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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미니즘 신학’ 관련 서적에 대한 비평- 페미니즘이 교회 안으로 밀물처럼 들어온다?
오세라비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 『그 페미니즘이 당신을 불행하게 하는 이유』(공저) 저자, 칼럼니스트)

남성중심주의, 가부장주의, 여성혐오적인 기독교?

“앞으로 페미니즘이 향할 곳은 종교계일 것” 필자가 페미니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인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리에서 가끔 했던 말이다. 왜냐하면, 기독교든 비기독교든 페미니스트들이 볼 때 가장 보수적인 집단이 바로 교회다. 페미니즘 관점에서 보면 마지막으로 여성해방이 되어야 할 요새와도 같은 곳을 교회로 보는 시각을 읽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주위의 일반적인 의견은 아무리 한국에서 페미니즘이 기세등등할지라도 기독교는 페미니스트들이 건드리지 못할 것이라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지난 2~3년 전부터 ‘페미니즘 신학’이라는 담론이 수면위로 드러나기 시작했다. 강단 페미니스트 신학자들을 중심으로 활발한 저술과 매체 기고, 강연 활동을 통해 크리스천 페미니즘을 확산시켜 나가고 있었다. 또한, 이에 적극적으로 반응하는 현상으로는 특히 소셜미디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주로 여성 기독교인, 그중에서도 ‘영페미(Young Feminist)’, ‘넷페미’로 불리는 젊은 여성들로, 국내 페미니즘의 발원지가 된 2015년 8월 ‘메갈리아’ 사이트 개설 당시와 유사한 상황이 겹쳐 보인다.

현대 페미니즘은 68혁명의 신좌파(New Left)운동과 함께 등장한 래디컬 페미니즘으로 미국식 모델을 근간으로 삼고 있다. 영국의 사회학자 앤서니 기든스는 자신의 대표 사회학 개론서 『현대 사회학』에서 페미니즘 운동에 대해 이렇게 분석했다. “19세기 페미니즘은 다른 지역보다 미국에서 발전하였고 대부분의 여성운동 지도자들이 미국의 여성운동을 모델로 삼았다.”

앞서 말하였듯 미국에서 부흥한 페미니즘에 이어, ‘페미니즘 신학’ 역시 가장 활발하게 시작한 나라도 미국이다. 미국 페미니스트 직계 조상격인 엘리자베스 케이디 스탠턴(1815~1902)은 1848년 『여권 선언』을 출판하며 여성 참정권 획득 운동을 최초로 요구한 인물로 페미니즘 역사의 첫 문을 열었다. 또한, 케이디 스탠턴은 1895년 『여성의 성서』를 출판함으로써 성서의 여성 차별적 구절에 대해 비판하며 최초로 크리스천 페미니즘의 단초를 제공하였다. 현대 페미니즘 신학 또한 68혁명 이후 급진적 페미니즘 등장 직후 출현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파란을 일으킨 급진적 여성신학자 메리 데일리는 “만약 신이 남성이라면, 남성이 신이다”라는 남성중심주의에 타격을 가하는 주장으로 페미니즘 신학의 강력한 동력을 만들었다.

필자가 페미니즘을 비판하며 쓴 『그 페미니즘은 틀렸다』를 출판한 2018년 중반 무렵 페미니즘 신학 관련 저서들이 서점가에 띄기 시작했다. 가장 충격적인 서적은 레너드 스위들러 지음 『예수는 페미니스트였다』였다. 이어서 소수에 불과하지만 여성신학자들의 활발한 움직임도 일어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왕성한 저술가이기도 한 강남순 교수는 현재 미국 텍사스 크리스천대학교 브라이트신학대학원에서 가르치고 국내를 자주 오가며 크리스천 페미니즘을 전파하고 있다. 또 다른 여성신학자는 낙태죄 폐지 찬성에 앞장서며 주목을 받은 백소영 교수이다. 필자는 두 여성신학자의 저서를 중심으로 읽어보았다.

페미니즘 전성시대를 맞아 페미니스트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승리의 북소리를 울리자 오래전 출판되었던 페미니즘 신학 서적들이 재조명되기 시작하였다. 약 50여 년 전, 파문을 일으켰던 미국 페미니즘 신학 초창기 저서들이 속속 출판되었고, 국내는 강남순 교수가 1998년에 출판했던 『페미니즘과 기독교』를 20년이 지난 2017년에 개정판을 내었다. 강 교수의 이 책은 2017년 개정판 머리말만 추가되었을 뿐 1998년 내용과 동일했다.

필자의 문제의식은, 국내 소개되고 있는 페미니즘 신학 관련 서적들이 국내외를 막론하고 너무나 구시대적이었다. 반세기 전 혹은 20~30년 전 출판된 책들이 대다수로 오늘날 텍스트로 삼아 현실에 적용하는 것은 납득하기 쉽지 않다.

두 여성신학자의 공통적 인식은 교회 안의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 그리고 ‘성차별주의’였다. 강남순 교수의 중요한 문제제기인 유교적가치관과 부계중심 가족 체계를 기독교에 그대로 적용하는 논리도 받아들이기 어렵다. 칠거지악이니 삼종지도니 조선시대에서나 통용될 법한 전통을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에 되살린다는 점도 마찬가지다. 강남순 교수는 저서 『페미니즘과 기독교』에서 이렇게 주장한다.

“유교적 남성우월주의가 기독교가 합세해 한국 기독교가 더욱 성차별주의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다는 점이다.”(P.104)

백소영 교수는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에서 “2천 년 동안 여성비하, 여성혐오적 이야기들이 교회 안에서 계속 들렸다.”(P.125)로 쓰고 있다.

인류의 문명은 남녀 상호협력, 상호의존, 상호역할분담으로 이어져 왔다. 문명은 발달은 남성의 육체적 신체적 힘을 필요로 했고, 여성은 여성대로 성별 역할에 맞는 문명을 창조해 왔다. 문명과 역사 발전은 사회계약 속에서 이루어져 왔던 것이 아닌가. 여성신학자들의 역사 인식에 유감을 가지지 않을 수가 없다.

한국처럼 유교적 가치관과 남아선호사상, 가부장제가 빨리 무너진 나라도 유래가 없다. 비단 우리나라에만 해당되지 않고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 공히 가부장적 질서, 남성적 특성이 가치우위를 점하던 사회가 막을 내렸거나 내리고 있다. 여성들이 남성들의 경제적 보호나 남성의 보호를 받아야하는 연약한 존재에서 벗어난 시대다.

그럼에도 여성신학자들은 앞서 말하였듯 ‘가부장주의’와 ‘남성우월주의’, ‘성차별주의’ 그리고 ‘한국 기독교의 유교적 영향’에 집중하며 끊임없는 비판을 가하였다. 생각건대 여성신학자가 아니더라도 페미니스트들이 주야장천 외치는 어젠다와 정확히 일치하는 것으로 현대 페미니즘이 출현한지 50여 년 전부터 페미니즘 기존의 구도인 것이다. 남성들이 세상을 지배하고 여성은 피해자요 희생자, 남성들의 욕망은 전능하며 여성은 굴종적인 위치에 있다! 아름다움도 사회적으로 강요받는다. 모든 원인은 가부장주의에서 기인한다! 이런 맹목적인 사고방식을 되풀이해 온 페미니즘 세계관을 ‘페미니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기독교 안으로 끌어들였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현재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남성들의 삶에 대한 태도가 이미 달라졌음에도, 남녀가 법적으로 평등을 누리고 있음에도, 여성들이 모든 권리를 누리고 있음에도, 무엇보다 가부장주의는 끝났음에도 페미니즘은 정치, 문화, 법, 종교 등 모든 영역에서 인식은 변함없다.

프랑스 철학자이자 페미니스트이기도 한 엘리자베트 바댕테르는 저서 『잘못된 길』에서 급진적 페미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하며 이렇게 적고 있다.

“페미니즘은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차이점을 요술지팡이처럼 한 번에 없애 버렸다. 유럽 여성들의 상황과, 동양 여성들의 상황, 부르주아 집안 여성, 아랍 여성까지 똑같이 만들며 여성의 희생자 이미지를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렇다! 페미니즘은 페미니즘 신학이라는 이름으로 까지 과도한 보편화를 하였다. 페미니즘의 논리체계를 기독교와 교회 안으로 들여온 것이다.

필자는 페미니즘은 누누이 반세기 전 유물이며, 소수 엘리트 여성들에게 유리한 기회의 창이라 주장하였다. 또한 백인여성 중간계급의 이상과 투쟁을 페미니즘 브랜드화 하였다고 말하였다. 각 나라는 그 나라가 지닌 고유의 가치가 있음에도 급진적인 백인 페미니스트 신학자의 주장을 국내에 고스란히 들여와 마치 그것이 보편적인 질서인 양 해석하며 근거로 인식하는 것은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는 점을 강조하며 글을 마친다.

 

오세라비  webmaster@kscoramde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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