‘3절 내용에서 4절 내용으로 바뀌는 것! 즉 예수님의 변혁[화]’ (transformation) 를 말한다.

그게 무슨 말인가? 좀 더 자세히 설명하자
3절 이아들에 관하여 : 육신적으로는[according to the flesh] 다윗의 혈통[후손/ 씨앗]에서 [아기 예수]로 나시고,
4절 성결의 영으로는 [according to the Spirit of holiness]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로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 [Son-of-God-in-power by the resurrection]로 인정되었다.[만 천하에 분명히 드러났다.]
쉽게 말하면
3절은 예수님이 하늘 영광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오셨다는 말이고,
4절은 같이 부활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알려지고, 확인되어 아무도 부정하지 못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이 말은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전에는 자격도 없는 분이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신 아들로 새로이 임명되었다는 말이 아니다! 본문이 밝히고 있는 것은 하늘 보좌에 계시던 예수님이 낮고 천한 이 세상에 약한 육신을 입고 어린 아기로 오셨다가,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로 확실히 알려지게 되었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자면 부활 후에 하늘에 오르시고, ‘오순절 성령’ 즉 ‘살려주시는 영’[life-giving Spirit]으로 다시 오심으로 ‘이 세상’이 ‘오는 세상’으로 바뀌었다는 말이다.

3절과 4 절은 분명히 대조되고 있다.
3절의 ‘나셨고’ [genome,nou] 는 4절의 ‘인정되셨고’ [o`risqe,ntoj]와 대조되고 3절‘육신으로는’[kata. sa,rka(],4절‘성결의영으로는’[kata. pneu/ma a`giwsu,nhj]와 대조되고, 3절의 ‘다윗의 혈통에서’ [evk spe,rmatoj Daui.d], 4절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evx avnasta,sewj nekrw/n]와 각각 대조 된다.
요약하자면 복음은 3절에서 4절로의 예수님 변혁 [transformation]을 말한다. 즉 3절의 ‘이 세상’[this Age]에 4절의 ‘오는 세상’[Age to come]이 와서 ''이 세상'에 ‘오는 세상’[하나님의 나라]가 들어오기 시작하였다는 것이다.

복음이 무엇이냐? 그 답은 “주님의 부활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에 ‘오는 세상’이 들어왔다”는 것이다.

이 말씀은
[고전 15 45] 첫 사람 아담은 산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고후 3: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 함이 있느니라.

와 같은 변혁을 말한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미 ‘오는 세상’에 들어 온 ‘우리의 특권’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그래서

[요5:24]“....내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골1:13]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라는 표현대로 지금 여기서 즐기고 있는데, 주님 재림 후에는 더욱 완전한 천국을 소유할 것이다. 이제 눈을 떠서, 정신 차리고, 천국을 기뻐하는 우리가 되자!

주님 변혁은 나의 변혁이다! 왜?
2. 나도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주님의 백성 [성도]이 되었기 때문이다
이런 변혁을 거친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고 4절 끝에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하늘에 계시던 분이 인간의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오시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니라’고 하였다는 말이다. 베드로가 오순절 날 성령이 임하자, 일어나서 성령의 강림[오심]을 다음과 같이 외쳤다.

[행2:36]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이 정녕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님을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유대인이 손꼽아 기다리던 메시아 곧 그리스도는 다른 사람이 아닌 이 예수님이시란 말이다.
사도행전의 주요 메시지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이다. 이 구호‘예수님이 바로 그리스도이시다!’를 반복하다 보면 토씨인 ‘은’자를 빼고, ‘...이시다’표현을 빼어버리면, ‘예수님! 그리스도!’로 줄어진다. 즉 간략한 표어처럼 되어졌다. 이 표현이 익숙해지니까, 나중에는 거꾸로‘그리스도는 예수님이시다.’로 바뀌어‘그리스도 예수’로 바울의 편지글 [서신서]에 많이 사용되게 되었다.

그 다음에 주요한 사실은 이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시다는 사실이다. 당시 로마 황제가 주인 [the Lord]이라는 그 시대의 상황에서 생각해보라! 이 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바로 우리 주님이시요 주인이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왕’이시다! 말하자면 우리는 ‘주님에게 속한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다. 그래서 6절에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ESV Romans 1:6 including you who are called to belong to Jesus Christ.]로마 교회 성도는 황제의 백성 또는 이방신의 백성이 아니란 말이다.

예수님은 나의 주인이시고 나는 예수님의 백성이다.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하나님께서

[겔 37:27]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는 약속이 신약 성도들에게도 이루어 진 것이다.
이것은 예수님이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새로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고, 우리는 오순절 성령을 받아 주님의 새 이스라엘 백성이 된 것이다.
그 분이 죽었을 때 나도 함께 죽었고, 그 분이 묻혔을 때 나도 함께 묻혔고, 그 분이 다시 사셨을 때 나도 함께 부활하였고, 그 분이 하늘에 앉혔을 때 나도 함께 하늘에 앉히었다. [엡 2:5, 6/ 롬 6:4]

오늘 설교의 요지는 주님 변혁은 나의 변혁이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육신을 입고 나시어, 부활로 능력을 지닌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는 변화가 “우리도 변하게 하였다”는 말이다.
이제는 예수님께 속한 성도가 되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섬기고 고백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서 ‘하늘나라 사람’으로 바뀌어 살아가고 있다는 말이다. 각 종친회 [금녕 김씨, 진주 강씨. 전주 이씨 식의]에 열심을 다른데 쏟자. 향우회[밀양, 산청, ....] 또는 동문회 [경남여고, ... 대학, S.F.C]는 어디서 왔는지 되돌아 가는 것인데 이는 죽으러 가는 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더 나은 본향 향우회 [구역, 셀]에 소속되어 천국 건설에 힘쓰자.
[결론]
***'복음(기쁜 소식]'은 아래와 같은 구원 역사적 진전을 하였다. 즉
ㄱ]이사야 40:9과 52:7절에서 말하는 기쁜 소식은 바벨론 패배하였다는 기쁜 소식이다. 이스라엘의 70년 포로 생활이 끝나고, 시온에 야훼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는 놀라운 소식이 복음이었다.

ㄴ] 고전 15:3-5절 [엡 2:5-6절]에서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묻히시고 다시 부활하시어 여러 사람에게 보이시는 것 자체가 복음이다. 따라서 우리가 죄에서, 사망에서, 사탄의 권세에서 해방되어 구원을 받았다는 기적의 놀라운 소식이 복음이라면

ㄷ] 우리 본문 롬 1:3-5은 좀 더 큰 그림의 기쁜 소식을 말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땅에 성육하시어 십자가에 죽으시고 묻히시고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시어, 오순절 성령으로 다시 오시는 “주님의 변혁”이 복음이다. 따라서 이 세상에 사는 나도 “변혁되어” [세상 임금 따라 살 던 내가 성령의 사람으로 바뀌어]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인, 나의 왕으로 섬기는 “큰 변혁” 속에 날마다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화해가는 놀라운 소식이 복음이다. 즉 주님 변혁이 나의 변혁이라는 것이 복음이다!

이제 우리에게는 구원을 이래서야 받겠느냐 식의 안타까움과 애석함이 있을 수 없다. 대신에 주께서 다 마련해 주신 은혜와 복을 누리지 못하는 자신의 게으름과 잘못을 미워해야 할 것이다.

황금만능주의 세상에도 예수 그리스도가 나의 왕이시다 ! 음란퇴폐주의 세상에서도 ‘정욕’ 아니라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시다. 주님이 나의 왕! 오늘도, 내일도! 주일을 지난 다음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언제 어디서든지 주님의 성도, 즉 주님의 백성으로 신실하게 살아야 한다.
주님 변혁은 나의 변혁이다! 이 복음에 순응하자!
작성일:2007-10-16 01:07:12 125.189.3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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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ristpanta 2007-10-16 01:11:13
롬1:3-4의 자세한 주석적 설명은 미국 동부Westminster신대원의 R. B Gaffin, Jr. 교수 The Centrality of the Resurrection, 98-113 을 참조하라 [우리 도서관에 한글 번역판도 있음: 최근에 개정판은 Resurrection and Redemption으로 나왔음]
그 핵심은 1:3.4절이 각각 그리스도의 '신인양성'을 설명한다는Calvin, C. Hodge, B B.Warfield 입장을 버리고, Redemptive Historical transformation을 주장하는 G.Vos, Greijdaus, Ridderbos, Murray의 입장을 따른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