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평세 박사(트루스포럼 연구위원, 보수주의 블로그 SamizdatKorea.org 운영)

정부가 목회자나 성도의 신앙고백을 ‘차별금지’라는 이름으로 제한하거나, 심지어 교회의 예배 모임을 ‘감염방지’라는 명목으로 금지하려는 시도마저 진행되고 있다. 교회와 성도가 자발적으로 큰 모임을 자제하고 가정단위의 예배를 활성화하는 것과, 이를 국가가 나서서 규제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신앙의 자유는 국가 위에 있는 하나님이 주신 권리이기 때문이다. 정부의 이런 간섭은 의도했던 안 했던 결국 인간의 기본권인 종교의 자유를 억압하는 수순을 밟게 된다.

이런 계기를 통해 한국교회가 그동안 너무도 안일하게 누려왔던 종교의 자유를 깊이 숙고하고 자유에 대한 이해를 갈구하게 된 것은 불행 중 다행이다. 그러나 여전히 종교의 자유를 ‘여러 자유 중에 하나’ 혹은 ‘표현과 언론의 자유 다음 정도 순위의 자유’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의 정치 사전에도 종교의 자유는 후 순위에 밀려있다. 하지만 적어도 그리스도인들은 종교의 자유가 분명 다른 모든 자유보다 우선되는 가장 첫 번째 자유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미국의 권리장전이라고 부르는 수정헌법 제1조에도 다섯 가지 자유 – 종교, 표현, 언론, 집회, 청원 – 중 종교의 자유가 가장 먼저 명시되어 있다. 그래서 미국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첫 번째 자유”(First Freedom)라고 부른다. 실제로 미국은 무엇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영국을 떠나 네덜란드를 거쳐 대서양을 건너온 청교도들이 정착해 뿌리를 내린 나라다. 그들은 1620년 신대륙을 밟기 전, “하나님의 영광과 기독교 신앙의 진흥”을 위해 “시민 정치체제를 결성할 것”을 “하나님 앞에” 약속했다. 바로 세계최초의 성문헌법인 ‘메이플라워 서약’이다.

 

출애굽에서 배운 미국의 자유사상

미국의 종교사학자 제임스 버드(Byrd) 교수는 영국의 식민지 시절부터 미국 건국 초기까지(1674년~1800년)의 543개 교회 설교문에서 인용된 17,148개의 성경구절을 찾아냈는데,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 출애굽 이야기가 가장 많이 인용된 본문 중 하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미국인들은 애굽의 노예제를 탈출해 광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나라를 세웠던 이스라엘 민족과 스스로를 동일시했다. 이 외에도 미국인들이 독립과 건국의 과정에서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을 참고했다는 증거는 매우 많다.

미국이 독립선언을 한 1776년 당시 가장 많이 팔렸던 토마스 페인(Paine)의 『상식』에도 출애굽 이야기가 인용되어 있다. 그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사무엘 셔우드(Sherwood)의 『광야로 탈출한 교회』(The Church’s Flight into the Wilderness)였는데 이 책도 출애굽 사건과 미국 독립의 일치가 주된 내용이었다. 독립선포 직후 독립국 미국의 상징을 고안했던 벤자민 프랭클린(Franklin)과 토마스 제퍼슨(Jefferson)은 모세가 홍해를 가르고 히브리민족을 이끄는 장면을 미국의 국장(Seal)으로 제안하기도 했다. 당시 미국인들은 영국 왕 조지 3세를 바로 왕이라 불렀고 독립전쟁 영웅이자 초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Washington)을 ‘미국의 모세’라고 부를 정도였다.

정치철학에서 보통 자유를 ‘구속으로부터의 자유’(freedom from ~ )를 의미하는 소극적 자유(negative liberty)와 ‘하고자 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자유’(freedom to ~ )를 의미하는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로 구분한다. 출애굽 사건은 성경에서 말하는 인간의 자유가 무엇인지 명백히 알려주고 있다. 모세가 홍해를 건너 이스라엘 민족을 광야로 이끌고 나온 것은 소극적 자유, 즉 노예해방(freedom from slavery)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출애굽은 적극적 자유(positive liberty)를 의미했는데 그것은 분명 ‘예배할 자유’(freedom to worship)였다. 모세는 바로 왕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절기를 지키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기(출 5:1,3)” 위해 그들을 보내 달라고 요구했다.

미국은 예배할 자유를 그렇게 최우선적 자유로 삼는 나라로 태어났다. 이것은 또한 종교개혁과 칼뱅주의 정신을 통해 ‘하나님 앞에 선 개인의 발견’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어떤 왕이나 교황의 중재 없이도 모든 개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의가 차별 없이 미친다(롬3:22)”고 못 박은 ‘만인제사장(예배자)’ 교리는 사실 미국의 건국정신과 자유사상에 핵심적인 것이었다. ‘근대 사학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레오폴드 폰 랑케(Ranke)가 “미국을 건국한 것은 사실상 칼뱅이다”라고까지 말한 것이 이 맥락이다. 미국 역사학자 조지 밴크로프트(Bancroft)도 “칼뱅의 영향력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은 미국 자유의 원천을 모르는 것이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예배의 자유를 버린 유럽과 사회주의로의 귀결

반면 종교와 정치가 너무 오랫동안 깊이 결탁했던 유럽에서는 오히려 이 자유의 개념이 뒤집혀버린다. 자유를 ‘교회와 예배로부터의 해방’으로 인식하기에 이른 것이다. 바로 1789년에 시작한 프랑스혁명이 ‘그 모든 사상에 하나님이 없다(시10:4)’하는 그런 자유였다. 프랑스혁명을 영어로 검색하면 ‘de-Christianization’(비기독교화/기독교청산)이 연관검색어로 나오는 이유다. 그것은 창조질서를 거역하며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 이성을 최고 존재로 추대해 올려놓는 인본주의적 ‘사람 중심의’ 자유였다. 결국, 하나님을 떠나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는(삿21:25)” 자유였다. 이 왜곡된 자유는 가장 먼저 예배를 멈추거나 변질시켰고, 교회를 불태우거나 ‘이성과 철학의 신전’으로 둔갑시켰으며 단두대에서 수많은 성직자들과 성도들을 학살했다. 이후에도 혁명과 독재를 반복하며 공포정치 실험을 계속하던 이 거짓 자유는 결국 과격한 무신론을 그 핵심 신조로 삼은 사회주의를 낳았다.

사회주의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사회주의가 단순한 무신론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회주의가 표방하는 무신론은 대중을 속이기 위한 위장일 뿐이다. 사회주의는 애초부터 예배를 파괴하는 목적을 띄고 있었다. 마르크스는 “위에서 다스리는 그 존재(하나님)에게 복수하고자” 사회주의를 착안했다. 그가 쓴 『울안엠』이라는 희곡은 창조주와 그 피조물을 저주하고 파괴하는 내용이다. ‘울안엠’이라는 이름은 ‘임마누엘’을 뒤집어 쓴 것이다. 성경의 이름이나 단어, 혹은 내용을 거꾸로 뒤집어 읽는 것은 사탄숭배교회에서 하는 의식이다. 사탄숭배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조롱하기 위해 모든 기독교 의식을 뒤집는다. 자정이 되면 검은 초를 촛대에 뒤집어 꽂고 예복도 뒤집어 입으며 기도문을 거꾸로 읽고 십자가도 거꾸로 거는 식이다. 제단 대신 나체의 여인을 두고 실제 성당에서 훔쳐 온 성체로 사탄의 이름을 쓰기도 한다. 성경을 태우고 마지막에는 난교 파티를 한다. 아주 극단적인 예배 파괴다.

마르크스 스스로는 결코 무신론자가 아니었다. 무신론자였다면 신의 존재 여부에 대해 냉담해야 했다. 그러나 그는 매우 열정적으로 종교와 교회와 예배를 증오하고 파괴하려 했다. 마르크스는 하나님을 조롱하고 그 피조물을 망가뜨리기 위해 사회주의를 만든 것이다. 엥겔스(Engels)와 부카린(Bukharin), 그리고 레닌(Lenin) 모두 마찬가지였다. 1871년 파리코뮌 혁명을 이끌었던 귀스타브 플루랑스(Flourens)가 “하나님을 증오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라고 선포했을 때 마르크스는 그를 극찬하며 동조했다. 잠언 1장 7절 말씀을 바꿔 읽은 것이다. 그리고 사회주의는 잠언 1장 10절에서 19절까지 나오는 ‘악한 자’의 꾐을 그대로 사회주의를 통해 충실히 실천한다. 14절에 결정적인 힌트가 나온다. “너는 우리와 함께 전대 하나만 두자.”

러시아에서 1917년 볼셰비키 혁명을 통해 첫 사회주의 국가인 소련이 건국됐을 때 그들의 표어는 이랬다. “땅에서는 자본주의자들을, 하늘에서는 하나님을 축출하자!” 소련과 그 사회주의는 결국 지난 한 세기 동안 최소 1억 명의 사람들을 학살했다. 이제 마지막 남은 사회주의 국가 중국과 북한도, 계속해서 하나님을 부정하며 자연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 하나님의 창조질서인 예배할 자유를 파괴했을 때 인간은 망가지고 멸망하는 것이 당연하다.

 

미국 모델을 따른 우리의 건국 대통령

그러나 우리 대한민국은 건국 대통령 이승만을 통해 프랑스혁명의 자유가 아닌 미국혁명의 자유를 본 따 세운 자유 공화국이다. 이승만은 한성 감옥에서 이미, 개인이 하나님 앞에 설 때 비로소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죄를 짓지 못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착한 일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코람데오’의 진리를 통찰했다. 창조질서에 따른 이 예배의 자유가 인간을 마땅히 인간답게 하고 정치를 바로잡을 수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그리고 탄복한다. “이 어찌 교회가 정부의 근원이 아니리요.” 미국에 건너가서는 더 구체적으로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은 미국의 독립정신과 정치사상을 간파한다.

“신약을 공부하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혁명사상을 얻는 것은 과연 그 책이 진리를 가르치며 진리는 사람의 마음을 자유롭게 하기 때문이다.... [루터는] 개신교를 온전히 세워 사람마다 자유롭게 성경을 공부하며 직접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결국, 이후로 200년 동안 루터가 시작한 개신교가 정치제도를 개혁하기에 이르러 ... 오늘날 구미 각국의 동등한 자유를 누리는 모든 인간 행복이 여기서 시작한 것이다. 그러므로 마틴 루터를 근대문명의 시조라 칭함이 과연 적당하며 이러한 루터 선생의 능력은 곧 예수의 진리에서 온 것이다.”

제임스 버드 교수에 의하면 미국의 독립혁명 당시 출애굽 사건 다음으로 가장 많이 인용된 성경본문은 갈라디아서 5장 1절이었다고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당시 미국인들은 이 구절을 “미국의 모토”(American Motto)라고 부를 정도였다. 놀랍게도 이승만 대통령은 우리에게 이 구절을 유언으로 남겼다. 한국교회는 과연 그리스도께서 주신 예배의 자유를 굳게 수호하여 대한민국이 다시 종의 멍에를 메는 비극을 막아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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