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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제해설] 하나님께서 "영이 없는 사람”과 “영이 있는 사람”을 각각 따로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것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 1:26; 창 2:7)

닉네임
PAUL
등록일
2018-07-15 08:36:42
조회수
2008
[질문] (2018-07-10)
하나님께서 “영이 없는 사람”(창 1:26)과 “영이 있는 사람”(창 2:7)을 따로 만들었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창 1:26; 창 2:7)

[난제의 이유]
성경이 위의 두 구절의 상호관계에 대하여 직설적으로 설명을 하고 있지 않아서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이 그 표현과 기록방식 중에 사전에 대부분 그 내용에 대한 배경설명과 그 기록방식에 대한 설명이 없이 바로 기록에 들어가기 때문에, 그 문맥을 정확하게 이해하지 않으면 잘 못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이 두 구절도 전혀 다른 내용의 기록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그 말씀들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오해하기 쉬워서 난제가 됩니다.

본문의 내용을 보면, 창 2:7에서는 사람을 지을 때에 코에 “생기”(ruach)를 불어넣어 “생령”(nepesh haya)이 되었다고 해서 “영”(ruach, pneuma, spirit) 혹은 “영혼”(nepesh, pshike, soul)이 있으므로 “영이 있는 사람”이지만, 창 1:26-27에서는 “영”에 대한 언급이 없이 그냥 사람, 즉 남자와 여자를 지었다고만 했기 때문에, “영이 없는 사람”이라고 하는데, 이 두 구절의 상호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반론하기가 어렵게 됩니다. 요즈음에도 유명한 교역자들, 심지어 학자들 중에서도 이와 같이 잘못된 이단설을 전하는 사람들이 있어서 안타깝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이중 창조를 주장하게 되면, 인간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원죄와 인간에게 일률적으로 적용되는 구속에 있어서 결정적인 오류를 범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해석 방법론]
본문 창 1:26과 본문 창 2:7을 해석하기 위하여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두개의 본문이 전혀 다른 내용이 아니라는 사실에 기초해야 합니다. 이 두 개의 창조사건이 둘이 아니라 하나의 내용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단설에 빠지기 쉽습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이 인정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들에 대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첫째로, 이 두 개의 본문의 기록이 단일창조론에 근거하고 있다는 사실과, 둘째로, 이 두 개의 본문의 기록들의 전후관계에 생략된 부분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셋째로, 이 두 본문의 기록방식이 있다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본문 자체의 정확한 분석과 신학적인 지식이 필요합니다.

[답변과 해설]
전술한 바와 같이 이 두 개의 본문(창 1:26과 창 2:7)의 인간 창조사건이 다른 사건이 아니라 하나의 내용을 가진 동일한 사건으로 그 기록 동기가 분명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그 단일 창조론을 통하여 인간에 대한 이중 창조론을 배척해야 합니다. 그리고 본문 창 1:26의 인간창조에서 “영이 없는 사람(아담)”과 본문 창 2:7에서 “영이 있는 사람”을 만들었다는 이단적인 이중창조의 견해를 배격하기 위해 성경적인 창조론과 구속론의 차원에서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의 창조론과 구속론은 절대로 분리될 수 없이 연계된 것입니다. 왜냐 하면, 이중 창조론의 주장과 같이 사람을 두 번에 걸쳐서 창조했다면, 다음에 창조한 사람은 아담의 죄와 전혀 관계없이 무죄한 인간이라는 결론이므로, 구속의 필연성이 없어지게 됨으로 이는 성경이 정죄하는 이단사설이 될 것입니다.

1. 인간의 단일창조
우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성경본문들을 잘 분석하여 그 본문들이 어떠한 원리로 기록되어 있는가를 파악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본문들의 인간창조의 사건이 동일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만일 다른 사건이라고 주장한다면, 이는 단일창조론에 위배되어 자유주의적 성서비평의 오해를 받게 되며, 인간창조에 관하여, 사람을 두 번 창조했다는 이중창조의 오류에 빠지게 됩니다.

이러한 견해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한 조상으로 한 번의 창조로 완성하셨고, 이 단일창조의 동기는 하나님에게는 영이 유여할지라도 한 영을 지어 경건한 자손을 얻으려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지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지니라”(말 2:15).

2. 성경기록의 생략부분
성경은 인간 창조에 대한 기록에 있어서도 전후관계를 생략하였다는 것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창 1:26에서는 창 2:7의 내용과, 창 2:21-23의 내용이 생략되었고, 창 2:7에서는 창 1:26과 창 2:21-23의 내용이 생략되었으며, 창 2:21-23에서는 창 1:26과 창 2:7의 내용을 생략하고 기록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해보면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창 1:26에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image), "모양"(likeness)으로 만들었고,
(2) 창 2:7에서는 사람을 흙(earth)에 생기(breath of life)를 불어넣어서 만들었고,
(3) 창 2:21-23에서는 사람을 남자(man)와 여자(woman)로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위의 성경의 기록들을 피상적인 표현으로만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을 세 번에 걸쳐 만드신 것 같이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성경의 세 번에 걸친 이러한 기록은 인간을 각각 따로 따로 세 번에 걸쳐서 창조한 것이 아니라, 그 기록의 적성에 따라 필요한 부분만을 기록한 것으로 보아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이 세 번에 걸친 기록의 내용은 사실상 같은 내용을 분리해서 각론적으로 기록하고 설명한 것입니다. 이것을 창 1:26에서는 인간의 영적인 본질에, 창 2:7에서는 인간의 육적인 본질에, 창 2:21-23에서는 인간의 육체의 구체적인 남녀의 관계의 본질에 초점을 맞추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3. 성경기록의 방식
창 1장에서의 천지창조의 창조기사에서와 같이 성경은 먼저 일반적으로 총론적인 내용을 선언한 다음에 구체적인 내용에 대하여 언급하는 방식을 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창 1:1에서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총론적인 선언(general remarks)을 한 다음에 1:2에서부터 천지창조의 구체적인 내용을 각론적으로 순서에 따라서 서술하는 방식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방식에 의하여, 인간창조의 내용도 처음에 창 1:26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고 선언하고, 2:7에서 그 만드신 구체적인 내용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1) 창 1:26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다른 동물들과 달리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 imago Dei), “하나님의 모양”(the likeness of God, instar Deo)으로 창조하심으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불가견의 영적 차원(spiritual dimension)에서와, 하나님의 모양이라는 볼 수 있는 유형적 차원(corporeal dimension)에서 개진함으로써 하나님을 닳은 인간의 영혼과 인간의 육신의 창조를 포함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학자들에 따라 "형상"(image) 과 "모양"(likeness)을 같은 뜻으로 보는 견해와 다른 뜻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에 있어서 하나님의 형상은 전인적인 인간의 차원에서 접근해야 합니다.

이러한 면에서 본문을 정확히 번역하자면, "우리의 모양을 따라"(according to Our likeness, after Our likeness) "우리의 형상으로"(in Our image) 만들었다 라고 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모양"이 "하나님의 형상"과 동의어로, 혹은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수식어로, 그리고 때로는 교호적으로(창 1:26; 5:1-3; 골 3:10) 사용되었기 때문에 이 부분은 전인적인 인간(영과 육, 창 2:7)의 차원에서 다루는 것이 성서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과 "그리스도의 형상"의 차원에서 인간의 형상을 타락의 과정을 통한 부활의 차원의 연장선상에서 다루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창조시에 하나님의 형상이 인간에게 어떻게 유입되었는지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에서 창 2:7의 인간창조와의 연관성을 충분히 알 수 있고, 창 1:26에서 이미 하나님의 형상이 유입되어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완전한 인간, 물론 인간은 본질적인 면이나 비공유 속성에 있어서 하나님과 구별이 되지만, 어쨌든 하나님의 형상(archetype)이 인간에게 복사되어(ectype) "영을 가진 인간"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창 1:26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것을 보면 인간에게 이미 영이 창조되어 이때에 창조된 아담 역시 “영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1) 불멸의 영적존재(a spiritual being capable of immortality, 창 1:26)이고, (2) 하나님의 모습을 닮은 도덕적 존재(a moral being bearing God's likeness, 창 1:27)이며, (3) 이성(reason)과 통치력(rulership)을 가진 지적인 존재(an intellectual being with capacity for reason and rulership, 창 1:26, 28-30)로 창조되었다는 것입니다.

(2) 창 2:7에서는 인간의 전인적인 구성방법을 구체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창 1:26에서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만들었다고 하는 인간창조에 대한 총론적인 선언에 따라, 창 2:7에서는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에 대하여 그 창조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령인 사람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인간의 몸(body)이 흙(earth, dust, clay)이라는 것과, 육신의 생명이 호흡(breath)에 있다는 것은 다른 동물들과 하등의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이 다른 동물들과 다른 것은 인간에게 생기를 불어넣을 때에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을 인간의 영혼에 각인시켰다는 것입니다. 짐승과 같은 다른 동물들은 단순히 말씀에 의해 창조되었으나, 인간은 하나님께서 성령(the Holy Spirit)을 통하여 직접 생기를 불어넣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이 되었기에 다른 동물들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만물의 영장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3) 창 2:21-23에서는 창조된 인간(창 1:26, 2:7)인 아담의 몸에서 갈빗대를 취하여 여자인 하와를 만들었다고 했습니다. 인간창조에 있어서 점점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이 모든 창조는 하나님 편에서 보면, 하나의 창조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적인 차원에서 아날로그 방식으로 보면 세 부분으로 보이지만, 디지털 방식으로 들여다보면, 인간의 창조는 하나의 사건으로 보인다는 뜻입니다. 이와 같은 각각의 설명을 통하여 인간의 전인적인 창조의 내용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간의 전인적 구성요소들이 전술한 내용들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것으로 인간창조의 단일성을 확인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창 1:26의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이 창 2:7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고, 인간창조의 단일성이 창 2:21-23에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한 인간인 아담을 짓고 또 다른 사람을 별도로 지은 것이 아니고, 또 한 아담에게서 하와를 지은 사실로 보아 인간은 한 아담만을 지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말 2:15).

[결론]
창세기 1:1의 “태초에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라는 말씀과 그 다음(창 1:2-31)에 기록된 내용이 같은 창조사건이라는 것과 같이, 창 1:26의 인간창조와, 창 2:7의 인간창조, 그리고 창 2:21-23의 남녀의 창조가 각각 따로 따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같은 창조의 범주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창 1:26의 인간창조는 나머지 창 2:7과 2:21-23의 창조사역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창 1:26의 창조기사는 총론적인 선언으로 앞으로의 창조사역의 연장선상에서 이해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인간의 복수창조의 오류에 빠지게 되고, 신학적으로 일관성 있는 인죄론과 구원론에 결정적인 오류로 인하여 이단사설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창 1:26이나 창 2:6에 창조된 사람은 똑같이 “영이 있는 사람”임에 틀림없습니다.

THE END

REV/DR. PAUL B. JANG
Email: revpauljang@hotmail.com
Website: www.mission4.org (한글)
Website: www.usmission4.org (영문)
작성일:2018-07-15 08:36:42 107.184.13.1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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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ramdeopaul 2018-08-11 23:32:27
한국에서도 수만명이 모이며 엄청나게 큰 교회의 목사님이 그런 설교를 하고, 심지어 신학을 연구한다는 신학자들 중에서 이런 이단설을 유포하니 걱정이 됩니다.
jumalsm43 2018-08-03 18:43:08
창2:7 - 생령이 되었다는 말은 살아 있는 사람이 되었다는 말이지요...
이중 창조론 이단들이 그런 엉터리 말도 만들어 앴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