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영국에서 유대인들을 대상으로 사역하고 있는 박계원 선교사가 소책자 '대영 박물관과 성경'을 책의 저자 제이 스미쓰 동의를 받아 번역하여 코람데오닷컴에 소개합니다.- 편집장 주

 

박계원 선교사

현재 런던의 유대인 밀집지역인 골더스 그린을 중심으로 직접 전도 및 The Bridge Christian Fellowship 사역/ 파송 교회: 부산북교회/ 파송 예장고신 동서울 노회 (구)/ 소속 선교단체: GMP

목차

신 앗수르 왕국: 주전 934-608년

족장 시대: 주전 1900-1400년

▶바벨론 왕국: 주전 615-539년

바사 (페르시아) 왕국: 주전 550-330년

고고학자들의 성경에 관한 언급들

사해 사본들

초기 로마 왕국

대영 도서관

 

 

 

 

바벨론 왕국: 주전 615-539년

[18] 나보니두스의 원통형 토기 (주전 556-539년)

몇몇 역사가들은 다니엘서가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어 의문들을 제기 했다. 다니엘은 네 개의 왕국들에 대해 예언하는데 그 중 두 왕국이 그의 생존 당시 존재하였다. (바벨론과 바사 [페르시아]) 그는 앞으로 존재할 다른 두 개의 거대한 왕국들에 대해 언급했는데, 주전 3세기에 알렉산더 대왕과 그의 세 명의 장군들 하에 존재할 그리스 왕국과, 주전 2세기에 권력을 쟁취할 로마 왕국이다. 다니엘은 어떻게 3, 4백년 후에나 일어날 일들에 대해 알 수 있었을까? 회의론자들은 다니엘서의 신빙성을 훼손할 수 있는 증거들을 찾기 위해 노력했고 이들은 역사가들에게 알려지지 않은 벨사살 왕의 이야기를 지적함으로 성공했다고 믿었다.

성경은 벨사살이 벌인 향연 중 벽에 쓰인 의문의 글을 해석하기 위해 다니엘이 불려왔다고 기록한다. 벨사살은 다니엘을 향해 말하기를 “만약 네가 이 글을 읽고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내게 이야기할 수 있다면 너에게 자주색의 옷을 입히고 너의 목에 금 목걸이를 걸어 주며 왕국에서 세번째 높은 지위를 차지하게 될 것이다.”

나보니두스의 원통형 토기

만약 벨사살이 바벨론 왕국의 왕이라면 왜 다니엘이 두 번째가 아니고 세 번째 높은 지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약속했을까? 더 중요한 것은 거의 모든 역사가들은 주전 539년 메대 왕국의 다리오 (고레스 왕의 승인 아래)에 의한 침략 당시 바벨론의 마지막 왕은 나보니두스라고 알고 있었다. 심지어 100년 뒤 기록한 헤로디투스조차 나보니두스를 정복당한 마지막 왕으로 언급하고 있다. 이 기간 동안의 모든 유물들은 나보니두스에 대해서만 기록하고 있다. 오직 성경만 유일하게 벨사살을 마지막 왕인 것으로 이야기한다. 이것을 설명하기 위해 역사가들은 다니엘서는 주전 6세기에 일어난 일을 주전 2세기가 되어서야 썼고, 전설적 인물일 뿐인 벨사살 왕에 대한 이야기를 포함시켰다고 주장했다. 즉 이들은 다니엘서 저자가 로마의 권력 쟁취 후 기록하였기에 네 개의 모든 왕국들에 대한 역사적 기록들을 가지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마지막 왕의 이름과 관련해 실수가 있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한 ‘원통형 토기’를 통해 성경이 정확하다는 것을 다시 알게 되었는데, 즉 우리가 이미 살펴 보았던 우르의 지구랏에서 발견된 ‘원통형 토기’였다.

이 원통은 나보니두스가 그의 아들 벨사살을 위해 설형 문자로 쓴 기도문을 담고 있다. 이것은 벨사살에 대한 유일한 기록인데, 그가 역사적으로 존재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은 나보니두스가 바벨론의 마지막 왕이었다는 사실을 언급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벨사살이 왕이었다는 성경적 주장과 이 사실을 어떻게 조화시킬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우리는 또 다른 유물, 즉 한 돌판을 방문할 필요가 있다.

이 돌판의 설형문자 (나보니두스 연대기의 일부)는 이야기하기를 나보니두스는 아라비아의 텔마로 갔고 그의 인생의 마지막 십년 기간 동안 왕국에 대한 통치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다고 한다. 이 돌판은 아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보니두스의 기도가 기록된 원통으로부터 그의 이름을 알 수 있는데 그것은 다니엘서에서 발견되는 이름과 동일하다. 즉 이 두 유물로부터 우리는 이제 나보니두스와 벨사살이 겹치는 기간 동안 통치했음을 알 수 있다.

나보니두스의 원통형 토기(사진 박계원)

벨사살이 다니엘에게 (다니엘서 5: 26) “내가 너를 왕국에서 세번째로 삼겠다”고 했을 때 우리는 이제 나보니두스가 왕국에서 첫 번째였고 벨사살이 두 번째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다니엘은 세번째였던 것이다! 2세기 경의 사람이라면 어떻게 벨사살은 바벨론에 있고 나보니두스는 남 아라비아에 있어서 동시대에 통치했음을 알 수 있었을까? 이 기간 후 약 백 년이 지나 기록한 헤로도투스조차 이 사실을 몰랐다. 헤로도투스가 접했던 유물들은 선임 통치자로서의 나보니두스에 의해 기록된 것들일 수 있다. 벨사살은 나보니두스가 살아 있는 한, 성취한 어떤 승리라도 그의 아버지에게 공이 돌아갔기 때문에 그의 이름은 기록들에 남아 있지 않다. 이 경우, 우리는 성경이 헤로도투스보다 더 정확함을 알 수 있다. 이 두 작은 유물들로부터 우리는 다니엘서가 주전 6세기에 쓰여졌고 다른 역사적 기록보다 좀더 정확함을 증명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다니엘서는 주전 2세기에 쓰였을 리 없다.

이것은 다니엘서에 대해 무엇을 이야기하는가? 만약 다니엘서가 6세기에 쓰였다면 이 책은 정말 미래에 대한 예언들을 포함하고 있다. 기독교인들에게 이것은 흥분되는 사실인데, 왜냐하면 다니엘서는 인자와 메시야에 대한 언급으로 가득차 있고 ‘인자’를 신적 호칭으로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니엘서 7장 13, 14절은 다니엘의 환상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한다.

“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로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 권세는 영원한 권세라 옮기지 아니할 것이요 그 나라는 폐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유대인들이 예수님께서 당신을 “인자”라고 주장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이들은 그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정확히 알았다.이들은 인자라는 직함이 갖는 중요성을 알고 있었다. 오직 하나님 스스로만 모든 나라와 종족과 민족과 언어에 영원한 통치를 갖는다고 주장할 수 있다. 이 두 가지 유물, 즉 원통과 돌판은 다니엘서 연대와 내용을 확증할 뿐만 아니라 “인자”라는 직함에 대한 역사성과 중요성을 또한 뒷바침한다.

[19] 헷

헷 족속 형상

창세기는 헷이라고 알려진 민족을 언급한다. 헷에 대한 어떤 사료도 발견되지 않아 이의 존재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하지만 헷의 존재에 대한 질문은 더 이상 필요 없는데 이들이 이제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이 전시실에서 유물들을 살펴보면 이들은 헷문명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수있다. 고고학자들은 헷 족속이 현재 터키 남반부 지역인 아나톨리아에서 천년이 넘게 존재했었음을 인정한다.

우리는 또한 하나님께서 역사를 통해 헷 족속을 사용하셨음을 안다. 이들은 마차를 사용한 첫번째 민족이었다. 이들의 후손들은 메데인들이었다. 바벨론을 주전 539년에 멸망시킨 메대인인 다리오는 헷의 후손이었다. 더 나아가 오순절 날 기독교인이 된 사람들 중 일부는 메대인들이었다! 오늘날 이들의 후손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며, 자신들의 정체성을 모하메드로부터 찾으려 하는 크루드족인데 이들은 하나님께서 헷족속을 통해 이루신 일들을 다시 구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멸망시키기 위해 쿠르드인들의 조상들을 사용하셨으므로 자신들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이슬람에 귀기울이기 보다 이들의 조상들 중 일부가 첫번째 기독교인중 하나였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헷 족속 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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